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 09:00ㆍBritain 2014
12시... 2시....4시
최대 두 시간을 못 버티고 잠이 깼다. 침대에 누워 벽난로를 슬쩍 처다본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고 넵킨도 태우고, 후후 불다가, 부채질 하다 보니 페치카 앞에 수북했던 톱밥블럭과 나무토막과 조개탄은 다 불꽃으로 승화되어 버렸다.
6시가 되니 이번엔 현주가 깼다. 따뜻하게 아주 잘 잤다며...
대충 세수만 하고 어제 산 스프를 챙겨 식당으로 내려갔다.
제일 연장자 아저씨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 일찍 일어나셨네요 ? " 하며 아침인사를 대신했다,
" 5시면 일어나요. 새벽에 큰 사슴 두마리가 옆 마당까지 내려 왔는데, 봤어요 ? "
" 못봤는데.... 아깝다. 어디서 왔대요, 숲도 없던데 ? "
" 근처에 큰 숲이 은신처라우 "
아침밥 달라고 하니 식탁에 앉으라며 일어나신다. 식탁엔 찻잔과 잼 몇 종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인스턴트 스프를 보여주며 전자레인지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물었다
설명서가 잘 안보이자 안경을 가져와 읽어 보더니
주방으로 가져갔다
뚜껑을 조금 따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릴 줄 알았는데
냄비를 꺼내 스프를 쏟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놓고 젓는 것이다.
미안해서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주걱을 뺐었다.
한참 올려다 봐야 하는 키 큰 골리앗이었지만, 속은 친절했다,
보글보글 스프를 끓여 아저씨에게 같이 먹자고 하니까 자긴 먹었다고 사양한다.
선반에 차들을 보여주며 현주에게 고르라는데 귀한 차들도 보였다. 일단 익숙한 Earl Gray 선택.
대용량 콘프레이크도 가져오고 쥬스도 준비하고 ... 대충 아침 상이 차려졌다.
아저씨가 빵을 잘라 왔는데 견과류도 들어있고 꽤 맛있었다. 현주도 맛있다고 하길래 아저씨에게 얘기했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제빵기를 보여주며 자기가 만들었다고 한다.
골리앗이 빵도 잘 굽네.
아저씨는 30년간 경찰직에 몸 담으며 거기서 해양 스킨스쿠버 요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은퇴하고 관리직으로 낮에 잠깐씩 출근해 도와주고 저녁땐 여기 산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산장을 인수한지는 8개월됐고 90이 넘은 노모는 글래스미어에 사신다고...
어제 저녁때 본 멀대 청년이 아들이었다, 그제서야 그가 가을에 해양학교에 간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식당 벽 곳곳에 검은 사냥견 사진과 그림이 붙어 있었다.
다 같은 개인거 같은데 아저씨가 그 개를 많이 사랑하나 보다고 현주가 물었다.
저 사진들은 원래 여기에 있었던건데 아저씨가 기르던 개랑 똑같이 생겨서 그냥 뒀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아저씨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 말고 나에게 카드정보를 다시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바클레이 은행에 카드정보를 보내야 하는데 부킹닷컴에 카드자료가 날라갔다고 화면을 보며 해명한다.
현주에게 신용카드 가져오라고 해서 보여주며 " 두번 결재될까 두렵다 " 고 했더니 아니라고 걱정말라고는 하는데... 찌끔 걱정은 됐다.
나중에 귀국 후 확인하니 그런 불상사는 안 생겼다.
9시 조금 넘어 일찍 체크아웃하고 나왔다,
어제 저녁 오락가락하던 비구름이 오늘 아침엔 머리 위로 두텁게 자리를 잡았다.
브리지하우스도 지나고
어제 번잡했던 앰블사이드 시내,
비 오는 아침엔 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비오는 고속도로...
긴장하며 운전하는 모습이 역력했던지, 현주가 서양배를 건네 주었다.
맨체스터 (Mancester) 순환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차가 막혔다,
갈림길을 혼동해 깜박이 켜고 재진입도 하고...
고속도로를 내려와 시가지를 통과한다.
앞차는 KIA 카렌스
낡고 관리가 안된 싸구려 Flat House.
판타스틱 중화요리집과 거리를 지나가는 가난한 서민들
지금까지 잘 꾸며진 관광지만 다녀서 그런지 이런 동네에 들어서면 좀 쫄게 된다. 배고파도 아무 식당에나 들어갈 엄두도 안난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끌던 도시가 이곳 맨체스터다. 서쪽으로는 리버풀 (Liverpool)이 있다.
아무리 축구나 비틀즈로 유명하다 해도 영국중부지역은 이렇듯 공업도시가 많아서 ... 내 여행 코스에서 일찌감치 재껴놓았다.
칙칙한 시내를 비집고 나와 다시 녹색 숲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기분이 다시 좋아져, 창문을 열고 젖은 오른쪽 날개를 펼쳐 말렸다.
손등위로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간다.
조그만 동네를 돌아 나가다 창문에서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봤다
' OPEN ' 배고픈 ? 엉 배고파,
널적한 공터로 차 머리를 들이댔다.
식당이름 『 The Wanted 』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서 있으려니 주방쪽에서 수더분한 아줌마가 불쑥 나왔다
불을 지핀지 얼마 안되는 듯 난로 앞에 재가 떨어져 있고. 그 위에 허브 한가지를 올려 놓았다.
현주는 Gammon & Egg £9.95
난 Chicken Curry & Rice £7.95
개먼 (Gammon)은 두툼한 돼지고기인데 좀 짜고
매쉬포테이토 (Mash Potato)는 좀 시큼했다. 식초를 뿌렸나 ?
정겨운 냄비에 담아온 치킨 커리,
내가 하도 맛있게 먹으니까 현주가 뺐어갔다.
마을주민인 듯한 노부부가 들어와 다정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다
한참 쉬었다가, 화장실 가서 양치 하고 밥값 계산하고 나왔다,
그 사이 비가 또 왔었나보다.
차 지붕위에 찬 비가 내려 앉았다,
● ● ●
사과 - 제인 허쉬필드
일어나 떠올려보니
내가 꾸던 꿈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빛이 밝았다 다시 어두워졌다
그 풍성한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
잡초를 조금 뽑고, 몇송이의 차가운 꽃을
꺾어와서 화병에 꽂았다
잠시 책을 일고, 잠깐 청소와 비질을 했다
이 날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기로
맹세했었고, 그렇게 하였다
한번, 희망 같은 것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금방 떠나버렸다, 낯익은 숄을 걸치고
요드 같은 장작향기를 풍기며 스쳐갔다
난 말을 건네지 않았고 그쪽도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따뜻한 어떤 것이
오고 갔다, 오래된 친구들과 나눠먹던 사과처럼
이쪽에서 한입 깨물면, 다음엔 다른이가
그렇게 해서 모두 없어질 때까지
Apple - Jane Hirshfield
I woke and remembered
nothing of what was dreaming
The day grew light, then dark again
In all its rich hours, what happene ?
A few weeds pulled, a few cold flowers
carried inside for the vase
A little reading. A little tidying and sweeping
I had vowed to do nothing I did not wish
to do that day, and kept my promise
Once, a certain hope came close
and then departed passed by me in its familiar
shawl, scented with iodine woodsmoke
I did not speak to it, nor it to me
Yet still the habit of warmth traveled
between us, like an apple shared by old friends
One takes bite, then the other
They do this until it is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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