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3. 16:00ㆍJapan 2017
차 안에서 하드를 먹으며 가족과 수다를 떨다 불연듯 옛날 생각이 났다,
네비가 없던 시절, 외국에서 이런 곳을 찾아다니려면 지도보랴, 교통상황 보랴, 표지판 보랴, 행인에게 길 물어보랴, 장난치는 애들 혼내랴... 난리가 아니였는데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금은 뭐 자율주행차 타는 기분
한적한 사거리에 패밀리마트 발견. 디저트 먹으려 바로 입성
오키니와 편의점들은 대부분 교통요지에 넉넉한 주차장까지 확보하고 있어서 동네노인들의 사랑방역활까지 한다.
현주가 들어가다 유리창에 포스터를 보며 " 황금개띠해라고 개사진이 있네 " 한다
올해가 개띠해이고 그것도 황금개띠해이고 마트에 붙여 놓은게 그런 의미라는 것조차 난 지금 첨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커피머신이 반가워 현주를 위해 라떼를 뽑았는데... 역시 실망
한국과 비슷한 아이스크림에 확 땡기는게 없어 들었다 놨다...
은재는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프런트로 가져갔는데 아줌마직원이 일본말로 설명하며 다른컵에 커피를 받아 줬다.
브랜드가 다른 제품이었나본데 친절하게 바꿔주었다,
밭 주인이
허수아비 안부 묻고
돌아오네 -요사 부손-
배불러도 디저트 들어갈 위장은 따로 있다
내 초이스
치과에 왠 코끼리인가 했는데 뒤에서 은재가 ' 상아치과 '
태평양전쟁때 일본군이 주둔했던 해군사령부는 시내 깊숙히 있었다
도심속 공원같은 야산위로 점점 올라가니 정상에서 주차 할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자리를 안내한다. 장애인 주차코너에 차를 대고 건물입구를 찾아 계단을 오르자 전몰자 위령탑이 먼저 보였다. 일본인들은 꼭 들려 가해자인 조상에게 분향 묵념을 하고 가는데 피해자인 한국인 입장에선 전혀 동조할 생각이 없어 옆에 전망대로 향했다.
있는 국화
모두 던져 넣어라
관속으로 -나쓰메 소세키-
머리 아프다고 차에 있겠다는 짱이를 맑은 공기 마시라고 억지로 끌고 올라왔더니 멍하게 앉아 있다
나하에서 높은 지대 꼭대기라 시내가 다 내려다보였다. 전쟁을 전두지휘하는 사령부 입지로는 최고의 자리같았다.
그 당시엔 이 전망대 주변이 막사와 대공포등으로 꽉 차 있었겠지.
불 태워 버린 일기의 재 이것뿐인가 -다네다 산토카-
나하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들이 바다쪽으로 기수를 돌려 구름을 뚫고 올라가고 있다.
제주도(1,849)의 2/3 크기인 오키나와(1,206) 에 인구는 150만명이다. (제주도는 65만)
전쟁후에 변변한 산업시설도 없는 이 섬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십여년전까지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경제활동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잘 사는 비결은... 관광
커피가 맛있었음 현주가 다 먹어 버렸을텐데 나에게 떠 넘겼다
" 결자해지해~ "
" 도저히 못 먹겠는데... 조금만 남기면 안될까 ? "
이런 산꼭데기에 정말 땅굴이 있을까, 계속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산마루에 유일한 건축물인 원형건물 쪽으로 향했다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한 중년여자가 문 옆에서 막 담배에 불을 붙여 피우다가 날 보며 모라고 말을 걸었다.
' 혹시 ..있어, 시간 ? '
내가 못 알아 듣고 영어로 되묻자 당황해하며 웃었다,
실내로 들어와보니 진짜 지하땅굴 안내판이 있었다,
땅 밑에 있는
많은 것들
봄을 기다려 -마쓰모토 다카시-
기념관 전시물
여자들은 무서워서 안 들어간다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혼자라도 간다고 하자 마음 약한 맏딸이 보호자로 따라 나섰다
입장료는 인당 440엔. 아줌마 둘이 앉아 있는 프런트로 가서 장애인 할인을 묻자 동반자 1인까지 반값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 카드나 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한다. 그냥 보면 내가 정상인으로 보이나보다 내심 뿌듯해 하며 한국정부가 발행한 복지카드를 내밀자 (한글로 씌어 있었으니)휠체어 마크만 확인하고 그냥 돌려주었다.
땅굴입구를 가리키며 계단이 많다고 미리 겁을 주었다.
지하벙커 구조도.
평면도만 보면 착각할 수 있는데 내려가보니 개미굴처럼 각 방들이 단차가 있었다.
파랗게 표시된 곳만 관람가능 구역이고 그 이외로 폐쇄된 구역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일단 106개 계단을 내려가야
멀리서 바라보면
인간이 타며 내는 불빛은 기껏해야
60와트 3시간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中)
각각의 방은 통신실, 사령관실, 의무실등 용도가 따로 있었는데 상당히 작았다.
무너질까봐 크게 안 팠나 ? 생각을 하면서도 폐쇄공포증이 장난 아니게 들었다
전쟁당시엔 이 통로에 부상병과 시체들을 줄비하게 쭈욱 뉘여놓았다,
화장터 불빛
손금의 생명선을
비춰 보았지 -류시화
일본군은 전쟁이 수세에 몰리자 집단 자결을 하게 된다. 자살 수류탄 파편자국이 벽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 인간적인 동정심이 들었다. 일본인의 집단의식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참 독한 인종들이다
이 지하벙커 안에서만 2천여구의 사체들이 발굴 되었다. 지상부대까지 합하면 일본군 4천명 자결사망,
못통 속의 못이 모두 구부러져 있다 -오자키 호사아-
통로 옆 도랑엔 지금도 지하수가 계속 흐르는 있다
내가 다니는게 힘들어 보였는지 은재가 두려움을 무릎쓰고 혼자 나머지 지하방들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어왔다
핵소고지라는 영화가 한때 유명한 적이 있었는데 제목도 이상해서 그 당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는 실화라는 걸 알고 며칠전에 일부러 찾아봤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이 일본군 지하벙커 안에 침입해서 내부의 상황을 보여주고 또 집단자살하는 장면도 나온다
<인용사진>
그 곳이 여긴가 ? 정보를 찾아보니 핵소 고지의 현재 위치는 나하市 북부 우라소에市에 있었고 주인공 이름을 딴 Desmond doss point 까지 유적지로 조성되어 있었다, 일본군들이 지하벙커를 한두곳에 파 놓은게 아니였다
<클릭하면 확대됨>
태평양 전쟁때 오키나와에서만 현지인 15만명. 일본본토인 7만7천이 사망했다. 미국인도 1만4천명이나 희생해가며 이 섬을 점령해 27년동안 식민통치를 하다 징징대는 일본정부에게 1972년에 돌려줬다. 명목상 일본땅이지만 이 섬의 중앙부위에 넓은 면적을 아직도 미군부대가 사용중이고 일본 정부도 미국눈치만 보고 있는 상태다, 오키나와를 동양의 하와이라고 한다는데 나에게는 하와이처럼 실제로는 미국령이라는 속뜻으로 들렸다.
밥을 지어라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올해의 쌀로 -에자키 요시히토- (동일본대지진후 하이쿠공모 대상)
볼게 많진 않아서 금방 끝내고 출구를 따라가자 언덕 중턱으로 나왔다
우리가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는데 " 택시 잡아줄까 ? " 우렁찬 목소리로 물어보던 수위 할아버지
차 가져왔다니까 저기 가서 수돗물을 받아 벌컥 마시고 있다
조금 쉬었다가 주차장으로 올라왔다
줄이 풀린 개 한마리가 은재에게 달려가 반갑다고 꼬리를 치더니 이번엔 나에게로 달려와 친한 척을 했다,
주인인 듯한 여자가 흐느적거리며 쫓아와 개를 끌고 갔다.
나비 사라지자
내 혼이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안도 와후-
땅속과 공중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전쟁의 기세는 폭풍같은 역사의 흐름속에 다 떠내려가고,
한갓진 여느 오후의 시간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화단블럭에 앉아 유약한 현주랑 짱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은재가 대견하고 고마워졌다,
" 나이 들어서도 아빠랑 이렇게 여행 다니자 " 라고 에둘러 말하자 은재가 다 안다는 듯 말없이 미소를 띄었다
덧없는 세상은
덧없는 세상이건만
그렇지만은 -고바야시 잇사-
'Japan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宗像堂은 우리를 발효시키고 (0) | 2018.01.04 |
---|---|
12> 모찌리도후가 지마미두부로 바뀔때 (0) | 2018.01.03 |
10> 덴뿌라 먹으러 OJIMA (0) | 2018.01.03 |
9> 치넨미사끼에서 굴려버렸 ! (0) | 2018.01.03 |
8> Mikiko는 凉風의 (0) | 2018.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