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2. 01:00ㆍSpain 2013
" 아빠, 여기 컵라면 줘 ? "
통로너머 경재가 물어본다. 모른다고 했더니 애들끼리 컵라면이 영어로 뭔지 심각하게 토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12시 넘었다고 현주는 잠이 들어버렸는데 승무원이 메뉴판을 주고 간다.
케밥과 비빔밥이라...있다가, 각자 다른 메뉴로 달라는게 영어로 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 연습했건만 정작 받은 밥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 메뉴다
짠 닭고기와 동남아쌀, 참기름과 고추장...이건 비빔밥도, 케밥도 아닌 개밥이다,
아까 라운지에서 먹은 컵라면이 뱃속에서 우동 되어, 첫 기내식을 남겼다.
내가 개밥을 야단치는 사이,
자다 일어난 현주는 조용히 제 몫을 다 비우고 아무 번뇌없는 표정으로 날 신기한듯 처다봤다 1:00
그 이후, 스튜어디스들도 얼른 할일 하고 자려는지
생수 한병씩 앵기고 말린 살구, 견과류 한봉지씩 후다닥 던져주고
불을 꺼 버렸다
꾸겨져 자다가 깼다.
창밖으로 몽고 하늘에 큰곰이 선명하다. 카메라를 아무리 세팅해도 반셔터 이상은 진전을 못하고 빨간 불만 껌뻑거린다. 사진기로 찍을 수 없는 설레임, 희망, 사랑...목록에 북두칠성을 넣어놨다.
이 시간까지 은재 짱이는 열심히 영화를 보고 있다.
저러다 시차적응에 실패할텐데...걱정 하다가 ' 그래, 니들 젊다' 하고 눈 마주칠 때 웃어주었다 3:40
살아있는 인간이 접히고 꾸겨질 수 있는 극한의 상태가 10시간째.
비몽사몽이지만 해가 뜨면 몸이라도 깨어날텐데 비행기는 계속 어둠에 갇혀 지구랑 돌고 있다
빽빽한 닭장에 갑자기 불이 켜지고
또 식판이 불쑥 들어온다
승무원들은 일자눈썹 그대로 무표정하게 주문을 받고는, 안주고 (커피에 Milk)
묻지도 않고 가져간다 (탁자위 물컵)
수저는 갓 찍어낸 철판이고 플라스틱 컵은 테두리가 거칠다.
대한항공의 기내품이 얼마나 고급이었는지 이제야 알거 같다 4:00
물티슈를 뜯어 손을 씻었다가 향이 너무 진해 이내 후회했다
터키 식당이나 버스에서 손에 뿌려주던 바로 그 싸구려 오데코롱(eau de cologne) 냄새다.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며 토할 것처럼 울렁거린다.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가슴을 몇번 치며 구역질을 참아냈다. 승무원에게 콜라를 청했다. 비록 미적지근했지만 훌륭한 소화제다.
뭔가 허전하고 아까 손이 자유로웠던 생각이 들더니...지팡이가 없다 !
어디에 놓고 왔을까 ...식수대에 놓고 온 것이 분명한거 같다
재밌는 얘기를 해줄 욕심에 스틱은 거기 놓고 이야기만 가져온 것이다. 세상에 꽁짜는 없군
평소 쓰지도 않던 스틱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지는데 옆에서 현주가 기어이 '바보' 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래도 싼거 집어온게 다행이군... 5:00
이스탄불의 야경은 귀엽다
빨간 등을 밝힌 보스포러스 대교와 파란 불을 늘어트린 술탄 마흐멧 대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에, 반짝이는 우리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기분에 도취되어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좌로 우로 비틀거리더니 180도 급선회하며 바다 위로 물수제비를 뜬다
방금전까지 낭만적이던 바다는 공포스럽게만 보였다. 이대로 추락하면 새벽에 구조선이 빨리 올랑가 ...
애들을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짱이가 치통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고 은재는 엄마,아빠 대신에 동생 돌보느라 힘들다고 투덜댔다.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비상약이 없다고 내리자마자 병원가라는 소리만 한다.
가까스로 착륙은 했는데 준비된 게이트가 없어 활주로에 시동걸고 20분째 서 있다
새벽은 밝아오는데 눈 앞은 깜깜하다 5:47
활주로 한복판에 내려 버스타고 청사로 이동
짱이 표정이 어둡다
그 와중에 몰카 찍다가 짱이에게 카메라 압수 당할뻔.
많은 사람들이 뛰어가고 이리저리 밀리느라 어디가 입국인지 환승인지 정신이 멍하다.
아무 줄이나 서서 느리게 들어갔다. 직원이 표 검사하며 통과시키는거 보니 맞나보다.
수화물검사 끝나고 또 한참을 기다렸다. 바르셀로나행 게이트가 안 정해졌다
한 놈이 내 가방을 뒤지다 딱 걸렸다
어린 시끼가 벌써부터...뒤진다 !
203 gate 로 가라고 모니터에 떴다.
203 gate 대합실 문이 잠겨 있어 통로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짱이는 이가 다시 아파서 누워 낑낑대고
약좀 구해오라고 큰 애들을 보냈는데 소득없이 돌아왔다. 이건 전혀 예상 못한 돌발상황이다 7:00
승객들은 이미 복도를 가득 매워 서 있는데, 공항직원은 늦게늦게 나타나 대합실 문을 열었다
은재가 자기도 전에 비행기에서 치통이 있었는데
그 원리가 " 기압차로 이빨과 잇몸사이가 벌어져서 ..$%&@# 아니냐 " 고 묻길래, 맞다고 대충 둘러댔더니
기분이 업되어 자기가 천재라고 기고만장했다
포즈를 보니 여행 끝인듯
스페인행 비행기는 아담한데
실내는 좀 더 고급스러웠고 동양인은 우리뿐이다.
경재는 누나가 영어를 잘 해서 놀랐다능 8:40
이륙할때 기압차로 짱이 치통이 재발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먹고
빈 자리에 길게 누워 잘만 자더라.
비행기는 나무와 흙과 간간히 호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자연을 날라가는데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산위에서 요구르트 마시는 불가리아
죽으라고 싸워대는 세르비아 보스니아
다음에 가보리라 찍어놓은 크로아티아가 서로 줄 긋고 니땅 내땅 하고 산다는게 신기했다.
창문에 머리박고 신비로운 아드리아 해안선에 넋을 잃었다
산맥을 따라 건설된 해안도로를 달려 스플리트(Split) 를 찾아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를 지나자마자
<클릭하면 확대됨>
경재랑 나랑 곯아 떨어져 프랑스 꼬뜨다쥐르에 다다랐을때쯤 깼다.
모나코와 니스 상공에서 옛날 지나갔던 길을 찾아보는데 잠시후 착륙한다는 기장의 방송이 나왔다 10:45
비행기가 착륙한지 한참이 지나도 승객들을 내려주지 않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계단게이트다.
아무리 그래도 짐과 사람이 함께 활주로에 팽겨쳐 지는건 좀 아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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