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도닦고 도닦고

2015. 1. 10. 13:00Tunisia 2015

 

 

 

 

그나마 Wi-Fi 가 잡혀 수원과 오산집에 안부를 전했다

얇은 시트가 깔린 베드에 올라가 있으니 방이 추워 살짝 살짝 몸서리가 처졌다, 이러다 낮잠이라도 들어 버리면 귀중한 낮시간을 다 허비하고 밤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겠다 싶어 억지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귀중품을 어디다 둘까 둘러봐도 마땅한 곳이 없는데 부서진 탁자가 눈에 들어 왔다, 탁자 밑 먼지구댕이 속에 돈 봉투를 밀어 넣었다

배낭은 옷장에 대충 던져 놓고 나왔다   

 

 

로비에 소파, 터키 국기랑 비슷한 튀니지 국기

 

프런트겸 사무실

 

숙소 앞 횡한 공터

 

 

호텔이 위치 하나는 환상이었다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산이있는 배산임수. 저 산위에 리밧을 보기 위해 켈리비아에 온 것이다

 

공터옆엔 공사중인 주택이 몇채 있다, 아마 돈이 모일 때마다 조금씩 짓는 것 같았다. 아직 준공검사도 안 났을텐데 1층에선 사람이 기거 하고 있었다, 더 신기한건 아프리카 이 구석까지 LG 에어컨이 깔렸다능. 밖에 LG 실외기가 보였다 

 

Le fort 이정표

 

고성으로 올라가는 산길의 입구 조형물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을 천천히 혼자 올라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중턱쯤 오르자 바다가 보였다

 

이끼낀 돌위에 앉아 땀을 식힌다

 

 

 

 

다시 기운을 내서 올라가자 차를 댈수 있는 넓은 공터에 다다랐다,

어디선가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커피 마시고 가라고 카페를 가리켰다. 내려올 때 들른다고 하고 숲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돌들이 드러난 길을 조심스럽게 오르자 드디어 성이 보였다

 

산 정상은 큰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숙소에서 고성까지.

 

입구에 매표소가 보여 그쪽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나오더니 내 다리를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내가 못 알아듣자 무슨 신분증을 내 보이며 ' 이거 있냐 ' 고 물었다

한국에 있다니까 그냥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말을 다 알아 들을 순 없었지만 왠만하면 무료 입장 시켜주려는 온정은 느낄 수 있었다

 

성 입구엔 바다를 향해 대포를 세워 놓았다

 

성벽 아래 둘레길

 

문화재의 다국적 프랜차이즈인 UNESCO 인증마크가 여기에도 붙어 있었다. 오지를 탐험하다 무선기지국을 마주친 느낌처럼 ...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벽을 짚으며 조그만 아치 석문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더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이 또 있었다

 

여기엔 Punic 시대 (카르타고 B.C 814~B.C 146) 부터 피신용 성채 (Citadelle) 가 있었고,

이슬람이 점령 후엔 무장한 수도원 (Ribat) 으로 사용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임진왜란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조직해 전쟁에 참여하고, 중국엔 소림사 무술 학교가 있었듯 여기서도 도(道)닦다 도(刀) 닦다 했나보다.

 

본격적으로 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벽의 두께를 말해주듯 석굴같은 음침한 통로가 길게 나 있고 출구엔 찬란한 서광이 눈부셨다

통로 양편으론 검문이나 방어를 위해 기단을 높이 쌓았다. 병사들이 창을 들고 내려다 보는 오싹함을 느끼며 반질반질한 돌길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 깜짝 놀랐다 

 

아까 현지인 오토바이 뒤에 타고 산길을 올라오던 백인이었다,

나에게 ' 중국인이냐 ' 고 물어 한국이라고 했더니 엄청 반가워했다. 자기는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길래 나도 2002년 프랑스 여행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졌다

 

뭘 지키려 했는지 견고하게 쌓은 성안엔 의외로 온전히 남은게 전혀 없었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엔 원형기둥과 벽채 조금 그리고 주춧돌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 유적안에 튀니지 통신 무선 기지국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좀 거슬렸다 (하얀 건물)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넘어지듯 바닥에 철퍽 앉아 사진을 찍는데 그 프랑스 남자와 또 마주쳤다.

대뜸 묻는다

"  머리는 왜 짧게 깎았어요 ? " 

"  튀니지인처럼 보이려고 도착하자마자 깎았어요. 5 dinar. 한국에선 매일 매일 면도했는데 여기선 수염은 기를려고요 "

"  저는 반대로 기르던 수염을 밀었어요 "

"  하하 "

"  이발사가 ' 면도하실거예요 ? ' 묻길래 얼떨결에 ... "  

애기 피부 같다고 해주고 또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튀니스 씨디부사이드보다 더 하얀 마을이 여기 있었다

코발트 빛 바닷물색과 순백의 마을 빛이 보색대비 빤따스틱하게 어울렸다

 

 

넓지 않은 성안에서 프랑스남자와 나 둘뿐이라서 돌아 다니다 또 맞닥뜨렸다.

자기 폰을 꺼내보이며 SAMSUNG 건데 GALAXY 3 인지 4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 바람이 미친거 같다 ' 고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  그래도 평양보다는 여기가 낫죠 ? "

야가 시방 날 북한인민으로, 한국의 수도를 평양으로, 삼성폰을 북한에서 만든다고 본겨 ?  하긴 그게 당신만의 잘못인가 ? 통일하나 못하는 우리가 빙신이재~ 

 

 

서쪽 성벽 아래로 조그만 켈리비아 항구와 캡봉반도의 남쪽 해안선이 아스라히 멀어지고 있다

 

 

내가 묵는 숙소도 보인다

 

큰 석재로 쌓은 성벽에 아랍식으로 성을 더 쌓아올리고 벽돌로 든든하게 보강해 놓았다.

수천년동안 계속 보수와 증설이 이루어진 티가 났다

 

주변에 거칠 것이 없다 보니 성 위로 부는 바람이 너무 강해서 지팡이 하나로 도저히 지탱이 안됐다,

성벽을 짚고 걷거나 쇠파이프 팬스를 잡고, 계단은 한칸 한칸 거의 앉아서 내려왔다,

 

 

 

 

 

 

 

이 곳이 citadel 로, Ribat 으로 수천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올라와 보니 알겠다

사방 가시거리 안에는 이보다 더 높은 지형지물이 없었다, 오로지 수평선과 지평선만 끝이 없이 이어졌다,

 

 

 

지금은 무선기지국 역활뿐만 아니라 등대역활도 하고 있나보다

 

이 성의 유일한 통로로 다시 나간다

별로 넓은 곳도 아닌데,  강한 바람으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보니 12시에 올라와 2시에나 내려간다

 

대포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거대한 쇳덩어리가 성문 뒤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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