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산업 "

2015. 9. 13. 13:19독서

 

 

 

 

 

 

영국은 참 알면 알수록 대단한 나라인거 같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베이비스도, 지난 번 읽었던 「캣 센스」의 저자 존 브레드쇼도 ... 다 영국인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하게 보였지만 알고보니 세세한 부분에 모두 전문가들이었다, 글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난독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나마 어렴풋하게 이해 되는 몇 부분을 발취해 놓는다

 

많은 시장 연구자들이 보기에 신경과학의 태동은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이들 중에서도 낙관론자의 입장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얼마 안가 뇌의 '구매 버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뇌의 구매버튼이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품목을 장바구니에 담도록 만드는, 물컹물컹한 회색 물질로 된 특정 부위를 말한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남아프리카의 광고전문가 에릭 디 플레시스는 많은 기업에게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야말로 그다음에 이어질 행동에 가장 지대한 감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은 공포임을 보여준 연구도 있었다. 스탠포드의 신경과학자 브라이언 넛슨은 구매와 관련된 대부분의 즐거움은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발생한다고 밝힌 뒤, 기업에게 이에 맞게 판매 행위를 구성하라고 충고했다. 가격표와 관련된 '고통'을 경감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돈을 지출하는데 따른 심리적인 고통은 현금을 쓸 때보다 신용카드를 쓸 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심리학자들과 행복경제학자들은 화폐와 물질적인 소유가 정신적인 행복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소비자 심리학자, 소비자 신경과학자, 시장 연구자 등 돈을 쓰면 어느 정도의 심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증명하는데 여념이 없는 엄청난 인력집단에 비하면 이런 전문가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노동을 회피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의사들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2008년에 발표된 영국 정부의 한 보고서는 "질병이 노동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 생각을 퍼뜨린 장본인은 의사들" 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는 의사들이 이런 생각을 더 이상 퍼뜨리지 못하도록 캠페인을 시작했고, 아무리 질병이나 장애가 있더라도 고용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라는 요청 때문에 의사들의 공식적인 '병결 증명서'는 '적격 증명서'로 변경되었다. 의사들은 일이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에서 국가각 작성해준 진술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미국의 생산성 전문 강사인 팀 페리스는 한때 수상쩍은 두뇌강화 영양 식품을 팔다가 이제는 고의 경영자들이 업무 시간 동안 두뇌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팔고 다닌다.

자문이라는 명목의 이런 순회공연은 완전히 다른 다양한 전문 영역들을 섞어놓은 잡탕밥 같다. 동기부여의 심리학과 건강의 생리학이 뒤섞이고, 스포츠 코치와 영양학자의 견해를 종종 들먹이며, 여기에 신경과학계의 소문과 불교의 명상법을 버무려 넣는 식이다. '피트니스', '행복', '긍정성', '성공' 같은 다양한 개념들이 방법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이 서로 뒤섞인다. 이 모든 것에는 근면 성실하고 행복하며 건강하고 무엇보다 부유한 인간이라는 이상적인 인간형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무결점의 엘리트를 만들어주는 과학은 이 같은 영웅적인 자본주의적 관점을 딛고 서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임원 대상의 많은 웰니스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진짜 힘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번아웃' 이라고 하는 증상이다.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기업인들에게 심근경색, 뇌졸증, 신경쇠약의 발병률이 높은 것은 바로 이 증상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인의 대다수는 아토스 등과 임원 대상 건강 전문 강사의 활동 영역 사이 어딘가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약들을 복용하고 나면 사람들은 어떤 분명한 의학적 혹은 정신의학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충족감과 희망을 느끼는 능력이라는 의미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쿤의 관찰에 따르면 그의 새로운 물질에는 '항우울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슬픔과 침울함, 그리고 그 정반대 상태인 기쁨과 들뜸도 신경화학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놀라운 함의가 도출되었고, 이는 그 이후로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총체적인 개인의 성장을 긍극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총체적인 개인의 몰락이라는 질병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낙천성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는 비관성이라는 병을 잉태할 것이며, 경쟁을 중심으로 구축된 경제는 패배주의를 질병으로 몰고 갈 것이다. 정신의 최적화라는 벤담식 기획이 더 많은 것을 약속하기만 할 뿐 어딘가에서 다 함께 멈춰 서야 할 것 같다는 감각을 잃어버릴 때, 공리주의적 측정은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절망적일 정도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골치 아픈 사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행동 경제학이 우리가 사회적이며 이타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을 강조하고 있을 때 소셜 미디어는 기업들에게 소비자의 사회적 행위를 분석하고 먹잇감으로 삼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최종 목표는 19세기 말 마케팅과 경영학이 막 걸음마를 떼던 시기의 그것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돈을 버는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 각자의 친구와 지인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꿀 도구적인 존재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이머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들은 이미지나 주변 사물들가 그 자체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람들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필사적으로 매달리지만, 이 상호작용은 개인적사적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얕은 수준의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성인의 38%가 일종의 소셜 미디어 중독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정신의학자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담배나 알코올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거주자의 행동에 꾸준히 반응할 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행동을 바꿀 방법을 모색하는 '스마트 시티'와 '스마트 홈' 역시 새로운 과학적 유토피아를 건설 중인 영역이다. 심지어 기업들이 알고리즘 분석이나 스마트 홈 모니터링만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집으로 바로 상품을 보내주는 '예측쇼핑' 덕분에 머잖아 구매 결정에 대한 책임에서마저 해방되는, 소비주의의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한 반전이 일아날 수도 있다

 

마음을 혼자서 탈이 나기도 하는 일종의 탈맥락화된 독립 개체로 바라보고, 이를 전문가의 모니터링과 교정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오늘날 엄청난 양의 불행을 양산하는 문화의 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스트레스, 불안의 발생에는 권력 박탈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긍정심리학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권력 박탈이 신경이나 행동상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제도와 전략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이를 부정하면 행복과학이 해결하겠다고 나선 문제들을 도리어 악화시킬 뿐이다

 

데이비드 스터클러와 산제이 바수는 불황이 공중 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폭넓게 분석하면서 긴축정책이 심신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불필요한 사망을 야기해왔음을 정밀하게 설명한다. 또한 이들은 불황이 구중 보건 개선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도 보여준더. 어느 쪽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결국 정치적 문제다.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가들은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만, 조직의 구조와 목표가 노동자의 심리와 생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령 사람들은 민간 기업에서보다 비영리 조직에서 일할 때 더 큰 충족감을 느끼고, 따라서 스트레스도 더 적게 받는다. 오늘날 정책 입안가들이 그러하듯 노동의 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노동을 행복의 기여 오인으로 바라볼 경우, 인강을 약간 더 발달된 '언어 행동'을 갖춘 실험실 쥐로 바라보는 행동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물질주의적 가치를 강하게 내면화해온 경영학과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행복과 자아실현의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돈을 너무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행복 수준이 낮아 괴로워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리고 물질주의와 사회적 고립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외로운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 더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물질주의적인 사람은 외로움에 시달릴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이다.

광고와 마케팅은 이런 부정적인 악순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광고업과 마케팅업은 이런 부정적 악순환을 유지하는 데서 분명한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소비와 물질주의가 불행한 개인주의 문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남는 한, 이 악순환은 마케팅 종사자들에게 돈을 벌어다줄 것이다,

 

행동주의적인 행복과학은 개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이런 지식에 맞춰 해석하고 이야기하게 될 때 최고의 성공을 구가하게 된다. 비전문가인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실패와 슬픔을 두뇌나 고장 난 마음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 끊임없이 불화하는 다양한 성격들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는 인지 행동 치료의 격려를 받으며 자신의 사고를 더 의심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더 관대해지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킨다. 우리는 심지어 한 세기 전의 문화 역사학자라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절박감 때문에, 자신의 행동과 영양 상태나 기분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갖다 바치며 정량화된 자기 모니터링을 자청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양분되어버리고 나면 자신과의 관계는 말 그대로 고독과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많은 행복 전도사들은 이 두 전선에서 동시에 활동한다. 이들은 공식 통계를 분석하고, 신경과학의 교훈을 끌어오며, 데이터를 캐내고, 행동을 추적하여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객관적인 관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난 다음 이들이 새로운 '세속적 종교'와 명상 기법, 마음챙김을 밀어붙이면, 비과학자들은 여기서 제공하는 서사를 가지고 자신만의 행복을 완성한다. 그 결과 힘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되고, 이로써 힘이 없는 자의 언어는 힘 있는 자의 언어를 교란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는 힘 있는 자들에 데한 공적인 성토나 비판이 전혀 불가능하다

전문가 엘리트들은 갈수록 기이하고 대중들과 동떨어진 언어와 이론을 사용한다. '이들'이 인간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과 '우리'가 인간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은 서로 멀어지며, 이 때문에 포용적인 정치적 숙고의 가능성이 훼손되고 있다

 

최근 들어 곤경을 탈의료화시켜 제약 산업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1980년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3판의 총책임자였던 로버트 스피처마저 이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의학적인 진단을 확대하는 분위기라고 주장한 일이 있다. '사회적 처방'은 대안적인 사회*경제적 제도를 만들어가려는 노력과 의료화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중간 지점의 하나다.

 

이 정도가 내가 이해할 수준의 문단이니 이보다 훨씬 많은 페이지들은 얼마나 이해가 안되는지 ...

 

그나마 책 맨 마지막 문단에서 간략히 정리를 해줘서 다행이다

 

이런 모험속에 내재된 철학적 모순과 그 역사적*정치적 기원을 잊지 않는다면 최소한 단순한 육체적 혹은 신경학적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는 그것, 불행 속에서도 새로운 행복의 기미를 찾아내는 그것, 바로 희망이라는 것의 근원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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