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치넨미사끼에서 굴려버렸 !

2018. 1. 3. 11:00Japan 2017




본격적으로 자기위해 조명을 끄고 누웠다가 불연듯 달의 정기를 받고 싶어 커튼을 걷었다.

서늘한 달빛이 발코니 창 가득 서려들었다,


잠 오지 않아

열어 둔 창틈으로

어둠 속 매화                       -가와이 오토쿠니-


속이 거북해 수시로 깨다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다리를 침대에 걸치자 비로소 잠이 깊이 들었다.


달도 보았으니

나는 세상에 대해

이만 말 줄임                      -가가노 지요니-


은재는 밤에 별도 보고 아침에 해 뜨는 것도 보고 다시 잤다고... 부지런하네

현주도 푹 자고 컨디션을 회복해 아침 일찍 꽃단장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발코니에 의자 두개.

서로 마주 보거나 제멋대로 있지 않고, 한 방향을 향해 나란히 놓아둔 것이 왠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셔터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넋을 놓고 아침 풍광에 빠진 현주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발코니 의자에 먼지 하나가 없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나오자 그제서야 눈치 챈 현주가 ' 형도 당해봐 ' 라며 카메라를 달래서

(모델의 강력한 항의로 얼굴을 블라인드 처리했습니다)


나를 마구마구 찍어댔다


마른 정강이

병들었다 일어난

학의 추위여                    -요사 부손-



여름이라 마른거야

그렇게 대답하고

이내 눈물짓네                 -기타무라 기긴-



Mikiko의 부지런한 남편이 뒷마당 울타리를 바짝 가지치기 해 놓았네


호박은 뚱뚱해지고

나는 말라 간다

한여름 더위                            -산 도운-



수도꼭지에 새겨진 아이콘. 찬물은 파란점, 온수는 기다란 곡선.

간단한 디자인의 변화만으로도 실제 사용감이 달랐다. 찬물은 한번에 딱 끊어지고 온수는 서서히 뜨거워 지는 것 같은 느낌이 절로 들어 신기하다. 이번 여행에선 빨래를 안 하려고 했는데 물과 볕이 좋아 아침에 샤워하며 몇 가지를 주물러 널었다 


억지로 부지런해지는 Wi-Fi 족




작아도 4명 타기에 불편이 없었던 렌터카


아침을 먹으러 내려간다



Mikiko의 남편이 실내화를 신기좋게 돌려놓고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Mikiko에게 ' 팬션건물이 안도 다다오 스타일' 이라고 했더니

' 몇몇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이 집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의 친구라 ' 고 알려주었다. 지은지 4년밖에 안되어 그런지 심플하고 깨끗했다.




 






팬션이름  凉風


이건 '웰빙' 이란 뜻이라고 한다


Mikiko 남편의 이름 (문패에 熊谷이라고 써 있었음)을 묻고 같이 식사 하자고 했더니 극구 사양했다.

그래서 우리 식구만 아침상을 받았다







햅쌀

한 톨의

빛이여                       -다카하마 교시-


법을 다 먹고 Mikiko에게 주변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물어봤더니

" 오늘까지 일본의 신년휴일이라서 문을 닫은 곳이 많을 거라 " 며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많은 맛집들이 우리를 헛걸음시킨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이틀째는 방청소를 안해주고 필요하면 수건만 갈아준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주인장 내외가 이층까지 수건가방을 가져와 바꿔갔다,



외출준비 끝








팬션 앞 골목과 마을 풍경



귀뚜라미여

이 집도 시시각각

낡아가는 중                       -야마구치 세이시-


동구밖 신작로 갈림길. 우린 우회전


짱이는 아침부터 (한국)외대를 갈까 ? 아(주)대를 갈까 ? 고민중이다.

외대는 통학이 불가해서 낯선 사람들과 기숙사생활을 해야 하고 아대는 통학과 알바가 가능한 장점이 있긴 하다

엄마는 막내딸과 -대학원이지만-대학동문이 되는 것도 신기하다고 아대도 괜찮단 애매한 입장이고 언니는 외대를 밀고 있다,

내가 학교다닐때 유신고가 아주대랑 같은 재단이었고 바로 옆에 있어서 가끔 아주대 도서관에 가곤 했다. 면학분위기보단 그곳 빨간색 음료수 자판기에 차가운 얼음이 든 탄산음료수 빼 먹는 맛에... 그 당시 반에서 성적이 중간 이하애들이나 아주대를 갔었기에 우리가 ' 아세아주립대학가냐 ? ' 고 놀리곤 했다, 나에겐 아대는 그런 존재이기에 짱이의 고민에 " 미친거 아냐 ? " 라고 확 면박을 주고 싶은데 참고 또 참으며 " 학비는 걱정하지 마라 " 라며 알바를 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 말에 이내 기분이 좋아진 짱이.


산모퉁이를 돌자 오른편으로 태평양이 아침 햇살을 튕겨 눈이 부셨다


문을 나서서

열 걸음만 걸어도

넓은 가을바다                 -마사오카 시키-


한적한 동네 한복판을 지나가는데 다리 짧은 개 두마리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뛰어 와 얼른 차를 멈췄다.  



두마리가 차 밑바닥을 지나 길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백미러로 확인한 후 우리에게 용건 없음을 씁쓸해하며 동네를 벗어났다,


조금 더 가자 갈림길 한가운데 유원지 휴게소가 나타났다. 넓다란 주차장엔 벌써 차들이 많이 와 있었고 길게 늘어선 매점과 기념품점등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었다. Mikiko가 알려준 카페도 그 곳에 있었다. 난 한적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원했는데, 이 곳이라면 확실하게 문은 열었겠다 싶다.

치넨미사끼공원을 가려면 여기에 주차해야 하나 ? 네비를 보니 조금 더 들어가도 될 거 같아 멈추지 않고 우회전했다.


몇백미터 들어가자 길끝에서 할아버지가 열심히 주차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오른편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어 마크를 보여 줬는데 할아버지가 자꾸 왼편으로 돌아가라고 경광봉을 흔들었다. 빈자리에 주차하고 공원안내판을 따라가다보니 할아버지 손짓이 이해가 됐다. 왼쪽 오른쪽 주차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빙 돌면 된다는 뜻이었나보다. 


치넨미사끼 공원




강렬한 태양을 피해 정자안으로 슴어버린 피부 연약한 인종들









계단으로 내려가면 빠른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고 난간도 없어 객사할 확율이 높아 보였다,

멀더라도 빙돌아 풀밭을 가로 질러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데 애들 둘이 나를 보러 올라오고 있다




" 왜 ? "

" 엄마가 아빠 굴리라고 해서 왔어 ㅋㅋ "






" 다 내려왔어, 안 굴려도 돼 " 하자 애들이 시킨 일 다 했다는 듯 사라졌다





이번엔 현주가 돌아왔다




" 날 굴리라고 애들을 보냈냐 ? "



" 내가 언제 ?  난 그냥 ' 굴러 내려오는게 낫겠다' 고만 했는데 ! "



패러글라이딩 타는데 8만원이다, 초보도 탈 수 있대서 현주에게 한번 해 보라고 적극 권했다. 

근데 이 인간 안 넘어오네.

' 그거 태워 바로 한국까지 날려 보내면 다이어트도 되고 좋을텐데 ...'













기암괴석이 있는 한적한 해변과 전망 좋은 호텔.

바다너머로 난조 항이 희미하게 보인다







하루 종일 말없이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면 밀물이 차왔다                    -다네다 산토카-




저 연속되는 두개의 고가도로를 조금있다 보러 간다



섬에 섬같은 치넨미사끼를 실껏 감상하고 다시 주차장 정자로 올라왔다


그 사이 버스가 한대 와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풀어 놓았다.



툇마루 위에

어디선지 모르게

떨어진 꽃잎                      -다카하마 교시-


차로 돌아와 나는 네비 세팅하는 사이 현주는 두 애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찾아 먼길을 다녀왔다


다시 삼거리에 유원지 휴게소까지 나왔는데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치넨미사끼 방향과 반대인 산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왜지 ?

저녁때 찾아보니 근처에 ' 세파유타끼' 가 있었다, 오키나와 류큐왕조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성한 곳이라 일본인에겐 치넨미사끼보다 더 유명하다. 여수 향일암 바위보다 더 볼품없어 난 일찌감치 밀처 뒀었다.


오늘뿐인 봄을

걷고 걸어서

작별했어라                  -요사 부손-


아까 산비탈에 보이던 신비한 고가도로를 찾아간다.

터널로 된 고개를 넘자 약간의 주차공간이 나타나서 차 빼기 좋게 돌려 놓고 전망대를 향해 그늘 한점없는 길을 걸어간다.


현주가 ' 평소에 그렇게 운동 좀 하지 ' 지청구를 했다,


" 아까보다 더 볼게 없어 "

은재가 너무 솔직하다

















급경사를 완화하기 도로를 Hair pin curve 로 만들어 놓다보니 두개의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니라이 바시(橋)와 카나이 바시다. Nirai 와 Kanai 는 ' 바다 너머 이상향 ' 을 뜻하는 오키나와 말이다

<클릭하면 확대됨>


이 도로를 오르락 내리락 운전해보니 하체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쫄깃거렸다. 아마도 롤러코스트 설계자에게 맡긴 듯.



여기서 반도끝 파란 정자지붕이 있는 치넨미사끼가 보인다




은재가 툭하면 가족사진을 찍자고 들이대는 덕분에 이번 여행에선 사진들이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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