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9. 13:00ㆍCambodia 2014
밖으로 나오자마자 승주에게 담배부터 하나 달라고 했다.
" 여행다니며 이런 드~런 기분은 첨이다. 승주야, 여기 데려와 줘서 고맙다 ! "
담배연기속에 깊은 한숨을 섞어 뱉었다
조카가 기사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고도 한참 후에야 멀리서 툭툭이가 나타나 앞마당을 한바퀴 넓게 돌아 우리 앞에 섰다.
뒷자리에 앉아 썬글라스랑 마스크로 단단히 가리고 팔걸이를 꽉 잡았는데, 시동이 잘 안 걸린다.
출발한지 한 5분쯤 지났을까 ?
분신같은 오토바이에 이상을 느낀 아저씨가 길 옆에 툭툭이를 세우자마자 시동이 푸르르~ 꺼져 버렸다,
몇번을 시도해도 시동이 안 걸리자 아저씨가 뒤로 오더니
조카보고 일어나라고 하고 의자밑을 열쇠로 열어 연장을 꺼내
한참 심장맛사지를 해도 툭툭이가 회생될 기미는 안 보였다
" 이러다 시내 도착하면 (점심시간을 넘겨) 저녁먹어야 되는거 아녀 ? "
걱정반 농담반으로 한마디 던지더니 승주가 담벼락으로 가서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묵념을 했다.
' 쟈가 언제부터 개띠였댜~ ? '
기사아저씨가 발로도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헛발질만 계속되고
그런 우리 옆으로 다른 툭툭이들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지나쳐 간다.
10 여분쯤 지났을까 ? 기사아찌의 정성어린 맛사지에 툭툭이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출발은 했는데... 그런데... 엑셀을 당겨도 도무지 속도가 안난다.
조금 빠르게 걷는 정도의 숙도에 가끔씩 이상한 소리까지 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측은하게 처다봤다
그래도 움직인다는 것에 자위하며
" 잘 하면 점심 먹을 수 있겠는 걸 "
" 조카 없었음 좆됐을 뻔 ~ "
승주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근거 없는 덕담일 뿐이었다.
거대한 원목침대를 싣고 우리를 추월해 가는 오토바이 속도가 포르쉐 같이 느껴지고
쌤통이라는 듯 힐긋거리는 포르쉐 운전수의 눈길과 마주치자 난해했던 상대성이론이 금방 이해됐다.
커브에서 마주오는 차를 피하려 옆으로 바싹 붙었는데 툭툭이가 나뭇가지에 걸려 멈춰 버렸다.
티코가 길바닥 껌딱지에 붙어 버린걸 본 후로 젤 황당한 순간이다
승주랑 조카가 내려 툭툭이를 손으로 밀어 간신히 꺼내놨다.
나무에 내려 앉은 먼지가 툭툭이 안으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엔진쪽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던 쇠 갈리는 소리가 이젠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턱과 어깨와 손목에 힘이 들어가서 뻐근해졌다,
" 기어 나갔네 ! "
예전에 운수업도 해봤던 승주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갸가 나갔다면 진짜 나간거다.
울퉁불통한 흙길, 과속방지턱 정도 높이만 되도 툭툭이가 올라가질 못하고 빌빌댔다.
그때마다 승주와 조카가 눈치껏 뛰어내려 툭툭이를 밀고 얼른 올라타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저 멀리 프놈펜의 남쪽 자락이 보인다.
참 많이도 끌고 왔다.
사람이 상전인지, 툭툭이가 상전인지 !
어느 집에서 밥을 말리려고 내놨는데 시루떡처럼 먼지가 앉았다
허름한 오토바이 수리점에 도착했다, 아저씨가 여길 오려고 마을길로 들어 온거구나 !
삼성전자 광고판이 덧문을 대신하고
들기름 (유사휘발유)을 내놓고 파는 곳.
아저씨가 안에 대고 간절한 목소리로 부르자 잠시 후 어두운 방에서 토플리스 청년이 나왔다.
아저씨가 오토바이 상태를 설명했는데 청년이 콤푸레샤만 어루만지는걸 보니 그게 여기에 최신형이자 유일한 장비인 듯했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얼른 1급 정비소로 가야지 이런 데서 고칠 수 있는 경증이 아니다.
툭툭이가 또 다시 쐬 갈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장정 넷을 태우고 일어섰다.
길가 집에서 잔치가 열렸다.
엄청 큰 스피커를 보니 오늘밤 이 동네사람들 잠 다~ 잤네 !
지난달 베트남 여행할 때도 이런 풍경을 몇 번 본 터라 이 나라는 소음 공해 인식이 아직 없나 보다 했는데 ...
알고보니 동사무소에 신고해서 허가를 다 받은 것이었다능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큰 길을 만났다.
그런데 도로를 건너가는게 아니라 갓길로 역주행을 하는 것이었다. 기사아저씨까지 넋이 나간것 같다.
조금 더 기어가자 또 오토바이 수리점이 보인다
이번에 들기름통이 좀 더 깨끗한 정비소다.
다른 오토바이를 수술하고 있는 닥터에게 가서 상황설명을 하는 기사아저씨
우리에게 잠시 내려서 기다리라고 한다.
뒷자리에서 장기이식을 위한 부속을 꺼내오고
주치의도 수술도구를 챙겨
여러 어시스트를 거느리고 드디어 집도가 시작됐다
안타까운 시간들이 흐르고
툭툭이를 끌고 오느라 탈진한 승주,
얼굴과 콧구멍을 닦아낸 물티슈가 새까맸다.
수술은 의외로 빨리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사 아찌 오늘 번 돈 다 개털렸고
오일이 낭자한 손을 닦는 명의.
또 한 목숨을 살렸다는 보람에 본인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A : 킬링필드. ★ : 수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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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이가 힘차게 제 차선을 찾아 달린다.
에어컨은 없지만 속도가 나자 바람이 땀을 날릴 정도로 시원하다
시내로 진입해 다른 툭툭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리던 툭툭이를 기사 아저씨가 길 옆으로 뺐다.
또 뭔가 잘못 됐는지 ...시간은 흐르고
조카가 내려 한참 이야기 하더니
나에게 긴 못을 보여준다.
내려보니 타이어가 빵구 나 있었다
치명적인 자상(刺傷)을 입고 우리의 툭툭이가 결국 ... 갔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음 기껏해야 가스통이나 싣고 다닐 편안한 삶이 이땅에서 태어난 죄로 인간을 5명씩 태우고 수레까지 끌며 참 고달픈 삶을 살다 가는구나. 다음 생에는 좋은 나라에서 생산되길 바란다.
지나가던 툭툭이를 잡아줘서 옮겨 타긴 하는데 캄보디아의 도로상황과 운송수단에 대한 믿음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일련의 돌발상황들을 보며 오늘 일진은 그냥 신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뒤 따라오는 노란 트럭이 빨리 가든지 길을 비키라고 크락숀을 울려대도 그저 툭툭이의 흔들림에 맞춰 몸에 힘을 다 빼버렸다.
힘이 다 빠져 버렸다.
다운타운에 도착 할 무렵
두 길이 만나는 병목지점에 건설공사까지 겹쳐 극심한 정체가 시작되었다
경찰이 갓길에 서 있다가
밀리는 차량과 오토바이속에서 문제 있는 것들을 귀신같이 달려가 솎아냈다. 그 단속 근거가 뭔지는 모르겠다.
베트남 사람들은 공안에 대한 두려움과 신뢰감이 있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경찰은 그저 삥이나 뜯는 나쁜 이미지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에선 자동차, 오토바이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강제적으로 세금고지서가 발부되는데
캄보디아에선 자기가 자발적으로 소위 세금을 내고 스티커를 산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얼마나 선진정부고 선진시민인가 !
스티커를 앞유리 창에 붙이고 다니면 된다. 스티커 살 돈 없으면 안 붙이고도 그냥 다닐 수 있다. 물론 경찰에 걸리면 젖되는 거지만...
가난한 사람은 요령껏 조심하라는 덕치(德治)국가 !
정부입장에선 전산망 깔 필요 없고 고지서 발송할 예산도 줄이고, 개인입장에선 집에만 모셔 둘꺼면 아까운 운행세 안내도 되고...
What a 합리적인 시스템 !
국내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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