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영국인의 자존심, 웨지우드

2014. 8. 2. 10:19Britai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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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밤 잘때 낙타 등 같던 배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푹 꺼져 있다. 밤새 어디로 사라져 버린거지 ?

그 끝없는 허무를 오늘도 해탈하지 못하고 또 배를 채우러 레스토랑에 내려간다

 

로비 안쪽으로 들어가자 식당이라기보다는 홀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배를 채우고 있었다. 마치 캬라반 사라이에 낙타들처럼 ...

 

여긴 음식코너도 별도로 만들어 놓았다

 

음식종류가 많진 않았지만 짜지 않고 먹을 만했다,

지방에선 음식이 약간 안 맞았는데 런던과 가까와질수록 음식맛도 국제화 되는거 같다

 

여긴 흑인과 인도계 사람들이 젤 많았다, 이 도시가 관광으로 유명한 곳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들까 ?

여자건 남자건 덩치들이 장난 아니다. 아담한 한국인에게 익숙한 내 눈엔 모두 홀스타인 젖소와 뉴햄프셔 돼지와 버팔로 들소로 보였다,

내 자식이 국제 결혼한다고 저런 사람들을 데려오면 어저나 하는 괜한 걱징도 들었다  

 

 

밥먹고 다시 마라톤 뛰듯 방에 와 짐 챙겨 나왔다

오늘 갈 곳을 네비를 검색하자 ' 웨지우드 티룸 ' 이 보였다. 그런데 거리가 10km 를 넘었다, 이렇게나 먼가 ?

 

현주는 웨지우드 간다고 신났는데, 비는 계속 내리고, 차는 인적드문 들로 산으로 숲으로만 들어가고,... 

 

 

 

무심히 한 마을을 통과하다가 얼핏 웨지우드란 글자를 본거 같았다.

다시 차를 돌려 가보니 ' Wedgwood Visitor Centre ' 표지판이 반갑게 서 있다

 

 

마을 안쪽으로 난 좁은 길이 좀 수상쩍지만 일단 표지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 비를 맞으면서도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에서라면 정신병원 앰블런스가 그냥 픽업해 가도 할 말 없는 상황인데...

 

 

 

 

드디어 도착했다. 웨지우드.

웨지우드 (Wedgwood) 는 1759년 영국에서 창업된 세계 최고급 도자기 회사다. 

 

일요일이라 조용했다.

창고같은 공장안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푹 숙인 흑기사가 빗속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참 뜸금없었다.

 

 

건물과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웠지만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현주가 먼저 뛰어 들어갔고,  난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싼채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 오는데 중년의 백인여인이 가까운 문을 열어 주었다,

현주가 매장안에 들어가 여직원에게 우산을 잠깐 빌려 달라고 했는데 손님 거라며 안타까와 하다가 가까운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내가 어디부터 둘러 보는게 좋냐고 중년여인에게 물어 봤더니  ' 박물관 어쩌고... ' 하는데,

매장에 가득한 도자기에 눈이 뒤집힌 현주가 중간에 말을 자르고 여기부터 본다고 했다.

여자의 마음을 안다는 듯 중년여인이 엄지를 치켜 세워줬다. 

여기가 Factory Outlet 이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그나마 보이는 세팀이 공교롭게도 모두 극동아시아 사람이었다,

 

 

 

 

진열대 위에 써 있는 안내판.  Reduced to Clear

뭔 뜻이야 ?  두 사람이 머리를 부딪쳐 봐도 돌가루만 떨어졌다,

매장내 손님중에 일본여자랑 결혼한 백인남자가 있길래 무슨 뜻이냐고 물어 봤다

 

이 명명백백한 문구를 설명 하는게 오히려 더 어려웠는지 설명이 길어진다. 종합해 보니...

' 재고정리를 위한 가격인하 ' ㅋㅋ 

 

웨지우드에선 다양한 컨셉의 도자기를 내 놓았는데 그 중 JASPER ware 시리즈는 고대 로마 미술 장식을 모티브로 한 스톤웨어로 유명하다

그래서 아울렛에서 할인되고도 £500 (900,000원) 이나 했다, 9,000 짜리 중국산이면 어찌 좀 사볼 의향이 ...

 

 

꿀단지 하나도 가격이 후덜덜... 꿀보다 훨씬 비싸다.

 

 

 

웨지우드에서 식기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악세사리, 쥬얼리, 은세공품, 도자기인형, Tea 까지 만들고 있었다

 

 

 

 

 

 

 

 

 

Factory outlet 매장내 제품 중 상당수가 사실 중국산이었다, 

왕실과 백악관에 납품하며 고급브랜드의 이미지를 쌓은 웨지우드가 Bone china 와 Born china 사이에서 헤맨다면 그 끝은...

망할 수 밖에. 웨지우드는 2009년 다른 회사에 흡수되버렸다, 

 

또 이 매장 제품은 뒤집어 보면 상표 부분을 단단한 쇠 같은 걸로 긁은 자국이 있다.

검수중에 약간의 하자라도 발견되면 정식유통을 막기 위해 이렇게 표시를 해 놓은 것이다. 물론 다 하자제품만 있는건 아니고 정상이지만 안 팔린 재고품도 당연히 있다. 

 

 

아까 중년여인이 박물관쪽에도 매장이 또 있다는 말이 기억나 가 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계속 온다

박물관을 향해 뛰어다가 중간에 열린 문에 직원이 서 있길래 그리로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들어갔다.

Tea room 주방이었다능... -_-

 

복도에 걸린 공장전경

 

 

이쪽 매장은 최신 유행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울렛 제품 가격도 부담스러웠는데 여긴 뭐... 

 

 

 

 

 

 

 

 

침만 흘리다, 싼 홍차만 사들고

 

 

다시 티룸으로 들어왔다.

심플하게 블랙과 화이트만으로 인테리어 해 놔서 고급스런 웨지우드 분위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난 웨지우드는 모르겠고, 진짜 욕심 난건 이 스폰지케익.

나도 침만 흘렸다.

 

현주는 Assam 홍차를,

난 이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Fruit shoot 을 주문했다

 

잠시 후 아쌈차를 웨지우드 다기 세트에 담아 왔다.

생각지 않은 고급 다기에 서빙되어 마냥 행복한 현주

 

사진 찍는데 내 싸구려 음료수병이 걸리적 거리니까 치우라고 해서...

 

열 받아 병뚜껑을 눈에 박아 버렸다.

그런데 화는 다른 사람이 입었으니... 주방쪽에서 지나가던 여자가 날 힐끗 보고 허걱 !  

 

웨지우드 사내 티룸답게 다기세트는 다 비싼 자사제품을 쓰고 있었다.

찬장에 가득 찬 웨지우드를 보고 현주가 드디어 실성했다

"  나 여기 찻집에 취직할래 ! "

 

비바람에 이리 저리 휘둘리는 Wedgwood 숲이 창밖으로 보였다

250 년전 죠슈아 웨지우드는 저 숲을 바라보며 상상이나 했을까 ?  

먼 훗날 이 숲의 명성이 대륙 끝까지 퍼져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 올 거란 걸 ...

 

고급스럽게 세팅되어 있는 예약석. 

시각적인 광고 효과도 노린 듯.

 

차를 다 마시고 다시 박물관쪽 매장으로 오다가 남자화장실이 잠겨 있어 장애인 칸으로 들어갔다

소변보고 옷을 추스린 후 거울 앞에 섰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나도 놀라고 상대방도 놀라고...근데 아까 그 중년여인이었다, 조금만 빨랐으면 내 거시기까지 소개할 뻔 !

내가 진심으로 괜찮다고 하는데도 계속 미안해 했다.

 

 

현주가 나한테 ' 찻잔 좀 골라 달라 ' 고 해서 가격표는 안 보고 내 맘에 드는 걸 추천해 줬다

 

바로 아래 사진에 찻잔세트.

현주도 고급스럽다며 맘에 들어했다. 단 가격은 £52.5 (94,500원) 

 

 

점원 아가씨에게 Two piece 달라고 했더니 두 세트를 포장하는 것이다.

놀라서 한 셋트라고, 잔과 받침 둘 다 달라는 뜻이라고 말해줬다. 난 잔과 받침 가격이 따로 따로 붙어 있어 일부러 그렇게 말한건데...

이 찻잔을 현주가 나 주려고 샀다고 나중에 실토했다. 그냥은 내껀 절대 못 사게 하니까,..

 

 

두번이나 인연을 맺은 중년여인이 알고보니 여기 매니저였다,

서먹함을 깰려고 " 엘레강스하고 뷰리플하시다 " 아부를 했더니 현주에게 " 당신도 그렇다 " 고 능숙하게 답례를 한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봐서 한국이라고 대답해주며 여행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여정을 들어 보더니 런던은 너무 복잡해서 자긴 싫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스카보로는 최고라고 해서 함께 즐거워했다.

 

마침 동양남자 둘이 와서 매장을 뒤지며 ' 마누라가 꽃무늬 컵 사오라고 했다 ' 는 한국말이 들려왔다

 

 

나오는 길에 다시 팩토리 아울렛에 들어가 현주가 아까 봐 둔 찻잔과 몇 가지를 더 샀다.    £45  (81,000원)  

 

 

 

그런데 부가세환급은 £50 이상만 되서 여기 건 해당이 안됐다.

아쉬워 하자 ROBERT 란 이름표를 단 동양계 직원이 박물관 매장에서 산 영수증과 여기 것을 하나로 묶어(£97.5)서 다시 환급서류를 작성해 주었다. 시키지 않아도 친절하게 알아서 해준 것이다.  

 

잘 빗어내린 치렁치렁한 금발에 섹시한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직원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얼굴을 안 보여줘 계속 기회만 엿 보는데... 마침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뭔가 좀 이상하다

님이... 콧수염 ! 

 

 

웨지우드를 나오며 너무 행복해 하는 현주.

그 찻찬은 지금도 쓸 때마다 만족스러운걸 보니 현명한 소비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뒤로 웨지우드 박물관이 보인다. 

웨지우드 박물관에 보물같은 소장품을 팔아야 되는 상황이 최근에 생기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맨 아래에 덧붙여놨다

 

그 사이 비가 그쳤고

시간이 벌써 오후 2시나 되버렸다

 

 

 

 

 

 

 

 

 문화일보 munhwa.com  2014/9/4  기사 

 

영국인의 자존심. 찬란했던 웨지우드의 해가 그렇게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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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는 시  - 스파이크 밀리건

 

햄릿이 오필리아에게 말했다

그대의 모습을 그려 주겠소

그런데 어떤 연필로 그려줄까 ?

2B 아니면 다른 걸로 ? 

 

 

 

A Silly poem  - Spike Milligan

 

Said Hamlet to Ophelia

I'll draw a sketch of thee

What kind of pencil shall I use ?

2B or not 2B ?

 

 

※  햄릿의 독백 To be = 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