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0. 12:00ㆍCambodia 2014
하나아빠랑 하나엄마가 프놈펜지도를 펼쳐 놓고 머리를 맞대더니 툭툭이 기사를 불러 노선을 설명한다.
" 두 사람 태우고 이리로 가서 잠깐 멈추고 사진찍고 또 저리 가고 ..."
밖에 세워진 툭툭이에 앉아 ' 오늘은 무사히 ' 기도를 올리는데 조카가 어제처럼 보은병을 챙겨 올라탄다.
한 사람이 더 올라타자, 이미 가격 흥정을 끝낸 툭툭이 기사가 난처해 하더니 어쩔수 없다는 듯 출발한다.
상훈이가 우리를 위해 조카를 딸려 보낸건 탱큐한데
오늘은 -안경점에 근무하는-조카의 여친이 에스코트 해줬으면 탱큐가 베리 머치였을텐데...
제일종합병원
교민지에 광고를 내고, 툭툭이에도 이렇게 붙이고 한국인 의사가 있어서 한국 병원임을 전혀 의심치 않았는데, 중국놈들 거라고 한다
외국에 나가보면 중국이 한국보다
얼마나 더 잘 사는지
얼마나 더 영향력이 있는지
얼마나 돈을 개같이 벌어 개같이 쓰는지 ... 놀랄 따름이다
활기찬 시장을 지나간다
얘네들 좀 이상하다.
느껴~ !
5년전까지만 해도 캄보디아 거리의 주인은 자전거였는데 지금은 오토바이에게 완전히 밀려났다
조만간 베트남처럼 오토바이가 개인당 한대인 시대로, 중국처럼 마이카 시대로 바뀌겠지 ?
그 급변하는 세상속에서 현기증을 느끼고 하류민으로 낙오될 사람들이 걱정스럽다.
한국대사관앞에 도착했다
툭툭이 기사에게 잠깐 기다리리고 하고 정문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경비가 사진찍지 말라고 제지했다,
얼마전 술취한 한국대학생 몇명이 캄보디아인들에게 맞았다고 한밤중에 대사관앞에서 현판을 떼내며 행패를 부린 일이 있어서 삼엄해졌나 ?
툭툭이 기사랑 조카가
' 제 나라 대사관도 못 찍고 쫓겨나냐 ? '고 놀리는 거 같아
무라도 베려고,
길 맞은 편 애꿎은 국민은행만 찍고 돌아왔다,
한국대사관은 번잡한 시내에 맛사지샵을 마주보고 옹색하게 있는데 반해,
북한대사관은 듣던대로 널적한 대로, 한적한 공원앞에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시하누크 캄보디아 국왕이 70년대 망명시절 김일성의 도움으로 평양 인근에 '장수원' 이란 전용별장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이후 북한과 캄보디아가 형제국처럼 친해졌고 대동강식당이나 평양랭면집 같은 북한식당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거 보면 김일성이 비록 남한엔 적이지만 의리나 선견지명이 있는 당대의 사나이였나 보다.
한국대사관 작다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북한대사관 앞을 지나가며 사진을 찍고 싶은데 승주가 한사코 말린다.
나중에 미국대사관 담벼락에 촬영금지 글자가 붙어 있어서 그제야 대사관을 찍는 것이 민감한 사안임을 알게 됐다.
기념탑을 찍으려는데
한 남자가 내 카메라 앞을 막고 포즈를 취하길래 프레임 안에 넣어줬다.
쉬었다 가려고 그늘을 찾다가 프놈사원 언덕아래에 툭툭이를 세운다
프놈펜이 평지다보니 27m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이 언덕도 꽤 높아 보인다
펜(Penh) 이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메콩강에 떠내려 온 불상을 건져내 이 언덕위에 사원을 짓고 모신 것이 프놈펜 (Phnom 언덕 + Penh 할머니) 도시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국토의 원점도 이 근처다
툭툭이 기사에게 담배를 하나 주고 우리도 공원바람을 쐬며 맛있게 피웠다.
쉬는 사이 툭툭이 기사가 사라지더니 잠시 후 멀리서 왠 비닐봉투를 무겁게 들고 온다.
아까 담배 하나 줬더니 답례로 뭔 수박이라도 사오나 ?
헛물켰다.
오토바이 엔진은 대부분 자연바람에 열이 식는 공냉식이다.
이 나라는 기온이 높은데다 무거운 툭툭이까지 매달려 엔진이 쉽게 과열된다.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물통을 매달아 물을 톡톡 흘려 증발에 의해 엔진을 식혀주고 있었다. 원시적이지만 어엿한 수냉식이다.
이 사원은 내국인은 꽁짜. 외국인은 $ 1 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주변 공원엔 목발을 짚고 행상을 하는 사람, 아이를 안고 동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라가 이들을 못 챙기니까 외국 관광객들에게 알아서 빌어 먹고 살라는 듯 보였다
미국대사관과 그 뒤로 포스코건물.
' 프놈펜의 스카이라인은 우리가 만든다 ' 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고층 건물들을 한국기업들이 많이 지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맞아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철수하는 바람에 짓다만 건물이 흉물로 남아 있다고 한다,
Phsar Thmei (쁘사 트메이) 트메이 시장에 다다랐다.
한인들 사이에 센트럴 마켓. 중앙시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외관이 좀 독특하다 했더니 1935년 프랑스인이 아르데코 스타일로 지은 것이다. 프놈펜 시내 중앙에 위치해 있고 건물중앙의 돔이 높이 솟아 았어 시내 어디에서나 잘 보인다. 저녁 6시면 문 닫음
전기가 모자라 정전이 잦은 관계로 자가발전기를 파는 곳도 보였다
시장 옆에 버스터미널까지 있어서 주변 거리가 정신이 없다. 간신히 툭툭이로 빠져 나왔다,
내일 우리가 탈 씨엠립행 버스는 왜 여기 말고 강변쪽에서 출발하냐고 승주에게 물으니, 터미널이 좁아 시내 곳곳에 간이 터미널이 있다고 한다.
오늘도 목숨을 가볍게 내놓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탄 사람들
근처에 경찰이 있어도 자기 볼일 보는 사람들.
한국도 30여년을 일제 식민지로, 곧이어 6.25 전쟁도 겪고,
중국도 몽골에 함락되어 원나라일 때도 있었고 중일전쟁으로 눈탱이 밤탱이 되기도 하고,
일본은 원폭으로 패망하고 지진에 원전이 터져도 살 사는데
동남아 국가들은 그 좋은 자연환경속에서도 왜 이렇게 하나같이 구질구질할까 ?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을 한나라로 통합하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를 또 한나라로
싱가폴은 모나코처럼 도시국가로 남겨두고
그리고 모든 화폐는 미 달러만 사용하고... 안될랑가 ?
매연과 더위속에서 시내를 한바퀴 돌아 다시 안경점에 도착했다
특별히 할일도 없고, 상훈이 일 끝나기만 기다리다 지루해서 밖으로 나와 애꿋은 담배만 죽이는데
옆 오토바이 수리점에 두 남자가 눈에 띄였다.
일거리가 없는지 두손 놓고 앉아 , 촛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놈펜의 4월 오후는 모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국적이 무엇이던 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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