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1. 15:00ㆍGeorgia 2019
짜이뚜라 뒷산을 넘자마자 앞산에 아지랭이처럼 범상치 않은 바위기둥이 홀연히 나타났다.
호들갑을 떨며 한적한 산길을 돌아 내려오자
표식이 없어도 우리가 찾는 것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카츠끼 수도원을 알려주는 작은 이정표 발견
흙길을 따라 돌산 절벽 아래로 들어갔다,
소박한 집한채 나무 한그루 이고 있는 돌기둥
커브를 돌자 갑자기 눈앞에 가파른 내리막길
무서워 머뭇거리고 있자니 아래에서 세단 한대가 나타났다, 풀섶옆으로 비켜주자 그 차가 올라오더니 내옆에서 창문을 내리고 뭐라고 말했다.
뚱뚱한 중년남자였고 뒤에는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 인상도 좋지 않은 남자의 투덜대는 듯한 말투에 ' 뭐야 이새낀 ~ ' 순간 욕이 욱하고 올라왔다,
후에 상황을 추측컨데 ' 수도원 올라가는 길은 더 험합디다 ~ 는 말이었을듯 싶다.
' 저 고물도 사람 가득 태우고 다니는데 현대 쏠라리스는 못 할쏘냐 ' 싶어 기어를 1단으로 바꾸고 천천히 내려오는데 성공했다,
작은 공터 한쪽엔 돌가공 공장같은게 팬스에 가려 있었고 절벽밑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거기서 수도원 올라가는 쪽을 보니 좁은 시멘트길인데 한눈에 봐도 이 차로 올라가는게 너무 위험해 보였다,
개 한마리가 작대기 같은 꼬리를 흔들며 뛰어왔다,
마치 오랜만에 주인만난 것처럼 애교를 부리자 맘 약한 H가 먹을 걸 찾아 가방을 뒤졌다
일단 두 트레커가 먼저 올라가 상황을 보고 나에게 싸인을 주기로 했다,
차에 기대 담배 한개피를 필터까지 흠씬 빠는 동안
현주와 H는 비탈길을 걸어 올라간다
손바닥만한 공터에는 왠 앰블런스가 대기하고 있고
철문안으로 들어가니 타이어 찢어먹기 좋을 정도로 거친 돌밭에
까마득한 수도원을 올라가려면 저 앙상한 사다리 타는 게 유일한 방법인거 같은데 황천길 가기 딱 좋은 지름길이었고
주변에서 유독가스 냄새가 심하게 나고
등잔밑이 어둡다고...가까이 다가갈수록 정작 수도원은 더 안 보인다는 거,
카츠끼의 진면목은 멀리서 돌기둥채 바라보는게 젤 좋았다
내려올때 신발이 쭉쭉 미끄러질 정도였다고, 답사를 다녀온 현주와 H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보고했다
그래서 난 올라가는 걸 포기하고 공터에 서서 수도원을 바라보는 걸로 입맛만 다셔야했다
구도자의 길을 걸으려는 수도승에겐 이 곳이 속세를 떠나는 가장 극단적이고 완벽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의 그 유명하다는 메테오레 수도원은 여기 비하면 강남역 한복판이다. 뭐 내가 올라 갈 수 있었음 그 자체가 속세이긴하지.
돌아오는 길,
급경사 언덕길 앞에서 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두 여인을 내려 놓고
나 혼자 차를 끌고 잔뜩 긴장한 채 바탈길을 올라왔다,
현주가 차에 타자마자 ' 왠만한 산 등산하는 것보다 더 힘드네 ' 할 정도였다.
이정표가 있던 도로까지 나왔다, 아까 산길에서 본 백인청년 둘이 시내방향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다,
난 그때까지도 지도와 방위를 혼동한 상태였기에 찌아뚜라 시내와 반대로 핸들을 돌렸다
산아랫길에서 차를 멈추고 바라본 카츠끼수도원
어떻게 저런 곳을 찾아내 수도원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 저 바위기둥도 언젠간 풍화작용으로 무너지겠지 ?
맞은 편 산모퉁이를 돌아 나가기전 뒤를 돌아보며 작별인사를 했다.
산위는 시야가 탁트인 고원지대였다
네비는 계속 되돌아가라고 재촉하는데 난 내 감만 믿고 계속 직진했다
그런데 주변 풍광은 점점 광활해지고 수려한데 인적은 드물고 우리앞의 길은 더 좁아지고 험해졌다,
외진 마을 안으로 들어왔을때
우리를 경계하는 주민들의 눈길을 받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둘었다.
이 길을 계속 고집했다간 산넘고 물건너 한밤중에 나도 모르게 러시아 국경을 넘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들어온 기름이 아깝지만 과감히 차를 돌려 마을을 떠나려는데
소새끼까지 길을 막고 행패를 부렸다,
빠른 속도로 그 곳을 벗어나며
" 선배 잘 만나 이런 곳도 와 보는거여 "
라고 영문을 모르는 두 여인을 다독여 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
책가방 같은걸 매고 산길을 씩식하게 내려오는 마을 소녀,
작별인사까지 다 마친 카츠끼를 다시 보니 계면쩍지만...
카츠끼 입구 도로앞을 지나가는데 두 백인청년이 아직도 서서 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벌써 수십분째 저러고 있다면 오늘내로 시내 들어가긴 글른거 같아 측은지심에 차를 멈췄다,
네덜란드사람이라고 해서 우리 네덜란드 여행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국적을 묻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 왕십리 "
갑자기 네덜란드 청년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 폭소가 터졌다. ' 어떻게 한국지명을 그것도 왕십리를 아냐 ' 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6개월을 살았고 속초등 여러 곳에 여행도 다녔다고... 지금은 코카서스 3국을 여행중이라고 했다. 세 나라중 어디가 좋았냐고 하니 ' 조지아는 아름답고 아제르바이잔이 좋았다' 고 한다. 쿠타이시에 간다고 해서 시내 번화한 광장에 내려주자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 라고 한국사람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깍듯이 인사를 했다. ' 그럴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한국말로 대화 할껄 ! '
필연은 사는 방법이지만 우연은 사는 이유다.
청년들을 내려주고 도시를 떠나면서 잠깐 쉬어갈 겸 카페를 찾아봐도 적당한 곳이 없고
네비를 따라가보면 길이 끊겨있고 ...
시내를 헤메다 그냥 아까 들어왔던 길로 나간다,
움푹 패인 도로에 걸려 타이어 터질 정도로 충격도 받고 그렇게 땅속 지옥같은 찌아뚜라를 어렵게 탈주하고 있다.
오는 중간에 지나쳤던 깨끗하고 큰도시 Sachkhere 에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이곳저곳 차로 둘러 보았다,
짱퉁 맥도널드앞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도롯가에서 적당한 식당 발견,
옆 공터에 주차하고 타이어부터 살펴 보았다, 다행히 펑크는 안 났다.
손님들이 끊임없는 걸로 봐서 맛집을 잘 골랐나보다
오픈 주방처럼 유리창 안에서 케밥을 만들고 있길래 옆 계산대에 가서 주문을 하려는데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됐다,
케밥 만들던 아줌마가 보다못해 나와서 우리를 식당 문쪽으로 데려갔다
문 옆 기둥에 뭔 키재기 같은게 붙어 있는데 그게 케밥의 종류를 뜻하는 것인가보다
딱 중간값 8 짜리 케밥 두개랑 소시지빵과 콜라 큰거를 주문했다.
조지아에 없는 거... 맹견
한참만에 음식이 니왔다.
요 케밥 하나가 8라리 (3,360원)
따뜻하고 푸짐하고 맛있다
어느새 배고픈 동네 개들이 우리 주위에 다 모여 들었다,
조금 떼어주니 낼름낼름 잘 받아 먹었다
개판에도 서열은 있다.
식당안에서 아저씨가 우리에게 " 재팬 ? " 이냐고 인사를 하길래 ' 코리아' 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고 나와서 다시 물었다.
아저씨가 한국이란 나라를 아예 모른다
사진상으론 안 보이지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먼지 바람, 고물차들의 매연, 빵빵거리는 소음이 뒤섞여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남은 케밥 싸들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망할 노무 동네
도시 초입 길 양편으로 주유소들이 많이 보인다.
가격표를 보다가 허름한 노브랜드 주유소에 들렸다,
' Prenium 으로 가득 ' 했더니 Regular 밖에 없단다.
레큘러 넣는다고 고장날 리는 없을거 같아 가득 채우고 미루나무 가로수길로 향했다,
앞차가 공교롭게 기아 K5 이라서 추월안하고 열심히 따라갔다.
아깐 이 길이 그리 좋더니 돌아갈때는 흥미가 좀 떨어졌다,
보르조미에서 나와 트빌리시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속도로 입구까지 나왔다
잘 닦인 고속도로 IC위를 노새가 구루마를 끌고 처벅처벅 지나가고 있다,
드디어 여행의 종착지 트빌리시로 향한다,
아까 먹은 케밥의 쌩 양파향이 아직도 입안에 얼얼해서 냄새 없에려고 휴게소에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통로에 세워놓은 사진촬영금지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들렸다 푸드코트로 왔더니 중국인 단체가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다
휴게소 하드웨어는 한국 이상인데 운영이나 서비스등의 소프트웨어는 한참 낮다.
아이스크림과 커피와 쿠키등을 어렵게 사들고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재충전 100 %
휴게소를 나오는데 현주가 왠일로 ' 담배 하나 피우고 가' 선심을 쓴다.
담배피는 커플 옆에 앉아 한개피를 꺼내 문다. 오늘 3개피째다. 목이 칼칼해져온다,
다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한손으로 핸들 잡고 한 손으로 마지막 목적지를 네비에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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