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6. 22:00ㆍ국내여행
유명하다 한들 제기 한 접시위에 반찬 조금씩 담아내고 맑은 무우소고기국뿐인 헛제사밥을
안동인이 얼마나 즐겨먹을 것이며
만원짜리 두장이면 떡을 치던게 바로 몇년전인데 닭한마리 원가 몇푼 한다고 3만원에 육박해버린
안동찜닭도 이젠 안동인에게 부르조아 음식이 되버렸으니
진정 안동사람들이 맛집이라고 숨겨놓고 들락거리는 곳을 찾는다고 찾은게 ...
청국장과 구워나오는 삼겹살이 안동에서의 첫 메뉴로 낙점되었다.
화질 구린 구식TV 옆에
갓 한글을 떼인 학생이 쓴 것처럼 보이는 첨 듣는 이름의 차가 미적지근한 채로 놓여있다.
종이컵에 반 정도 따라 놓은걸 마셔보고 아예 한컵 가득 따라서 연거푸 마셨다.
만약 무가당이라면 이 차는 진짜 대박 달콤하다.
무거운 사카린맛도 아니고 특유의 냄새나는 꿀성분도 아닌게 Light Sweet 하다 (내가 써 놓고도 뭔말인지 ....)
산야에 잡초들이 보릿고개때 음식에 편입되어 산채(山菜)로 격상되었음을 알리는 상장들이 쪼르륵 붙어있었다
효능을 읽으려면 시력 좋은 나도 일어나야 될거 같은데 그랬다간 식당아줌마한테
" 까부니껴 ? " 한구탱이 들을거 같아, 철푸데기 앉아 고개만 돌리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식탁은 우리뿐이고
거의 다 연세가 있는 손님들이 늦은 시간임에도 계속 들고 난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쑥 부침개도 있고...비록 풀밭이긴 했지만 현주가 좋아하는 산채가 다양하다,
한구석에 들깨꽃대튀김이 보인다.
튀김옷을 안 입혀 비쥬얼은 좀 그렇지만 이게 흔치 않은 고급음식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먹어보기 힘든 -안 판께
그리고 농약을 치면 전혀 만들수 없는 -냄새 낭께
보통은 나무채 깨를 털지만 이건 하나하나 채취해 씻고 다듬는 정성이 깃든 음식이다.
한입에 통째넣고 쌉으니 입안에 들깨향이 톡톡 터진다.
껍질째 갈은건지 약간 검은 빛이 도는 손두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된장바른 삼겹살구이.
둥근석쇠아래에 솔잎을 깔아서 솔향이 베어 있다.
초토화된 밥상.
배불룩해진 윷가락들
요즘 식당들이 밑반찬을 다 사다 쓰는데 여긴 그럴수가 없는거 같다.
반찬들이 다 특별해서...
4명이 36,000 원 내고 나왔다.
연등이 흐르는 강물이 되어 바람에 살랑인다
또 다른 특산품 하회탈빵
빵을 사는 손님들에게 감식초같은걸 한잔씩 대접한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
새끼거북 등딱지만한 크기의 빵이 하나에 육백원.
물가 개념이 없는 나지만 라면 한봉지 값 같아서 좀 비싸다 싶다.
한박스에 안동하회탈춤에 등장하는 양반탈 각시탈 백정탈등 골고루 섞여있어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시내에 이름모를 공원도 산책하고
바람쐬러 나온 여학생들이 연등 아래서 ' 니껴 ! " 형 사투리로 열심히 수다를 떠는 소리에 귀 쫑긋하고
연등사이를 유유히 산책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데
무게도 형태도 쌀 한가마니만한 아줌마가 술 처드시고 비틀거리다가 하이힐 뒤축으로
쓰레빠 찍찍 끌고가는 경재 발을 밟았다능...
경재가 낮은 저음으로 짧게 마무리했다.
슈퍼옆에 인형뽑기
밝은 형광등아래 진짜 귀여운 봉제인형이 우릴 애처로이 처다보고 있다.
' 날 구해주삼, 단돈 500원에 ! '
10년전 아니 5년전만해도 가장의 위엄이 있어 식구들 아무도 조이스틱에 손도 못댔는데
이젠 나한테 묻지도 않고 현주가 경재에게 얼른 돈부터 쑤셔넣으라고 재촉이다.
난 그저 옆에서 본전이라도 하길 간절히 기도할뿐...
" 경재야, 홧팅 ! "
비록 이천원으로 인형을 구해내긴 역부족이었지만
가족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수 있어서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백원이라도 더 넣을까봐 '가자 ~'고 외쳤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은 경북에 3대 빵집이라는 맘모스 본점이다
현주가 여기서 맛있는 빵이 뭐냐고 묻길래
식빵같이 생긴 점원아가씨에게 뭐가 유명하냐고 물었다가 뻘쭘해졌다.
" 맘모스빵이요 "
이건 뭔 빵인지
씹다밷은 대추를 하나씩 얹고 있어서 살 맘이 전혀 안 생겼다.
상가 앞으로 공사중이라 하얀 천을 깔아놨는데
흰눈이 내린것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여긴 인부들도 설치예술가임에 틀림없다
한의원도 세련됐다,
경재가 차디찬 하드 두개를 들고 와 하나 고르라고 한다
생긴건 어렸을때 먹던 아이스께끼인데,
요즘은 잘한답시고 우유를 넣어 고급스럽게 만들더니 더 맛이 없다
◈ ◈ ◈
숙소로 들어오는 길
안막재를 넘자 가로등일랑사리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산길이다,
차 안에서 무서운 귀신예기를 하니 속도가 절로 붙는다
경재가 차 안에서 아까 먹은 청국장 냄새가 난다고 킁킁대는데
현주가 " 아빠한테 나는 땀냄새 " 라고 일르는 바람에 창문을 열고 달려야 했다.
더 무서웠다.
위 사진은 일박에 10만원 짜리라는 '군자고와' 숙소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뒷처다보며 아궁이가 시커먼 우리 방을 찾아 가는데
앞서 간 현주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불 켜놓은 방안엔 흰눈처럼 깨끗한 이부자리 4채가 깔려 있는 것이었다.
싸구려 민박이 갑자기 일본의 고급 료칸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닫이 문앞엔 모기들어오지 말라고 방충망까지 쳐 놓았다,
비록 한 사람씩 들어올 때마다 방 불을 끄고 방충망을 열고 들어와야 했지만 할머니의 배려가 느껴졌다
요 아래로 손을 찔러 넣자 구들방의 따땃한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가슴까지 훈훈해졌다,
비로소 방을 찬찬히 둘러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착각이 들었다.
길다란 막대온도계
손떼묻은 화투
문고리 겸용 핀셋
문풍지 바른 창문
내가 감탄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자 짱이가 초를 친다.
" 아빠. 저 온도계 우리 학교에도 있어 ! "
집 구조는 우리가 서쪽 끝방이고
바로 옆 빈방, 그리고 할머니 방, 그 다음이 부엌, 맨 끝이 씻는 곳이었다.
누워 TV 보시는 할머니 눈치봐가며 맨끝으로 씻으러 들어갔는데...정말 지저분했다
손바닥만한 공간에 세탁실,화장실,샤워실,창고를 다 때려 넣은 꼴이었다,
할머니 손끝에 달려있는 온수보일러 스위치.
우리들이 빨리 끝내야 할머니가 끄고 주무실수 있다는 생각에 한사람씩 대충대충 !
온수 쓸때마다 점화작동하는 보일러 소리가 그렇게 신경쓰일수가 없었다.
' 이건 뭐. 제 돈 내고도 눈치봐야 하니 ! '
하긴 요즘 세상이 개판된건 남 눈치 안보고 지 꼴리는대로 하는 놈들이 많아서 그렇긴하지 ...
방불을 꺼도 보고
이불에 누워서도 보고
놀러왔다고 아예 대놓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짱이.
경재는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몸은 안동에 있는데 맘은 어디를 헤매고 다니는지...
모기장을 뚫고 찬 밤바람은 들치는데
양 발을 군불땐 구들장안에 밀어넣으니
두한족열(頭寒足熱) 이라.
잠이 ~~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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