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팝콘냄비

2015. 1. 9. 18:00Tunisia 2015

 

 

 

 

씨디부싸이드 언덕에서 출발한 기차는 바닷가까지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콘크리트 블럭으로 철로를 봉해버린 곳. 이 기차의 종점 La marsa-plage 에 도착했다. (플라주는 불어로 바닷가란 뜻)

이 동네에, 좀 비싸지만 수준 높은 식당과 호텔, 그리고 해변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내리는 사람들 뒤만 쫒아갔다

기차역 뒤는 육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과 차와 구루마가 뒤섞인 번잡한 로터리였다.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 한동안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북쪽에서 바대 냄새가 실린 바람이 불어 온다.

대 놓고 처다보는 사람들을 의식한 채, 좌우를 두리번 거리며 도로를 횡단했다 

 

뻥뚫린 푸른 하늘만 보며 가니

 

길끝에서 옥색 바다가 살짝 보였다

 

 

아랍인들 사이에 유난히 까만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유명 관광지라고 놀러 왔나보구나 ! 신기하게 처다보다가... 참, 여기가 아프리카였지 ?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등뒤엔 고급 쁘띠호텔, 눈앞엔 망망대해, 언덕 위에 고급주택들.

드넓은 바다위로 파도가 하얀 갈매기 날개짓처럼 잔잔히 일었다

이래서 라 마르사, 라 마르사 하는구나 ! 

 

 

 

그런데 살짝 아래를 내려보니 뜻밖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저분한 계단과 잡초가 뒤덮힌 공터, 어수선하게 방치된 자재들, 간혹 한명씩 보이는 사람 ... 

가난했던 유년시절이 기억나 급 우울해졌다  

 

 

 

 

오른편 동네에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안전장치도 없이 위태롭게 일하는 인부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다리가 다 후덜거렸다,

후진국의 사람 값은 너무나 싸다

 

지대로 터진 수도관

 

 

춥고 배 고파 야옹대던 고양이는

 

쓰레기통에 들어가 졸고 있고

 

식어 버린 솥단지, 아무도 찾지 않는 팝콘 수레...

장사할 의욕을 잃은 주인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북쪽에서 서서히 구름이 밀려 와 파란 하늘을 덮자, 바닷물 색깔이 진해지고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고급 호텔의 쓸쓸한 뒷골목

 

 

기차역으로 돌아 오는 길에 낙타

여기서는 골목에서 낙타랑 마주쳐도 전혀 호들갑 떨 일이 아닌가보다

 

간판이 예쁜 식당을 보자 갑자기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만큼 맘이 춥고 몸이 배고팠나 보다   

 

케밥 6 과 따뜻한 차 2.2 = 8.2 dinar (4,920원)   동네 자리값과 인테리어 값이 두둑하게 끼워져 있었다,

주문을 받자마자 계산대 뒤 조리대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잠시 고민하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하며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 하자 두 손을 합장하며

" 니하오 ? "  그건 중국이라고 하니

" 곤니찌와 ! "  그건 일본이야 . 한국은

" 안녕하세요 ~ " 하는거 라고 알려주었다

창밖으로 현대 벨로스터와 기아자동차가 나란히 서 있고 벽엔 LG TV가 걸려 있는데도 그들은 바로 곁에 두고도 한국을 몰랐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갖다 드린다고 해서 찬바람을 피해 식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튀니지에서 보기 드물게 양복이 잘 어울리던 할아버지.

반갑게 말을 거시지만 안타깝게 소통 불가

 

음식이 나왔는데 ...케밥 맛은 so so

따뜻한 차에 몸과 맘이 한결 부들부들해졌다. 뜨거운 물을 더 달래서 티백을 우려 마셨다 

 

뇌성마비 청년이 들어와 탁자마다 뭘 나눠주고 있다.

나에게도 하나 주길래 받아보니 뒷면엔 달력이, 앞면엔 이런 그림이 그려 있었다

뭔지 몰라 탁자위에 올려 놨더니 잠시 후 청년이 다시 왔다. 그래서 돌려 주었다 

 

옆자리 양복쟁이 할아버지가 망토를 걸치고 검은 모자를 쓰고 소란스럽게 인사를 하고 가신다. 훤칠한 키와 풍채에서 기품이...

 

 

창밖 구경을 한다.

서양인들처럼 남자들은 잘 생기고 여자들은 아름다웠다.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에 외국문물을 쉽게 접해서 그런지 최신 유행대로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고 다닌다.

근데 튀니지의 국민소득, 실업율, 환율등은 우짤껴 ?

 

고양이가 살금살금 식당 안으로 들어오다 빗자루질하던 종업원에게 쫓겨났다. 그걸 보고 사장이 핀잔을 줬다.

종업원이 나를 향해 사장 못 듣게 입모양으로만 흉을 본다. 그 모습이 밉지 않고 유머와 여유가 느껴졌다

 

 

 

충분히 쉬고 화장실 들렸다가 나왔는데, 고양이가 그때까지 안 가고 식당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한적해진 육거리

그래도 차조심 

 

다시 역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직원이 앉아 있어 이번엔 표를 샀다   0.68 dinar (408원) 

 

기차가 안 오는 플랫폼에 서서 ... 건너편 골목길에 일없이 모여 있는 청년과 아가씨들을 구경한다

 

옆에 서 있는 남학생에게 ' 얼마나 자주 기차가 있냐 ' 고 물었더니 자기 표를 꺼내 숫자를 짚어줬다. 그래서 내것도 확인해 보니 이해가 됐다,

뒷번호 15 와 옆으로 누운 30 이 오후 3시 반 출발.

9 와 누운 30은 오전 9시 30분 발차 !    

 

노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이 여긴 아직도 살아 있다,

 

드디어 기차가 들어오고 출발역이라 자리가 넉넉했다

내 바로 옆 철문이 덜컥 열리더니 기관사인듯한 남자가 나왔다. 날 보더니 놀래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30후~40초반 아줌마와 인사를 나눴다.

지팡이를 어떻할까 두리번 거리니 자기쪽으로 두라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신세 진 김에 ' 나 사진좀 찍어달라 '고 카메라를 건네주었다,

 

창틀에 낀 담배꽁초

 

아까 식당에서 본 뇌성마비 청년이 친구들이랑 기차를 타고 있다, 

 

기관사와 직원이 매표소 뒤에 숨듯 서서 무작위로 표검사를 하고 있다

중학생쯤 되보이는 학생은 다행히 표를 소지하고 있었고 한 아가씨는 붙들려 다시 매표소로 돌아가 표를 끊어야 했다.

불법, 적발, 창피함보다도 가벼운 웃음이 오가는 거로 봐서 무임승차에 관대함이 느껴졌다.

진정한 서민의 발답다.

 

10 여분후 기차가 시내를 향해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대합실도 벤치도 기찻길옆도 부서진 채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다.

나라는 돈이 없고 시민은 공중도덕이 없다,

 

 

사람들을 가득 싣고 바다를 건너간다

 

 

튀니스 다운타운에선 마천루를 기대하면 안된다,

왼편에 Africa hotel 과 El-hana 호텔 건물만 달랑 보이는 곳. 그곳이 이 나라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왠만한 길목엔 다 경찰이 죽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경찰과 변호사와 의사가 필요없는 곳

 

 

드디어 이쪽 종점에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뒤섞여 열차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줌마가 지팡이를 챙겨준다

정신없이 내렸는데, 보니 아줌마가 플렛폼에 서서 안 가고 날 기다리고 있다, 

철길 건너 담 아래로 쪼르르 서 있는 택시들을 봤지만, 혹시나 싶어 아즘마에게 " 택시 ? " 라고 물으니 오전에 내가 걸어온 방향을 손짓한다.

차라도 한잔 나눠야 하는데 이 나라는 남녀가 유별한지라, 고맙다며 아쉬운 작별인사만 나누고 아줌마는 환승 기차를 타러 갔다

 

한참 걸어 나오자 택시들 수십대가 줄 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대에게 승차거부를 당하다보니 감이 잡혔다

철길건너 보이던 택시부터 여기까지는 제방을 건너는 장거리용이었다. 아줌마에게 안 물어봤음 고생 좀 할뻔했다,

로터리까지 와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 El-hana hotel ! ' 을 외치자 타라고 손짓한다     

 

기사 인상이 영 불량스러운데, 역시 운전도, 틀어놓은 음악까지도 거칠다

아니나달라...호텔앞에 도착해 미터기 0.9 를 보고 1 dinar (600원) 동전 하나를 줬더니 더 달라는 소리를 한다. 마침 다른 승객이 타길래 잘됐다 싶어 그냥 내렸다.

 

숙소방향 골목으로 접어들다 Le chef 를 발견했다

튀니지 여행 블로거가 추천한 맛집인데 바로 코앞에 두고도 모를 뻔했다. 반가워서 들어가 ' 오늘 몇시까지 하냐 '니 8시라고 한다     

 

일단 호텔로 들어와 프런트에서 아침에 맡긴 돈을 찾으며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자기 일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 남자직원은 이쁜 소리를 해도 왠지 정이 안간다

 

방에 와 현주에게 안부를 전하자 ' 아침에 내가 컨디션이 저조해 보였다 '고 걱정을 한다.  

맞아. 피곤하고 쓸쓸해...

냄새나는 겉옷과 양말을 주물주물 빨아 널고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일기를 쓰는데 열린 발코니로 학생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 무상으로 가르쳐 놨더니 학력인플레가 정권을 뒤집는구나, 이러다 난리 나는거 아냐 ? ...'

이번엔 빵 ! 빵 ! 하는 최류탄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 얼른 창문을 닫았다, 나가 봐야 하나 ?

종군기자라도 된 것처럼 옷을 다시 챙겨 입고 로비로 내려왔다. 여분 수건을 부탁하며

"  학생들 데모하는거냐 ? "

"  그렇다 "

"  총소리도 나고 ...좀 무섭네 "

"  하하... 평화적인 시위니까 걱정마 "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건물벽에 바싹 붙어 Le chef 로 갔다.

아라빅으로 써 있는 메뉴판은 나에게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만 보인다. 대충 햄버거를 달라고 했더니 위에 메뉴도 고기라며 빵 종류를 그걸로 골라줬다. 중년남녀가 벽 간이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먹고 있다가 내가 버벅대는게 웃겼나보다. 다 먹고 가면서 아저씨가 설명을 해준다. 내 빵은 반으로 잘라 접는 거라고... 그들에겐 당연한 것도 나에겐 전혀 생소한 것, 그것이 여행의 재미 !   

 

요리사가 밀가루 반죽을 즉석에서 피자처럼 밀어 오븐에 넣고 굽더니 그 위에 토핑을 올리고 소스 종류를 물어보고 뿌린 후 반으로 접고 잘라 접시에 놓고 감자튀김과 올리브까지 얹어 가져왔다, 간판에 써 있는 FAST FOOD 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그대로 '요리' 를 해 주었다

음료수 1.5 포함해 총 5 dinar (3,000원)     

맛이 궁금하신 분은 직접 가서 잡숴봐, 내 욕은 안 할껴 !  

 

한국 인터넷에서 여기 후기를 보고 왔다니까 주인 아저씨가 놀라는 눈치다.

손에 육즙을 흘려가며 한 조각을 개걸스럽게 먹고 또 하나를 집어 드는데 아저씨가 종이 한장을 가져 와 보여줬다. 거기엔 한글로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단골이었던 그 한국 아가씨를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재밌으셨는지 다른 종업원에게도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배가 부르니 만용이 생겨 대로까지 진출했다,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주문,  2.5 dinar (1,500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데모대 청년 무리들이 괴성을 지르고 이상한 몸짓으로 지나가긴 했지만 거리는 한결 차분해졌다,

 

8시가 가까워오자 웨이터가 의자를 정리하는데 왠지 낯익다 했더니 Le chef 에 있던 직원이었다,

이쪽 노천카페도 거기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추운데다 카페까지 철시하자 거리가 슬슬 무서워져 더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도망치듯 호텔로 돌아왔다

 

흰 전통 복장을 맞춰 입은 중동 남자들이 빙 둘러 앉고 가운데 자리에선 남자나 가끔 여가수가 아랍 노래를 불렀다 

한쪽에선 노래에 맞춰 가벼운 악기를 두드리고 제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랍부족 원로들이 오아시스에 모여 칠순잔치 하는거 같은 광경이 낯설고 이국적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기르는 스타일이 다 조금씩 달랐다,

 

' 튀니지인은 아프리카에 살면서 신체는 아랍인이고 정신은 유럽인이다 '  말이 실감나는 하루였다

 

심심해 지폐를 세어 보는데 10 dinar 짜리 한장이 빈다.

몇번을 세고 오늘 지출과 남은 동전까지 다 맞춰 봤다. 신통하게도 0.01 dinar 까지 정확히 맞는데 딱 한장만 빈다

... 보관료인가 ?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건가 ?  큰 돈은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오늘 지출 :  택시         1

                 기차왕복   0.68 X 2

                 커피         2.5

                 밤발루니   0.6

                 점심         8.2

                 택시         l.0  

                 저녁         5.0

                 커피         2.5                   합 22.16  dinar  + 분실 10 = 32.16 dinar   (19,296 원)

 

 

너무 졸려 찜찜한 기분으로 ... 10시쯤에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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