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엔 들고 뛰어

2018. 1. 5. 10:25Japan 2017




  

한밤중 현주가 갑자기 깨서 투덜댔다.

창가 구석에서 악취가 난다고... 정작 나나 애들은 그런 냄새를 전혀 못 맡는다는 게 문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깬 나는 다른 문제로 투덜댔다.  

전혀 환기를 할 수 없는 통유리창이 갑갑하더니 폐쇄공포증, 화재불안감으로 점점 격화되었다.


뒤척이다 간신히 새벽 단잠에 빠졌는데 8시 25분에 은재가 처들어 오는 바람에 또 깨버렸다. 먼저 내려보내고 샤워,면도후 8시 49분에 나왔다.


우리 찾기 좋으라고 애들은 식당 한가운데 테이블을 차지하고 벌써 아침을 먹고 있다





모찌리도후(땅콩두부)부터 김치까지 이것 저것 차린 건 많은데 별로 안 땡기고


전혀 예상 못한 음식이 구미를 땡겼다, 부드럽게 삶은 족발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간도 짭짤하게 맞아 두번이나 갖다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 얼굴에 빵 묻었어 ? "  현주가 묻길래 밥먹다 말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 빵에 빵가루 좀 묻는다고 대수냐 ? " 현주가 화도 못 내고 웃음보부터 터졌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비바람이 가로수 머리끄댕이를 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한 남자가 배낭을 매고 빗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올빼미여

얼굴 좀 펴개나

이건 봄비 아닌가                  -고바야시 잇사-


애들이 창밖을 보며 오늘 국제거리 다닐 걱정을 한다. 작은 우산이 하나 있다니까 짱이가 ' 이런 비바람엔 소용없어 ' 체념하듯 내뱉었다

그릇 치우는 남자직원에게 오늘 날씨 어떨거 같냐고 물었더니 ' 하루종일 이럴거 ' 라고 한다. 

스맛폰으로 오키나와 날씨를 조회했다. 다행히 오후엔 갠다는 예보다.


9시가 넘어가자 중국인 단체 투숙객들이 한 두팀씩 들어온다

팽~코 풀고, 애 울고, 이 쑤시고... 여기저기 볼 만하다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나쓰메 소세키-



짱이 먼저 방으로 올라가고

남자직원이 테이블마다 다니며 ' 10시에 음식 철수하니 필요한 거 있음 가져오시라 ' 고 안내하는데 우리 수다삼매경을 막지는 못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행자는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나 먼저 내려와 차 대기하고 창에 맺히는 빗방울 감상중...


빗속에서 혼자

내 그림자조차

씻겨져 갔다                      -도로시 맥러플린-



여자들이 내려올 때쯤 비가 감쪽같이 그치더니 세수하고 뽀얘진 시내



소품이 이쁜 빈티지샵을 찍고 시내로 들어갔는데, 도착해보니 간판도 안 보이게 셔터가 사방팔방 다 내려져 있었다. 

자다 깬 짱이가 그걸 보고 일갈했다.

" 완벽하게도 봉쇄했네 "


내가 분노,실망,무안 사이에 망연자실하고 있으니 현주랑 은재가 시혜를 베풀듯 " 류보나 갑시다 " 한다

네비에 RYUBO를 찍고 뒤도 안 돌아보고 출발한다




어제보다 좀 이른 시간인데도 역시나 차가 길게 줄 서 있다.

차 안에서 또 수십분 갇혀 있을 거 같아 여자들을 백화점 입구에 내려주며 2층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동백꽃 냄새 맡고는

내던지고

걸인이 걸어가네                           -오자와 다케시-




좁은 대지에 6층이나 올리고 주차타워에 관리자 두고 구석구석 알차게 활용하고 있는 건물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어제보다 10분정도 빨리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주차하고 올라오는 동안 여자들은 또 백화점 구경



내다 널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이여

옷 너는 날                                -마쓰오 바쇼-





2층으로 올라왔는데 안내판이 다 일본어. 벤치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Afternoon tea 찻집을 물어 찾아간다.

미어터져 밀려난 사람들이 복도에 내놓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나도 4명 웨이팅을 걸어 놓고 의자 끝에 앉아 메뉴판을 뒤적거린다. 

잠시후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자리가 났다고 안내하려고 하길래

" 아직 식구들이 다 안왔으니 뒷분들 먼저 들어가셔도 돼요. 다 오면 말씀드릴께요 " 하고 양보했다


내 나이

늙은 것도 모르고

꽃들이 한창                 -가와이 지계쓰-


이내 식구들이 다 모였는데 애들은 바로 국제거리 간다 해서 현주랑만 티룸에 들어갔다












여기는 티백이나 인퓨저 없이 아예 우린 차를 가져왔다.

우리가 농도 조절도 못하고, 두세번 우려 먹지도 못하고, 주방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놓고 소분해 오는 건지도 모르고 ...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좀 실망했다


녹아서

서로 화해했구나

얼음과 물                      -야스하라 데이시쓰-


내가 시킨 쉐이크류. 맛은 별로.


일생에

한 가지 비밀

레몬의 노란색                       -기노시타 유지-



이쁘게 나올 때까지 계속 찍으래서...








큰일이다.

해가 갈수록 사진은 늘어나고 만족도는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계속 살아 나가서

먼 옛날이 된다                        -게리 스나이더-



Afternoon Tea 래서 영국의 에프터눈티를 생각했는데 그냥 상호가 그런거 였다.

3단 트레이나 스콘 같은 것도 없고, 티룸이라고 하기엔 스파게티 같은 음식까지 팔고 있었다






둘이 앉아 애들만 기다리다 현주 혼자 화장품 사러 갔다 오고, 또 기다리다 혼자 아이쇼핑 가고... 

그 사이 옆 테이블에선 혼밥하고 가는 여자가 두명이나 바뀌었고 손님중 9할은 다 여자들인데 혼자 빈 그릇 앞에 두고 앉아 있는게 곤욕이었다.



애들은 신나게 거리구경하고 



아빠에게 뺏긴 스벅 라떼도 사 먹고




2시반 넘어 무사히 찻집으로 돌아왔다.

은재에게 엄마를 찾아 오랬는데 한참 있다 혼자 왔다. 이번엔 현주가 실종됐다


그대 돌아오지도 못할

어느 곳으로

꽃을 보러 갔는가                           -나쓰메 소세키-


내 어깨에 기대고 자는 짱이를 차 안에서 재우기 위해 은재에게 우리 먼저 주차장에 가 있겠다고 하고 일어났다.


1,448 엔이 나왔는데 현찰로 1,450 엔을 내고 나와 짱이랑 엘리베이터쪽으로 가고 있는데 여직원이 뒤쫓아와 거스름돈 2엔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팁이라고 하기도 무안한 동전 두닢


차 안에서 졸고 있는데 현주랑 은재가 두리번거리며 지하주차장에 내려 온 건 3시 반

현주는 6층 갔다가 만물장터에서 신나게 시식을 하고 와서 은재를 만나 다시 다시 올라가 은재까지 시식시켜 주느라 늦었다고 한다.

" 잘 했다 " 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