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홍익인간들의 마을 Granja

2013. 8. 3. 15:00Portugal 2013

 

 

 

 

외지고 거친 산길을 돌아가는데 하얀 폿말이 보였다

'  PORTUGAL "

 

뒤를 돌아보니

'  ESPANA '

 

 

마른 지푸라기가 깔린 공터에 차를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  국경을 넘었어 !! "

무심코 지나쳤으면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

한국인은 임진강 헤엄친다고 벌집이 되고 유럽인은 자기가 국경을 넘는지도 모르며 다닌다.

 

스페인쪽은 가드레일도 있는 말끔한 2차선이고 포르투갈쪽은 차선도 없다. 도로 색깔이 좀 다르구나

 

경재는 자다 일어나 몽구스처럼 고개 한번 들어보더니

"  검문소 같은게 있을줄 알았는데 고작 이거야 ? "   중얼거리며 다시 구멍속으로 쏙 들어갔다

 

여자들에게 " 하나 둘 셋 할때 점프해 ! "

 

"  그것 하나도 통일을 못하는데 남북 통일이 되겠냐구, 이냥반아 ~ "

 

다리위에 국경선에서는 두 모녀가 역사적인 손을 잡았는데 은재는 하품밖에 안 나오나보다

 

 

기념일이라 좀 더 의미있는 이벤트라도 하고 싶은데, 사진 몇장 찍고, 봐주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다.

 

기냥... 가자....

 

포르투갈의 남동부에 해당하는 이 지역이 알렌테호 (Alentejo)다.

서유럽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아까 산등성이에 하얗게 보이던 것이 포르투갈의 첫 마을인 바란코스 (Barrancos) 였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함만 가득하다. 사람이 전혀 안 보였다.

꼭 북한의 전시용 국경마을처럼 비현실적이어서 슬쩍 두렵기까지 했다

출퇴근 러시아워, 화공약품 범벅의 음식. 화려한 도시, 유흥, 향락, 바쁜 도시 생활에 익숙한 동양인이 이 마을에 정착한다면 베겨날 재간이 있을까 ?  나는 3일 넘으면 정신분열증에 걸릴거 같다.

 

지나가다 주유소 가격표를 봤는데, 국경 근처라 그런가 기름값은 별 차이가 없다.

 

바란코스를 떠나자 수십분째 차 한대 안 지나가는 시골길이 일직선으로 계속 됐다.

 

 

 

 

 

그러다 만난 소들이 너무 반가워 차를 세웠다,

 

이 소의 얼굴이 너무 웃기게 생겨서 온 가족이 암소 무~에게 말을 걸고 소 웃음소리를 내고...

몇 시간째 사람 구경을 못하니까 가족들이 미쳐 돌아가는거 같다. 조울증 1단계

 

 

또 수십분동안 똑같은 길.

가족들 말수가 확 줄었다. 집단조울증 2단계에 접어들은거 같다

 

 

포르투갈은 전봇대도 웃겨 ㅋㅋ

조울증 3단계

 

허기져서 그런가, 의식동원이니 밥을 먹여보자

왼편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갔다.

역시 인적없는 골목길로 차를 꺾자 볼일 보던 개가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  음...미안 '

 

이 골목 저 골목, 사람은 안 보이고 개들만 길 한가운데 널부러져 있다

그러다 멀리서 걸어오는 할아버지 한분을 발견했다, 너무 반가워 얼른 달려가 창문을 열고 말을 붙였다

"  레스토랑트 ? "  하며 먹는 시늉을 하니까, 내 팬터마임에 잠시 당황한 할아버지가

"  리스또랑떼 ! "  해서 내가 당황했다.  네,,,리스토랑떼요...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스페인어도 못 땐 애한테 포르투갈어는 더더욱 우이독경이지.

손짓으로 대충은 알겠는데, 이 손바닥만한 동네길이 뭐 그리 복잡하다고 설명이 끝이 없다. 서울 김서방네도 찾을 기세.

그래서 얼른 " 오브리가도 !  오브리가도 ! " 를 연발하며 도망쳤다.

※ 오브리가도 (Obrigado 오브리가두 : 포르투갈에서 남자에게 하는 고맙다는 인사말, 일본어 아리가또의 원조라는 설도 있다)

 

할아버지의 손짓을 기억해 찾아가는데 오래된 건물은 부서진채 방치되어 있고

 

텅빈 탄광촌같은 집들만 쭈욱 아래까지 이어졌다

 

막상 도착한 식당이란 곳은 간판하나 없는 살림집이었다,

발이 처진 어두운 집안에서는 허연 눈동자 몇개가 번뜩이며 " 여기까지 왜 왔냐 ? " 는 듯 처다봤다

 

그리 배고프다던 짱이가 " 밥 안 먹어도 좋으니 목적지까지 가자, 아빠 ! "

동네를 보니 압맛이 싹 사라져서 네비에 에보라를 다시 찍고 마을을 벗어나다가 광장을 만났다,

야외 파라솔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저기가면 먹을게 있겠구나

 

후진해서 빈자리 찾아 멀리 차를 대고 안 먹겠다는 경재를 깨워 광장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동양인 5인조가 신기한지 사람들이 곁눈질로 우리를 처다보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며 거침없이 열린 카페 안으로 쑥 들어갔다

컴컴한 실내에서 한 남자가 저쪽 문으로 돌아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가 들어온 곳은 주방이었다. 다시 나가 쪽팔리게 옆문으로 들어왔다.

" 리스토랑떼 ? " 하며 먹는 시늉을 하자 식당 남자들이 돌발상황을 어떻게 할지 대화를 나눈다.

 

어두운 실내가 서서히 적응되며, 밖에 사람들 숫자만큼 식기가 식탁위에 세팅되어 있는게 보였고 뒤곁에서는 바베큐 그릴위에 생닭이 그 사람들 숫자만큼 구워지고 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을수 있겠구나 침을 꼴깍했는데... 주인인 듯한 남자가 술병을 든채, 여기서 식사가 안된다고

"  나가서 쩌~기로 돌아가세요 "  손을 들어 휘저었다

"  쩌~기요 ? " 나도 손을 들어 휘저었다.

 

쩍 벌리고 구워지는 치킨을 아쉽게 처다보며 광장으로 나왔다. 계속 쪽팔리게 사람들이 또 처다본다

쩌~쪽으로 돌아가자 과자점 하나랑 식당하나가 나타났다.

창문에 식사하는 사람이 보여 경재에게 들어가 보라고 했더니 잠시후 경재를 앞세우고 식당 직원이 문밖으로 나와 

"  쩌~기로 돌아가세요 " 팔을 휘저었다,

 

아마도 처음 할아버지가 알려준 식당을 말하는거 같다.

포기하고 차로 돌아오며 과자점과 식당하나를 더 두드렸는데 문이 닫혔다,

땀을 찔찔 흘리며 광장을 지나오자 뒤통수로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내 오늘의 수모를 꼭 기억하마, 아마레렐호 (Amarelejo) !

 

 

 

차 안에서 짱이가 미스트를 뿌렸는데 빈속이라 속이 니글거려서 다음부턴 밀폐된 곳에선 그런거 뿌리지 말라고 애들에게 주의를 줬다

다시 지방도를 조금 더 달리자 오른편에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현주랑 내가 동시에 저기가서 밥먹자는 말을 했다.   마을 이름 그랑하 (Granja) 

 

네비로 식당을 찾아갔는데 조그만 문 앞에 동네남자 네댓명이 서성이는 그냥 바르 분위기다

 

기대 안하고, 가서 밥먹을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더니

잠시후 현주가 나오며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영어 잘하는 아저씨가 식사가능하다고 했단다.

 

신나서 차를 벽쪽에 바짝 대고 들어갔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당안은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다. 동네 사람 몇이 식탁과 바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영어를 잘 하는 아저씨랑 식당주인이랑 얘기를 하더니 ...주방 아줌마가 지금 없어 식사가 안된다는 것이 아닌가 !

 

영어아저씨가 그럼 근처에 다른 식당을 알려주겠다고 밖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한 블록 떨어진 귀퉁이에 또 다른 조그만 식당문이 보였다, 고맙다고 기념사진 한장 찍은후

"  스테이크 먹고 싶은데 뭐라고 말해야 되요 ? " 물어보자. 아예 적어주겠다고 식당안으로 들어가더니

"  주방아줌마가 지금 돌아와서 식사 가능하답니다 " 라며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또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영어아저씨의 도움으로 주방아줌마에게 Beef steak 주문하고, ' 꿀꿀, 꼬꼬댁! " 의성어도 내고, 사이드로 chip 도 주문하고...나중에는 점점 복잡해져서 영어아저씨랑 아줌마가 적당히 알아서 해달라고 나는 빠졌다. 두 분이 상의하더니 메뉴가 확정된거 같다.

마실거 물어봐서 물 큰거 한병으로 그것도 깔끔하게 끝냈다. 매번 드링크를 각자 시켰는데 여기서는 안 그래도 될거 같았다,

 

아줌마가 자기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할줄 안다고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를 할줄 안다고 ...교집합이 없다.

우리는 피자와 스파게티도 잘 먹으니까 그것도 있으면 달라고 했더니 웃으며 주방으로 가셨다.

 

이 시골구석까지 국산 TV.

TV 시간이 1시간 느리다. 포르투갈로 들어오며 1시간을 벌었다, 가족 모두 시계와 카메라시간을 맞췄다.

 

애들에게

"  너네들도 눈치 챘겠지만 엄마 아빠는 조그만 동네에서 에피소드를 아주 좋아하는거 알지 ? "

경재가 피씩 웃으며,  "  뭔 눈치씩이나 ! "

 

잠시후 빵과 치즈와 햄이 나왔다.

포르투갈은 식당에서 유료로 밑반찬을 깔고 시작한다. 멋모르고 먹다가는 그게 메인요리보다 더 비용이 나와, 계산할때 손님이랑 실갱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미리 유료라고 알려주고 깐다는 얘기를 가족들에게 해주었다,

여기는 그런데 유료가 아닌거 같다.  결론은...맛있게 먹자 !

치즈도 안 짜고 햄도 역겹지 않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현주에게 얼른 주방가서 안 짜게 해달라고 말하라 시켰다,

현주가 부리나케 달려가 아줌마에게 " 뽀카 쌀 ! " 을 외치자 아줌마가 OK ! 하더라능

 

한 40분이 흘렀나보다. 기다리다 슬슬 말이 없어지고 걱정이 될 때쯤.  드디어 아줌마가 나타났다. 

내가 배고파 죽는줄 알았다고 하니 미안해 하며 웃는다.

큼지막한 T-bone steak 가 5개 담긴 접시와 살짝 간을 한 밥이 나왔다

 

이어서 식당아저씨가 또 스테이크 5조각이 담긴 큰 접시를 내려 놓았다,

허걱 !  개인당 큰 접시 하나씩이야 ?  

 

이번엔 쟁반접시에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수북이 담아 나오자 먹기도 전에 겁이 덜컥 났다

   또 나오는 건가 ?   음식값도 비쌀텐데... 우리를 봉으로 봤나 ?   이걸 어찌 다 먹나 ?

다행히 써빙이 거기서 멈췄다.

 

정신없이 먹었다.

머리박고 먹었다,

무아지경 먹었다.   

이때만큼은 입이 오로지 먹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20 여년전 송탄 미군기지에 들어가 먹어본 T-bone 이후로 가장 맛있는 steak 였다. 

나 3.5 조각,  짱이 2 조각,  경재 2.5 조각,  현주 1 조각,  은재 1 조각 = 빈 접시

감자칩도 공장제품이 아닌 주방에서 즉석으로 썰어 튀긴 것이다.

토마토와 상추와 양파와 멜론까지 들어있는 대박 샐러드, 

아줌마가 중간에 빵도 더 가져왔는데 손도 못 댔고 물도 알아서 댓병으로 하나 더 가져다주셨다.

 

커피 두잔까지 마시고서야 모두 식탁에서 두 손을 내려 놓았다.

그 많은걸 다 먹어재끼자 아줌마도 흐믓해 했고 나는 ' 따봉' 과 ' 오브리가도' 를 남발했다.

 

현주가 슬슬 음식값이 걱정되나보다.

아무리 포르투갈 물가가 싸다해도 한국이랑 비슷할건데 국내에서도 스테이크를 이렇게 먹으면 10만원이상은 족히 나올거 아닌가.

식구들에게 음식값 맞추기 내기를 하자고 했다. 오늘 저녁 메뉴 선택하기 뭐 그런 제안이 나오는데 내가 '만원 빵' 을 하자고 했다.

짱이는 "  난 용돈도 안 받는데 돈이 어딨어 ? " 하길래 니 통장에서 빼서 내라고 했다.

현주는 50, 애들은 30 정도 얘기를 하길래 내가 ' 그건 아닌거 같다. 나는 100 을 하겠다 ' 고 하니까 최종적으로

나 100 €,  현주 80 €,  은재 70 €,  경재 65 €,  짱이 55 € 를 불러댔다, 

 

경재가, 유일하게 하는 스페인어로 " 라 꾸엔따 " 를 달라고 했는데, 금방 안 갖다주자 기다리다 못해 직접 가져오며 투덜댄다.

"  얼마 나온지 알아 ?   아빠 얘기듣고 괜히 올렸어 ~ "

계산서를 뺏어보니 총 50.6 € (75,900 원)이 나왔다,

짱이 당첨 !  언니 오빠꺼 벌금은 한국가서 용돈에서 빼준다고 보증해줬다,

 

 

계산하라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손을 내젓는다.

60 € 지폐를 주고 현주가 0.6 € 동전을 주섬주섬 찾으니까 아줌마가 됐다고 하며 10 € 지폐를 거슬러 주셨다.  D.C 까지 !

 

가족들하고 조금 더 앉아서 수다 떨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나오는데 아줌마가 안 보인다. 안 가고 기다리니까 아저씨가 주방을 향해 불러 주셨다, 수십년 친구처럼 요란하게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나눴다.

 

 

 

낡은 시계탑이지만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처럼

볼거없는 촌구석이지만 이방인을 환대하는 홍익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값싸고 맛있는 스테이크가 있었다   3:10

 

 

 

 

 

내 오늘의 추억을 꼭 기억하마, 그랑하 (Gran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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