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4. 14:30ㆍ국내여행
속초에서 양양가는 해안도로는 정작 봐야 할 바다보다
팔을 통째로 문신하고 뒤에 여자 태운 폭주 오토바이 3대가 더 눈길을 끌었다.
이미 어깨뼈는 말라 비틀어진 아저씨 !
문신토시 하고 떼로 신호 어기고 다니면 조아 ?
▣ ▣ ▣
고속도로처럼 잘 닦인 한계령행 도로에서 좀 밟으려니「구룡령 옛길」조그만 안내판이 옆으로 차 빼라고 알려준다
구룡령은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내륙 홍천으로 가는 고갯길로
동해안의 해산물과 내륙의 농산물이 오가는 한국의 차마고도였다.
이웃인 한계령 대관령은 감기만 걸려도 온 나라가 호들갑인데 구룡령은 벌써 몇번은 얼어죽은 진정한 死道가 되버렸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꼴딱꼴딱 숨넘기며 넘고
교통통제가 전혀 필요없어 자전거 Hill Climb 경주가 가끔 열리고
시간과 기름이 남아도는 스포츠카의 배기음만 가끔 계곡 깊숙히 울릴 뿐이다.
구룡령길로 들어서 인적없는 산길을 10여분쯤 달리는데 우측에 초현대식 통유리 건물이 보였다
양양 에너지월드
아까부터 깨끗한 화장실 노래를 부르던 동승자를 내려주고 그 사이 네비를 찍는다.
<인용사진>
돌아올때는 방광의 여유분만큼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진 현주
" 화장실이 엄청 럭셔리해, 따뜻한 비데까지 있어 ! "
인적이라곤 데스크에 화사한 여직원 한명뿐인 초고가 화장실을 이 오지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데 난쟁이 돌위에 굵게 '38선 ' 이라고 쓰여있다.
내일이 6.25 지.
거침없이 38선을 넘어 남하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건
산을 요리조리 피해 계곡으로만 달리던 길이 드디어 경사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엑셀을 깊이 밟아 커브길을 오르는데 저편에 다정하게 걷는 구부러진 두 등이 보였다.
우리 차 소리에 할아버지가 두 손을 황급히 저으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반동으로 10 여 m 를 더 올라가서 선 우리 차를 향해 할아버지가 괴력을 발휘해 순식간에 따라 왔다,
- 요~까지만 태워줘요
- 저희는 횡성가는데, 가는 길이 같으세요 ?
- 네, 서석에서 내려주면 되요
- 타세요
뒷자리에 올라탄 할아버지가 차 문을 꽝 닫는다.
늦게 올라온 할머니가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렵게 한마디 한다
- 지~도 태워 줄래요 ?
문옆에서 자리를 안 비켜주는 할아버지에게 안 쪽으로 들어가시라고 하고 할머니를 태웠다
분위기가 이상해 현주가 물었다
- 왜 할머니랑 같이 안 타세요 ?
두 분이 동시에 대답했다
- 모르는 사람이예요.
허걱 ! 남녀관계는 하도 복잡해서 알려고 하지 말아야지 원.
다행히 할머니네 집은 산모퉁이를 돌자 바로 였다.
내려드리고 여쭤보니 조금전 길위에서 만난 생판 모르는 남과 여 사이였다능 ...
벌개진 얼굴에 술냄새를 풍기는 할아버지를 탐색하려고 몇 마디 물어보았다,
나이가 칠십하나인데 최근에 정신이 오락가락해 보건소에서 치매약을 타 먹는 지경까지 이르자
그 동안 살아온게 허무하고 후회되어 바다를 보러 어제 아침에 혼자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후회되셨냐고 현주가 물으니
못 배우고 못 놀러다닌거, 자전거도 못 배웠고 국민학교만 졸업했다고. 바다도 첨 봤다고 하셨다.
바다를 보니 어떠셨어요 ?
두 손으로 가슴을 펼쳐보이는 시늉을 하며 ' 답답한게 다 시원했어요 ' 한다
집에 가셔서 할머니에게 바다가 어떻게 생겼더라고 잘 설명해 주세요
용이 구불구불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구룡령답게 숫자를 세기에도 숨찬 커브길의 연속이다.
나는 할아버지 치매가 발동해 당신 집을 못찾으면 어쩌나, 파출소를 찾아가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현주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꼬리 아홉개 능구렁이로 변해서 뒤에서 목을 조르는 상상을 했다능...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들지 않게 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한참 시펴도 오르막길이 끝이 없다
급기야 백내장 눈깔처럼 시야가 뿌여지더니 안개속으로 구름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현주랑 걱정, 두려움으로 말도 못하고 ... 안개비에 할아버지 치매가 발작한다
- 우리 동네에 삼성대리점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는 모습을 누가 봤대요....
그 이후 실종됐는데 1달후 등산객이 발견했대요...
저 계곡아래로 차랑 굴러 죽어 있더래요...
가뜩이나 으스스해 죽겠는데 정신차리라고 노인 멱살잡고 흔들수도 없고...
가시거리 3m 에 맞춰 차 속도도 초속 3 m
갑자기 열린 창밖으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니 이 산속에 뭔 사람들 소리야 ?
이 산을 넘다 죽은 혼령들 아녀 ?
이건 분명 환청일거야
짙은 안개속을 더 들어갈수록 그 소리는 점점 뚜렷해지는데 한 두사람 목소리가 아니였다
거기가 바로 구룡령의 정상이었다.
에코브릿지 아래에 관광버스가 두어대 서 있고 사람들이 차 뒤에서 늦은 점심을 까 드시며 떠들고 있었다,
아~ 정말 시껍했네.
죽은 혼령은 아니고 배고픈 행락객들이였다능...
고개를 넘자마자[백두대간구룡령]비 아래
마을 아낙 몇이 칡차와 커피를 파는 원시형태의 휴계소다.
할아버지가 커피를 사주신다고 해서, 됐다고 있다가 도착해 음료수나 사 달라고 하고 내쳐 달린다
맑은 날이면 설악산 공룡능선이 보인다해서 기대하고 올라왔으나 그런 요행은 역시 따라주지 않았고
다행스러운건 고개를 넘어 내려오는 영서지방은 안개가 점점 걷히고 날이 좋아졌다.
안성아래 망고강산이나 대청호 윗산에 모여 와인딩을 즐기던 오토바이들이 단속을 피해 여기 다 모여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들이 이혼해서 몇년째 맡아 키우는 손주를 누가 뺏어갈까봐 걱정할 정도로 잘 컸다고
밭농사를 지으시냐고 물으니 오천평 논농사를 혼자 짓는다고 , 농기계좀 사려고 하면 아들이 사지 말라고 한다고
농사져서 자식들에게 다 올려보낸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식 서운하다는 얘기는 하나도 안 비치신다.
팔년전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 오늘 아침에 뭐 드셨어요 ?
아직도 맨탈이 의심스러워 진찰겸 여쭤보니 역시 대답이 곧바로 안 나온다.
- ... 순대국요
터미널 근방에서 순대국 사먹었단 아야기를 정확히 기억해 말씀하셨다,
평지로 내려서자 속도를 더 내 본다.
할아버지가 집까지 걸어갈 거리는 족히 70 km 가 넘는다.
실크로드 대상이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가 20~30 km 니 할아버지가 이 고개를 넘어오려면 족히 3일은 걸릴 거리다.
어떻게 오실려고 했냐고 핀잔했더니 길위에서 자며 쉬며 오려고 했다고...
인생은 말이지.
미리 재고 걱정하면 아예 시작도 못해.
할아버지 봐봐 그 연세에 무모하게 발걸음을 떼니 이렇게 오게 되잖아 - 현주 -
드디어 거의 두시간만에 서석면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턴 할아버지가 길을 더 잘 안다
마을 입구에 국수집이 보이자 국수먹고 가자고 하는데 우린 아직 아까 먹은 순대가 창자에 그대로다,
여기서 내린다고 어느 학교앞에 차를 세워달라고 하신다,
우리는 좌회전해서 횡성으로 빠져야 하지만 할아버지 집은 홍천쪽으로 더 가야 해서 모셔다 드리려고 했었다,
할아버지가 잠깐 기다리라고 손짓을 하며 급히 길을 건너 오던 길을 되돌아 가신다.
뭐가 있길래...고개를 빼보니 골목길에 손바닥만한 담배 간판만 삐쭉 나와있다.
몇분을 기다려도 안 오셔서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며 현주랑
" 아~ 촌부에게 이렇게 낚이는건가 ? " 쓴 웃음으로 넘기려는데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엉거주춤 뛰어오는 할아버지가 백미러로 들어왔다.
길위에서 위험하니 얼른 타시라고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해도 여기선 내가 갈수 있다고 극구 사양하셔서,
검은 봉투에서 캔 하나를 꺼내 드리고 헤어졌다.
서석면에 장이 섰다, 현주가 장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읍내에 차를 세웠다,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쥐어주신 검은 비닐봉투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개또라이 댓병 하나, 솔눈캔 두개, 복불복 쥬스 두개, 옛과자 한봉지,
가계안에 뛰어들어가 집히는대로 부리나케 넣는 모습을 상상하니 맘이 짠하다.
계산은 한건가 ?
장보고 온 현주가 시장에서 할아머지를 또 봤는데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굳세게 걸어가시더라는 다행스런 소식을 전해준다.
횡성으로 오는길에 할아버지가 사주신 '맛뭐병'을 먹으며 우리가 만난 분이 구룡령 산신령일거라며 웃었다,
가방끈은 짧지만 칠십 평생을 사신 분이 우리에게 딱 한마디를 당부하셨다
" 재밌게 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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