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0. 18:00ㆍLife is live !
오늘도 모임시작 2시간 전에 의정부에 도착해 신호등 하나 남겨 놓고 있는데 ' 어디쯤 왔냐 ? ' 고 귀신같이 전화가 왔다.
약속장소 앞에 차를 대고 내릴 새도 없이 사무실에서 4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 어여 출발하자 ' 고 닥달을 한다.
이 모임은 정시에 도착하면 욕 먹는다.
" 운희, 프런트 앞으로 ! "
오늘 당구에서 우리들의 목표는 운희형이 프런트에 불려가 지갑을 여는 장관을 목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불쌍한 평선이를 깔고 간신히 네번째로 탈출했지만 운희형은 동생들에게 이미 털뽑힌 장닭 꼴이 되버렸다,
역시 인생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기에 살아 볼 만하다
저녁 만찬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은 개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내 식구를 챙겨주고 함께 흥분하고 하나로 뭉쳐 맞설 수 있었던 드문 기회였고 소득이었다. 우리의 팀웍이 한결 단단해졌음은 물론이다.
이번을 끝으로 노래방 코스는 시들해 질거 같다.
몇몇 분이 -지난번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지 않는다는 - 일사부재리의 규칙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레퍼토리를 두껍게 준비하는 개개인의 각고의 노력이 아쉬웠다. 더구나 노래방 기기가 실력하곤 전혀 상관없이 점수를 마구 던져 '백점에 만원' 범칙금이 화면을 도배하자 마이크를 아예 안 잡으려는 분들까지 생겨났다. 굳이 이름을 밝히자면... 운길이형님 !
오늘 준비한 일정은 다 끝나버렸는데 시간은 아직도 10시가 안됐다. 열사 지희누나가 의정부 한복판에서 폭탄을 던졌다.
" 동해안에 해돋이 보러 가자 ! "
놀라서 일찌감치 내빼는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하는 사람,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는 사람들로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른 7명을 차 한대에 차곡차곡 고이 접어 사무실로 출발했다. 조수석에 겹쳐 앉은 운형이는 목이 거의 직각으로 꺾여 있었다, 이 상황에선 살짝 브레이크만 잡아도 목이 부러져 최소한 전신마비인 아주 위험한 포지션이었다.
뒷자리에선 엑셀 밟으라고, 앞자리에선 브레이크 밟지 말라고.. 딜레마에 빠진 지희누나.
사무실에서 일행을 기다리다 11시가 거의 다 되서 차디찬 승합차에 모두 타고 출발했다.
의정부를 벗어나 야경이 예쁜 서울을 물수제비 뜨듯 비켜지나 춘천행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 안에서는 그 동안 못 나눴던 서로의 이야기들로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강원도로 들어서자 살짝 자고 일어난 호종이가 운전대를 바꿔 잡았다
네비를 두개씩이나 켜고 산길을 세자리수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는데...깜깜한 갈림길에서 위험한 순간도 있었는데 급기야는 톨게이트 빨간불 출구로 돌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안에 일행들도 놀라고 뒷차도 놀라서 멈춰서 버렸다. 급히 핸들을 꺾어 파란불 출구로 나왔다.
강원도 환영인사는 표받는 여직원의 싸늘한 표정으로 갈음한다. 그래도 싸다.
그날 밤 호종이는 도로는 안 보고 네비만 보며 운전한게 분명하다,
조용히 잠든 속초시내를 통과해 동명항에 부딪친 후 어둠을 뚫고 북쪽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자 밝은 불을 켜놓은 식당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이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선창가에 차를 대고 포근한 조명이 켜진 식당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닐곱개의 탁자만으로도 꽉 찬 아담한 식당안에는 따듯한 장작불 난로가 피워져 있었고 보기에도 흐믓한 여자 둘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어릴때 먹던 추억의 과자들이 봉지째 붙어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해풍은 점점 거세지는데 김 서린 실내에서는 폭탄주에 풀린 눈으로 " 이 생선이 도루묵이냐 양미리냐 ? " 논쟁이 벌어졌다.
해뜰 때까지 이 시간이 계속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새벽 4시가 되자 식당이 문을 닫는다고 우리를 엄동설한 바닷가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놀란 팽귄처럼 뒤뚱거리며 모두 차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석에 웅쿠리고 이 난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7시 40분 일출까지 꼬박 4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 방이라도 하나 구해서 몸을 좀 뉘이자고 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불이 켜진 모텔들을 찾아 다녔다.
어느 곳은 너무 비싸고, 어느 곳은 주인이 자러 들어가서 없고, 여인숙이라도 가보자고 골목길로 접어 들었을 때였다
버티다 버티다 이 한 겨울에 안방에서 쫓겨난 낡은 TV가 떡 하니 길을 막고 있었다. TV가 무섭긴 머리털 나고 첨이다.
만만한게 호종이라, 혼자 깜깜한 골목길에서 육중한 TV를 두 손으로 들고 옆으로 옮겼다. 양다리가 오자로 휘어지며 낑낑대는걸 보니 여간 무거웠던게 아니였나보다, 헤드라이트에 비쳐진 그 모습이 눈물나게 불쌍하면서도 눈물이 날 정도로 웃겼다.
정작 여관앞에서 운형이가 ' 이 옮는다 ' 고 징징대는 걸 끝으로 방 잡는걸 깨끗하게 포기했다.
차라리 달리는 차속이 따뜻해서 이곳 저곳 밤거리를 쏘다녔다,
졸린 눈을 감고 있다가 살찍 떠보면 달빛만 가득한 인적없는 골목길이 무서워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야밤에 뭍으로 올라온 남파간첩 일당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가 아까 그 식당가로 와봤는데 일제히 불은 꺼지고 바람만 황량하게 불고 있었다,
▲ ▲ ▲
4시 --분
외투속으로 머리를 쏙 집어 넣고 모두 억지로 잠을 청했다
30만 km,10년이나 된 고물승합차가 그날 밤 우리를 살려 준 따뜻한 난로가 되어 주었다.
5시 --분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자는척 조용히 눈꺼풀만 깜빡이고 있는데 지희누나가 차문을 열고 보따리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혼자만 살겠다고 야반도주를 했다.
6시 --분
운형이가 갖다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캔커피를 주머니에 넣고 참다참다 차 문을 열었다.
살얼음 바람이 차안으로 무자비하게 밀려 들어왔다.
공중화장실은 차속보다 더 따뜻했다.
맘은 급한데 오줌은 눈물방울처럼 한방울씩 떨어진다. 추위에 쪼그라든 전립선이 요도를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나보다.
7시 --분
주변이 환해졌는데...이쯤 되면 해가 좀 떠줘야 되는거 아닌가 ?
갑자기 차에 시동을 걸고 서둘러 10km나 떨어진 낙산으로 내달렸다. 거기가 일출이 멋지다나... 이럴꺼면 진작 가 있든지.
이러다 달리는 차안에서 해 떠버리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 ▼ ▼
특별할 것도 없는 추운 어느날 새벽에
노인단체, 운동선수들, 가족등 수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러 낙산 해변으로 모여 들고 있었다,
해돋이를 이렇게 좋아하는 민족이 전세계에 유래가 있었던가 ? 참 불가사의한 한국인이다.
일출의 장관을 어찌 허접한 글로 다 표현하리요.
이런건 직접 봐야한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며 지희누나가 식당에 전화를 해봤다, 8시도 안됐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 벌써 열었으요 " 하는 주인장 목소리가 들린다.
그 식당, 아예 문을 안 닫는거 같다.
아침 먹으러 가는 길.
태백산맥 동쪽 산기슭에 아침 햇살이 부서져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두 눈동자속에는 태양이 아직도 이글거리는데 두부촌 끝 식당에 벌써 도착했다. 설악산 울산바위를 병풍삼아 향토음식으로 호사를 누렸다.
운형이가 옆에 앉은 호종이에게 황당하다는듯 버럭 화를 냈다
잠시후 뜸금없이 평선이가 낄낄 거리더니, 누님들에게 전염되고, 나를 픽픽 웃게 만들고, 밥상을 넘어 재수씨한테까지 퍼져 나갔다.
<문제의 사진>
사진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묘한게... 상당히 컬트적이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고 카톡으로 보낼 생각을 했을까 ?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아침 댓바람부터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고 넘나들었다.
동해에서 불어대는 한파는 설악산을 꽁꽁 얼려버리고 있었고 카니발은 잽싸게 미시령 터널속으로 몸을 숨겼다.
터널은 어둡고 긴 창자 속 같았다.
내시경 하기전 프로포폴(수면유도제)을 맞은 것처럼 일행 모두 나른한 잠에 빠져 들었다.
한명 두명...감미로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터널을 벗어나고도 이미 1시간이나 지난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음반가게에서 원색적으로 뿜어대는 뽕짝을 멍한 상태로 듣고 있자니... 리듬은 구식인데 가사는 첨 듣는 곡이다.
지희누나에게
" 저..거.. 최신곡이예요 ? "
" 엉, 오승근 노래잖아. 김자옥 남편 ! "
그제서야 잠이 확 깼다.
복자누님이 어젯밤 부른 뽕짝들이 사실은 레떼루도 안 땐 최신곡이었고 내가 부른 동물원 노래는 25년 묵은 촌발나는 고전이었다능...
토요일 아침, 강원도로 향하는 차들 수천대가 반대편 차선에 꽉 찼다.
우리는 그 곁을 빠른 속도로 지나쳐 집으로 가고 있다,
■ ■ ■
필리핀 다이빙을 함께 했다는 공통점으로 우린 즐거웠지만, 한편 각자의 개성은 염려스러울 정도로 또렷하게 달랐다.
하三형제(운길 운희 운형)도 이름 두 글자 말곤 공통점이 없는데 우린들 오죽하겠는가 ? 혈액형도, 배경도, 전공도, 말투도, 나이도 다 극단적이었다. 그런데
11월 뒷풀이를 8시간 동안 축하했고
12월 송년회는 12시간을 함께 하더니
이번 신년회는 20시간을 붙어 다녔다, 다음 開海式은 1박2일, 24시간 이상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 인간관계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상호간의 공통점이지만
인간관계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약간의 차이점이다 ' 란 격언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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