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Da Lat 가는 길,

2014. 3. 1. 10:57Vietnam 2014

 

 

 

 

 

자다 깼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1시간 밖에 안 지났다. 승질나서 ' 쪽잠 억지로 안잔다 ' 하며 방 불 환히 켜고 TV 틀어 놓고 짐 싸놓고 꼼지락거리다 슬그머니 다시 잤다.

이번엔 좀 길게 잔거 같아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었는데 옆 Go2에서는 음악이 아직도 쿵쿵 울리고 있다. 불금이라 그러냐 ?  나 보내기가 아쉬워 그러냐 ?

방문을 좀 열어 놓고 환풍기를 끄고 다시 누웠다. 다행히 6시 반에 일어나 양치하고 배낭 들쳐 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왔다..

 

 

회색빛 새벽거리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바통(Baton)을 넘겨주고 있었다

 

 

너도 인상을 보니 간밤 잠을 설친게구나 ...

 

 

 

 

신카페는 낮보다 새벽이 훨씬 활기찼다.

오픈투어 버스틀이 5분 간격으로 계속 들고나며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대기실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옆에 앉은 백인여자가 끊임없이 기침을 해댄다. 위로의 말이라도 해줘야 할거 같아 처다 보다 눈이 마주쳤는데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여서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승차권으로 바꿔 나오니 20여분 여유시간이 있다.

불쾌한 고양이 식당으로 들어가 브랙퍼스트메뉴를 주문했다.

 

 

소시지와 계란후라이, 카페쓰어다 한잔.

이것만해도 6만동 (3,120원)이다. 피닉스의 초라한 아침이 실지론 3 $ 값어치를 한 거였군.

 

 

인도차이나의 탱볕에 얼굴이 다 끄을려 버렸다.

 

 

 

 

소시지와 계란후라이를 바게트빵에 끼워 먹고 있는데 앞 테이블의 닭벼슬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한 백인이 눈에 들어왔다.

행상여인을 슬슬 놀리고 있었다.

 

 

행상도 어리숙한 백인 등 한번 치려다 말려든 걸 알고 2단계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여자로서 삐진 척하기. 진짜 삐졌음 가버렸을 텐데 테이블 옆에서 등만 돌리고 있다.

잠시 후엔 백인남자 머리를 손가락으로 눌러대며 “ Lier ! lier ! "

나도 충분히 행상여인하나 데리고 놀려 먹을수 있지만 그러다 앙갚음으로 뱃가죽에 칼침 맞기는 싫다능.

 

 

30분쯤 다시 신카페 앞으로 왔더니 달랏(Dalat)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7시반 버스를 타며 차장에게 좌석번호를 꼭 지켜야 하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버스에는 앞자리부터 10여명의 사람들이 벌써 타고 있었는데 내 옆15번 자리는 주근깨투성이 삐삐같은 서양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 “ I'm sixteen" 라고 말하면서 그런 내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났다.  ' 나 16살이예요 ㅋㅋ '

아가씨가 “ 자리 바꿔드려요 ?  ” 하는데 창가가 좋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가씨 이름이 아만다 ? 아몬드 ? 아델슨 ? ...아뿔싸 ! 잊어버렸다. 영국 잉글랜드에서 왔다고 한다.

“ 여름에 영국 갈 예정인데 물가가 비싸서 걱정이다. 한끼 먹으려면 유로화로 얼마나 들어 ? “

“ 12 유로쯤... ”

 

 

 

 

 

 

차장이 물과 물티슈를 나눠주는데 내가 놓을 곳을 못 찾고 들고 있자 아뿔싸가 뒷자리로 가버렸다.

잠시후 나는 더 뒷자리로 갔다.

오기로 그런게 아니라 이쪽 창은 햇살이 너무 강했다. 큰버스에 자리가 2/3 이상 텅텅 비었다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를 달린다. 지금까지 베트남을 여행하며 본 도시 중 가장 가난한 마을을 통과하고 있다

포장이 되어 있어 도로하고 부르지 여기저기 패이고 갓길에는 인도도 없이 그냥 맨흙이다.

어느 가게앞은 건축폐기물 돌을 부셔서 깔아놨고 어느 가게앞엔 도랑물이 졸졸 흐르고 어느 가게앞엔 맨홀구멍이 뻥 뚫려있고 길가에 모든 가게와 물건과 사람까지 누런 먼지를 몇겹으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잘 살아보자는 의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삶의 고단함에 서서히 파묻히는 분위기였다. 나 태어났던 60년대 후반의 한국도 이 정도는 아니였을거 같다

 

 

그런 시가지가 몇 km 이어지다가 집들이 듬성듬성 사라지더니 고무나무숲이 시작됐다.

다른 모든 종자는 다 잡초가 되어 뽑히고 오로지 한 종류 고무나무만 밑동에 띠를 두른 채 온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어느 지점에선 30cm 묘목들이 계속되고 또 한참 달리자 2m 되는 나무들이,... 그런식으로 고무나무 농장의 규모가 엄청났다.

 

 

 

 

 

 

 

 

졸다 구경하다 2시간을 달려 10시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린내를 따라 휴게소 안을 통과해 건물 뒤로 돌아가니 악취가 점점 강해졌다.

대학생쯤 되보이는 학생들이 좁은 홈통에 소변을 보고 물을 한 바가지 떠서 홈통에 흘려 보냈다. 큰거 보는 곳은 고개 돌리기도 겁나서 외면했다.

 

 

우물가에선 윤기 잃은 개털을 휘날리며 늙은 개가 큰 뼈다귀를 뜯고 있었다.

 

 

그 옆에선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반쯤 썩은 과일을 수북히 쌓아놓고 맨손으로 씨를 발라내고 있었다,

 

 

소풍나와서 신난 학생들이 먹을걸 들고 계산대앞에 줄 서있는걸 보니 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매점에서 옛날 과자 3만동(1,560원) 사서 차로 올라왔다.

 

 

 

 

돈 값어치를 못한다

 

 

그제서야 승객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서양 노부부 3팀. 베트남현지인 5명 영국아가씨와 나.

베트남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버스편만 이용하는 것 같아보였다. 그럼 이번 달랏 3일 투어는 8명인가 ? 단출하니 좋네. 메콩 투어때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네...

 

 

 

 

 

 

 

 

 

 

 

 

 

 

 

 

 

 

 

 

드디어 산속으로 들어간다.

베트남에서 이런 고산지대는 첨 본다. 기사가 느릿느릿 안전운전을 하는데 이 인적 드문 산맥에도 오토바이는 여지없이 달린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꽤 큰 지방도시를 통과할 때였다.

시가지의 모든 사람들이 공중에 한 곳을 일제히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을 바라봐도 내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경찰이 교통통제까지 할 정도로 먼 볼거리가 있었나보다.

 

 

 

 

 

 

 

 

 

12시 50분쯤 점심 먹으러 큰 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리둥절 일행에 묻혀 따라갔다. 휴게소 여직원에게 신카페에서 준 점심쿠폰을 뜯어주니 안쪽 식당으로 데리고 가더니 구석에 원형 탁자에 함께 앉혔다,

 

 

 

 

 

 

 

 

우리 탁자엔 공교롭게도 베트남 모녀와 베트남할아버지와 그의 부인인 프랑스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앉았고

 

서양팀들은 저쪽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다.  가운데 노란옷 입은 여자가 아뿔싸 영국아가씨.

 

 

 

5명이 한 자리에 앉아있지만 서로의 언어에 교집합이 거의 없었다.

   베트남母 (베트남어)

   딸 (베트남어, 영어)

   베트남할아버지 (프랑스어, 8살 수준의 베트남어)

   프랑스할머니 (프랑스어).

   나 (한국어, 콩클리시)

나랑 말이 통하는 사람은 아랫 사진 오른편 여자분밖에 없었다.

베트남母는 나를 일본인, 딸은 나를 싱가폴사람으로 봤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이라니까 적잖이 놀랐다.

 

 

 

밥은 현지식이었지만 먹을 만 했다. 

 

 

휴게소입구에 커피전문점이 보여 카페쓰어다를 한잔 하려고 찾아갔다,

 

 

카페쓰어다를 못 알아들어서 메뉴에 적혀 있는 카페라떼를 주문했는데 여기 카페라떼는 좀 복잡했다.

토핑처럼 뭘 더 고르라고 하는데 내가 이해를 못해 버벅대자 무시하고 대충 자기들이 알아서 넣고 조잡한 핸드믹서기에 다 쏟아 한거번에 갈아서 플라스틱 컵에 담아 진공포장까지 해버렸다.

이탈리아를 3번 자유여행하며 먹은 카페라떼만 해도 한 도라무(200리터)는 되는데 졸지에 촌놈 되버렸다.

 

 

 

 

돈 값어치를 못하긴 이것도 마찬가지

 

 

 

 

 

 

 

 

 

 

 

 

 

 

 

 

 

 

 

 

 

 

 

 

 

.

 

 

산넘고 물넘고 조심조심 달리더니

3시 40분쯤 달랏(Dalat)에 드디어 도착했다.

 

 

 

 

 

 

 

 

 

 

 

 

 

 

 

잘 정비된 넓은 호수.

베트남의 여느 도시가 아니라 유원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