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0. 09:12ㆍTunisia 2015
깨보니 4시 한밤중.
어제 일찍 푹 자서 몸은 가벼운데, 간밤에 꿈이 별로라 맘은 가볍지 않다.
오늘 스케줄을 오늘 새벽에서야 결정했다. 캡봉 (capbon)반도에 켈리비아 (Kelibia)로 목적지를 정하니 좀 홀가분해졌다
보통 여행중엔 땀을 많이 흘려 극심한 변비에 시달리는데 어제 먹은게 안 좋았나 ? 먹고 곧바로 자서 그런가 ? 배가 차가웠나 ?
살살 아픈 배를 틀켜쥐고 화장실 가자마자 붕붕 ! 오토바이를 탔다. 간만에 시원하다
속이 비니 배가 고파 일찍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번 튀니지 여행에선 명상을 좀 해보자 결심했는데 막상 와보니 더 본능적이고 더 형이하학적이 되어 버렸다. 생존자체가 보장이 안되는데 명상이 되겠냐능 !
오늘 식당은 현지인 분위기다. 한 아랍부부가 먼저 와 식사를 하고 있고 나 이후로 아랍 대가족이 들어왔다,
똑같은 음식을 3일째 먹으려니 식욕이 급격히 저하되어 대충 먹는둥 마는 둥, Hot milk 나 한잔 달라고 웨이터에게 부탁했다, 어제 배웠다고 오늘은 단번에 알아듣는다.
' 그러고 보니 호쎔이 안보이네 ? 혹시 내 돈 갖고 튄거 호쎔 아냐 ? ...'
그러고 있는데 주방 안쪽에서 호쎔이 나오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뒷모습이 왠지 극동아시아인. 잠시 후 고개를 돌릴때 보니 진짜 그랬다. 튀니지 와서 첨 본 동양인이라 반가워서 먼저 말을 붙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관광겸 비즈니스 하러 왔다는 중국인이었다. 그는 ' 만나서 반갑다고 하는데' 난 갑자기 재수가 없어서 ' Me too' 한 마디 하고 내 식탁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그 중국인이 유창한 불어로 웨이터에게 주문하는 걸 보고 있자니 더 재수가 없어졌다
과식하면 기분까지 나빠지니까 8부 능선에서 수저를 내려 놓고 방으로 올라왔다
현주랑 카톡하고, 덜 마른 옷소매랑 양말은 드라이기로 말리고 후다닥 가방을 챙겨 내려왔다. 현주가 없으니 Check-out 시간까지 개기며 노는 재미도 없구.
프런트에 가서 귀중품 맡아주던 화장 진한 아가씨에게 check-out 을 했다. 다 된거 확인한 후 진지하게 말했다
" 사장이나 메니저를 만날 수 있나요 ? 할 말이 있습니다 "
하자 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며
" 뭐 불만이나 안 좋은게 있으셨나요 ? "
" 아니 뭐... "
" 지금은 못 만나고 ...있다 오실 거예요 "
" 얼마나 기다리면 되나요 ? "
" 30분~ 1시간 정도 "
그러는데 나도 그 시간 동안 뻘쭘하게 있기도 뭐해서 그냥 가려하자
" 저에게 말씀하시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잠시 고민하다가, ' 그럼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 고 하며 로비 구석 의자로 향했다. 둘이 앉아 이야기를 하려는데 한 남자가 로비로 내려오는 바람에 아가씨가 금방 일어나야 했다. 바빠서 이야기 할 시간도 없겠구나 싶어 나도 일어나는데 아가씨가 그 남자를 manager 라며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다부진 덩치에 깡패같은 인상의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먼저 내 소개를 했다
" 나는 여기 3일 묵었다. 한국인 Lee 라고 한다. 낮시간에 짐을 맡겼는데... 이런 모양이다 " 하고 돈과 여권을 묶은 뭉치를 보여줬다
" 여기서 한장이 없어졌다. 확인해 봤는데 없어진게 확실하다, 큰 돈은 아니지만 실망했다, 돈을 다시 찾고 싶은게 아니라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 라고 했더니 프런트로 가 직원들에게 아랍어로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배낭 매고 뒤도 안 돌아보며 나왔다.
오늘도 호텔 앞에 노란 택시가 한대 대기하고 있다,
" 루아지 터미널 갑시다 "
" 어디로 갈 건데요 ? "
" 켈리비아, 캡봉 "
타라고 손짓한다, 일부러 뒷자리에 앉았는데 기사가 5 dinar 라고 한다, 비싼거 같고 기분이 나빠 미터기로 가자고 하니 별말없이 미터기를 켜고 출발한다. 뒷골목을 돌아 국립극장 앞을 지날때 미터기를 보니 2.xx 라 찍히는 거다.
모야 ? 기사에게 ' 미터기가 왜 빨리 도냐 '고 물으니
" 오늘, 내일은 주말이라 택시가 비즈니스를 안하는 날이다, 그래서 비싸다 " 라는데 말문이 막혔다, 기본요금 거리인 시계탑에서 우회전할때는 벌써 5 dinar 가 넘어 버렸다, 덜컥 겁이나
" 그럼 루아지 터미널까지 얼마냐 ? " 물으니 10 dinar 라고 한다.
씨X, 지대로 걸렸구나 !
루아지 (Louage) 봉고차들이 보이는 곳 앞에 도착했을때 미터기에는 정확히 10.22 숫자가 찍혀 있었다, 첫날 공항에서부터 며칠 택시를 타 본 경험으로 이 정도 거리면 3 dinar 가 정상인데, 완벽하게 당했다,
칼만 안들었지 완전 베테랑 날 강도다, 5 만 주려다 이런 인간하고 3,000원 갖고 싸울 값어치도 없어 10 dinar (6,000 원) 한장 주고 내렸다
호텔 앞에 대기 택시는 절대 타면 안된다는 수업료다.
튀니스엔 빨간띠 루아지 터미널이 두개 있다. 튀니지 중남부로 이동할때는 여기 밥알리와 (Bab Alioua) 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터미널이라는데 그냥 중고차 매매단지 같다,
목적지 푯말도 없고 그냥 흙바닥 공터에 봉고차 같은 승합차들만 얼키설키 잔뜩 세워져 있었다.
빵이 수북한 수레를 입맛만 다시며 지나갔다
켈리비아 ! 라고 물으니 안쪽을 가리킨다. 묻는 사람들마다 계속 안쪽으로 가라고 한다,
어리둥절한채 안쪽으로 들어가나 매표소 같은 곳이 나왔는데 ...간이매점이었다,
나와서 지나가는 여자에게 표를 물어보았다, 처음엔 못 알아듣다가 나중엔 그냥 가라고 한다,
조그만 부스안에서 한 남자가 종이에 뭘 적고 있길래 Ticket 사는 거냐고 물으니 그냥 가서 내라고 한다.
몇명에게 물어본 결론은 티켓 자체가 없다는 것.
알려준 방향으로 가자 한 남자가 따라오라고 앞장선다, 또 다른 남자가 날 인수인계 받아 데리고 가더니 차 한대를 가리키며 타라고 한다
봉고차 가운데 열엔 벌써 두명이 앉아 있다, 내가 뒷자리로 가려고 버벅거리자 의자를 앞으로 재껴 주었다,
맨 뒷자리 구석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젊은 남자가 앉길래 요금을 물어보니 6 뭐라고 한다. 이번엔 좀 인텔리한 남자가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요금을 또 물어보니 6.xx 라고 한다, 숫자를 불어로 말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원 8명이 금방 찼다
기사아저씨가 돈을 걷는다, 나에게 영어로 Six ..뭐라고 하길래 10 dinar 지폐를 냈더니
잔돈 3.45 dinar 를 거슬러 주었다,
켈리비아까지 루아지 요금은 6.55 dinar (3,930 원)
곧바로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달린다.
동창으로 아침 9시의 직사광선이 쏟아져 들어와 배낭에서 주섬주섬 썬글라스를 꺼내 썼다
튀니스를 벗어나 첫 도시에 들어왔다,
옆 남자에게 도시 이름을 물어보니 함맘립 (Hammam-lif) 이라고 알려준다.
켈리비아까지 얼마나 걸리냐니 2시간 정도라고 한다
가끔 과속방지턱에서만 속도를 줄일 뿐 루아지는 타이어가 터질 듯 쉬지 않고 달렸다,
캡봉반도에 들어서자 확실히 오렌지가 지천이다
반도 한가운데 산맥을 넘을때는 앞에 차만 보이면 미친듯이 가서 따 먹었다.
이 길을 자기만큼 다닌 사람 있음 나와 보라는듯 산길을 휘젖고 과속을 일삼아 욕이 목까지 차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캡봉반도는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아담했는데
지상에서 차로 이동할 때는 몇시간을 달려도 끝이 안 보이고, 구름이 산꼭데기에 걸릴 정도로 광활한 땅이었다,
북쪽에 특이하고 거대한 구름띠,
2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차는 멈출 줄을 모르고 산과 들과 도시를 넘나든다.
이 차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알아보려고 폰을 꺼내 GPS를 작동시켜 봤다. 다행히 조금만 더 직진하면 오늘의 목적지 켈리비아다.
결국 켈리비아 시내에 도착했다
캡봉반도에 들어와 본 마을중 가장 번화한 도시다. 길가 가게들 때깔이 달랐다
루아지들이 골목길을 터미널 삼아 대기하고 있고 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
배낭 맬 틈도 없이 손으로 들고 얼른 내렸다. 오래 쭈구려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안 펴진다,
루아지 터미널 바로 옆은 버스 터미널이었는데 언제 떠날지 모르는 구식 버스 두대만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택시기사에게 싼 호텔이 근처에 있냐고 물으니 내려가서 우회전하라고 한다,
내려가다 건너편에서 뭔 수상한 걸 본 거 같다.
굳어버린 수정체를 길게 늘려 촛점을 맞춰 보니... 우씨 ~ 소 머리를 잘라 걸어놓았다
소돔의 도시
나도 참수될 거 같은 공포감에 지팡이를 타닥거리며 얼른 도망갔다,
터미널 근처라 싸구려 숙소라도 있음직한데 눈에 안 띄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남자에게 근처에 싼 호텔이 있냐고 물었다
호텔 이름을 하나 대며 택시를 타라고 한다, 걸어가면 안 되냐니 1 km 쯤 되는데 못 걷는다고 한다.
고맙다고 하고 더 내려와 사거리에서 우회전.
이런 곳에도 SAMSUNG 간판이 있다는게 신기하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몸을 제대로 가눌수가 없다.
입안에 모래가 씹혀 수시로 길바닥에 침을 뱄었다,
도대체 뭔 바람이 이렇게 부는거야 ?
내 옆에 누가 택시를 잡아 타는거 같은데 기사가 나한테 타라고 한다,
무조건 탔다.
식구 차 픽업하듯 아무 의심없이 주저없이 그냥 올라 탔다. 그만큼 절박했다,
기사가 대번에 내 국적을 맞췄다,
어디론가 계속 달리는 기사에게 " cheap hotel, not expensive hotel " 반복하며 손을 바닥으로 내리는 시늉을 하자 알아들었다는 듯 옆 승객과 이야기를 계속 한다
중간에 할아버지를 태웠는데 인도쪽 문을 열자 기사가 도로쪽 문으로 돌아와 타라고 했다
택시 안에서 할아버지랑 기사가 그걸 갖고 옥신각신 말다툼을 했다. 내가 괜시리 가시방석이 됐다.
한참 달린 후 할아버지를 내려 줄 정도로 먼거리다
시내를 벗어나자 비로소 호텔 간판이 보였다, 이 도시에 와 처음 보는 HOTEL 글자다.
이름을 보니 아까 길에서 남자가 알려준 그 호텔인데 한눈에 봐도 좀 비싸 보였다. 택시가 그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더 달리자 왼편 산위에 고성이 보였다.
항구쪽으로 들어가 앞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돌아와 고성 방향으로 우회전해 들어갔다. 거리에 사람이 한명도 안 보인다
도로옆 넓은 공터로 차가 들어간다.
풀풀 날리는 먼지 속으로 2층 짜리 하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MAISON DES JEUNES. house of juniors 정도로 해석될가 ?
택시기사가 요금 1 dinar (600 원)을 받고도 못 미더운지 나를 데리고 안에 가서 인수인계를 했다,
아줌마랑 빨간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왔는데 다행히 아줌마가 영어를 좀 할 줄 안다
얼마냐고 물으니 15 dinar 라고 한다. 아침식사는 ? 없다 단체팀이 오면 아침을 준다.
하루 묵을 거냐고 묻길래 너무 싸서 흔쾌히 이틀 묵는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밝은 얼굴로 " Welcome " 이라 한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화끈하게 싼 호텔을 소개해준 기사가 고마워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무실에 가서 여권 보여주고 숙박계 꼼꼼히 쓰고 싸인하고 이틀치 방값 30 dinar (18,000 원) 내고
2층 방으로 안내 되었는데 방을 보니 도미토리다.
욕실은 공용
정신병동같은 썰렁한 복도
세로로 길게 난 나무창틀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데
그마저도 너저분한 해안가 때문에 감동이 반감됐다
' 헤엥~ '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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