22> 스팍스, 약육강식의 땅

2015. 1. 15. 15:00Tunisia 2015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루아지로 끌려갔다. 스팍스行 봉고차가 한사람을 못 채워 시동이 걸린 채 서 있었다. 

세칸자리 중간이 비었는데 문앞에 앉은 여자가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이 그대로 앉아 있다. 나도 아무말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 마지못해 일어난다.

 

 

 

이번 운전수는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 무리한 추월도 안하고 세월아 네월아 가고 있다,

 

 

운전은 요람처럼 부드럽지, 어젯밤 잠을 설친데다 바람이 솔솔 불어 와 졸음이 쏟아진다.

머리 받침도 없는 좁은 자리에 낑겨 연신 고개를 떨구는데 뒷자리 나이 쳐 드신 아줌마 둘이 쉴새 없이 수다를 떨어댄다.

 

건조한 기후에, 소금에 절여진 허연 배를 드러낸 호수

 

 

 

몇시간을 달려 스팍스 (Sfax) 에 도착했다,

 

무단횡단으로 인한 급브레이크

교차로에선 서로 먼저 가겠다고 들이밀고 창문 내리고 욕하고,

하수도는 터져 악취나는 오물이 몇 백미터씩 도로를 따라 흘러 내리고

여성운전자는 도로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 이렇게 개판인 도시는 첨 본다, 냉정한 약육강식의 땅이었다.

상공업이 발달한 튀니지 제 2의 도시래서 거들떠도 안 봤는데 운명은 어찌하여 날 여기까지 데려 왔는지...

 

DOOSAN 지게차가 여기 스팍스에서도 발견됐다

 

 

 

평일 낮에도 대책없이 막히는 시내를 관통해 루아지 터미널에 도착했다,  4.5 dinar (2,700 원)

 

나이 드신 기사아저씨에게 차비를 내며 ' 따따윈 ' 을 물어 보았더니 친절하게 날 다른 루아지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런데 직원이 티켓을 끊어 오라고 한다. 매표소를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정문으로 나왔는데 매표창구가 여러개다. 아랍글자만 써 있어 주변 사람에게 또 물어보니 하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창구를 가리켰다

 

밖에는 사람들이 파리떼처럼 달라 붙어 있는데 유리창 안에선 모자 쓴 남자가 두손을 주머니에 꽂고 실실 웃고만 있었다,

내 뒤에 청년 두명이 말을 걸어 오길래 지금 상황을 물어 보았다.

"  여기서 따따윈 표 끊는게 맞는데 차가 없다 " 는 것이다. 두 청년은 외국인만 보면 말을 걸었다, 이번엔 러시아 남자에게 달라붙어 똑같은 질문을 하며 영어공부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계속 불어났다.

맨 앞 사람이 악다구를 쓰다가 발권에 성공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마지막 피난선인양 노인과 흑인과 아줌마가 결사적으로 매달렸고 몸싸움에서 밀린 사람들은 포기하고 돌아섰다. 뒤에 맨 배낭이 털리지는 않는지, 앞에 새치기는 안 하는지,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 몸에 힘을 줘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 40 여분 이상 지속됐다.

 

양복 입은 남자가 건물에서 나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뒤 청년들에게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다

"  여기서 이래봤자 차 없으니, 가베스 가서 갈아 타시요 "

 

어쩔 도리가 없어서 정류장으로 나왔다,

중간지점인 가베스라도 가 보려고,,, 이 그지같은 도시를 어떻게 든지 떠나고 싶었다.

 

 

 

아수라장은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은 수십명이 수백명으로 불어났고 루아지라도 하나 들어오면 차를 따라 이리 저리 몰려 다녔다, 어디가는 차인지도 모르면서,,,

차가 제때 온다 해도 8명이 정원인 루아지로 이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엔 턱도 없다.

더우기 난 이들과 몸싸움에서 이기고 자리를 차지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복사한 지도를 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봐도 뜻 모를 소리만 하고...

정 안 가는 이 도시에서 결국 하룻밤을 자야 되나 ? 

어디라도 좋으니 아무 루아지나 잡아 탈까 ?

 

부리나케 배낭을 매느라 긁힌 손에선 핏방울이 흐르다 어느새 말라 버렸다

 

하드포맷 된 것처럼 머리속이 하얘졌다,

스맛폰 초기화 된 것처럼 모든 기능이 무력화됐다

 

서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 앉아 배낭에서 사과를 꺼냈다,

반을 쪼개 예의상 옆에 아가씨에게 권한 후 -No thanks - 사과를 먹었다, 우걱우걱 불안을 씹어 먹었다, 

 

그때 옆자리 아가씨가 말을 걸어 왔다.

"  튀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젖같이 생각한다, 왜 ? - 란 말이 욱하고 두 눈알까지 차 오르는데 하도 시의적절한 질문에 헛웃음만 나왔다. 어디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천사님이신가 본데 지금 여기가 쌩 지옥이거든요... apple 까지 씹게 된 상황을 이야기 해줬다

아가씨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저없이 말했다

"  가베스까지 같이 가요 "

천사 맞네, 맞아

자기는 혈액에 뭐가 높아져 스팍스 병원에 다녀 가는 길인데 집이 가베스 (Gabes)라고 한다, 엄마에게 말할테니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란다,

"  정말 ?  약속 !  "

하늘에서 떨어지느라 안색이 병색인 천사에게 날 좀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손가락을 걸었다.

 

잠시 정신이 나가 손가락까지 거는 추태를 부렸지만 상항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불안해 하자 아가씨가 "  걱정말라. 가게 될 것이다 " 라고 의례히 천사들의 근거없는 희망을 남발했다

 

 

옆에 계시던 엄마는 더 걸작이었다,

아픈 자식을 둔 모성의 힘이랄까 ?  갑자기 플랫폼에서 내려가 사람 모여있는 곳으로 가시더니 사람들을 선동하여 양복입은 여기 책임자에게 큰 소리로 항의를 하시는 것이다.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아까 영어공부하던 두 청년도 보였다. 

잠시후 가베스 자리하나 났다고 한 청년이 날 부르러 왔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난 배낭 터는 소매치기로 오인했으니, 고맙지만 난 이분들하고 간다고 돌려 보냈다.

아가씨는 계속 나에게 " 아무도 믿지 말라 " 고 하는데 난 이 모녀를 믿어도 되는건지...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 맡겨 보기로 했다

 

엄마가 오시더니 속닥속닥하며 따라 오라고 한다.

조용히 군중들 옆을 지나 저쪽 끝으로 가자 진짜 루아지 한대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수배를 하셨는지 우리 자리까지 딱 8명이 세팅되었다, 차문을 닫자마자 루아지는 은밀하게 재빨리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이로서 스팍스에서의 긴박했던 두시간이 막을 내렸다

 

 

차안에 탄 사람끼리 무슨 친척지간이라도 되는듯이 친밀한 대화가 오가고 웃음이 터졌다.

먹어보라고 대추야자가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쫄깃쫄깃 달콤달콤.

안에 씨는 제법 크다, 깨끗했으면 주머니에 넣어 우리집 앞마당에 심고 싶었다

 

스팍스 명성답게 외곽 공장지대를 벗어나자

 

왼편으로 해안선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아가씨가 나에게 부자 냐고, 돈 이야기를 꺼낼 때는 겁도 살짝 들었다. 납치당해 돈 요구 받거나 무동력선 새우잡이 배 타는거 아냐 ?

 

 

알 마하라스 (Al-maharas) 의 해안 조각공원 

 

 

 

 

5시가 넘어서자 서쪽 하늘로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데 차는 한시간 이상을 쉬지도 않고 달리고 있다.

 

 

 

시베리아 평원이 이럴까 ?  

루아지는 인적없는 지평선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지만 챗바퀴 돌듯 그 끝은 없었다, 급격히 피곤이 몰려왔다

 

 

 

 

주유소에 들어왔다

한국에선 거들떠도 안 보던 머스탱이 여기선 코닉세그처럼 보였다,

 

 

주유소 한쪽에 차를 세우더니 기사아저씨가 나가서 안 들어온다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기도를 하러 갔다면서 나에게도 가 보라고 부추겼다,

 

남자들이 발을 닦고 옆방에 모여 무릎 꿇고 기도하는게 보였다

그동안 여자승객과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차 안에서 수십분을 군소리 없이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 일하러 온 무슬림들이 회사에 기도시간과 기도실을 요구해서 회사입장에선 입장이 아주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간에 한국인들은 일 해야 하는 역차별이 생기고 기도공간과 작업량에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도가 끝난 후 기사가 차로 돌아와 차비를 걷었다,  10 dinar (6,000 원)

차비가 비싼 걸 보니 스팍스에서 가베스까지의 거리가 짐작이 간다.

 

그 돈을 걷어 기름을 채우고 다시 달린다

 

 

밖은 어느덧 어두워졌다,

 

엄마랑 운전기사랑 대화가 시작되더니 이내 말 싸움으로 번졌다. 나중엔 나랑 아가씨만 빼고 차안에 모든 사람들이 싸우듯 소리 지르고 주장하고 반박하고 난리가 났다, 아가씨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물으니 ' 튀니지의 문제 ' 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라고 한다.

여기 사람도 참 정열적이다,

 

 

논두렁 쥐불놀이 하듯 밝은 불빛띠가 지평선을 따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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