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세 후쿠기숲에서 고양이를

2018. 1. 1. 18:00Japan 2017

 




30 여분 잤나...살짝 깼을때 미군들이 코코스에서 밥을 다 먹고 나와 도로를 제 집앞처럼 무단횡단해 쇼핑몰쪽으로 몰려 가는 걸 물끄러미 보다 또 잠이 들고...여자들이 차 문을 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깬 시간은 4시반.

츄라우미 수족관을 가기엔 늦어버려 비세마을로 목적지를 변경해 출발했다




잠이 덜깨 멍한채 앞만 보고 운전하는데 조수석에 현주가 복숭아 음료수 빈병을 들어 마시려고 했다. 담배냄새 날까봐 내가 얼른 뺐어, 다 마셨다고 했더니

' 내가 먹으려고 산건데 왜 다 먹었냐 ' 고 원망했다. 정신이 번쩍 나서

' 이건 분명히 내가 산거 ' 라고 하자 뒷자리에 애들이 아빠편을 들었다.

'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 ...


나도

너처럼 늙을까

가을의 나비                            -고바야시 잇사-





해무리지는 수평선에 반한 현주가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도로도 한산하길래 공터로 살짝 빠져 차를 세웠다


가을 저물녘

큰 물고기 뼈를

바다가 끌어당긴다                -사이토 산키-





산을 깎아 만든 시멘트공장을 스쳐, 어제 바람맞은 스시집앞으로 해서, 츄라우미 해양박물관 입구에서 어서옵쇼 하는 주차요원의 손짓을 무시하고 한적해진 국도를 계속 달린다. 그런데 한참을 가도 마을이 안나온다. 이상해서 다시 차를 돌려 밭사이로 들어서자 숲속에 민가들이 모여 있는 비세마을 동구밖길이었다,


집 한채 앉을만한 공터에 차를 대며 혹시 주차비를 받는 곳인가 두리번 거렸다. 

해지는 저녁 시간이라 인적도 드물고 적막했다,








바다냄새를 맡은 새끼거북이처럼 가로수 사이길을 따라간다



반도끝에 위치한 이 마을은 방풍림으로 일본 망고스틴이라는 후쿠기나무들을 심어 놓았는데 삼백년후 큰 숲을 이루었다

번잡한 츄라우미 수족관에 질린 관광객들이 한적하고 독특한 이 풍광에 반해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겨울 이 시간에도 자전거를 빌려 탄 연인들이 지나가고 카메라를 맨 남자가 혼자 골목골목 서성이고 있다,














귀뚜라미 우네

개를 묻은 마당

한구석에서                       -마사오카 시키-


















겨울 찬 바람

저녁 해를 바다로

불어 내리네                              -나쓰메 소세키-




머물 곳이 없다 순식간에 저물었다          -다네다 산토카-



한글로 쓰여 있는 도너츠란 글자를 보고 현주가 사달라는데 「자전거 렌탈 오키나와 도너츠 서비스」라고 써 있었다




원래는 느긋하게 바닷가에 앉아 석양을 감상하려 했는데 짱이가 추워해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반팔로 다니는게 신기했는지 동네 할아버지가 말을 부쳐 왔다











맨홀뚜껑이 범상치 않아 사진을 찍자 할아버지가 " 모토부 " 라고 써 있다며 한참 설명을 하신다.

맨홀 가운데 다리는 세소코 대교


일본의 맨홀뚜껑은 더러운 하수도도 예술로 승화시킨다. 아마 들고갈 정도로 작았음 맨날 도둑맞았을 듯...

각 지자체에서 홍보목적으로 자기네 특징을 살려 만들었는데 그 맨홀뚜껑 자체를 구경하러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어부지리가 생겨 버렸다.

솔직히 이런 건 좀 부럽다. 

<인용사진>


<인용사진>


<인용사진>





비세 마을엔 약 250채의 집들이 있다는데 숲속에 듬성듬성 박혀 있어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한 남자의 등뒤를 쫓아 집안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온 식구들이 대청마루에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한옥엔 한국 고유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 집안 어른은 안방에 앉아 밥상을 받았고 대청마루는 농경사회에 식구들 작업장 역활도 톡톡히 했다. 뒷간은 위생상 멀찌기 떨어뜨려 놓았다. 그러나 미관주택 시민아파트 문화주택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주택구조의 변화는 한국인의 삶을 뿌리뽑아 뒤집어 버렸다. 집안 최고어른도 이젠 배고프면 제발로 나와 손주들과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아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기다려야 했고 용도 축소되어 넓기만 한 거실은 점점 안방 역활을 하게 되고 개개인들은 각자 방으로 피신했다. 식구들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변을 보는 상황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틀이 바뀌면 안에 내용물도 바뀐다. 젊은이들이 더이상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고,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고 핵가족화가 되고 패륜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저 대청마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그 대청마루를 오늘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을 광장으로 나왔다. 넓은 주차장을 두고 카페와 공중화장실이 마주보고 있다.



갑자기 식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 고양이들이다,





병든 기러기

추운 밤 뒤쳐져서

길에서 자네                     -마쓰오 바쇼-







혹시 따뜻한 차좀 마실 수 있나 카페 안을 두리번 거리자 주인아저씨가 어서 오시라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먹아야 하는 식당 분위기여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오키나와 수호신이라는 샤샤.

입 벌리고 있는 건 수컷, 입을 다물어 이빨 두개만 보이는 건 암컷




차 세워놓은 곳까지 돌아왔다. 


낮은 담장 너머로 포근한 불빛이 스며나오는 집


또 다른 집. 안에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길에서도 고스란히 들여다 보였다. 



어둑어둑해지는 마을


해가 지자 구름사이에서 퍼런 달빛이 참으로 교교했다


나를 데리고

내 그림자 돌아오는

달 밝은 밤                                        -야마구치 소도-


숙소로 오는 길

현주가 저녁 분위기를 담아 보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 보지만 번번히 실망만 했다.



가을 밝은 달

아무리 가도 가도

딴 곳의 하늘                        -가가노 지요니-


숙소 오는 길에 적당한 식당을 찾아 보기로 했는데 현주가 카페 같은 곳에서 남자가 뭘 먹고 있다고 해서 차 돌려 가보니 캠핑장 사무실이었다

근방에서 편의점을 봤다고 하는 세사람의 말만 듣고 가다보니 숙소에 다 와서도 편의점이 안 보였다. 숙소를 지나쳐 조금더 가니 이내 편의점 LAWSON 이 나왔다.

이번엔 오뎅도 사고 닭고기도 사고 컵라면등 저녁거리를 푸짐하게 담았다. 2,240 엔

어제 먹었던 계란찜 같은게 맛있어 그것도 사서 점원 할아버지에게 전자레인지에 데워 달랬더니 직원들이 손사레를 치며 차게 먹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푸짐한 저녁거리

먹기전에 일단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놓았다





오키나와 식당들은 기대 이하고 편의점은 기대 이상이다




첫날 저녁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둘째날 저녁.




어렸을 때 못해본 걸 이제야 소원풀이하는 은재














다 만들어놓고 흡족해하는 자매




은재가 자기 샆에 기념으로 갖다 놓는다고 한다



밤바람이 시원하다


도둑이

남겨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료칸-


발코니에 나와 킥연을 즐기고 있는데 옆방에 은재가 나와

" 그럴 줄 알았다. 딱 결렸어 " 하며 사진을 찍어갔다



밤에 은재가 발파스라고 가져왔다. 싫다고 하면 평생 안해줄까봐 그냥 놥뒀는데 의외로 화끈거리는 발이 서늘해지니 잠이 잘 왔다.

딸들이 있어 여행이 더욱 재밌다


쇠못 같은

앙상한 팔다리에

가을 찬 바람                             -고바야시 잇사-



밤에 내린 눈

알지도 못한 채로

잠이 갓 들어                           -마쓰에 시게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