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 19:00ㆍJapan 2017
아이들이 일찍 돌아왔으면 오키나와섬 남부에 유명한 덴뿌라집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 시점을 딱 넘겨 버렸다. 보금자리인 우리들의 두번째 숙소를 찍고 출발했다.
애들의 무용담이 바닥난지가 언젠데 우리는 아직도 아메리칸 빌리지가 있는 차탄정(北谷町)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길을 잘못 든 이면도로까지 퇴근차로 꽉 막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언제나 줄에 묶여 짖을 줄만 아는 개입니다 -다네다 산토카-
기노완市를 통과하고 나하市 서쪽 외곽을 따라 남하하다 높은 언덕위에 올라섰다. 어스름한 바다를 두손으로 애워싼 만위에는 도시의 불빛들이 온통 깔려 반짝거린다. 항구도시인 난조市다. 오키나와 남부가 관광지로 인기가 없는 이유를 여기서 보니 알겠다. 중부는 미군기지가 점유하고 북부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보존되어 있지만 남부는 그저 볼품없는 시가지의 연속이다. 문닫은 가게들, 음침한 골목, 인적없는 거리, 대조적으로 너무나 화려하고 눈부신 빠찡코 건물들... 그나마 불 켜진 점포들도 겉으로 봐선 뭘 하는 곳인지 알수 없어 객지인에게 전혀 의지가 안된다. 얼핏보면 한국과 흡사한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눈에 익은 피자집이 반가워 현주에게 피자 먹을 거냐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섣달그믐날
정해진 것 없는 세상의
정해진 일들 -이하라 사이가쿠-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고 숙소는 아직 멀었고 차는 막히고 가뜩이나 무서운데...
도롯가 은행 유리문이 혼자 스르르 열렸다 닫혔다. 차 안에 여자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질렀다. 요즘은 귀신도 무인 ATM기계를 사용하나보다
뜸금없이 네비가 11시 방향으로 빠지라고 신호를 보냈다. 순진하게 따라가 보니 길이 막혔다. 가뜩이나 무서운데 한 남자가 자전거를 비벼 타고 가는 뒤를 천천히 따라 어두운 주택가 골목을 빙 돌아 나왔다. 네비 무시하고 그냥 직진하자 그게 맞는 방향이었다, 갑자기 왜 그랬을까 ? 생각해보니 그 위치에 가벼운 도로공사중이어서 네비가 임시길을 알려준 것이었고 지금은 다시 정상복구된 상태였던 것이다.
이 네비는 AI, 꼭 인공지능 같은 느낌이 든다, 얘를 들면
" 이 길은 좌회전(우회전) 전용 차선이 있으니 안전운전 하세요 "
" 곧, ..... 옆으로 좌회전 하세요 "
이렇게 친절하게 한국말로 알려 주는것도 대단한데, 차 안에서 예상못한 멘트가 흘러나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이제 서서히 어두워지니 라이트를 켜세요 "
풍경 소리
들리지 않으면 외롭고
들리면 성가시고 -아카보시 스이치쿠쿄-
방광은 탱탱한데 콩팥은 한번 터져 보라고 소변을 계속 내려 보내고 있다. 숙소를 10 km 남겨 놓고 어쩔 수 없이 길가 편의점으로 쑤욱 들어갔다,
" 얘들아 미안하다, 오늘도 저녁은 편의점이다 "
식도락은 일찌감치 쉰도시락이 된걸 알아버린 식구들이 군말없이 내려줬다. 뻣뻣해진 다리를 철퍽거리며 화장실부터 찾아 들어갔다.
물새 조용히
자신의 몸을
흐르게 하네 -시바타 하쿠요조-
물이 빠지자
허수아비 다리가
가늘고 길어라 -요사 부손-
어제 맛있게 먹었던 치킨생각이 나서 넉넉히 사고 샐러드, 컵라면 등등 한 바구니 주워 담아 은재랑 동전까지 탈탈 털어 계산.
혼혈필의 마른 여직원이 일본어로 모라 하는데 알아 들을수가 없어 그냥 " Thanks you " 하며 등을 돌리자 나지막히 한국말이 들렸다
" 감.사.합.니다 "
허걱 우리가 한국인인 걸 어찌 알았지 ? 한국말로 너무 떠들었나 ?
나를 위해
불 늦게 켜 주시게
저무는 봄날 -가토 교타이-
그나마 볼일도 보고 저녁거리도 마련했더니 남은 길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회색도시가 비로소 끝나고 검은 숲이 낮게 이어지는 지평선과 수평선이 연이어 나타나니 숙소가 가까워졌나보다
외진 마을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다 반가운 한자를 만났다.
凉風
자신의 밥그릇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오기와라 세이센스이-
이번 숙소는 자연속에 보금자리를 튼 개인팬션이다.
1층은 주방과 안마당 그리고 주인부부가 기거하고 2층은 게스트룸만 3개 있는 단촐한 구조
메일로 몇번 인사를 나눴던 Mikiko 는 안경 쓴 깡마른 50대 여인. 남편과 둘이서 이 펜션을 관리하는 것 같았다
서로 인사 나누고 웰컴 음료 한잔씩.
뒷마당 숲 위로 둥실 떠있는 달빛풍경이 전형적인 일본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달빛 아래
의자 하나를
갖다 놓는다 -하시모토 다카코-
은재가 엄마를 '막돼먹은 영애씨' 에 나오는 라미란 닮았다고 " 넣어둬 ! 넣어둬 ! " 대사를 흉내내며 놀리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닮아서 나도 덩달아 " 넣어둬 ! " 했더니 라미란이 날 무섭게 째려봤다,
은재가 자기손에 네일아트한 ORION 맥주 그림과 컵받침
여름 소나기
혼자서 밖을 보는
여인이여 -다카라이 기카쿠-
2층엔 Wi-Fi 도 없으니 1층으로 내려와 해야 하고
방에 TV도 없고 냉장고도 없어 아이스박스를 빌려 주시고
커피포트나 잔도 없어 보온병과 컵을 올려다 주셨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진정한 휴식만 하라는 거지.
아저씨가 트렁크를 2층으로 옮겨다 주고, 아이스박스등을 들고 계속 서 있길래 내려 놓으셔도 된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호의를 몸으로 표현하려고 과도하게 굽신거리는 모습이 나를 더 불편하게 한다.
내부가 고급스럽고 깨끗했다.
현주는 이 팬션이 맘에 든다고 연신 감탄하고 짱이도 편안해 한다.
아이들 방에 가서 편의점에서 사온 걸 펼쳐 놓고 저녁을 먹는다
귤을 깐다
손톱 끝이 노란색
겨울나기여 -마사오카 시키-
은재랑 짱이가 수분크림 가지러 주차장에 내려 갔다가 은재가 무섭다고 소리 지르며 먼저 뛰어 올라 왔다고 짱이가 들어오며 툴툴댄다.
1층 안마당에 내려와 재털이를 찾아 맛있게 담배를 피운다
달빛이 너무 밝아
재털이 비울
어둔 구석이 없다 -후교쿠-
짱이가 저녁 먹을때 쓴 컵을 가지고 내려왔다. 주방에 넣어 놓으려고 했는데 불만 켜 있고 잠겨 있다. 짱이에게 누가 컵을 씻었냐고 물어보니
" 언니가 씻었는데 '필리핀 가정부에게 못 되게 한 업을 지금 받는 거 같아' 라고 했어 " 한다
난 잠시후 올라왔고 은재랑 짱이는 스맛폰 한다고 추운데 10시 넘어서까지 1층에 있었다 한다
저녁때 먹은 질긴 문어와 밤늦게 욕심부리고 마신 커피 한병이 소화가 안돼 밤새 꺽꺽거리고 있는데 현주도 속이 불편하다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 나 이제 편의점 음식 안 먹어 ! "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혼자 투숙하고 있는 옆방 일본남자가 아침 잘 먹고 방에 가서 손목을 긁고 목을 매 이중으로 자살시도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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