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1. 17:00ㆍCambodia 2014
출발한지 두시간 만인 11시쯤
흙먼지 풀풀나는 벌판 외따로 서 있는 휴게소에 우리를 부려놨다.
주변풍경이 살~벌해서 쉬는 休(쉴 휴)게소가 아니라
휴~ 한숨만 나오는 휴게소다.
둘러봐도 살게 없어서 사람들이 담배만 피고 차에 다시 올랐다. 나도 포함.
이국적이다 못해 환상적인 캄보디아 평야가 시작되었다,
앙상한 야자나무가 듬성듬성 박혀 있고 그것들이 모여 지평선 끝까지 온 대지를 빡빡하게 채우고 있었다
사람은 안 보인다.
베트남의 메콩델타까지 이어지는 이 평야만 개간해도 전 세계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나온다고 승주가 거듭 강조했다.
※ 그래서 승주가 여기서 야콘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군 !
극장에서 틀어주던 70년대 ' 대한 늬우스~ ' 흑백영상이 넓은 차창을 스크린 삼아 눈앞에 상영된다.
쓰레기가 버려진 흙길,
짓자마자 낡아버린 단층 가게들
먼지를 뒤집어 쓴 차양
버글버글한 사람들
내가 실지로 몇 미터 앞에 있지만,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안락한 차속에서 보는 풍경은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이게 여행이냐, VOD (주문형 비디오 시스템) 냐 ?
우리 버스에서 뽐어대는 뜨거운 바람으로 인해 주변에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난 미안한데도 그들은 원망하는 눈길하나 없이 천재지변인양 그러려니 하는거 같다.
내가 아는 오리는 하얗고 소는 누런데
여기 오리는 검고 소는 하얗다.
도시를 통과하자 포장된 도로가 시작됐다.
캄보디아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던 택배차량.
한국의 택배회사가 여기까지 진출했나 ?
한국에서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시키자 캄보디아 거리를 롯데, 현대, 겔러리아가 다 점령했듯이
운행거리는 많지만 연식은 얼마 안된 택배차량.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그들을 따뜻하게 반겨준 이들이 캄보디아다.
찻길 옆에 Cambodian People's party 라고 쓰여진 푯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캄보다이인들이 가난해도 파티를 즐기는 낭만적인 민족이구나...
근데 그게 아니고 CPP, 캄보디아국민당 표지였다.
도로에 붉은 황토가 그대로다.
한두달이면 우기철인데 그때 다시 한번 버스타고 와 보고 싶다. 진흙과 수렁속에 ...완전 서바이벌 게임속에 헤매는 기분일 듯 !
가로등도 하나 없는 이런 길을 밤에 운행하는 버스들은 얼마나 위험할까 ?
실지로 버스가 길 옆으로 처박혀 있고 파란 비닐천으로 앞 부분을 가려 놓은 것도 보였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 것밖에 없는데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다. 차 속도만큼이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버스안내양이 마이크를 붙잡고, 휴게소에 들를테니 점심을 먹으라며 '차비에 점심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넓은 휴게소 앞마당에 달랑 우리차만 있다.
이제서야 노천테이블 여기저기 앉은 일행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호모같은 남자 둘(우리), 장성한 애를 데리고 여행온 부부, 모녀지간, 레즈같은 여자 끼리, 손주 넷을 거느린 할머니등 모든 인간 군상들이 다 모였다.
프런트뒤에 칠판에 메뉴와 간단한 주문방법이 적혀있었다.
내용이 이해 되는걸 보니 영어인데... 그럼 외국인 전용 휴게소 ?
아니나다를까 메뉴책을 펼쳐보니 가격도 영미 수준이었다.
승주가 주문한 밥.
색바랜 음식사진을 보며 ' 참 맛없게 생겼다' 고 넘겼는데 잠시 후 나온 실물이 사진하고 똑같이 맛없게 생겼다
승주가 맛없이 밥을 깎아 먹는걸 보며 혼자 끽끽거렸다. 요게 3 $ 이 넘는다
사진상에 캄보디아 음식은 도저히 안 땡겨서 미안하지만 승주의 2배 되는 가격의 햄버거를 시켰다,
한참 있다가 나온 것. 우리동네 맥도날드보다 비싸다.
이 휴게소만큼 음식사진과 실물이 똑같은 건 지금껏 본적이 없다.
싱크로율 개~ 100 %
승주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듣다보니 점심시간 30분이 또 금방 지나갔다.
담배 하나씩 빨고 꼴찌로 차에 올라탔다.
안내양에게 물 한병 달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냉장고에서 하나를 꺼내준다. 휴게소에선 돈 주고 사먹었어야 될 물인데...
갑자기 큰 호수가 나타났다
" 이거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그 톤레삽 호수야 ? "
승주가 가소롭지도 않다는듯 웃고 만다.
씨엠립은 거의 다 온거 같은데 톤레삽하고 앙코르는 도대체 왜 코빼기도 안보이는거야 ?
잘 달리던 차가 또 갓길에 위험하게 섰다.
오전에 차 세웠던 그 남자가 또 사내애 한명을 들처매고 내리더니 한참만에 올라왔다.
꼬맹이들 덕분에 도착시간을 이미 몇시간 전에 지나버렸다.
후배 연정이는 언제 도착하냐고 기다리다 지쳐갔고 ... 8시간만에 드디어 씨엠립에 들어왔다.
좌회전해서 저 골목길로 들어가면 종점인데 안 들어가고 차를 세우더니 할머니랑 남자랑 꼬맹이 넷을 내려주는 것이다.
이거 현지인들만 특별대우 해주는거 아냐 ?
외국인은 역차별 당해도 된다는 거여 ?
이게 시내버스냐 ?
짜증이 나는데
이 버스가 종점은 안 들어가고 직진하다가 우회전해서 모르는 길로 한없이 가는 것이다.
승주가 놀래서 연정이랑 연락을 취해 보는데 Wi-Fi는 자꾸 끊어지고,
버스는 우리를 내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묵묵히 굳세게 달린다.
씨엠립 변두리에 회색 담이 쳐진 으슥한 곳.
철문이 열리더니 그 안으로 우리를 몰고 들어갔다.
캄보다이를 몇번이나 온 승주도, 씨엠립에 살고 있는 연정이도 모르게... 종점터미널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직원에게 여기 위치를 물어보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해, 연정에게 이 남자 폰 번호를 찍어주고, 연정이가 전화해서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짐을 끌고, 매고 거리로 나왔다. 불연듯 내 팔목이 허전해서 보니 시계가 없다.
승주에게 얼른 버스에 가서 찾아보라고 시켰는데 잠시 후 빈 손으로 돌아왔다.
버스 청소하며 직원들이 가져갔나 ? 곰곰히 생각해 보니 휴게소에서 점심먹을 때 옆 의자에 풀어놓고 온 것 같다.
승주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더니 시계가 가버렸다.
승주는 자기도 모자를 잃어버렸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 시계는 내가 대학교때 산거니까 20년지기 친구고 승주도 그 모자가 자기 해골에 딱 맞아 아끼던 것이었다.
시계값이 만원이고 승주모자는 만원도 안되는 거지만 그래도 Heart Break 는 만원이상이라구 !
불안함과 설레임으로
낯선 씨엠립 거리에 서서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멀리서 렉서스 한대가 망막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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