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크로브카의 다락방

2018. 6. 3. 16:30Russia 2018





남쪽 창가에 앉는 바람에 비행내내 눈이 부셔 창문을 내리고 있었다. 

착륙이 임박하자 모든 창문을 올리라 해서 모스크바 주변풍경을 실컷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예뻤다. 지금껏 본 곳중 이렇게 예쁜 곳도 드물었다. 


울창한 숲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확연하게 나눠져 있다.


강물은 초록대지를 적시고


청량한 공기


숲을 관통하는 일직선의 녹색띠. 도로도 아닌데 나무를 싹 베어 버렸다,


그 길이가 수km 에 달하는데... 모지 ?



숲속에 숨어 있어 외부에선 전혀 안 보이는 마을들


호수주변의 별장지대. 그리고 유람선들




모스크바는 삭막하고 헐벗고 황폐할거란 선입견이 확 사라져 버렸다.

푸르름, 여유로움,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활주로에 오래 서 있길래 버스가 오나 했는데 다행히 브릿지를 연결해줬다




청사는 넓은데 흔한 무빙워크 하나 없어 한참을 걷다 쉬다 했다. 

양복을 입은 중년남자가 날 앞질러 가다 " 힘들어 보이시는데 다음에 오실때는 휠체어 서비스를 받으세요 " 라고 해서 고맙다고 했다.


꼴찌로 도착한 입국심사장은 여러 가닥의 줄과 수많은 사람들이 뒷벽까지 꽉 차 있었다. 내국인 라인은 빨리 줄어드는데 이쪽 외국인쪽은 너무 느려 고작 10m 이동에 1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애새끼들은 빽빽 울어대고 인내심이 바닥난 사람들은 이줄 저줄 옮겨다니거나 은밀히 끼어들거나 대놓고 새 줄을 만들어 버렸다. 천정에서 쏟아지는 직사광선에 체온까지 가세해 불쾌지수를 팍팍 올리고 있는데 현주가 장난친다고 등뒤에서 내 배낭을 자꾸 잡아 당겨 정색을 하고 화를 냈다. 타이밍 잘 맞추더란 말 취소 !


가만보니 심사관이 한 사람씩 뭔 서류에 싸인을 받고 있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동안의 서러움도 잊은채 여자심사관 앞에서 생글거리며 " 오친 프리앗나 (매우 반갑습니다) " 했더니 무표정하게 인사를 받았다. 무사히 입국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할 지경이다.



한결 밝아진 일행들,

수화물코너에선 짐이 몇개 안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양복입은 중년남자가 저쪽에서 소리쳤다. " 짐 찾아가세요 ! "

가보니 우리 짐이 벌써 나와서 벨트 밖에 꺼내져 있었다. 이쯤에서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 " 그런데... 누구세요 ? " 라고 물었다

뻔한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 대한항공 직원입니다 ' 한다. 아~ 그랬구나.


좁고 어두컴컴한 입국장을 통과해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넓은 로비로 나오자 비로소 러시아에 왔단 실감이 났다.



렌터카 부스들은 바로 앞에 있어서 금방 눈에 띄었다.

젊은 직원이 친절히 설명해 주며 차도 윗급으로 업그레이드 해주고 현대차를 빌려 주겠다고 한다


유심칩을 만들러 간 용철씨가 날 찾아와, 카드는 안 받고 현금만 된다고 한다.

렌터카 직원에게 ATM 을 물어보니 바로 근처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ATM 화면이 온통 러시아어라 옆기계에 남자들에게 작동법을 물어보았다.

남자들이, 자기네 기계가 잘 된다고 하며 자리를 양보했다. 근데 내 citi 카드는 오히려 에러가 나서 처음 ATM으로 다시 돌아왔다

5,000 루블을 빼자마자 용철씨가 채틀어 갔다. 이후 한번에 뽑을 수 있는 최대금액인 7,500씩 두번 인출하자 그것마저 한도가 꽉 차 버렸다.


잠시후 유심칩을 끼우고 득의양양하게 세명이 돌아왔는데


한참만에 갑자기 달래씨 가방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첫날부터 여행을 망칠까봐 난 걱정인데 당사자인 달래씨는 정작 무사태평.

용철씨가 얼른 유심칩 사무실로 달려가더니 주인에게 버림받은 가방을 질질 끌고 오고 있다. 휴~


카톡은 되는데 서로 통화가 안된다고 이리저리 눌러 보더니 다시 통신사로 우르르 몰려가는 세 사람


한참만에 쾌변을 본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유심이니 포켓와이파이니 로밍이니 그런거 모르고 다녔는데 이번엔 여수팀도 있고 또 하나의 넘어야 할 난제가 있기에 난리법석을 묵묵히 지켜 보았다. 도착한지 3시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공항을 못 벗어나고 있다.


그 난제는 바로 모스크바 주차문제였다.

노상에 주차후 스마트폰 앱으로 등록하고 결재를 하는 방식이라 지금으로선 유심이 필수였다.


한결 친해져 통성명까지 마친 렌터카 직원 데이빗에게 가서 무리한 부탁을 했다

주차 앱을 깔고 모스크바 교통국에 문자를 보내 승인을 받고 우리 차를 등록하고 금액을 적립하는 모든 과정을 묵묵히 아주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런데 도와준 보람도 없이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봐도 자꾸 에러가 나서 결국 실패했다.


이젠 차를 받아야 할 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브릿지를 건너 주차빌딩으로 가서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리저리 이동후



우리를 기다리라고 하더니 데이빗이 친히 차를 가서 가져왔다.

원래 예약한 차는 세단인 씨보레 크루즈였는데 이 차는 투산만한 크기의 CUV 차량이라 짐도 많이 실을 수 있고 공간도 답답하지 않았다


4000 km 뛴 새차.


차에 흠집 있나 자세히 체크하고, 주차티켓 때문에 1층 출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데이빗과 헤어졌다.

대충 좌석만 세팅하고 출구로 내려갔는데 데이빗이 안 보여 바리케이트 앞에서 비싱등을 켜고 기다렸다. 뒷차들이 놀라서 차를 빼 옆칸으로 나갔다. 용철씨가 데이빗을 찾으러 나갔다가 금방 함께 돌아왔다.

주차빌딩을 나갈 때도 티켓이 필요하지만 공항을 벗어날 때도 또 한번 티켓을 인식해야 바리케이트가 열린다.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시스템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길이 두갈래로 나눠졌다. 얼떨결에 왼쪽을 선택한 후 갓길에 차를 댔다.


스마트폰 네비 세팅.


POKROVKA 6 hotel  (GPS  55.758732   37.642037)

공항에서 시내 호텔 가는 길,



몇몇 차들이 갓길에 멈추거나 빠르게 후진하는 걸 보니 다 나같은 초행길인가보다.



차가 속도좀 나다가 바로 정체가 시작되었고



차선이 줄어들며 무지막지한 끼어들기에 휘말렸다, 첨부터 신고식이 호되다.
















막히는 길, 큰길, 골목길, 구도심, 신시가지 등 골고루 쏘댕기다 무사히 목적지 도착

호텔 뒷길로 들어가 봤지만 이곳까지 주차선이 그려진 유료주차장이다. 주차앱이 안되니 불법으로 차를 대고 호텔을 찾아 큰 길로 얼른 나왔다. 사실 오면서 호텔 표지를 못 봤기에 엄청 불안했다


네비가 알려준 지점까지 걸어 왔는데 호텔이란 간판하나 보이지 않았다. 첫날부터 사기당한 건가 ?

길가에 서서 대화중인 두 남자에게 다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포크로브카 호텔을 물어보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저 없이 옆문을 가리키는데 문보다 더 검은 표지판에  POKROVKA 6 HOTEL 글자가 조그맣게 박혀 있었다.

' C8  이새끼들은 도대체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 '


지저분한 계단 두개를 디디고 육중한 문을 열자 눈앞에 135도 급경사의 계단이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내가 문을 잡고 더 이상 진전을 못하자 위에서 직원이 내려와 우리 짐을 들어줘 모두 2층으로 올라왔다. 일단 안심이 되자 갑자기 방광이 추욱 늘어졌다. 화장실부터 물어 옆 맛사지샵에 들어가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오자 비로소 프런트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러시아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 쓰빠씨바 (고마워) "  


호텔 프런트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Bad news 가 있다고 입을 땠다.

' 투숙객이 적어 조식을 제공할 수 없다.  18,752 루블을 15,552 로 깎아 주겠다 ' 는 것이다. 이왕 15,000 로 깎아 달라니 1,000 루블이 찍힌 타이맛사지 쿠폰 4장을 주길래 더 이득인거 같아 기분좋게 사인했다.  방 두개 2박. 15,552 루블 (당시 1루블=18원.  279,936원)


골치인 주차를 물어보는데 대화가 잘 안통했다. 남직원이 구글번역기를 돌리다 마침 올라오는 러시아여자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  어디서 왔어요 ? " 여자가 물었다

"  한국이요 "

"  아 ! 거기 화장품 참 좋던데 " 여자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  아름다우셔서 화장품 필요 없으실거 같으신데요 "


용철씨가 남직원과 주차된 차를 보러 가고 우리는 방을 보러 다른 직원을 따라 한층을 더 올라갔다.

방문을 열자마자 ' 낚였다 ! " 란 말이 절로 나왔다, 

고급스럽고 모던한 디자이너 호텔방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손바닥만한 싸구려 다락방이었다. 이게 일박에 7만원


맛사지 쿠폰,


다락방 낮은 천장과 바닥사이에 낀 현주,


속으론 실망이 컸을텐데 날 위해 웃어주고 있다.


원래 일정은 첫날부터 맛집과 재즈바 순례였지만 현실은 모두 졸려서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었다.

안 나가고 가볍게 떼우는 걸로 합의. 세명은 요깃거리 사러 근처 마트를 찾아 나갔다.

그사이 난 빨래 좀 주물러 널고 샤워하고 싸구려 면도기에 턱주변을 다 긁혀 피를 질질 흘린채 빤스만 입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세명이 비닐봉투를 들고 들이닥쳤다.

침대위에 목욕타올을 깔고 저녁상을 차렸다. 러시아 음식이 강렬할 줄 알았는데 대체적으로 싱겁고 음식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졌다,

용철씨는 이것저것 먹어보더니 입맛이 안 맞는지 급 피곤해 하고. 달래씨는 맛있다며 잘 먹었다. 현주는 맥주먹고 급 해롱해롱




맛사지를 받고 자면 좋은데 10시까지라고 해서 시간이 지나버렸다.

주차 어떻게 됐냐고 용철씨에게 물어보니 하루 720 루블을 내면 호텔측에서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며 싸다고 한다.

' 720 루블이면 14,000 원인데 싼거 같지 않다' 고 했더니 한국돈에 좀 놀랬다. 용철씨가 아직 루블화 개념이 안 생겨 마트에서도 보이는 대로 담고 현찰로 계산하고 나왔다.


오늘 에피소드만으로도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현주가 여수팀을 얼른 쫓아내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다가

천장과 박치기를 하더니

바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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