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차가운 도시에 사는 따뜻한 사람들

2014. 8. 1. 21:30Britain 2014

 

 


●●



●  ●

 

 

채스워스는 내 의지가 반영된 곳이라고 한다면

지금 향하는 스토크 온 트랜트 (Stoke on trent) 는 오로지 현주의 취향에 의해 일찌감치 낙점되었다

 

본차이나 (Bone China) 란 18세기 영국인이 젖소뼈 50% 와 -고령토 석영 장석을 섞은- 흙 50 %를 합해 구워낸 자기를 이르는 말이다. 젖소뼈에 섬유질이 보온성을 높여 음식이 쉽게 식지 않으며 일반 도자기보다 3배의 강도를 지니면서도 가벼웠다. 이후 본차이나는 영국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고 왕실의 궁중식기로 사용 되었는데 본차이나의 발상지가 여기 스토크 온 트렌트다.

웨지우드를 비롯하여 많은 도자기 메이커들의 공방이 있어 제조 과정을 견학할 수 있고 직영점에서 구매도 할 수 있다.

 

 

 

변두리에서 진입하며 느껴지는 도시의 이미지는 고결한 도자기와는 전혀 달라 좀 당황스러웠다

집 주변을 가꿀 여유도 없어 보이는 도시의 근로자 동네와 허름하고 작은 공장들.

 

그 안에서 글래드스톤 도자기 박물관 (Gladstone Pottery Museum) 이정표를 발견하고 따라간다.

꽃하나 안 보이는 칙칙하고 어수선한 거리,  

 

멋보다는 실용성이 우선인 건물들

 

길 건너 적벽돌 공장벽에 글래드스톤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 표시를 따라 공장 뒤쪽으로 돌아가자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다행히 빈 자리는 많았다

잠든지 얼마 안되는 현주를 깨우자 ' 벌써 온거야 ? ' 라며 부시시 일어났다

 

비몽사몽인 현주를 데리고 다시 박물관쪽으로 열심히 걸어 왔다

 

 

와보니 박물관 앞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별도로 있었다.

 

좌측에도 문이 있고 경사로 끝에도 문이 있어서 잠시 머뭇거리자 여직원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 안엔 기념품점과 매표소가 함께 있었다,

박물관과 공장을 견학하려면 최소한 2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30분밖에 안 남았다며 여직원이 난감해했다, 첨엔 그 정도도 괜찮다고 들여보내 달라고 했다가 현주랑 다시 얘기 해보고 포기했다. 내일 다시 오는 걸로... 남은 시간은 Shop 을 둘러 보았다.

 

어렸을때 겨울에 언 손을 불어가며 놀았던 다마치기.

그 추억의 다마가 잔뜩 쌓여 있었다. 너무 반가워 하나 하나 만져보며 그 매대만 두바퀴를 돌았다

투명한 유리알 속에 노란색 파란색 본홍색 띠줄이 환상적으로 꼬여있는 다마를 흐믓한 얼굴로 들여다보며 4차원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도자기는 유약을 안 바른 도기와 유약을 바른 후 한번 더 구워낸 자기가 합해진 말.

이건 도기,

 

글래드스톤 도자기 공장의 옛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 차를 주차장에 세워놨냐 ? ' 고 여직원이 묻더니 뭔 장난감 같은 동전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걸 넣어야 주차봉이 열린다고 하며...

입장권도 안 끊고 물건도 하나 안 샀는데도 미리 신경써 주는 여직원이 너무 고마웠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5시쯤 글래드스톤을 나왔다.

그제서야 현주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이 공장에선 대형 애자도 만들고 있었다.

도자기만 만들어선 수지가 안 맞나 ?

 

 

글래드스톤 전경. 예전 사진에 보이던 규모가 많이 축소된 듯하다

 

 

 

소득도 없이 공장뒤 주차장으로 돌아오며...

 

영롱한 도자기를 구워 내느라 가마는 그을리고 부서져 갔다

 

여직원이 준 동전.  밋밋한 표면에 Eurocoin London 이라고 써 있었다

주차장 출구엔 사람이 없고 바리케이트만 덜렁 길을 막고 있었다

만약 이 동전이 없었으면 얼마나 곤란했을까, 직원들 다 퇴근하고 늦은 시간인데 꼼짝없이 갇힐 뻔했다

 

예약한 호텔을 네비로 찍고 출발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안내되어 몇 km 가더니 변두리 물류창고 앞으로 데리고 가 ' 다 왔다' 고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내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다리가 세개밖에 없는 개를 보면서 느낌이 안 좋았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시내 상점들은 다 문을 닫았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다. 거기다 네비까지 베터리가 나가서 차를 세우고 다시 새걸로 갈아 끼우고 ... 어디가 어딘지 감을 못 잡고 빙빙돌았다

현주도 나도 긴장속에 피곤이 급격히 몰려왔다 

 

그때 경찰서 푯말이 보였다,

따라 들어가자 위압적인 Police headquarters 건물이 나타났다. 조그만 파출소 정도를 원했는데... 

<구글 스트리트 뷰>

 

현주에게 차에 있으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아무리 불러도 사람이 안 나온다,

 

참 되는 일 없네... 투덜대며 밖으로 나오자, 현주가 차에서 나와 건물로 들어가더니 초인종을 찾아 눌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경찰 아저씨가 방범창 너머에서 쏙 나타났다

 

Holiday Inn Express 호텔 위치를 물어보았다. 경찰서에 어찌 지도 한장 없는지... 

작은 구멍으로 책도 넣고 스맛폰도 넣고 아저씨도 뒷방으로 5번을 들락달락 거리며 같이 헤매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지쳐버린 현주

 

 

희망을 거둘려고 할때쯤 아저씨가 네비 지도에 위치를 찍어 주었다.

고미워서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도 손을 내밀었다

비록 체온을 느낄 순 없었지만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가 ' 시간 걸려 미안하다 '고 한다. 음,,,그건 좀 미안해야 돼 !.   

 

사필귀정.

드디어 예약한 호텔이 눈앞에 보인다

 

스토크 온 트렌트는 6개의 도시가 연합해서 만든 것이다

글래드스톤이 있던 도시는 롱턴 (Longton) 이고 경찰서는 핸리 (Hanley). 숙소는 스토크 (Stoke) 에 위치해 있다.

경찰서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도 5km 가 넘었다

<클릭하면 확대됨>

 

주차 후 짐을 내려 들어가는데 한 가족이 나를 추월해 간다.

여기도 애가 셋이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보이는 사내애는 베개를 끌어안고 엄마 아빠 뒤를 따라갔

프런트에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돌아 나가는 것이다. 이 도시만해도 Holiday Inn 호텔이 세개나 된다. 잘못 찾아왔나보다.

 

우리 체크인 차례, 다행히 우린 잘 찾아왔다

직원들이 쾌활하고 친절하다. 시내 지도를 구한다고 하니 A4 용지에 복사한 것 박에 없었다. 옛날엔 지도 인심이 참 후했는데 네비나 스맛폰때문에 점점 사람들이 찾지 않는건지, 예산절감 때문에 안 만드는 건지 요즘은 지도 보는 재미가 없다,

 

2층 128호.

복도 걸어오느라 지쳐서 방에 쓰러져 한참 쉬었다

 

프런트에서 식당 물어보니 호텔 바로 옆 레스토랑을 추천했다. 아까 들어올 때 본 기억이 났다,

저녁 먹으러 나왔다, 복도 왼쪽으로 나가자 멀찌기 레스토랑 지붕이 보였다

 

1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에 이렇게 써 있었다

"  문 열면 비상벨 울린다 ~! "

징징대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가 긴 복도를 지나 오른편 끝까지 가서 1층으로 내려왔다.  좀 덜 걸으려다가 더 고생만 했다.

 

가 온다. 걸어가려고 했는데...

현주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비를 맞으며 차를 빼와서 태우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하비스터 (HARVESTER) 레스토랑

입구로 들어서자 직원이 "  오른편 식당칸은 자리가 다 차서 왼편 Bar 쪽에서 조금만 기다리라 " 고 알람과 메뉴판을 주고 간다.

영국의 젊은애들이랑 합석했다가 그들이 간 후엔 중동가족이 또 와서 앉아 기다린다

 

샐러드와 음료 무제한 + 메인 메뉴 1개 + 선디 (Sundae) = £9.99 (17,820원)

요거이 땡긴다.

 

한 30분후에 벨이 울려서 웨이터를 따라 식당칸으로 들어갔다

빈 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약간 불량스런 젊은이들도 있고 분위기가 Light 해서 현주가 긴장했다. 지금껏 만만한 노인들을 많이 봐서 적응이 쉽게 안되나보다.

 

우리 담당 서버 Sofia 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난 BBQ. 현주는 치킨버거

소피아가 현주에게 소스는 뭘로 줄까 물어봤다. 뭐뭐 있냐고 물어보자 버벅거리는 주문단말기 (아이폰)의 화면을 직접 보여주었다. 거기엔 소스종류만 수페이지, 30종류 이상이 쭈욱 적혀 있었다, 서로 황당한듯 얼굴 보며 웃고 말았다,

그 중에 추천해 달라니까, Spice 좋아하냐고 물으며 Garlic 을 권했다. 영국사람들은 음식을 소스맛으로 먹는가보다.

 

"  소피야 ~ " 한국식으로 불렀더니 못 알아듣고 그냥 지나쳐 간다

"  쏘피아~ "  혀를 꽈서 불러주니 그제서야 알아 들었다, 음료 리필좀 해달라고 하자 샐러드 바 옆에 dispenser 에서 레모네이드를 뽑아왔다,

손님이 자유롭게 뽑아 먹으라고 거기 놔 둔건가 ?

미안해서 다음엔 내가 직접 가져오겠다고 하자, 밝게 웃으며 ' 괜찮다 ' 고 하며 갔다,

 

나 먼저 샐러드바를 가보라고 해서 대범하게 한 접시 담아왔다

접시가 따뜻했다. 식기세척기에서 바로 꺼내 놓은 건가보다. 허기가 져서 그랬는지 맛있었다

 

샤워크림을 얹은 통감자구이도 맛있었지만  

 

내 으깬 감자랑 BBQ 백립 맛에 현주도 반해버렸다

 

긴장이 풀리고 점점 기분이 좋아진 현주에게

"  다음에도 여행 따라 와  ~ " 라고 물었다

"  안 따라와 ! "

왜 ? "

"  다음엔 같이 올거야 ㅋㅋ "

 

 

배는 부르지만 디저트까지 챙겨 먹어야 되니까 소피아에게 선디를 갖다 달라고 했다

"  소스는 뭘로 ... ? "

물어봐 놓고도 웃긴지 피식거리는 그녀를 보며, 또 소스 타령하는게 황당해 같이 웃어버렸다

"  딸기와 초컬릿으로 하나씩 ~ " 

 

현주는 배 부르다고 해서 내가 두개를 다 먹어 버렸다,

선디에 뽕을 섞었는지 그 날밤 점점 기분이 고조됐다

 

19.8  나와서 20짜리 지폐 한장 주고 나왔다.

현주가 기념사진을 찍자 소피아가 허물없이 내 등에 손을 얹으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피아 같은  여자가 드물 정도로 영국 여자들은 대부분이 너무 뚱뚱했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하늘은 아름다운 군청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9 :20

 

애들은 호텔 긴 복도를 트랙삼아 신나게 뛰어 다니고 ...

 

오늘 저녁은 공항근처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일 출국해야 될 거 같은 느낌.

그래서 더 즐거운 시간들이 아쉽게 지나간다

 

스토크 온 트렌트의 첫 느낌은 차갑고 낯설었지만 

그 안엔 마음이 따뜻한 글래드스톤의 여직원, 핸리의 경찰아저씨, 하비스트의 소피아가 살고 있었다

 

 

●   ●  

 

 

찻집 - 에즈라 파운드

 

찻집의 저 아가씨

예전처럼 그리 예쁘지 않네

그녀에게도 8월이 지나갔네

층계도 전처럼 힘차게 오르지 않고

그래, 그녀도 중년이 될 테지

우리에게 머핀을 갖다 줄 때

주변에 풍겼던 그 젊음이 빛도

이젠 풍겨줄 수 없을 거야

그녀도 중년이 될 테니

 

 

 

The Tea Shop - Ezra Pound

 

The girl in the tea shop

is not so beautiful as she was

The August has worn against her

She does not get up the stairs so eagerly;

Yes, she also will turn middle-aged

The glow of youth that she spread about us

As she brought us our muffins

Will be spread about us no longer

She also will turn middle-aged

 

'Britain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44> 존경받는 애마부인 Godiva  (0) 2014.08.02
43> 영국인의 자존심, 웨지우드  (0) 2014.08.02
41> 넌 오만했고 난 편견을 가졌지  (0) 2014.08.01
40> 친절한 골리앗  (0) 2014.08.01
39> 외진 산장에 감금되다  (0) 201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