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프리카의 콜로세움

2015. 1. 15. 10:49Tunisia 2015

 

 

 

 

7시 40분.  알람이 안 울려도 잠이 일찍 깼다.

사필귀정, 기나긴 밤이 필연적으로 지나고 할 일이 있는 아침이 됐다는게 기쁠 뿐이다.

미련없이 쫓기듯 배낭을 꾸려 식당으로 내려왔다,

 

똑같은 아저씨에, 역시 혼자, 어제랑 같은 메뉴.  설탕물 튄 빵은 고이 싸서 배낭에 넣고 어제 먹다 남은 걸 꺼내 놓았다,

참치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초정밀 미각센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어제 기억된 맛과 화학코드가 동일하지 않다는 씨그널이었다. 소뇌에서는 ' 소스 맛이 원래 그래. 안 죽어, 그냥 먹어 ' 명령을 보냈지만 손과 입은 작당해 명령에 불복종 했다

이번엔 밀라위를 시도해 봤는데 역시... 아까워도 다시 비닐봉지에 담아 식당 바닥에 내려놓았다, 

조식거부 사태의 배후에는 아직 잠이 덜 깬 위장이 있었다,

 

로비에 앉아 가족에게 오늘 행선지를 알려 주고, 오래간만에 연락 온 서선생 카톡 답장 해주고 폰을 꺼 배낭에 넣었다,

호텔을 나오자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아침이다.

메디나 초입 샌드위치 집 청년은 오늘 아침도 활기차게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 나 오늘 엘젬 가, 또 보길 바래 ~ "

 

택시 타고 루아지 터미널 도착  1 dinar (600 원)

 

수스에서 루아지를 타며 처음으로 표를 구매해 봤다. 창구 앞 요금표엔 엘젬 4.75 dinar (2,850 원) 라 적혀 있었다,

승객 숫자에 맞춰 배차하려는, 뭔가 체계적이려고 노력하고 있어 !

 

기사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가 " 엘젬 ! 엘젬 ! " 하자 아저씨가 근처에 있는 루아지로 데려갔다

 

머리위에 뭔가 매달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행선지 표지판이었다, 체계적이다.

공적인 교통수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느껴졌다.  

 

루아지에 타기 전 아저씨가 표를 달라길래, 잠깐 들고 있으라고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엥 ? 요금이 다르다.  요금표엔 4.75  티켓엔 4.65

아직 체계가 완성되진 않았어. 지금까지 칭찬 취소 ㅋㅋ

 

건물 안밖으로 수많은 루아지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 튀니지 전국을 다 커버할 기세다,

 

 

내가 첫 손님이었고 이내 한둘씩 승객이 들어차고

 

그 사이 껌팔이, 복권팔이 심지어 동냥아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 갔는데 신기하게도 나에겐 전혀 말도 걸지 않았다 아무도 !

그저 신기하게 처다만 볼 뿐, 다소 커진 눈으로 ...

 

 

대부분의 루아지는 폐차직전이고 실내도 지저분해 옷이 다 더러워지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새차 루아지를, 그리고 차를 닦는 사람도 첨 봤다,

 

드디어 출발,

 

수스의 가난한 변두리를 지나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국도로 빠졌다.

멀리서 저승사자 둘이 서 있는게 보였다. 이젠 이런 곳에 경찰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다. 차들이 그 앞을 설설 기어갔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자 튀니지 둥부 내륙의 대평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고대도시가 번성했던 2천년 전만해도 이 곳은 로마제국에 밀과 올리브를 공급하는 곡창지대였는데 지금은 관목만 드문드문 박힌 건조하고 거친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

 

 

 

올리브밭 곳곳에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걸 보니 사람사는 곳이 가까워졌나 보다,

 

 

 

엘젬 (El Jem)

현재는 인구 2만 정도 밖에 안되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한때는 아프리카의 도시 가운데 로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었다

그 훈장으로 ' 아프리카의 콜로세움 ' 이라고 불리는 원형경기장이 바로 엘젬에 있다,

 

우뚝 솟은 미나렛 (Minarat) 를 경배하듯 단층 건물들이 바짝 엎드려 있고

차선도 없는 신작로를 망토를 뒤집어 쓴 사람들과 고물차와 구루마가 사이좋게 나눠 쓰고 있었다,

 

 

루아지가 친정집 찾아가듯 흰 페인트 담 옆으로 쏘옥 들어갔다,

포장도 안된 맨땅, 손바닥만한 공터에 봉고차 네댓대가 세워져 있는게 터미널의 전부였다, 세계적인 관광지 엘젬의 ...

도착 하자마자 떠날 것부터 알아봤다

입구에서 들고나는 루아지를 체크하는 남자에게 얻은 정보는

  1.  따따윈 (Tataouine) 가려면 스팍스 (Sfax) 에서 갈아타야 한다

  2.  이 조그만 동네에 호텔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 카사 뭐시기 ' 라는 것.

 

동서남북 방위개념이 없는 상태라 일단 그늘을 찾아 길을 건너갔다,

나를 처음 맞이한 건  

 

목이 잘린 젖소였다,

그 아래에선 아랍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기 부속물을 다듬고 있었다.

슬슬 뒷걸음 쳐 다시 길을 건너왔다,

 

날것의 탱볕아래 서서 택시를 잡아 보지만 택시 자체가 보이지를 않았다,

한참만에 누런 호박빛을 뿜으며 택시가 지나간다, 얼른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  콜로세움 근처 호텔로 가자 "

"  없다 "

"  카사 뭐라는 호텔이 있다던데 ... "

"  여기서 5 km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

"  그럼 콜로세움 근처로 나를 데려다 달라 "

"  얼마줄껀데 ? "

"  1 dinar "

"  안 가 "

그순간 아랍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차 뒷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일단 콜로세움 방향으로 터벅터벅 걷는데 노새가 끄는 구루마가 이쪽으로 오는게 보였다. 

마부 할머니에게 다가가 동전을 펼쳐 보이며 ' 나를 저기까지 데려다 달라 ' 고 하자 그 돈을 다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해도 1 dinar 도 안되겠지만 다 가져갈 줄은 몰랐다, 택시 기본료보다 많은 돈이었다. 욕심쟁이 할머니 !

 

돈을 냈으니 이제 마차 위에 올라 타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제서야 내 돈이 이 노인네에겐 차비가 아니라 적선이었음을 깨달았다, 돈 다시 돌려 달라고 하자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 두개까지 주워 순순히 돌려 주고 쿨하게 가버리는 할머니.

그러나 손바닥에 쥔 돈은 눈깜짝할 새에 반으로 줄어 있었다, 마부 할머니는 밑장빼기 타짜 고수였다

 

무거운 배낭 매고 묵묵히 걷다보니

 

 

드디어 아프리카의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너무 커서 앵글에 다 잡히지도 않았다,

 

<인용사진>

 

그늘로 들어와 하염없이 감격에 겨워하고 있는데 옆 식당남자가 숯불에 고추를 구우며 자꾸 호객을 한다. 

이런 곳의 식당들은 뜨네기 관광객들을 상대하니까 맛은 없고 값만 비쌀 거란 생각에 대꾸도 안했다.

그런데 슬슬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가 부실했던 아침식사를 상기시키고 위장벽에 위산을 처 발랐다

 

야외탁자에 앉아 메뉴판을 보여 달라고 했다, 커피가격이 2 dinar 정도에... 의외로 가격이 터무니 없진 않았다,

밥과 쌜러드가 같이 나온다고 해서 치킨케밥을 주문했다,   9 dinar (5,400 원)

감히 비싼 드링크는 못 시키고 배낭에서 댓병 생수를 꺼내 입을 적시며 접시를 싹 비웠다,

 

동양인 단체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딱 보니 일본인들이고 평균 연령이 내 나이를 헐씬 상회했다,

광장계단을 내려가 콜로세움 매표소에서 비싼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비싼데도 내가 여기서 식사를 한 이유는 배낭을 맡겨 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 땡볕속에 굳이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을 이유가 없다,

식당남자는 의자에 올려 놓은 내 배낭을 흔쾌히 안쪽에 들여다 놨다. 거기 두면 위험하다며...

 

식당을 나와, 낙타랑 기념사진 찍고 가라는 아저씨를 미소로 사절하고 왼편으로 돌아 가는데

 

식당남자가 날 부르며 달려왔다,

"  콜로세움은 저기 아래로 내려가야 돼요 "

"  거긴 돈내고 들어가야 되잖아요, 난 그냥 밖으로 돌래요 "

했더니 그제야 알았다는 듯 손짓하고 돌아갔다,

 

팬스 바깥으로 돌며 원형경기장을 둘러 보고 있다,

거액의 입장료 10 dinar (6,000 원) 를 아끼고도 여기가 오히려 콜로세움의 위용을 감상하기는 명당이었다, 안에선 외부를 볼 수 없다

외지인들이 잘 안 오는 이곳의 식당, 카페, 기념품점을 대우 받으며 구경할 수 있는건 덤이다

 

 

 

현존하는 원형경기장으로는 로마, 베로나 다음으로 세번째로 큰 규모라더니 역시 한바퀴 도는 것도 힘이 들었다,

뒤쪽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서기 2,3세기에 건설되어 1800 년 이상을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37년간 살았던 오산집과 지금  12년째 살고 있는 수원아파트가 1800년 후엔 어떻게 남아 있을까 ? 급궁금해졌다

 

 

 

 

 

콜로세움 뒤 남서쪽 동네는 정문쪽에 비해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한눈에 난민 텐트촌 같은 느낌이고 한참 일할 남자들이 카페와 길가에 무기력한 표정으로 나와 있었다, 그들 옆을 지나가는 것이 미안하고 귀중품은 달랑 카메라 하나인 것도 안심이 됐다. 

유명한 엘젬의 콜로세움을 보러 왔지만 거대한 유적뒤에 가려진 채 살아가는 무명의 엘젬인들을 보고 간다.

내 느린 걸음이, 내 작은 자유가 눈물나게 고맙다

 

 

주변 상가들이 지어지기 전인걸 보니 옛날 사진이다

<인용사진>

 

정문쪽으로 돌아갈수록 잡상인들이 늘어났다,

액자가 살별해 물어보니 실제 뱀이라고 해서 얼른 도망쳤다,

 

 

콜로세움 옆에 단아한 모스크,

 

다시 식당으로 돌아올 즈음에 일본인 단체도 내부 관람을 마치고 버스 주차장으로 몰려 가고 있었다

 

얼굴이 다 탔다,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잠바는 벗어 배낭에 넣고 미리 화장실 들렸다가 나왔다

 

엘젬에 용무를 다 보고 돌아가는 길.

식당 남자들이 엄지를 치켜 세웠다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다시 역주행한다.

햇볕은 강하고, 고물차와 오토바이 매연은 심하고, 쉬다 가다를 몇번이나 반복했다 

 

 

신작로로 나와, 소머리를 걸어 놓은 푸줏간을 애써 외면하며, 드디어 루아지 터미널에 도착했다,

 

엘젬은 지명도에 비해 숙박시설이 거의 전무하다. 부킹닷컴에도 뜨는게 없다. 그래서 머물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 

엘젬이 정을 나누길 거부하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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