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티에의 상트페테르부르크 "

2020. 1. 13. 14:22독서







이번 여름 3주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내기로 했다.  도서관 책을 뒤지다가 발견한 명작.


19세기의 프랑스 시인이자 작가, 예술평론가였던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1872)가 1858년 9월에 러시아를 여행하고 1867년에 발간한『러시아기행 Voyage en russie』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부분만 모아 번역한 책이다, 그 당시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함부르크,뤼베크에 도착한 다음 배를 타고 3일동안 발트해를 항해하여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어쨋든 전체적으로 특색이 없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 농부들은 아립인들이 뷔르누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양가죽 외투를 좋아해서, 한번 걸치면 벗을 줄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텐트이자 잠자리이기도 하다. 밤이나 낮이나, 구석자리나 벤치 위, 난로 옆에서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내 기름때가 끼어서 번들번들 윤이 나게 되고, 스페인 화가들이 피카레스크풍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역청 빛을 띠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내려야 할 곳의 이름을 프랑스어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부에게 러시아어로 번역해 주는 것이 문제였다. 영업용 마차의 마부들이 구사하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어떤 사투리도 아니어서 일종의 사비르어, 즉『평민귀족』에 나오는 의식에서 가짜 터키인들이 쓰는 요상한 말과 아주 비슷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난처해하는 우리를 보았다


얼핏 봐서는 절대 풀릴 수 없는 혼잡 상태가 마술처럼 풀리고, 제각각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손수레 하나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쉽사리 바퀴를 들이민다


오래 꿈꾸어 오던 미지의 도시에서 처음으로 외출하여 이리저리 거리를 거니는 것은 여행자가 맛볼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즐거움들 중의 하나이고, 여행자에게 여정의 피로에 대한 대가를 갑절로 치러 주는 일이다. 밤의 신비와 환상적인 부풀림, 불빛이 뒤섞인 어둠 덕분에, 그런 즐거움이 밤에 훨씬 더 커진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멋 부린 표현이 될까 ?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어떤 하나의 의지에 의해 단숨에 창조된 도시 하나가. 완성된 모습으로 늪에서 빠져나와 늪을 뒤덮은 것이다. 마치 무대장치 담당자의 신호에 따라 연극 무대가 단숨에 만들어지듯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열주를 모방한 반원형 주랑 현관을 드넓은 광장 위에 우아한 곡선으로 드러내고 있는 카잔 성당은 예외지만, 그 모든 신의 거처들은 인간의 집들과 친근하게 서로 뒤섞여 있다. 특별한 건축 양식 때문에 이내 눈에 띄는 그 사원들의 전면은 아주 조금만 대로에서 물러나 있어서, 행인들의 경건한 마음에 숨김없이 스스로를 내맡긴다


제발, 잠시만 기다려 주시라. 이제 곧 우리의 시선 속에 인물들이 등장하여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불행하게도 화가와는 달리, 작가는 대상들을 순차적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다


산보객들의 유일한 목적은 구경하고, 구경거리가 되고, 약간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민족적인 특성이 사라져 간다고 느껴지면, 문명은 시골의 오지에서 옛 의상을 입은 여인을 불러와 어린아이들에게 그 기억을 각인시켜 주는 모양이다. 그럴 때, 시골 여인은 조국의 이미지가 된다.


마차가 없는 러시아인은 말이 없는 아랍인과 같다. 신분을 의심받고 메치트차닌, 즉 농노 취급을 받게 된다.


마부는 덩치가 클수록 돈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마른 몸으로 일을 시작했다가도, 살이 찌면 급여를 올려 달라고 요구한다


저만치, 건초더미 하나가 제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늙다리 말 한마리가 건초더미에 뒤덮인 채 마차를 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스름이 찾아오면서 행인들은 저녁식사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마차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망루 위로는 가스등의 점화를 예고하는 둥근 달이 떠오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하늘이 맑아진다. 그 푸른빛은 남쪽 지방의 쪽빛과는 전혀 다른데, 아주 드물고 매력적인 색감을 지닌 차갑고 강철 같은 파란빛이다.


아주 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썰매꾼의 수염은 틀림없이 새하애져 있을 것이다. 추위에 푸르스름해진 얼굴 주위에 입김이 얼어붙어 얼음 조각들로 바뀌는 바람에 족장의 수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의 뻣뻣해진 머리칼은 냉동 뱀처럼 광대뼈를 때리고, 손님의 무릎을 덮어 주는 가죽에는 무수히 많은 하얀 진주들이 점점이 뿌려져 있다


말들의 몸통 위에는 땀이 서리가 되어 얼어붙어 있다. 말들이 마치 설탕 옷을 뒤집어쓴 것 같고, 유리 반죽 같은 얼음 껍데기에 뒤덮여 인는 것 같다. 말들이 다시 출발하면 그 얇은 껍데기도 부서지고 떨어지고 녹기 시작하지만, 다음번에 멈추면 서자마자 또다시 만들어진다


몇몇 곳에는 물을 쉽게 길어 올릴 수 있도록 얼음을 잘라 놓았다. 그 수정 마루판 밑에서 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물은 바깥공기보다 따뜻하기 때문에 얼음판 사이로 끓는 주전자마냥 김을 내뿜지만,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일 뿐, 물이 미지근할 거라고 믿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삽으로 통의 바닥에서 생선들을 끌어모아 퍼덕이는 상태 그대로 갑판위에 던져 놓으면, 생선들은 두세 번 몸을 튀틀며 뒤척이다가 이내 투명한 케이스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뻣뻣이 굳어 버린다. 생선들을 적시고 있던 물기가 갑자기 얼어 버리기 때문이다.


겨울의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으며 티 하나 없는 흰 담비 가족 양탄자 위에 서 있는, 금과 동과 화강암으로 된 그 거대한 사원처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


마차 하나에 한 덩어리씩 실은 그 얼음 조각들은 영롱한 사파이어빛이 난다. 설매를 모는 사람들은 얼음 덩어리 위에 앉거나, 얼음 위에 쿠션처럼 팔꿈치를 괴고 있다. 길이 막혀서 대열이 멈출때면, 추운 지방의 말들답게, 말들은 제 앞에 있는 얼음 덩어리를 음미하듯 가볍게 깨물어 본다.


그 극지의 사람들은 마치 흰곰 같다. 그들에게 영하 12도나 15도는 완전히 봄날이어서, 오히려 더위에 숨을 헐떡거린다.


표트르 대제 동상은 흰 가발을 쓴 것처럼 서리에 덮여 있고, 청동제 말은 핀란드산 화강암 받침대 위에서 군형을 잡느라 용을 쓰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영하 8~9도)순록들이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 썰매를 끌고 난 순록 한 마리가 숨을 헐떡거리자, 사람들은 순록이 기운을 뒤찾게 몸에 눈을 뿌려 주었다


햇빛을 찾아다니며 인생을 보냈던 우리가 추위에 대한 기이한 사랑에 사로잡힌 느낌이었다.


얼음 덩어리들이 쌓여 있는 어떤 장소에서는, 특히 지평선에 진홍빛 줄무늬가 만들어지는 저녁에 푸르스름한 황금빛 하늘 가장자리에 해가 질 때면, 동화속의 궁전이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 효과가 어찌나 놀라운지, 그 광경을 그림으로 그려 놓는다면 틀림없이 거짓이라거나 사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겨울에는 선교를 철거하는데, 결빙이 되는 순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네바 강이 제2의 네프스키 대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 찬송가들 속에는 이제 그리스에서는 사라져 버린 음악의 오랜 테마들이 숱하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오만하고 호전적인 생김새, 사내다운 야생의 순수함, 날씬하고 유연하고 활력이 넘치는 신체, 의상과 어울리는 우아한 몸가짐 ! 그들이 입은 의상의 독특한 재단과 풍부한 색감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 준다 ! 소위 야만족이라 불리는 사람들만이 유일하게 옷을 제대로 입을 줄 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문명인들은 옷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모든 강한 것이 그렇듯이, 대포에는 뭔가 두렵고,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즐거운 구석이 있다. 전장에서 표호하는 대포의 울림은 축제와도 잘 어우러진다. 대포는 종이나 포가 없었기에 옛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즐거움의 요소, 즉 소음을 축제에 덧붙여 준다.


겨울이 매트리스를 깔아 놓은 길 위에서, 스키의 날은 기껏해야 다이아몬드로 유리창에 줄을 긋는 정도의 소음만을 낸다.


멋 부리기의 열정으로 달아오른 여인들은 전혀 추위를 타지 않는 모양이다.


그날의 하늘은 기온이 영하 18~20도까지 내려갈 때처럼 청명한 푸른빛이 아니었다.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청회색 빛 안개가 눈을 잔뜩 머금은 채 거대한 덮개처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마치 제 무릎을 깨물기라도 할 것처럼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양가죽 상의, 풀어진 낡은 털모자, 후줄근한 흰색 펠트 장화 차림에, 턱에는 텁수룩하고 윤기 없는 수염이 곱슬곱슬하게 자란 남자였다. 마차에 맨 세 마리 작은 말들도 몰골이 사나웠다. 곰처럼 털투성이인 험상궂은 모습에 갈기는 헝클어지고, 배 밑에는 고드름을 삐쭉삐쭉 매달고 있는 모습이 끔찍하게 더러웠다. 말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강바닥 위에 치쌓인 눈을 씹어 먹고 있었다. 첨두홍예처럼 높다랗고 줄무늬와 지그재그 무늬로 불긋불긋 색칠을 한 두가가 그나마 마구 중에서는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부품이었다. 모르긴 해도 농부가 직접 낫으로 깎아서 만든 것 같았다.


사실, 화려한 마차들의 숲에서 그 마차는 마치 흰 담비 외투에 묻은 기름 얼룩 같았다,

떨에 땀이 얼어붙어서 켜를 이룬 그 작은 말들은 뻣뻣하게 타래가 진 갈기 사이로 주위의 명마들에게 비굴한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짐승들도 궁핍은 경멸하는지, 주위의 말들도 무사하는 태도로 그 작은 말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보기 흉한 몰골의 세 마리 말들은, 마치 초원 지대의 초라한 말들의 명예가 자기들에게 달려 있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그릇을 낡은 천으로 둘러싼 다음, 농부는 트로이카에 올라탔다. 그리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블라디미르로 돌아갔다. 자신을 잠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사랑스러운 말들과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은빛 재갈에서 떨어진 거품 방울이 얼음이 되어 모자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겁을 먹은 여인들이 작은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많았다


서리를 뒤집어쓴 해군성의 나무들은 땅에 꽂아 놓은 거대한 깃털들처럼 보였고, 웅장한 원주 기둥의 붉은 화강암은 설탕 옷을 입힌 것처럼 표면이 얼음에 덮여 있었다. 떠오르는 밝고 환한 달이 하얗게 눈 덮인 밤 풍경위로 고즈넉한 빛을 쏟아 부으면서 어둠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차들의 정지한 실루엣이 달빛을 받아 환상적인 색채를 띠었고. 드넓은 공간 여기저기에서 마차의 등불들이 극지방의 개똥벌레들처럼 노르스름하게 반짝였다. 저만치의 창문들마다 온통 불을 밝힌 거대한 겨울궁전이 보였는데, 마치 산의 여기저기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지하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내비치고 있는 것 같았다.


빛 조각들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들을 만들어 내는 만화경, 또는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화포가 꽃이 되고, 꽃잎이 왕관으로 바뀌고, 이윽고 루비에서 에메랄드로, 토파즈에서 자수정으로 변하며 다이아몬드 주위를 태양처럼 선회하는 회전 채광판에나 비유할 수 있을까. 무도회장은 마치 황금과 보석과 꽃들이 어우러진 이동식 꽃밭처럼, 끊임없이 요동치며 변화무쌍한 빛의 아라베스크 무늬들을 만들어 냈다


더 호화롭지 못한 대신, 여인들은 더 아름답다. 여인들의 드러난 어깨와 가슴은 황금 흉갑을 다 합친 것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진주는 값이 10만 루블이고, 깊은 대양으로부터 그보다 더 둥글고 더 맑은 광택이 나는 진주를 캐올 수 있는 어부는 결코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지역의 고유한 개성은 사라져 가는 중이고, 특히 상류사회의 개성이 제일 먼저 사라진다. 지역적인 특성을 다시 만나려면 문명의 중심에서 벗어나 민중들의 삶 한복판으로 내려가야 한다.


남자들의 어깨 위에 놓인 장갑 낀 작은 손들은 커다란 황금 꽃병에 꽂힌 흰 동백꽃 같았다


노예로 일하고 있긴 해도, 그들의 동작에는 동방 사람들 특유의 우아함과 절도가 배어 있었다. 데스테모나를 잊어버린 그 동방의 흑인들은 엄숙하게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유럽적인 파티에 가장 훌륭한 아사아적 특징을 각인시켜 주었다.


식탁보를 따라 두 줄로 늘어선 여인들의 젖가슴은 다이아몬드와 레이스장식 사이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썰매는 성 이사악 대성당 쪽을 향해 외투 하나와 얼굴을 내리덮은 모피 모자 하나를 싣고 사라졌다.



삶이 예술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강요하는 그런 '고역'을 치르면서, 시인은 시어의 투명한 조탁 속에서, 이국의 낯선 풍광과 아름다움 속에서, 예컨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차가운 눈과 얼음 속에서, 어떤 '절대적이고 순수한 삶'을 꿈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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