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 8. 21:00ㆍItaly 2005
지도상의 표시
☆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말 그대로 정처없이 달렸다.
깜깜한 시공간을 뚫고 지나가면 발치 아래로 수 많은 별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나타났다 사라지는게 흡사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처럼 산을 깎거나 터널을 만들지 않고 아예
높게 교량을 세워 그 위에 도로를 만들어서 그런가보다
?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른편의 큰 도시를 외면하고 좌회전해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랐다
버스한대가 우리 앞길을 비춰주며 가고 있다. 갑자기 아기공룡 둘리의 우주속을 헤매는
귀신버스가 생각나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계속 따라가야했다
결국 버스는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아쉽지 않았다.
! 인적없고 첨 가는 시골길 끝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모든 집들 불이 꺼져있고 거리엔 아무도 없이 휑한 바람만 불었다
마을 한가운데 길로 계속 차를 몰지만 이내 동네 끝이다. 아마 한여름에만 반짝하는 해안가
피서동네인거 같다. 가뜩이나 무서운데 더 겁에 질려 뒤도 안 돌아보고 얼른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 마을 이름을 찾았다. villapiana Scalo 였다. 2016.8.25>
' 북쪽으로 난 해안도로는 4차선 왕복이지만 왕래하는 차들이 하나도 없다,
뻘쭘하게 서 있는 큰 철기둥위에 차들이 꼬리를 무는 그림의 도로표지판이 붙어있다
1월 한겨울 이 밤시간에 우짜라고 ~ 썩소를 날리며 지나갔는데 한 5분쯤 운전하고 가니
자동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눈앞에서 긴 구렁이처럼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몇 십분을 뒤꽁무니를 따라가며 우째 이런일이 ~ 놀랄뿐이다.
。 리벨로를 떠난지 거의 4시간만에 타란토에 도착했다, 도시입구부터 큰 공장들이 바다쪽엔
거대한 크레인들이 몇개씩 도열해 있었고 도로 램프와 수많은 차들로 낯선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에 오아시스같았다
시내를 몇바퀴 돌다가 눈에 띄는 Hotel Plaza ★★★ 에 여장을 풀고 거리 산책 나왔다
전형적인 유럽풍 건물과 차량 통행을 막고 깨끗한 대리석을 깐 광장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서늘한 밤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야시장이 열렸구나 ~!
햄을 구워파는 아저씨가 연신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이 줄서서 시식을 하고 있는데 줄이 길어 결국 포기
한국에 있는 막내 짱이 옷도 고르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피제리아에 들어갔는데 주인인듯 보이는 젊은 총각들이 엄청 친절했다
호텔 건물이 고층이라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있는데
손으로 1차 문을 열어야 하고
두 사람이 트렁크하나 들고 타면 꽉 차게 좁아터지고
촌스런 둥근 단추버튼 스타일에
고장나서 멈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덜컹거리는...
다른건 몰라도 엘리베이터 수준만큼은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훨씬 앞선듯 !
커튼을 젖히니 호텔 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 큰 건물들로 둘러쌓인 그 뒷모습은 음침하고 괴기스러웠다
전면만 보면 화려하고 고급스러워보이는데 뒷모습이 이러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투숙객 한명도 안 보이고 무서운 엘리베이터에 썰렁한 객실과 음침한 창밖풍경...잠이나 일찍 자두는게 남는거다.
인구 21만명, 이탈리아에서 16위 도시. Taranto (타란토)
타란토에 대하여 흩어져있는 자료들을 아래에 시대순으로 모아 보았다
살렌티나반도 아랫부분에 있다. BC 8세기에 그리스인(人)이 처음 건설하여 타렌툼(Tarentum)이라고 하였다. 그 후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마그나그라이키아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기원전 283년, 이탈리아 남부엔 타렌툼(이하 타란토) 라는 도시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중남부를 제패한 로마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고 남부 도시들을 대표하는 타란토 역시 로마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타란토 앞바다에 10척의 로마 선박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 동안 로마도 나폴리 일대를 접수하게 되면서부터 소규모나마 함대를 갖게 되었다. 그 함대 가운데 10척이 태풍에 쫓겨다니다 타란토 항구로 들어온 것이다. 타란토와 로마 사이에는 이미 서로의 세력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협약이 맺어져 있었다. 하지만 로마를 시기하고 있던 타란토인들은 이 함대의 피난을 협약 위반으로 선언하고 항구에 들어온 이유조차 묻지 않고 당장 무력행사에 들어갔다. 통상 민족인 타란토에게 로마해군은 해상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의 공격을 받고 다섯척은 당장 침몰했고, 나머지 다섯척은 간신히 달아날 수 있었다. 이에 로마는 배들이 항구에 피난한 것은 침략이 아니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타란토는 손해배상 교섭에 응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쫓아버렸다. 그들은 로마 사절단에게 그리스어 발음이 엉터리라고 비웃으며 당장 나가라고 했던 것이다.외교상으로 창피를 당한 로마는 분노로 들끓었고 당장 전쟁을 결의했다.드디어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던 그리스인과의 전쟁이었다.타란토는 이탈리아 반도의 최고의 해상국이자 경제대국이었다. 로마도 처음엔 이 막강한 타란토를 두려워하여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국의 함대를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당시 로마는 삼니움족과의 전쟁을 겨우 마무리하고 확장된 영토를 다지는 시기였다. 특히 북부에서 아직 저항하고 있는 에트루리아인 때문에 로마는 골치를 앓고 있었다. 로마는 막상 전쟁을 결의하기는 했지만 협상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그런데 타란토 쪽에서는 로마의 결의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파르타인의 피를 이어받은 타란토인은 불가사의하게도 직접 싸우는 것을 싫어했다. 때문에 그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용병으로 하여금 자국을 방위토록 하였다. 너무 풍족하다보면 귀찮거나 위험한 것은 남에게 맡기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기도 하다. 타란토는 습관적으로 자기들을 위해 대신 싸워줄 용병들의 차트를 꺼냈다.이것은 자위능력이 없는 민족의 숙명이지만, 타란토는 지금까지 그런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났고 또 그럴 수 있는 경제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타란토가 용병으로 점찍은 것은 그리스 북부에 있는 에페이로스 왕국의 피로스였다.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이름 높은 왕을 거액의 연봉으로 불러들였으니 타란토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타란토는 피로스에게 보병 35만과 기병 2만을 추가로 지원해주겠다고까지 하였다. 이 소식에 로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총 37만의 병력이 몰려다면 로마는 뼈도 못추리게 된다. 게다가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피로스가 지휘한다면 그 전투력은 배가 된다. 로마에서는 벌써 보따리를 싸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BC 272년 타란토는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고 5∼10세기에는 지중해 교통의 요지로서 동(東)고트· 비잔틴·랑고바르드·사라센 등의 지배를 받았다.
1063년 이후 나폴리 왕국령이 되었으며, 이탈리아 왕국의 지배하에서는 중요한 군항으로서 아프리카 진출기지가 되었다.
1940년 11월 11일 밤 남부 군항 타란토로부터 270 km 쯤 떨어진 영국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 호에서 어뢰로 배를 공격하는 비행기 ' Swordfish' 21대가 출격. 타란토 항을 공습한다. 이탈리아 전함 3척 순양함 2척 대파이 대파되었으나 영국군은 비행기 두대만 잃는것으로 대승을 거둔다, 해전사에서 항공모함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례로 인용되는데 일본은 타란토 전투를 연구한 뒤 이듬해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군항으로서의 중요성이 줄어들었으나 1960년대에 남부 경제개발의 거점도시가 되어 국가자본 이리(IRI)에 의해서 이탈리아 최대 생산 규모의 제철공장이 건설되었으며 관련 공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 밖에 또한 병기·조선·화학·벽돌·식품 공장등이 있다.
유럽에서 방출되고 있는 전체 diossina 중 35%가 이태리 Taranto 시에서 나오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물질로 인하여 Taranto 시는 암의 증가에 대한 공포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며칠 전 10세된 어린아이로부터 '골초흡연과 같은 현상'이 발견된 바가 있다. 현재 이태리북부지역인 Friuli Venezia Giulia 주에는 diossina 허용치를 유럽기준에 맞추고 있는 반면 Taranto시는 지난번 Berlusconi 정부가 마련한 법안에 따르고 있는데 이 기준치는 유럽기준치에 비해 1,000 배나 넘는 허용치를 두고 있다.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별채로 연결된 통로를 지나 너른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썰렁하다
아침이라고 차려진건 사진속에 보이는 그게 다다. 딱딱한 과자랑 패스츄리 빵, 티백 몇개...
우리 둘뿐인 휭한 그 곳에서 오래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건물 뒤에 비상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아기자기한 디테일이나 인테리어에 치중하기보다 거대한 외관과 콘크리트 매스로 엄숙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근대적인 건축이었다.
아침에 차를 꺼내려 호텔블럭을 돌아 뒤편 주차장으로 갔다-주차비는 추가 부담했다-몇 가구가 사는 건물의 각 집 우편함에 그림이 붙어있는데 주민들 삶의 모습과 익살맞게 매칭시켰다.
남미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명화가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ㅋㅋ
해안가 조그만 공원.
비를 피하는 회랑아래에 성모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깨끗하게 정성으로 보살펴지고 있었다,
그 보답으로 성모님은 오늘도 바다에 나가는 어부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넓은 부둣가에 몇명의 어부만이 어망을 손질하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탈리아 남부.
아브루초와 몰리세 지역은 내륙 산약지역이다보니 인구밀도가 매우 낮고 야생의 자연이 대부분이다.
아펜니노 산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브루초, 가파른 급경사를 올라가면 오래되고 허름한 모습의 언덕마을들이 높은 산허리에 매달려 있다,
몰리세의 지형은 그보다는 덜 드라마틱하나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남부인 폴리아는 평지와 옥토로 이루어진 부유한 지역이다.이탈리아 최대의 올리브유와 포도주 생산지에다 활발한 상공업의 중심지가 바로 Taranto 다
우리나라에선 아예 없어진 삼륜차.
페라리, 람브로, 마세라..등 자동차의 High-End 에 있는 나라에 아직도 저런 차가 굴러다닌다.
다 좋다...근데 저 삼륜차...좌우회전시 엄청 위험하다.
H 글자부위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블럭.
= 글자부위는 아침 햇살을 즐겼던 바닷가
Taranto 를 떠나 Alberobello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순결한 아이보리색 대리석으로 쌓아올린 성당
작지만 경건하면서도 럭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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