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9000원에 기대하면 안되는 것들

2015. 1. 10. 18:00Tunisia 2015

 

 

 

 

선인장이 무성한 산길을 돌아 터벅터벅 공터까지 내려왔다

 

오솔길 앞 플라스틱 탁자위에 빈캔과 오렌지와 물담배 시샤 (Shisha)가 올려져 있다

간판이나 메뉴 하나 안 보여도 그 곳이 카페임을 알 수 있었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뭐라도 좀 요기를 해야 다시 산을 내려 갈 기운이 날거 같다

오솔길 안쪽으로 흰색의 조그만 집이 숨어져 있었고

 

원래 그 자리 주인인양 큰 바위가 통로 한가운데에 널부러져 있다

 

바위 너머로 파란 지중해가 넘실댔다.  보기만 해도 갈증이 해소 되는거 같다.

 

야외 정원에 앉아도 된다는데

 

카펫과 메트리스가 깔린 자리로 깡쭝 올라갔다,

나보다 먼저 오신 두 아저씨. 물담배를 사이에 두고 잔잔한 대화가 오고 갔다 

 

땀을 수렴시키기엔 상큼한 레몬쥬스, 하염없이 경치를 감상하기엔 카페라떼

그래서 두 개를 다 주문했는데 카페라떼는 안 되고 커피는 터키식 밖에 없다고 한다

 

레몬쥬스만 시켜 단번에 벌컥벌컥 마셔 버렸다 

등을 기대고 있으니 피곤이 밀려와, 좋은 경치를 앞에 두고 눈이 스르르 감기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아예 누워 잘까 ? ' 갈등하다가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후다닥 놀라 깨버렸다

 

바닷바람에 땀이 식자 추워지고, 몸 여기저기 쑤시고, 배도 고프고... 한 30분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그 시간까지도 두 아저씨는 사귀는 듯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이 안 보여 내실을 기웃거리자, 어둡고 옹색한 방에서 카페주인이 나온다

쥬스값 3.5 dinar (2,100 원)을 치룬 후

"  배가 고파 그러는데 레블랩비 잘하는 식당 좀 적어주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게... "

하니 적아주며, 택시를 불러줄까 ? 묻는다. 이 산 위까지 택시가 지나 다닐 일이 없을거 같아 그래 달라고 하자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전화 통화후 ' 10분 후에 택시 도착하니 앉아서 기다리라 ' 며 친절하게 테이블을 손짓했다

남자 혼자, 손님들의 다양한 주문을 만들어 내는 초라한 주방을 지나 화장실을 다녀 왔다

 

 

카페주인에게 택시비는 얼마쯤 하냐고 물었더니 2 dinar 라고 한다

선인장 열매를 찍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제 시간에, 노란 택시가 오후 햇살을 튕기며 나타났다,

카페 남자가 위치등을 설명해 주자 택시기사가 타라고 손짓한다

 

택시는 엑셀한번 안 밟고도 내가 힘들게 올라온 길과 숙소앞을 가볍게 지나갔다

중간에 당연히 나에게 묻지도 않고 승객을 합승해 또 내려주고, 로터리를 돌아

 

안쪽 길로 들어가자마자 유턴해서 차를 세우더니 택시기사가 저 집이라고 손짓했다,

파란 나무 판데기 위에 어디서 주워온 듯한 어닝을 올리고 유리진열장 하나 덩그렇게 올려 놓은 저 곳이 삭당이라니 ~

차비 2 dinar (1,200 원)을 치루고 뭉기적거리며 내리자마자 택시는 ' 나 책임 없다 ' 는 듯 쎙~하니 가 버렸다

 

식당 품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핑크빛 메뉴판이 나무 밑에 세워져 있다

그나마 여기가 맞다는 듯 레블랩비가 예술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식당으로 다가오는 날 보고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가 환한 얼굴로 반긴다

 

이것 먹으러 왔다고, 카페 남자가 써준 쪽지를 내 보이자 주인아저씨와 일하는 청년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아직 시멘트도 마르지 않은, 창문도 안 달린 공사장에 들어 가기를 머뭇거리자 청년이 더 안쪽에 문없는 통로로 앞장섰다

형광등을 켜 놓은 좁은 복도로 쑤욱 들어가자 약간 넓은 공간이 나왔다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를 얼른 닦아주며 앉으라고 권했다.

더 안쪽엔 두개의 방이 또 있었는데 한쪽에선 아줌마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고 발치엔 계란 몇판이 쌓여 있었다

딱 개미집이 연상됐다,

 

약간 쫄아서 왕방울 눈을 굴리며 두리번 거리는데 아저씨가 레블렙비 (Lablabi)를 한 그릇을, 아줌마가 올리브를 한 접시 가져왔다

레블렙비는 육수에 콩과 계란과 갖은 양념을 하고 바게트 빵을 찢어 죽처럼 만들어 먹는 튀니지 전통요리다

아저씨가 숟갈 두개를 잡더니 인간 믹서기처럼 빠르게 휘저어 죽사발을 만들어 버렸다, 처음엔 먹음직스럽게 보였던 음식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꿀꿀이 죽이 되자 눈물이 나려는데 한 숟갈을 푹 퍼 내 입에 넣어 주었다. 거버 이유식을 받아 먹는 애기가 된 기분이다, 

 

식당에선 육수가 담긴 그릇만 내주면 되고,

바게트 빵을 뜯어 넣고 저은 다음 먹는 건 손님의 즐거움인데 아저씨의 풀 코스 써비스가 영 부담스럽다    

 

메주콩 맛이라고 할까 ?

비쥬얼에 비해 먹을만 했는데 배가 불러 조금 남겼다

 

나와서 2.5 dinar (1,500 원) 계산하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왠지 한국 아줌마랑 인상이 비슷한 주방아줌마는 사진 찍힐까봐 얼른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배는 더부룩하고 딱히 할 일은 없고...

로터리 방향으로 유유자적 걸어 나오는데 엠뷸런스가 앵앵거리며 로터리를 돌아 나갔다

 

그런데 사고지점이 바로 로터리 근방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닌지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고. 피해자는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로 걸어갔다

튀니지란 나라를 약간 무시했는데 구조차량과 제복을 입은 요원의 신속한 출동을 보니 듬직했다,  

 

바람이 너무 불어 넘어질 뻔 했다,

로터리 옆으로 둥근 지붕을 얹은 아랍식 건물이 있고 알록달록한 도기를 내 놓은 가게가 보였다

구경이나 하려고 그리로 가는데 마침 여주인이 물건들을 둘여 놓고 문을 닫아 버렸다. 바람이 심해 손님도 없나 보다

 

그 옆 건물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시장이었다.

한바퀴 돌아보았다. 정육점도 있고 올리브를 종류별로 쌓아 놓고 팔고, 식료품재료와 캔도 팔고 다양한데 가장 많은 건 과일가게다

그 중에도 역시 오렌지가 대부분이고 사과와 바나나가 조금 있었다

 

피오렌지 (오렌지 쌍겡 Orange sanguin) 도 팔았다 

 

빙 둘러 보고 인상 좋은 할아버지네 가게로 갔다,

토마토 두개랑 오렌지 하나를 골랐는데 할아버지가 내가 고른 오렌지를 뒤집어 보더니 물렀다며 가차없이 버리고 새걸 골라 주셨다.

총 0.89 dinar (534 원)    과일값이 진짜 싸다,

 

시장을 나오며 입구에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큰거 하나를 골랐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이 갈색 음료는 무슨 맛인지 궁금했다

부스 안에 할아버지에게 동전을 들이밀자 1.86 dinar (1,116 원) 을 집어 가셨다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시장을 나와 오른편으로 돌아가자 카페가 나왔다

택시로 지나가다 봐둔 곳이었다,

 

많은 아저씨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짐 보따리를 탁자위에 올려 놓고 카페 안으로 성큼 들어갔는데 담배연기 자욱한 실내에도 많은 남자들이 있었다,

수많은 시선을 이끌고 프런트로 가서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고물 스쿠터와 폐차 직전의 차들이 지나 다니는 길에

잠깐 앉아 있는 사이 벤츠 CLS 와 E-class 그리고 S-class 는 두대나 볼 수 있었다. 굉음을 내고 지나가 사람들을 놀래키는 비싼 오토바이도  볼수 있었다.

이 동네는 부자들이 많은가 보다. 아까 본 바닷가 하얀 저택들에 사는 사람들인가 ?

 

 

봉재 인형을 싣고 가는 트럭 

 

기타를 매고 어디론가 가는 청년들

 

머리를 짧게 민 할아버지 웨이터가 커피 한잔과 설탕을 한 무더기 놓고 갔다  0.5 dinar (300 원)

잔이 따뜻해 두 손으로 계속 쥐고 있었다.

커피로도 부족해 음료수를 따서 반이나 마셨다. 생강맛이랄까 ?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청년이 자꾸 내 앞으로 와 히죽거리며 신기한듯 나를 처다보고 갔다

 

여기저기서 계속 담배를 피워대서 코가 맵고 눈이 따갑다

 

저녁때가 되자 남자들이 더 많이 모여 들어 큰 나무 아래가 순식간에 다 차버렸다

남자들이 서로 반갑게 빰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고 ... 행복해 보였다,

 

밥 먹은지 별로 안되서 저녁을 먹기도 그렇고, 구경 갈 곳도 없고,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일찍 숙소나 들어가자고 일어났다

시내에서 나오는 택시들이 다 꽉꽉 차서 간신히 합승 택시를 잡았다,

카메라를 켜서 옆 청년에게 숙소 사진을 보여주자 다행히 곧바로 알아보고 택시기사에게 내 목적지를 대신 말해 주었다

 

내 가는 방향하곤 무관한 길을 이리저리 다니며 택시 승객들을 내려줘도 난 괜찮았다. 오히려 그 덕에 동네구경도 하고 시간도 떼우니까

옆 청년 내릴때 잘 가라고 인사를 해줬다

 

이제 택시엔 나만 남았고 잠시 후 낯 익은 공터에 도착했다,

택시비 0.7 dinar (420 원)

내리는데 기사가 뭐라고 계속 말을 한다. 서로 도저히 소통이 안되서 아쉬운 기분으로 헤어졌다

 

바람만 가득한 쓸쓸한 공터를 지나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랑 덩치만 크고 멍청해 보이는 일꾼이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타월 좀 달라고 하자 둘 다 못 알아듣는다. 얼굴 씻는 시늉을 하니 그제야 알겠다는 듯 할아버지가 내 방 번호를 보자하더니 일꾼에게 가서 알려 주라고 시켰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샤워실로 가서 수도꼭지 물 트는걸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하니 로비로 내려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왔다, 답답해서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를 치우고 옷장을 열어 배낭옆에 끼워둔  손수건 타월을 보여주자 할아버지가

"  여긴 호텔이 아니다. 학생들 오는 데라 수건 없다 "

 

아깐 잘 잡히던 Wi-Fi 도 안되고... 따뜻한 물로 샤워나 하자고 세면도구를 챙겨 펜티바람으로 추운 복도를 지나 공용욕실로 갔다

샤워기 온수를 틀었는데 몇분이 지나도 미지근도 안했다. 물은 튀어 몸은 다 젖었고,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찬물이 쏟아지는 샤워기속으로 들어갔다. 튀니지의 겨울은 추웠다. 바닷바람 때문에 더더욱 추웠다. 숙소 2층에 아무도 없어 쓸쓸하게 추웠다, 발발 떨며 찬물로 비눗물을 씻어내는데 아주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샤워 후 오기로 세면대에서 빨래를 했다, 양말은 어찌 빨겠는데 손수건 타월까지는 손이 시렵고 배수도 잘 안돼 도저히 빨수가 없었다,  

방에 와 옷걸이에 대충 널어 놓았다

 

속옷만 입은 채 불꺼진 복도를 왔다갔다 하며 과일을 씻어 왔다

방에 형광등이 들어오는 게 고마울 정도다. 9천원 숙소에선 온수나 타월같은 건 기대하면 안된다는 걸 몸서리치며 배웠다

무서워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켜 놓은 채 6시도 안됐는데 이불 하나 깔고 두개를 겹겹으로 덮고 그속에 들어가 웅쿠리고 떨다가 잠이 들었다

 

꿈결에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 깼는데 진짜 누군가 내 방문을 마구마구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느라 시간을 끄는데도 그냥 갈 분위기가 아니다. 할수없이 속옷 바람으로 문을 열어보니 거적같은 망토를 두른 시커먼 남자가

"  passport... police ...one or two ? ..."

떠듬떠듬 영어 단어를 씨부리며 연신 손바닥에 뭘 적는 동작을 했다, 도저히 내려 갈 컨디션도 아니고 춥고 간신히 든 잠이 깨서 이 사내에게 지대로 짜증이 났다. 한국말로

"  아까 썼어,... 썼다구, 벌써 !... "

계속 버티니 그 사내도 포기하고 그냥 내려갔다, 좌우 복도에 시커먼 어둠만 가득해 얼른 문을 걸어 잠궜다

낮에 보이던 바다는 어둠속에 사라지고 바람소리만 훼이훼이 들려 왔다   

 

' 내일 그냥 갈까 ?  미쳤지 이틀이나 묵는다고 선불을 냈으니..  귀중품까지 맡겼으면 젖될뻔 했네 '

TV도 없는 방에서 선잠이 깨서 후회하고 있다가 갑자기 스맛폰에 MP3 음악이 생각났다,

해풍이 창문틈으로 몰아치는 차디찬 방안에 음악이 가득차차 미처 버릴 것 같던 정신이 슬슬 제 자리로 돌아왔다,

 

나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심심해서 남은 돈을 결산해보니 10 짜리 빳빳한 지폐 4장이 빈다. 몇번을 세어 봤다...

돈가방이 찢어졌나 ? 무슨 귀신이 붙었나 ? 별 생각을 다 해봐도 결국 튀니스의 Tiba 호텔 밖에는 셀 틈이 없다는 결론이다

내가 돈 뭉치랑 떨어져 있는 때는 낮시간에 프런트에 맡길때랑, 아침 먹으러 내려와 있을 때뿐이다.

어느날 아침에 묶어돈 돈 매듭이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식당에 있을때 직원들끼리 짜고 마스터키로 내 방에 침입한 것 같다. 동양인들은 현찰도 많고 언어가 안 통하니 별 항의도 못 할거구, 내가 그 표적이 됐나보다. 다음부터는 식당에 갈때도 귀중품을 챙겨가야 하나 ?   더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 썼다! 

  

 

오늘 지출 :  택시     10

                 루아지    6.55  

                 택시       1

                 숙박      30

                 쥬스        3.5

                 택시        2

                 레블렙비  2.5

                 과일        0.89

                 음료수     1.86

                 커피        0.5

                 택시        0.7                    합 59.5  +  분실  40  = 99.5    (59,7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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