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스크바가 널 살렸다

2018. 6. 3. 12:00Russia 2018





- 인생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이 아니야 -


지금 나에게 주어진 순간의 인생을 맛있고 멋있게 즐기기 위해 러시아로 떠난다.






아침에 은재가 20만원을 주길래 대견하다고 했더니 " 10만원은 여비하고 10만원은 내 통장에 이체해줘 "

내친김에 짱이에게 여비 달라니 소파에 널부러진채 ' 돈이 없다' 고 한다. 어젯밤에 3주치 용돈을 받아 놓고도...


예정보다 이른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인천대교 위를 지날때, 차안 분위기가 갑자기 쏴~해짐이 느껴졌다.

불안스레 캐보니, 며칠전 내가 가볍게 내뱉은 말에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 모스크바가 너를 살렸다 ' 는... 억울하지만 기억난다.

영종도에서 위화도회군을 경험하고 싶진 않아 매달 큰 돈을 송금해 주는 걸로 얼른 쇼부를 봤다.

남자가 가장 약해지는 타이밍을 현주가 결국 마스터했다,


영종도 서쪽 해안도로는 개장한지 몇 달 안되는 2공항 전용이라서 한산했다,

' 단기주차장 하루 24,000원 ' 이란 표지판에 흠칫 놀라며 주차대행 유도선을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직원이 몇가지 묻더니 됐다고 한다.

확인증 안주냐니 카톡으로 보냈다 한다. 테크놀로지의 급격한 변화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출국층으로 올라가 대한항공 모닝캄전용이라는 카운터 B로 향했다, 벌써 대기줄 반이상이 사람들로 겹겹이 채워져 있었다. 서둘러 줄끝으로 향하는데 입구에 서 있던 대한항공 여직원이 제지하며 모닝캄카드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항공권을 모닝캄 마일리지로 끊었다 한들 지금 카드가 없으니 뭔 유세를 부리리요,


볼멘소리로 ' 장애인용 fast track 은 없나요 ? '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G 카운터로 가라는 것이다. 무슨 카운터냐고 묻자 일반석이라고 한다, 2터미널 카운터가 A부터 H 까지 있으니 여기서 G는 끝과 끝이었다, 묵직한 것이 욱하고 올라오다 목구멍에 딱 걸렸다,

' 왜 카드를 안 갖고 왔냐 ' 는 현주의 지청구는 막 우리 뒤로 줄 서는 여자들이 투덜대며 대꾸해줬다. 

" 요즘 회원카드 갖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 " 


천천히 줄어드는 대기줄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 

설레이는 얼굴로 빈 창구를 찾아가 여권을 내밀었는데 억지미소도, 흔한 인삿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일 처리하는 직원.

요즘 대한항공 분위기가 흉흉한 건 알겠는데 이건 좀 심하다. 난민이 입국심사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 뽀얀 얼굴이 2주후엔 얼마나 탈까 ?




폰을 켜보니 집 거실소파에 군인머리 경재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아빠 출국일에 맞춰 깜짝배웅을 하려고 외출을 나왔는데 우리가 좀 일찍 나오는 바람에 간발의 차로 엇갈려 버렸다.

화면으로나마 아들 얼굴을 보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여수팀도 공항버스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벌써 무인발권까지 다 받아 놓고 있었다, 수화물을 부쳐야 된대서 B 카운터를 알려줬는데 또 그 여직원에게 걸려 D, E 카운터로 쫓겨나 두번 걸음하게 됐다고 투덜했다, 거대항공사를 여직원 하나가 시원하게 말아 드시고 계셨다,


내 크로스백이 X-ray 검색에 걸려 옆으로 치워졌다. 먹다 만 생수병이 가방안에서 나왔다. 앞에 남자는 스킨병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 온 몸에 처바르고 있다. 면세구역 가면 물이 넘쳐 나는데 이 무슨 씰데없는 요식행위인지. 


점심을 먹기 위해 여수팀과 4층 식당가로 올라왔다. 용철씨가 적당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내가 준비해둔 곳으로 조용히 모시고 갔다.


이 곳을 위해 신용카드까지 새로 만들 정도로 기대가 큰 곳. 여행의 첫끼부터 럭셔리하게 대접하고 싶었다.

공항라운지 Matina Gold 에 당당하게 들어와 신용카드를 내밀며 Lounge key 동반1인까지 무료로 해달라고 했다,

예쁜 여직원들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카드로는 본인만 무료고 동반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처음부터 저희 회사방침은 그러했는데 카드사에서 계속 잘못 안내하고 있습니다 "

존심을 구긴채 추가비용 몇만원을 고심하고 있는 나를 긍휼히 여긴 여직원이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  요 뒤 Matina 에서는 동반1인 무료입니다. 백미터만 가시면 돼요 "


진땀을 흘리며 Matina를 찾아왔다,

용철씨가 " 나도 연회비 15,000 내는 마스터카드인데 될지도 모르겠다 " 며 다시 Matina Gold 로 씩싹대며 달려가더니 멋쩍은 얼굴로 돌아왔다.

왜 모르겠는가 내 기를 살려주기 위한 원맨쇼인 것을.


Gold 글자 하나 차이로 여긴 완전 도떼기시장 분위기다, 빈자리를 찾다보니 안쪽에 단체석 하나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

2002년 Diners card 라운지에서 처음 느꼈던 완벽한 여유로움이 그리워졌다.



오래간만에 만난 여수팀과 즐거운 수다와 식사.

용철씨가 지난 수요일 하필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잃어버려 이번 여행을 못할뻔 했다는 이야기에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12시를 20분이나 넘기길래 힘들게 수다를 중단하고 3명은 쇼핑하러 가고 난 조금 더 앉아 잡지 뒤적거리다 나왔다,


백미터 돌아나오는 동안 유리창 안쪽의 Matina Gold에 눈을 떼지 못하고 와신상담했다,


이동거리가 길어도 공항내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241 gate는 맨끝에 있었다


집합시간 1시 5분을 몇분 넘겨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무거운 화장품으로 축 늘어진 쇼핑백을 들고 현주가 나타났다.


줄끝에 대서 탑승완료, 오늘은 빈자리가 안보일 정도로 만석이다.


창밖에 대한항공기들을 보니 조씨네가 시건방 떨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한항공기들이 빠진 1공항터미널을 아시아나기들이 널널하게 쓰고 있다.


탑승하면 목부터 시원하게 적셔주던 웰컴드링크도 땅콩 한봉지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고급종이에 인쇄된 메뉴판도 날라가고... 뒤에서 수레를 덜컹거리며 나타난 승무원이 식판을 꺼낼 자세를 취한채 아무거나 얼른 고르라고 채근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대한항공의 추락은 너무나 급격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이정도인데 내용물인들 온전할까 ?

손에 쥐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던 빵은 싸구려 비닐봉지에 담겨 있고 디저트 케익은 그릇바닥에 달라붙어 겹겹이 다 떨어졌다, 당연히 음식맛이 좋을리가 없다. 요즘 아시아나가 기내식업체를 중국으로 바꾸면서 대란이 일어나던데 대한항공도 심히 의심스럽다.




어여 일어나 면세품 사라, 전자제품 사용하지 마라, 싸인등이 꺼졌어도 안전벨트 풀르지 마라....

별로 긴급하지 않은 기내방송을 수시로 해대는 바람에 영화 한편 온전히 감상할 수 없었다.


자다 깨서 창문을 빠꼼히 열어보니 발밑이 온통 설산투성이다, 영화감상중이던 현주가 눈부시다고 핀잔을 줘서 얼른 셔터를 내렸다,

테트리스, 오목 (7:3으로 컴을 이김), Early man 클레이에니메이션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두번째 기내식은 그나마 먹을만 했다



약 9시간되는 비행시간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지나갔다.

용철씨가 마스크를 귀에 건채 통로에 서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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