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4. 21:00ㆍNetherlands 2016
많은 여행자들에게 네덜란드는 유럽여행의 1순위는 아닐 것이다. 나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여행한 후라 이번 목적지를 네덜란드로 정한 건 구색을 맞추려는 속셈이 있음을 실토한다. 네덜란드가 그런 취급을 받을 정도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간택은 물어 뭐하랴. 이 상황에서 세 나라가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려는 건 ‘Join, or Die’ 명언에 따른 절체절명의 선택일 것이다. 그들의 혜안을 존중하여 베네룩스 삼국을 여행하기로 최종결정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출발일까지 몇 달의 여유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다방면으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모아 여행주제를 정하게 되는데 베네룩스는 그런 면에서 딱 끌리는 매력이 없었다. 풍차, 치즈, 수로, 튤립 등은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고 그렇다고 역사가 깊거나 콜로세움, 노트르담, 빅밴, 가우디 같은 유명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이 부족하다... 그럼 반대로... 현대적인 것은 어떨까 ? 금융산업, 다국적 기업, 첨단기술 등에서 베네룩스는 항상 상위권에 있었으며 옛 영화속에만 존재하는 고리타분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 중에 날 조바심나게 한 것이 있었으니 현대건축이었다.
이 나라들에 상대적으로 오래되고 웅장한 건축물이 적은 이유는 지반이 약하거나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요인도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다. 중세의 유럽 대부분은 봉건주의 국가였다. 농(업)노(예)위에 영주가 있고, 영주들을 관리하는 국왕이 있었으며 그 수직사회구조의 최상점엔 교황이 있었다. 교황은 대성당을, 국왕은 궁전을, 영주는 산성을 크고 화려하고 높게 건설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수백년간 이어진 이러한 장원제도는 화려한 유럽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예외였다. 국토의 대부분이 10세기경부터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간척한 땅이었기에 장원제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유 재산권과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일찍 계몽되었다. 주민들을 강제노역 시킬 큰 권력도 없었으며 하란다고 순순히 노역할 주민도 역시 없었다. 참고로 지금의 벨기에 땅은 그 시절 네덜란드 영토였다.
네덜란드에서는 De stijl (The Style)이라는 문예사조가 유행하여 1930년대 건축의 중흥기가 한번 있었다. 이 시기는 “Dutch modern" 이라 부르는데 불행하게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바로 암흑기를 맞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로테르담등의 주요 도시들은 독일군의 폭격을 맞아 완전히 파괴된다. 이번엔 호황을 맞았다. 1980~90년대 네덜란드 경제는 큰 도약을 하게 되는데 로열더치셀, 필립스, ING, 유니레버, 하이네켄등 수많은 기업들이 전세계의 돈을 필립스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 들였다. 그 여력으로 많은 도시들이 재건되었고 세련되고 창조적인 현대건축물로 폐허를 채워 나갔다. 이 2차 중흥기를 ” Super Dutch " 라 부른다.
네덜란드처럼 국민성이 혁명적이거나 전쟁을 겪고 재건된 경우가 한 두나라가 아닐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영국도 그런 과정을 지나왔는데 건축에 있어 네덜란드만의 특징이 있는가 ? ' 있었다' 분명히 뭔가 달랐다. 그 차이점을 살펴보고 원인을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제다. 난 건축엔 문외한이기에 건축가나 공급자로서의 전문적인 지식도 견해도 없다. 어설프게 떠벌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사전에 건축물에 대한 정보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저 지도와 사진 한 장씩만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나 건축물의 사용자로서, 직관적으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충실히 전달하려 한다.
남자들의 소위 3대 취미이자 비싼 장난감이라고 하면 자동차, 시계, 카메라를 꼽는다. 그러나 최고는 따로 있는 거 같다. 워낙 존재비중이 커 안 보일 뿐이지 난 그것이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니 하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한 남자의 일생에서 ‘나만의 건물을 갖는 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중학교때 처음 콤파스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 이후 한때는 나도 건축학도를 꿈꿨다. 이번 답사여행을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이 각자의 원하는 스타일대로 마음속에 건물을 한 채씩 짓기를, 그 건물이 땅위에 우뚝 서기를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이 여행기에 사적인 잡담들이 많이 섞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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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고양이 만수르가 내 팔을 타고 안기고 현관 앞에 앉아 배웅도 하며... 유난히 살갑게 군다.
흐믓하면서도 마지막 인사인가 싶어 은근 불길하다.
' 엄마의 무거운 트렁크를 안 들어줬다' 고 은재를 혼냈더니 출근길 내내 삐져 있다. Shop 앞에 내려주고 영동고속도로를 탔다,
요며칠 장마로 날씨가 꾸물꾸물 했는데 오늘은 아주 화창하다.
공항 주차대행 서비스를 찾아 갔는데 청사입구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메리트가 전혀 없었다, 직원이 내 차를 픽업하며 " 다음에 연락주시면 윗층에서 받아가겠습니다 " 하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다.
땀나게 걷고 오르락 내리락 이리저리 돌고 ... 보딩패스를 받으러 갔다.
남은 마일리지로 좌석승급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 해보니 '오늘 Business 석이 꽉 찼을 뿐더러 이 표는 해당이 안된다' 는 대답을 들었다,
4층 Hub 라운지를 찾아갔다.
여직원이 현대 Honers club으로 예약이 안되어 있다며... 우리 행색을 보고 당일 입장하게 해 주었다,
어제 저녁엔 현주 상담이 거의 8시에 끝났고, 한의원 컴은 Update 되는 바람에 끄지도 못하고 나왔다.
이제서야 멍한 정신이 서서히 맑아지며 떠난다는 실감이 든다.
Hub 라운지가 리뉴얼 오픈하더니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샤베트로 바뀌었다. 뻔하지 뭐, 반출 못하게 하려고...
차가운 샤벳을 두 그릇이나 갖다 먹었더니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배를 틀켜쥐고 라운지를 나와, 현주는 면세점으로 난 해우소로.... 여행 며칠간은 변비걱정을 안해도 될 거 같다.
비행기가 약간 늦게 이륙했다,
“선물이예요”
비행기 맨끝까지 가서 비어 있는 두자리에 앉자 스튜어디스가 뒤에서 조용히 나타나 속삭였다. 우리에게만 준 작은 선물을 현주랑 한껏 들떠 열어보니 노란색 귀마개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우릴 말랑말랑하게 보고 이걸로 귀와 입을 막으려는 거 같았다.
‘꿍! 딸깍, 부스럭 부스럭’
귀마개로는 역부족이었다. 캐비넷을 끌고 금속 손잡이를 돌리는 소음과 충격이 4D영화처럼 온몸으로 전해지더니 이번엔 음식냄새가 솔솔 코를 간지럽혔다.
잠시 후 식판을 받았는데 뭔가 좀 어색하다.
아~ 두툼한 플라스틱 식기와 알루미늄 호일로 덮인 기내식이 아니라 얇은 일회용기에 비닐이 붙은 딱 햇X스타일이었다. 얇아진 건 그릇만이 아니었다. 기내지인 Morning calm은 홀쭉해졌고 Skyshop지는 더 묵직하고 고급스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꾸겨 넣은 보딩패스를 다시 펴 보았다. 분명 ECONOMY 란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지만, 우리가 Cargo(화물기)에 잘못 탔든지 대한항공이 이코노미를 ‘경제적’이라고 사전적으로만 해석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기내식을 즐기며, 지루한 비행시간을 버텨보려 했던 바램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릇을 비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홱 채갔다. 승무원들이 사라진 기내에 일순간 적막감이 드는 듯 싶더니 갑자기 실내등이 다 꺼졌다. 취침시간이다. 시간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었다.
생체시계를 빨리 돌려 억지로 자다 깨보니 두시간이 지났다. 창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대지는 누런 사막만 계속되다가 어느새 두터운 카펫을 깐 것처럼 진녹색의 타이가(Taiga)숲으로 바뀌고 있었다. 멀리 숲 한가운데에 자그만 물웅덩이가 보였다. 지금쯤 몽고를 지나고 있으니 홉스굴(Khovsgol) 호수겠거니... 추측했다. 그런데 물고기 한 마리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호수 옆에 누워 있었다. 몽고에 저렇게 큰 도시가 있었나 ? 의자에 붙은 모니터를 눌러 항공지도를 열어보니 은빛 물고기는 이르쿠츠크(Irkutsk)고 웅덩이는 바이칼(Baikal)호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이르쿠츠크는 러시아문학의 페치카요, 동시베리아의 관문이며 대륙 횡단열차를 타고 몇날며칠 고생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나의 바이칼은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가 눈바람을 맞으며 건너던 푸르고 신비로운 호수지, 저렇게 한눈에 다 들어올 리가 없어. 저건 절대 아니다. ‘ 난 아직 안 본 것이다 ’ 최면을 걸며 얼른 창문을 내렸다. 의지랑 상관없이 난 의자 깊숙이 몸을 뉘인 채 광활한 시베리아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간식
내가 기내식 비닐을 벗겨내자 현주가 쏙 가져다 먹었다. 한국에선 감히 안 하던 짓을 한다. 외국여행을 나오면 공주님이 된 줄 안다.
영화 두편보고 러시아 상공을 지나가는데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서 커피가 잔 밖으로 넘쳤다,
비행기가 작아서 그런지, 대기가 불안정해서 그런지, 맨 뒷자리라 Fish tail현상인지...
수감 11시간만에 네덜란드 영공에 들어왔다. 반가운 맘에 내려다 본 화란(和蘭)의 첫 인상은 태풍홍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재난현장 같았다. 밭고랑마다 물에 반사된 햇살이 눈부시고, 집과 마을은 물위에 떠 있고 들판 곳곳이 침수되어 있었다.
20여분 지각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공항은 작았고 입국심사줄은 길었고 심사관의 영어질문은 못 알아 들었다,
다행히 짐을 금방 찾아 렌터카사무실을 찾아간다.
직원이 서류를 챙겨주며 주차빌딩에 가서 차를 받으라고 알려줬다.
빌딩이 얼마나 넓은지 그 안에서 무빙워크(moving sidewalk)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네덜란드의 건물 규모가 의외로 커서 식은땀 좀 흘렸다.
주차빌딩 끝에 차 픽업장소에 도착
Europcar 직원에게 서류를 내밀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소형차를 끌어왔다. 한때는 프랑스 대통령의 차였다지만 지금은 완전히 싸구려 이미지로 전락한 씨트로앵(Citroen)社의 C3 모델이었다. 현주랑 각자 흩어져 차 도장면과 휠 등에 상처여부를 꼼꼼히 스캔하자 직원이 ‘새차니까 흠 없을 거’라고 한다.
좌석에 앉아 계기판을 보니 정말로 누적거리가 248km밖에 안되는, 이제 막 재갈을 물린 야생마였다. 난 그저 당나귀면 되는데... 여튼 좋다.
낯선 말등에 올라타 시내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뒤쪽에서 밝은 빛이 급작스럽게 달려 들었다. 백미러로, 젊은 서양놈이 황당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는게 비쳤고 이내 굉음을 내며 경주마 포르쉐가 나를 추월해 내뺐다. 그때까지도 난 맨끝 4차선에 있었을 뿐이다. 여기가 아직 활주로인가 ?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나는 네덜란드의 미친 속도감에 휩쓸려 버렸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숙소가는 국도변 풍경
카 스테레오를 끄는 버튼도 몰라 요란한 테크노 음악을 한가득 실은 채 어찌어찌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다.
다행히 프런트 직원이 내 이름만 듣고도 서류를 금방 찾아 방을 배정해 주었다.
우리방은 긴 복도 맨끝이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사용법을 몰라 화중지병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사방이 아직도 환하고 심장은 2박자 유로 비트에 맞춰 춤추고 있다.
짐 정리하고 씻고 잘 준비를 했다, 긴장했는지 계속 체기가 느껴진다.
지평선끝까지 초록의 들판, 깨끗한 거리. 현주가 선진국답다고 반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둑어둑해져 온다,
잠을 청하기 위해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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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이번 여행내내 우릴 위협했다.
유럽에 도착한 첫날, 프랑스 니스에서 공휴일을 맞아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을 향해 대형트럭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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