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부엌에서,,,

2015. 1. 16. 11:05Tunisia 2015

 

 

 

 

살짝 몇번 깨긴 했지만 오랜만에 푹 잤다,

리하브가 등교하는 소리가 들렸고, 지금은 퓌다가 소리 지르며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9시, 슬슬 나가 봐야겠다,

 

간밤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마당이 젖어 있다. 

내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퓌다가 환한 얼굴로 아침인사를 한다

 

아직은 구석에 어둠이 남아 있지만 어젠 못 봤던 집안의 모습이 뽀얗게 눈에 들어왔다

대문쪽 모습

 

부엌쪽 모습

 

녹슨 샤워꼭지가 유일하게 이 곳의 용도를 말해준다

도망가지 말라고 묶어 놓은 변기. 당연히 커버도 레버도 없다. 옆에 있는 통에 물을 바가지로 퍼서 내려야 한다

 

 

화장실 옆엔 한평 남짓한 창고. 잡동사니가 마구잡이로 쌓여 있고 그 구멍속이 개집이다,

날 경계하며 짖어대는 개를 퓌다가 잡고 있다,

 

 

가운데 방 앞의 복도는 타일을 깔고 책상을 내 놨다.

좁은 집에 다섯 식구가 살다보니 이렇게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닌 다용도 공간이 탄생했다

 

옥상에 올라가 봤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아직 먹구름이 다 걷히지 않아 울상이다

 

길에서 보면 멀쩡한 집들이 옥상에 올라와 보니 공사중단된 것처럼 미완성으로 남아 있고, 언제 쓸지 모르는 고물들이 어수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이 집 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가 다 그랬다.

국민소득이 낮다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이 안되는... 천성이 좀 게으르거나 정리정돈의 개념이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새끼가 옥상 계단까지 올라와 짖어대니 하이파가 부시시한 모습으로 나왔다. 물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개를 진정시켰다

"  10시에 학교 간다며 ? "

"  아파서 결석했어요 "

 

대문을 열고 나와 집앞 길.

 

 

하이파가 따라 나와 대문앞에 서 있다,

내가 동네를 다 떠 갈듯이 찍어대자 동네사람들과 충돌 생기지 않게 지켜봐 주었다

 

거실로 돌아오니 그 사이 에이썸이 일어났다

 

바라던대로 점점 아랍화되어 가는 내 몰골

 

같이 TV를 보다가 에이썸이 ' 한국에도 아랍방송이 나오냐 '고 묻는다, 안 나온다고 했더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안 나오는게 신기한가 보다,

 

퓌디가 아침상을 차려 주셨다, 올리브유에 잠긴 것은 으깬 콩이었다. 어떻게 먹는건지 에이썸을 지켜 봤다. 바게트를 뜯어 으깬 콩접시에 찍어 먹길래 나도 그렇게 해 봤는데 기름만 잔뜩 묻고 고소한 콩은 안 집혔다, 티스푼으로 콩을 떠서 바게트빵 위에 올려 먹었더니 퓌다가 ' 왜 그리 먹냐 ' 고 한다, 그것도 또 신기한가보다

차가 엄청 달다. 다 마시고 보니 바닥에 설탕이 뻘처럼 깔려 있었다, 에이썸꺼랑 바꼈다며 퓌다가 재밌어 한다. 에이썸이 그걸 보고 자기 차에 설탕을 퍼 날랐다. 튀니지인뿐만 아니라 아랍인들이 이렇게 달게 먹는건 극한 사막에서 살아가려면 열랑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아침먹고 에이썸은 나가 버렸다,

퓌다와 하이파의 진료기록을 봐주고,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 주고, 간단한 운동요법을 알려 주었다

 

 

하이파는 검사지 하나만 있어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알부민 단백질이 빠져 나가는 신부전인거 같았다

 

 

소파위에 양털 촉감이 좋아 뒤집어 보니 양가죽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물이 다 데워졌으니 샤워를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이파가 덧붙였다. 자기네는 부엌에서 한다고...

괜히 폐끼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샤워도구를 챙겨 부엌으로 갔다. 

여기서 그 맛있는 음식들이 만들어 졌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간살림이 초라했다,

부엌 좋다고 음식맛 좋은 거 아니구 부엌 나쁘다고 맛도 형편 없는건 아니였다

 

부엌 한복판에 깨끗한 의자들과 발씻는 통과 뜨거운 물,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비록 가난하지만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감동 먹었다,

그런데... 뭐부터 하지 ?  일단 옷을 벗고, 찬물은 어디 ? 어디 앉아서 ? 물을 섞어 세수 ? 샤워 ? 비누칠은 ? 어디 앉아 옷을 입지 ?  부엌에서 깨알딱 벗고 샤워하는 상황은 첨이라 어찌 할줄 몰라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첨엔 뜨거운 물이 모자랄까 걱정했는데 샤워 끝내고도 통에 온수가 남았다. 대신 움푹움푹 패이고 배수구가 없는 부엌 바닥은 배를 띄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밖에 나가 빗자루를 찾아 와 바닥을 청소하고 뒤꼍을 쓸고 있는데 퓌다가 비질소리를 듣고 나왔다

내 빗자루를 뺐어 마저 정리를 하는 퓌다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했다

 

배낭속에 화장품을 꺼내 꽃단장 하고 개운하게 소파에 기대 발을 까닥이며 띵가띵가 놀고 있는데

 

리하브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전반은 8~12 시, 오후반은 2~6 시,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날 보러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  학교에서 오늘 뭐 배웠어 ? "

"  Physics,  Arabic,  Math 그리고 튀니지 대통령과 피플, 경제 수업했어요 "

대견해서, 읽어보려고 가져온 비즈니스석 기내지 두권을 선물했다. 사진도 있고 영어와 아랍어가 써 있어 요긴할 것 같았다

 

하이파는 점심거리 사러 걸어서 30분 거리의 슈퍼에 갔고, 퓌다는 이번엔 복도바닥 걸레질에 쉴 틈이 없다

이 코딱지만한 방과 복도에 뭐 그리 청소할 게 많다고... 그래도 이 집에 24년을 살았다. 세 아이를 다 여기서 나아 길렀단다

 

 

리하브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인생상담을 해댔다.

친구들은 옆머리가 긴데 자기는 짧고 지저분해 속상하다고 해서 옆 이마로 머리가 더 나서 그렇다고 크면 괜찮다고 설명해 줬다

자기는 친구가 별로 없고 언니 (하이파)가 친구인데 요즘은 언니가 남자친구가 생겨 자기가 외롭다고도 했다

 

하이파 친구 '헤닌' 이 놀러 왔다가 하이파가 없어서 그냥 갔는데 금방 다시 돌아왔다.

내가 한국인이라니까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 ' 종피우~' 를 좋아 한다고 했다. 종피우 ?  배역 이름이 그런가 보다. 종피우의 원래 이름이 이민호 라고 알려주었다

헤닌이 폰에 저장된 자기 사진들을 보여 주는데 거기엔 화장을 진하게 하고 섹시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튀니지 음악 같이 듣고 내 폰에 옮겨주고 동영상 보고 ...

내가 졸려서 살짝 눈 감고 등 기대고 있으니까 헤닌이 날 보고 리하브에게 그랬다고 한다 "  저 피부 하얀 것좀 봐~ "

 

또 다른 아가씨가 놀러 왔다. 얼마나 부끄럼을 타는지 한동안 문 밖에서 고개만 들이밀다 들어왔다, 

여기도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을 좋아한다는데 덕분에 나까지 그 후광을 입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 아가씨도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 주는데 그 안엔 몰라 볼 정도로 성숙한 여인이 있었다,

리하브가 나에게 물었다

"  셋중 누가 젤 이뻐요 ? "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  아가씨는 Beautiful 하고, 헤닌은 Sexy 하고, 리하브는 Pretty 해 "

하며 슬그머니 넘어 갔더니 리하브 입이 삐쭉 나왔다

 

점심 메뉴는 퓌다가 쿠스쿠스를 만들어 왔다

 

이 튀니지 전통요리인 쿠스쿠스는 남부지방이 더 맛있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수스나 기내에서 먹던 맛하곤 차원이 달랐다,

 

쿠스쿠스는 한 그릇에 모두 숟갈 담아 먹는 음식.

그래야 확실히 더 맛있다, 혼자 먹으면 뻑뻑하다

 

오후에 에이썸이 친구 ' 하셈 ' 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한국에 연락을 못해 좌불안석인데 오후 4시에 시내 인터넷 되는 카페에 나가기로 했다

 

에이썸이 아라비아 글자를 써 주었는데

 

내가 단번에 쓱쓱 따라 그리자 것도 또 신기한가보다,

 

빨간 옷 입은 남자가 하셈

 

4시가 되가자 하이파랑 리하브가 방에 가서 이쁘게 차려 입고 나왔다

 

시내 나간다니 아주 신이 났다

 

 

원래 퓌다도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늦은 오후에 친구가 온다고 해서 집에 남기로 했다

 

골목에 고양이들이 많았는데 사납다고 한다

택시를 잡으러 동네 어귀 큰 길까지 걸어가다 어제 본 무함매드를 다시 만났다,

 

한번 봤다고 친한 척을 한다, 이러다 동네 패거리들 다 통성명하게 생겼다

 

마을로 들어오는 택시에 4명이 타고 룰루랄라 시내로 나간다

 

 

 

야자나무 숲을 지나

 

 

 

 

가베스 (Gabes) 시내에 들어왔다

 

 

 

 

세니니 마을엔 Wi-Fi 되는 카페가 없고 시내에 카페들은 다 마초 천지라서,

깨끗하고 아가씨들도 갈 수있고 Wi-Fi 되는 곳을 어렵사리 찾아낸 곳이 Galaxy cafe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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