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3. 21:00ㆍRussia 2018
들판에 송전탑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자 좌측으로 넓은 공업단지가 한동안 이어졌다.
땅을 뒤덮은 배관 파이프들과 거대한 탱크들, 녹슨 철구조물과 굴뚝... 일반 공장이 아니라 여수산단의 중화학공업단지랑 비슷했다. 단지 여수여천보단 조금 작고 더 낡은 느낌.
오른편엔 질박한 간이정류장과
교외의 공동주택과 대형마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시내에 진입하자 중장비트럭과 살수차들이 한 차선을 점령하고
실용성만 중시한 촌스러운 건물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도로위에 고만고만한 싸구려 차들
기차모형
황금고리 6번째 도시 야로슬라블의 첫 인상은 ' 야 ! '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어도 모자랄 판에 살벌한 공업도시였다는 실망감에 급 피곤해져 차안에 적막만 흘렀다,
다리를 건너 들어온 구시가지는 조금 예술적인 건물들로 채워져 그나마 봐줄 만 했다,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했다, Yar hotel (57.629526 39.881864).
기다렸다는 듯 차 한대 댈 자리가 비어 있어 얼른 주차하고 짐을 다 내렸다. 이곳에서 3일을 묵을 예정이고 러시아여행의 마지막 숙소다.
프런트에서 몇가지를 묻자 영어가 서툰 여직원이 남직원을 호출했다. 젊고 잘생긴 러시아 남자가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 거주자등록증 필요할 거라고 하며 체크아웃할때 주겠다 한다.
* Wi-Fi 는 객실에서 간단하게 잡히는게 아니여서 남직원이 자기 스마트폰에 인터넷 접속해서 승인번호를 적어주었다,
* 주차는 길앞에 댈 곳이 없으면 호텔 뒤 비상주차장에 특별히 대게 해줄테니 블럭을 빙돌아 어느 문앞에 서 있으면 CCTV 보고 열어주겠다고 한다.
* 혹시 시내에 임페리얼 포셀린을 파는 매장이 있는지 물었더니 두 직원이 상의하고 열심히 찾아보더니 지도를 출력해 위치까지 표시해 주었다.
그 모든 지루하고 복잡한 요구를 친절하게 다 해결해 줘서 8,370 루블 (150,660원) 바로 결재
오늘 이동구간
방 찾아가는 설명이 좀 복잡해 걱정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기도 어제 묵은 속소랑 똑같은 골동품 장농 엘리베이터다. 두사람에 짐까지 태우고 버거운 신음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복도에서 오른쪽 유리문을 열고 계단으로 나와 반층 정도 내려와 또 유리문을 열고 다른 건물 복도에 우리 방이 있었다,
Surprise ! 정도는 아니지만 마지막 호텔이라 나름 기대하고 예약했는데 호텔 내부, 엘리베이터, 복도등을 지나오며 반쯤은 포기했다,
그래도 실낱의 희망이라도 붙들고 ' 501호야 제발 방좀 괜찮아라 ' 기도하며 방문을 열었는데... 깜~짝 놀랐다 !
우리나라의 여인숙과 여관 사이의 수준, 한국 모텔은 여기 비하면 별이 다섯개다.
때가 쩌든 촌스런 가구와 의자. 썰렁한 방 분위기, 욕실의 수건걸이는 차디차고... 결정적으로 변기 꼭지가 고장 나 있었다
완전히 실망해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현주가 프런트로 내려가
전형적인 중국인으로 보이는 하우스키퍼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런 곳에서 똑같이 생긴 동양인끼리 얼굴을 맞대고 있으려니 썩소만 나왔다.
여자가 체크해보고 -자기 선에서 수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지-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나갔다,
잠시후 돌아와 506호로 방을 바꿔 주겠다고 해결책을 재시했다,
와보니 여기도 거기랑 똑같은데 방냄새는 안 나서 그나마 다행이다.
방에 온기라곤 하나도 없어 ' 수건걸이에 열선이 안 들어오냐, 차다' 고 했더니 전체적으로 꺼져 있어서 자기도 어쩔수 없다며 돌아갔다
자포자기.
짐가방에서 욕실용품 꺼내 채워놓고 침대에 누워 차라리 그냥 낮잠이나 청했다.
현주는 펑튀기 같은 과자 먹으며 나 자는 동안 사진정리만 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 시간 저녁 7시. 방에 들어온지 2시간이 넘었다,
나가기도 어설프고 안 나갈수도 없는 애매한 시간... 에라 도자기나 보러가자
임페리얼 포셀린을 모스크바에서 살 기회를 놓처 출국날에 모스크바 시내까지 다시 들어가 사서 공항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야로슬라블에도 파는 곳이 있다니 한번 가봐야 겠다. 기대는 크게 안되지만...
대충 옷 걸치고 또 나갈 채비를 했다
프런트에 방키를 맡기고 호텔 앞으로 나가 올려다보니 객실도 별로 없는 소규모 호텔이었다,
저녁시간인데 앞에 차들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현주는 우리 차를 착각해 남의 흰차를 열려했다
시내인데도 깊게 패인 도로들
낮보다 한적해진 거리
거리에 약국이 많이 보였다
호텔 직원이 알려준 곳에 왔는데 임페리얼 포셀린 매장이 안 보인다. 조금 더 가서 U-턴후 현주에게 직접 가 보라고 하고 나는 차에서 기다렸다
한참만에 현주가 길을 건너 차로 돌아왔다
노란 글자로『임페라토르스끼 파르포르』라고 적혀 있는 곳.
' 창문에 도자기가 보이는데 빨간 대문이 닫혀 있어 문 닫은 줄 알았다. 안에 사람이 보여 문 밀고 들어가니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임페리얼 포셀린 전문 매장이 맞았다 ' 한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명함을 받아왔다
로터리에서 차 사고 나서 기다리는 사람들
현주가 거리구경 더 하고 싶다해서 차를 돌려 초입에 내려 주었다,
시골도시에서 썩고 있기에 아까운 선남선녀들
양카들도 많고, 전차도 다니고
캠핑카가 지나가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20 여대 이상의 캠핑카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다
이쪽 상가들은 가게마다 출입구가 따로 있더라고...
현주가 BODYSHOP 같은 곳을 들어갔는데 매니저나 직원들이 영어를 조금 하더란다.
구경좀 하겠다 하니 OK ! 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이라고 하자 엄청 놀라고 반가워하며 샘플도 많이 챙겨주고 친절하게 대해줘 현주가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한다. 제품이름은 SIBERICA.
현주가 한결 기분이 좋아저 나를 찾아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를 둘러보다 건너편에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차를 돌려 안마당으로 들어가자 주방 유리창 안에서 남녀직원들이 환한 얼굴로 반겨 주었다. 우리도 차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래 사진에 마당 너머 불켜진 곳이 주방.
마당을 같이 쓰는 터키옥색 건물은 작은 호텔
홀에 있는 여직원들도 친절했다. 주요리가 뭐냐고 물으니 러시안식이라고 해서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가져 왔는데 온통 러시아어다.
영어 메뉴판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아가씨가 자기 스마트폰에 앱을 열어 메뉴판을 비추자 러시아어가 그 자리에서 영어로 바뀌어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너무 신기했다.
한때 학창시절엔 폰트도 자체 제작하고 컴퓨터 작업으로 학비도 많이 벌고 남들 가르치기도 한 얼리어댑터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세상은 날 우물에 갇힌 깨구락지로 만들어 놓았다. 하아~
그나저나 러시아어 공부를 몇년이나 해도 이런 메뉴판 하나 해석하기 쉽지 않은데 구글앱 하나가 여러 사람 죽이는구나.
이정도 추세라면 실시간 통역이나 대화가 조만간 가능해질텐데 누가 사전을 사고 어학원을 다닐 것인가. 구글이 신 바벨탑을 쌓고 있다
식당이름이 диван Баян. 디..반.바..얀 ?
모지 ?
이름을 알고 싶어 여직원에게 물으니 소파와 접는 것 이라고 한다. 우리가 접는 것을 이해 못하자
다른 여직원이 아코디언을 가져와 연주했다, 대박 !
식당 이름은 러시아어로 Sofa - Accordion 을 뜻한다
실내가 예뻐서 현주가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조명도 켜주고 예쁜 의자도 안내해 주었다
쥬스 두잔 (280, 260루블) 샐려드 스프 (400) 갈비찜 (390) 아메리카노 (120) 라떼 (180) 주문완료
메인 메뉴중에 ' 한국식 소스로 쫄인 ' 고기가 있어서 반가운 기분에 시켜보았다
약간 장조림 맛이 나는 갈비찜인데 부드럽고 맛있었다,
아가씨에게 메뉴판에 써 있는 ' 꼬레이스꼬이 ' 라는 단어를 짚어주며 우리가 거기서 왔다고 했더니 놀라며 ' 자기 친구가 한국을 아주 좋아한다 ' 며 자기 가슴에 대고 우리에게 손하트를 날렸다
커피엔 초콜릿까지 얹어주는 센스
음식 맛있게 다 먹고 현주랑 이야기를 나누다 9시 반쯤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총 1,630 루블 (29,340원)이 나왔길래 아까 찾은 5,000 짜리 지폐를 냈다, 받은 잔돈에서 150루블을 따로 떼고 쪽지에 ' 10 % for you, TIP '이라고 쪽지에 써서 같이 주었더니 아가씨가 놀라며 감사해했다.
나에게 '한국글자를 써 달라, 친구 갖다 주겠다' 고 해서 「이완호 오현주」라고 한글을 써주었다
가져가서 다른 직원에게 자랑하는 아가씨.
세종대왕님은 수백년후 러시아 처자가 한글을 받아들고 저리 좋아할 줄 상상이나 하셨을까 ?
잠시후 우리가 가볍게 인사를 하며 식당을 나서는데 아가씨가 따라 나오며 거의 완벽한 발음으로 " 안녕히 가세요 " 라고 한국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찾아보고 연습했나보다. 2,700원 팁주고 이런 호사를 누릴수 있는 곳이 러시아다
주방에서 젊은 남자애가 우리를 보며 엄지를 척 세워 주길래 인사하고 나왔다
작년 7월 거리뷰에선 레스토랑이 없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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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까지는 이 도시가 낯설고 싫어 " 야 ! " 반말이 하고 싶더니 지금은 사람들에게서 위로받으니 " 야~ "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알면 알수록 러시아 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밝다. 많은 나라들을 경험해봤지만 러시아만큼 사람들로 기억에 남는 나라도 드물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열정적으로 환대받는 나라도 드물었다
로터리 바로 아래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주현절교회가 있었다 (57.621669 39.886482)
내일 가볼 강가의 공원을 미리 답사했다
호텔이 구시가지 안에 있어 이동거리가 짧으니 안심이 되었다,
야로슬라블은 낯엔 투박하더니 밤이 참 아름다웠다
10시 넘어 호텔 도착, 앞에 주차자리도 많이 비었고 지금 보니 호텔이 나름 봐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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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 Serov - 소녀와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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