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미친(mad) Madrid

2013. 7. 25. 23:00Spain 2013

 

 

 

 

 

마드리드가 가까워질수록 강해지는 석양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다. 선글라스를 쓰면 또 네비가 안 보이는 진퇴양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런데 솔직히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이 도시가 괜히 싫어서 마드리드 주변만 빙 돌아 나가는 루트로 짰었다

가족들이 힘든거 같아 대도시에 좀 풀어주려고 들어오긴 하지만 좋을리가 없지

 

드디어 마드리드 시내로 들어왔다. 햇볕을 피해 차를 세우고 숙소를 검색했다. 준비한 정보가 없어 위치감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하필 찍은 숙소가 번화가 한복판이었나보다. 퇴근 러시아워에 네비 길도 한번 놓치고, 경찰이 길까지 통제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명동길 한복판 같은 정신없는 곳에서 깨끗하게 두손 들었다.

"  아빠는 여기서 도저히 숙소를 구할수 없으니 외곽으로 나가자 "

아이들도 현주도 아무 말이 없다.

현주 또한 건물사이에서 갑자기 들어온 강한 햇빛에 망막이 따가워 정내미가 똑 떨어졌다는 얘기를 나중에 해줬다. 그때 당시는 지방만 다니다 이 정신없는 대도시에 모두 혼이 나간 상태였나보다.

 

외곽 아무데나 네비로 찍고, 그걸 의지하여 빠져나와야 하는데 고층건물에 전파가 막혀 계속 에러가 났다.

사람들이 가득 찬 골목길을 계속 돌고 있다.

안되겠다 싶어 그대로 직진했다. 

꽉 막힌 도로,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들, 차를 긁듯 지나가는 오토바이들. 

급기야 현주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차 안 분위기가 쏴~해졌다 8:30

 

큰길로 나왔다. 그냥 직진

 

 

번잡한 곳을 어느 정도 벗어나자 최대한 화를 억누르고 애들에게 대도시관광의 문제점을 얘기했다.

' 이 마드리드를 아빠는 원래 안 오려 했다 '는 비겁한 말은 안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뒷자리에 경재가 내 말에 또박또박 대답과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급격히 기분이 풀렸다. 9:00

 

 

어짜피 늦은 숙소. 가족들 저녁부터 먹여야겠디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어두컴컴해지는 거리에서 중화요리집을 발견.

한 블럭 다시 돌아 좁은 틈에 차 낑겨넣고 모두 가벼운 기분으로 식당안에 들어갔다.

 

중국인 여주인이 알아서 우리 탁자에 칼과 나이프를 걷고 수저를 싹 깔았다.

아까 주차표지에 뭐가 적혀 있는거 같아 남자종업원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차 저기해도 되냐고 하니 가능하다고 한다

 

식구들이 주문을 다 나에게 일임하자 입맛이 싹 사라졌다

이건 ' 아빠를 믿는다 ' 는게 아니라 ' 어디 한번 꼬투리 잡혀봐라 ' 라는 노골적인 덫이었다.

오는 내내 짜증낸 복수를 하겠다는 거지 !

 

메뉴판 잡은 손을 떨다가 

새우볶음밥 5.5€ 두개, 야채볶음밥 4.95 € 한개를 던졌다,   애들이 오래간만에 밥 구경했다고 만족.

 

찐만두 4.5€  노른노릇하고 향긋한 육즙에 또 접시가 금방 비워졌다

 

제 3구. 돼지고기볶음 6.75 €  좀 시큼하긴 했지만 스페인와서 돼지고기가 왠 횡재냐는듯 잘 먹었다

 

다음으로 현주 따뜻한 스프 먹여준다고 조심스럽게 해물스프 3.95 € 를 시켰다

국물이 허옇긴 했지만 애들까지 돌아가며 그릇을 싹 비웠다

 

이젠 뭐 자신감이 생겨 그림만 보고 면볶음을 (가족들이 배부르다고 해도) 시켰다,

주인여자가 빨리 안 가고 큰접시 5.95 € , 작은접시 물어보며 시간을 끌때 끊었어야 했는데...

면이 올리브기름에 범벅이 됐다.  막판 실패.

 

물 4병에 콜라 2병까지 총 51.37 € (77,055원)  싼거 같아 마구 시켰더니 총액이 적진 않았다.

여사장이나 직원들도 친절하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밥을 배불리 먹이자 모두 행복해져서 수다가 끊이질 않는데 나는 숙소 걱정 때문에 슬슬 일어나야 했다

나가보니 앞차가 너무 바짝 붙여 몇번 앞뒤로 움직인 후에 가족들을 태우고 시내를 벗어났다

마드리드에서 밥집 하나는 건졌다고 모두 웃었다  10: 30

 

 

 

한밤중 외곽 고속도로는, 과속으로 달리는 차와 정처없는 초행길로 위험천만했다.

네비에서 아파트먼트 호텔을 발견하고 열심히 찾아갔는데... 도시외곽 공장지대 주유소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꺼져버렸다

 

그 옆 블록에 IBIS budget Vallecas 가 보였다

5명이라니 방을 2인,2인,1인 이렇게 3개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당혹해 하자 꼬맹이가 있음 2층 보조침대를 쓸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방 두개 조식포함 80.5 €  2박이면 161 € (241,500원).  1 € 는 깎자고 했더니 여기는 마진을 없앤 저렴한 곳이라서 안된다고 단칼에 잘랐다. 싸긴 싸다

주차를 물어보니 안쪽 주차장에 댈수 있는데 별도로 하루 6 € 씩이라는 거다. 그럼 길가에 세워도 되냐니까 그건 무료라고 한다. 직접 차를 가르치며 괜찮냐고 물었다. 교차로랑 가까우면 경찰이 단속할수 있으니 안쪽으로 대라고 했다,

여권 사본은 안되고 원본 달라고 해서 차를 더 들여 주차하고 짐을 챙겨 들어왔다, 애들에게 차문 잠그고 오라 했더니 네비까지 완벽하게 떼어왔다,

가족들은 로비에서 계속 기다리고, 내가 여권 5개를 꺼내 주자 꼬맹이는 여권이 없는건데 각자 이렇게 발급되면 애가 아니라고 했다. 급당황해서 상희거 여권을 펼쳐 보여주자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99년생이면 16세인데 꼬맹이 기준은 12세라고 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방을 3개 써야 하는 상황이다. ' 우리는 3개 못 쓴다. 좀 봐주라 ' 고 두 손을 붙이고 통사정을 했다.

그 남자도 영어로 알았다고 말하는데 우리를 도와주려는 맘은 있는거 같았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상희 여권을 슬그머니 집어 가방에 넣었다.

그걸 보고 그 직원이 환히 웃으며 " OK ! "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것을 !

 

애들이 기다리다 지루한지 서성이길래 또 괜히 트집 잡힐까봐 자리에 가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 이후 여기저기 싸인해라. 카드 결재는 원화냐 유로냐, 방 키 발급, 금연여부, 애들의 주 관심사인 Wi-Fi, 엘리베이터 사용법까지 ...

뭔 수속이 그리 오래 걸리는지. 입이 바짝바짝 탔다

 

 

다 끝내고 여자방에 모여 아까 상황을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 직원이 노크를 하고 나타났다

또 뭐가 잘못됐나 ?

남자가 내 배낭을 들어보인다. 가장 중요한 가방을 프런트에 놓고 올 정도로 정신이 나갔었나보다

 

방은 횡해서 헤어드라이기, 냉장고, 비누도 없고, 수건은 달랑 두장.

반면 TV나 2층 침대, 샤워시설같이 정작 필요한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어제 호스텔보다 훨씬 싸고 실용적이고 깨끗하다.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ACCOR 그룹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콘센트가 하나라서 내가 가져간 멀티콘셋을 요긴하게 썼다,

 

 

오늘 여행기를 쓰다가 끈적거리고 피곤해서 샤워하고 나와 잠들어 버렸다 12:00

 

살짝 깨서 충전기와 스텐드 정리하고 다시 잠들었다  3:30

 

또 깨서 여행기 마저 정리하고 어제 일을 돌아봤다.

' 가장 힘든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앞으로의 여행도 무사히 잘 끝나는 운명이구나 ' 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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