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0. 13:00ㆍGermany 2016
고속도로를 타고 외곽으로 빠져 뒤셀도르프 서쪽에 있는 미술관을 찾아간다. 우리 차는 에어컨을 틀어도 더운데 이 살인적인 땡볕에 오픈카 탑을 열고 달리는 사람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러면 피부 한방에 훅 가는데...
차는 우리를 태우고 숲속길, 비포장길, 농로를 골고루 끌고 가더니 마침내 밭 한가운데에 팽개쳤다.
밭너머 숲에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 정확하진 않아도 맞긴 맞는가 보네 ’ 하며 입구를 찾아 갔다.
입구에 '차량통행금지'라는 푯말에 쫄아 근처 노천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땡볕을 걸어 들어간다.
21-Stiftung Insel Hombroich (집단촌) raketenstation hombroich 4. 41472 Neuss
정문을 지나 안으로 깊이 들어가도 사람이 안 보인다. 폭염을 감안해도, 미술관치곤 분위기가 이상했다.
정문 옆 카페도 초라하고, 입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던 꼬맹이도 우리를 앞질러 걸어 들어갔다.
나무그늘 아래로 몸을 피했다.
“ 지도 필요해 ? ”
컨테이너를 개조한 건물 앞을 지날때였다. 안에서 한 남자가 나오다 우릴 보고 물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끄덕이자 영어로 된 팸플릿을 꺼내 와 건내 주고 사라졌다.
그 남자의 집 문앞 그늘에서 얻은 팸플릿을 보며 쉬고 있는데 그 남자가 금방 돌아왔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더 있어도 된다고 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 여기가 미술관이에요, 현대건축물이예요, 아님 박물관이예요 ? ”
앞에 특이한 건물을 가리키며 묻자 독일남자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약간 서툰 영어로 우문현답을 했다.
“ 난 음악가, 작곡가고 이 타워에 살아. 앞 건물은 공연장이고... 음, 저 너머 집엔 조각가도 살고, 화가도 살고, 일본인도 살고... 그런데 넌 어디서 왔냐 ? ”
우리가 남한이라고 하자 대뜸
“ 아냥~하시요 ! ” 어눌한 한국말로 때늦은 인사를 했다.
이 외딴 구석에서 서양남자에게 한국말 인사를 들을 줄 상상도 못했다. 우리가 신기해 하자 ‘ 평소 언어에 관심이 있다 ’ 고만 대답했다. 내가 이 미술관의 이름인 Hombroich 발음을 묻자 한글자씩 또박또박 불러 주었는데 아쉽게도 듣자마자 잊어버렸다. 그 남자의 긴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이 곳은 예전에 미국과 벨기에의 미사일 군사기지였으며 우리가 가려는 미술관은 여기가 아니라 좀 더 남쪽으로 1km가량 내려가야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됐다. 이곳은 예술인들의 거주단지였고 창작을 후원하는 재단과 미술관 이름이 같다 보니 잘못 찾아온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묻지 못했다, 혹시나 유명한 음악가인데 우리가 못 알아보는 우를 범하기 싫었다,
아래 지도에 좌상방은 예술촌, 우하방은 미술관
<클릭하면 확대됨>
“ 아녕히~계세요 ” 그의 한국말 인사를 들으며 헤어졌다. 그는 몇 나라의 인사말을 할 줄 알까 ?
예술촌 전경
<인용사진>
인적 없는 단지 안으로 더 들어가자 진짜로 냉전시대의 전쟁장비들이 검붉게 녹슨채 곳곳에 남아 있어 으스스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벙커가 나올거 같다
계속 가다보면 당연히 빙 돌아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도로를 얼마 안 남겨놓고 눈앞에서 길이 없어져 버렸다. 독일남자가 준 팸플릿 속 지도에도 길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을거 같아 가보니
역시 작동불가
현주가 큰 바위를 돌아 나무 사이로 언덕을 올라가더니 잠시 후 모습은 숨긴 채 목소리로만 나를 불렀다.
우리 같이 우리에 갇힌 사람들이 꽤 있었나 보다. 흙이 까진 길 비슷한 게 언덕위로 나 있긴 했지만 급경사에다 양편에 가시나무가 억센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내가 ⅓정도 올라가다 미끄러져 가랑이가 벌어진 채 비탈길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서 있자, 현주가 자기를 잡고 올라오라고 내려와 줬다. 현주의 바지춤을 잡고 몸을 끌어 당기는 순간 바지 고무줄이 쭈욱 늘어났다. 한 사람은 당황했고 한 사람은 황당했다. 팔은 가시에 긁혀 가렵고 왼발은 허공에 떠 무용지물인데도 그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상인에 맞춰 홈이 파진 길이라 내 신체구조와는 전혀 안 맞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지팡이도 우산도 별 도움이 안됐다.
그 다음은 뚜렷한 기억이 없다. 아마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는지...현주 팔과 부실한 나뭇가지를 붙잡고 어찌어찌 고개까지 올라왔다.
' 올라오면 잔디밭' 이란 현주말이 뻥이었다. 울산바위처럼 좁은 등성이에서 바로 건너편으로 급하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나마 잡초가 무성해서 아예 철퍽 주저앉아 내려 왔다. 바로 뒤에서 현주가 두 번이나 미끄러지며 나를 덮치는 바람에 가속도가 붙어 아래까지 거의 구르듯 내려올 수 있었다.
예술촌 약도, 빨간 화살표는 우리가 개척한 신루트
<클릭하면 확대됨>
그늘에 앉아 사태를 수습해본다,
난 양말 빵구 !
현주 바지엔 연두색 풀물.
현주는 이런 곳에 자기를 데려왔다고 원망하면서도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신났다고 했다.
팸플릿을 보니 우리가 탈진해 앉아 있는 건물이 2004년 안도 다다오(Tadao Ando)가 설계한 Langen foundation이었다.
그는 트럭운전수, 권투선수, 목수 등의 일을 하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입지전적인 일본인으로 비, 바람, 물 등의 자연요소를 건축물 안에 끌어들여 동양의 자연관조 사상을 현대적으로 추상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여기도 왔었군.
외벽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마당에 넓은 인공호수를 만든... 이 건물도 그의 건축 특징을 다 갖춘 교과서다.
한 서양 가족이 연못을 돌아 우리가 널부러져 있는 쪽으로 오고 있기에, 현주에게
“ 저 사람들을 놀래켜줄까 ?”
“ 어떻게 ? ”
“ 저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니가 나한테 ‘ 안도 다다오~’ 라고 불러 ” 라고 했다
잠시 후 그들이 가까워졌을 때 현주가 각본대로 했다
“ 안도 다다미 ! ”
그들을 놀래키려다 내가 놀랐다.
백인 남자가 재밌다는 양, 졸지에 다다미가 된 나에게 Good afternoon !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들판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스마트폰으로 ' Mozart piano 21번' 을 틀어 바람에 실려 보낸다,
남의 집 앞마당에 앉아 오후를 즐긴 후, 차를 세워놓은 곳까지 와서 차를 끌고 다시 안으로 한바퀴 돌아 나왔다,
아랫동네에 있다는 진짜 미술관을 찾아갔다.
푯말은 세워져 있는데 주차장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숲속 공터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로 들어갔다,
현주가 앞장서 가 보더니 길이 막혀 있다 한다
반대편에 외딴 건물이 보였다,
현주가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 보고 '저 멀리 한 사람이 있다' 고 한다.
내가 들여다 보다 그 남자랑 눈이 마주쳤다,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을 당기자 열렸다. 특별한 안내판도 없는데, 여기가 미술관 가는 입구 맞다고 한다.
" 미술관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냐 ? " 고 묻자 50m 축적지도를 보여주는데 거리가 장난아니였다. 다른 탈것도 없고 중간에 계단도 있고... Museum Insel Hombroich는 외지인이 찾아오는 것이 귀찮은지 깊은 숲속에 숨어 장애인의 접근을 거부했다.
현주랑 ‘지금까지의 돌발상황 만으로도 충분하다’ 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어차피 전시물보다는 건축물을 보고 싶었던 것이고... 미술관부터 왔으면 아까 독일남자도, 미끄럼도 못 탔을 뻔했다. 오늘은 운이 따라줬다고 밖에 할수 없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뒤셀도르프 숙소로 돌아온다
그런데 네비가 좀 이상하다. 잘못하면 괘종시계 불알처럼 이 길만 왕복하다 기름 떨어질게 뻔했다. 네비를 무시하고 멀리 보이는 시내 빌딩숲만 보며 계속 달렸다.
숙소를 몇백미터 남겨 놓고 또 네비에 속아 헤매다 간신히 도착
난 오늘 땀 흘린 옷 빨고, 샤워하고 낮잠.
현주도 풀물 들은 옷 빨고 오늘 산거 정리하고 집에 아이들과 카톡...
'Germany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 Ronnefeldt (0) | 2016.07.21 |
---|---|
19> Rossmann (0) | 2016.07.20 |
17> Classic Remise (0) | 2016.07.20 |
16> Vierdaagse Afstandmarsen (0) | 2016.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