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0. 21:02ㆍCzech 2015
잔디가 깔린 식당 앞마당은 야트막하고 하얀 담으로 둘러 처져 있었다,
원형 테이블엔 관광객 가족이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고, 젊은이들은 긴 테이블에 맥주를 한잔씩 들고 서서 웃고 떠들고 있다... 여름저녁의 유쾌한 분위기에 우리도 틈에 끼고 싶은데 빈 자리가 없어 계단을 더 올라가 실내로 들어왔다.
입구에서 마침 한국말이 들려왔다. 젊은 부부가 꼬맹이랑 앉아 있다.
부인은 누가 듣겠냐는듯 잔소리를 계속 퍼부어댔고 남편은 맥주잔만 홀짝이며 아내의 싫은 내색을 못 들은척 뭉기적 거리고 있었다.
' 여긴 수컷들의 성지라고 ! 프라하를 데려갔음 플젠은 양보해야 할 거 아냐 ! ' 라는 표정으로,,,
이 건물은 1824년 몰트 하우스(맥아 저장고)로 지어 졌고 19세기 후반에는 대장간, 소방서, 병원, 감옥으로도 사용되다가 1906년 비로소 레스토랑으로 용도 변경되었다. 그래서 넓은 홀이 없고 복도들만 사방 팔방 뻗쳐 있었다.
지금의 인테리어는 1920년대 플젠의 황금기때 융성했던 펍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바 한구석엔 던져진 말굽처럼 프리첼이 수북히 쌓여 있었는데 아마도 서서 간단히 맥주만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안주 같았다
학교 다닐때 껌좀 씹었을거 같은 여자 웨이터를 간신히 붙잡아 주문을 성공했다
나 파르카누,
이 식당은 근처 맥주공장과 직접 파이프를 연결하여 저온살균과정을 거치지 않은 신선한 필스너 우르켈을 바로 마실 수 있다.
지난번 부드바이서 맥주처럼 필스너 우르켈 (Pilsner Urquell)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을거 같다.
체코의 플젠(Plzen) 지방은 독일어로 pilsen이라고 쓰고 형용사로 pilsner 가 된다. 플젠에서 생산된 맥주만 '필스너' 상표를 달았다. 그런데 이 맥주의 매력적인 쓴맛과 복잡한 향에 매료된 독일 및 주변 국가에서 너도나도 제조법을 베껴 필스너란 이름을 붙여 팔게 되었다. 이에 필스너회사는 독일 법원에 소송을 내는데 패소하게 된다. 판결은 이렇게 났다 ' 플젠 지방의 필스너가 원조인 건 확실하지만 지금은 그 용어가 맥주 맛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 필스너는 현존하는 모든 맑고 황금색인 라거맥주의 원형이 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자신들의 원조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중에 우르켈 (영어로 original)이라는 말을 붙여 내놓았고 지금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역시 나라가 힘이 있고 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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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에일맥주만 있었을땐 쓴 맛이 강하고 색깔이 거무틱틱해서 나무 컵에 따라 마셨다,
후에 필스너에서 처음 만들게 된 라거맥주는 탄산음료처럼 톡 쏘고 색깔이 영롱해 맥주잔이 유리컵으로 확 바뀌었다.
체코와서 맥주는 진짜 원없이 마신다. 0.5 리터 40 코루나 (2,000 원)
한잔으로 현주랑 나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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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과 빵조각을 넣은 스프. 육수국물이 끝내줘요. 35 코루나 (1,750 원)
치킨 스테이크 169 코루나 (8,450 원) 요리다운 요리라고 현주가 극찬했다.
돼지고기 스테이크 199 코루나 (9,950 원) 에는 매쉬 포테이토와 함께 스페인풍 깔솟(Calcot-구운 대파) 이 곁들여져 스페셜한 맛을 창조했다
현주 입맛에 딱 맞은 샐러드 69 코루나 (3,450 원)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소스까지 싸악 발라서 맛있게 먹었다,
물 한잔 달라고 했더니 시판하는 생수를 가져왔다. 29 코루나 (1,450 원)
대부분 메뉴 가격이 9로 끝나 속 보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가성비 최고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식당안이 더웠다.
총 541 코루나 (27,050 원) 결재
8시쯤 밖으로 나오자 한결 시원해진 바람이 불어왔다. 행복한 기분을 연장하기 위해 오늘의 하이라이트, 재즈바를 찾아간다.
석양이 온 천지를 발그스름하게 물들였다
부에나 비스타 클럽은 구시가지와 약간 떨어져 있었는데 가는 길엔 인적이 더 없어 썰렁하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문은 닫혀 있고 종이 한장만 달랑 붙어 있었다.
아쉬워 하며 동네를 나오는데 케밥집과 터키의 지명인 '안탈리아 ' 이름을 내건 음식점이 보였다.
주변에 아랍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인가보다
두번째로 ' Jazz rock cafe ' 를 찍고 다시 구시가지로 들어온다
또 중심광장을 지나
횡한 도로들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동네 부량자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섞여 있는 공원
건너편 골목에 주차된 경찰차를 의식하며 신호등도 없는 조그만 사거리를 지나 간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차가 경적을 울리며 따라오길래 길옆에 차를 세웠다.
'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잡지 ? '
당당하다가 일순간 조금전 맥주 마신것과 렌터카 서류들을 안 갖고 다닌게 떠올라 급 당황됐다. 뒷차에서 젊은 경찰이 내려 내 차로 다가왔다.
창문을 열자 입술옆에 흰 띠가 말라 붙어있을 정도로 바짝 마른 입을 달착거리며
" Driver license ! " 딱딱한 말투로 명령했다.
" 없는데요. 호텔 IBIS 에 두고 왔어요... "
" Passport ! " 패스포트 ? 지갑 ? 당황해서-여권인지 지갑인지도 혼동한채-가방을 열어 보이며 지갑 없다고 했다
" Passport ! " 또 다시 무표정하게 명령했다
그제서야 폰을 켜고 이미지로 저장된 여권을 보여주자 두 경찰이 서로 돌려보며 황당해 웃었다. 내가 ' 재즈 카페를 네비로 찾고 있었다 ' 고 하니 경찰이 뒤를 가리키며 ' 그 길은 못 나오는 길 ' 이라고 했다, 진입금지,일방통행 표지판도 분명히 없었고 네비도 이 길을 안내했는데...
젊은 경찰이 안되겠는지, 짧게 내뱉었다
" 내려 ! "
' 아 젖됐다 ! 삥 지대로 뜯기겠구만 ' 궁시렁거리며 마지못해 내렸는데, 탈주범이나 은행 털이범이라도 잡힌 줄,
삼삼오오 모여 있던 구경꾼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 가던 길 가시라고 ~!! ' 하는 시선으로 한바퀴 야려준 다음 보란듯이 몸을 휘청휘청 절뚝거리며 경찰을 따라 갔다.
뒤에 빠져 있던 고참이 내 꼴을 보더니 젊은 경찰에게 살짝 표정을 지었다
' 야, 그냥 보내줘 '
상황이 역전되었다. 자연스럽게 풀어줄 빌미를 주려고 이번엔 내가 물었다.
" 그럼 Jazz rock cafe 는 어느 길로 가야 돼요 ? "
젊은 경찰이 따라오라며 앞장서더니
" 이 길따라 쭉 가셔서 저거 보이시죠 ? 좌회전 하시면 사거리가 @#% ... 하시면 됩니다 "
고맙다고 하고 차로 돌아왔더니 경찰이 무안한 상황을 정리했다
" 다음엔 여권과 운전면허중 갖고 다니십시요 "
불량 육신도 써 먹을 때가 있구만 !
알려준 길을 찾아 가는데
아, 이 C발 놈들이 전조등을 켠 채 우리 차를 바짝 붙어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짜증나서 다음 사거리에서 멈춰 서 있었더니 그냥 지나갔다
Jazz rock cafe 를 드디어 찾았다, 간판불도 켜 있는 걸 보니 문을 열었나보다
가게 앞 파란주차선에 차를 대고 앞뒤차를 보니 뭔 표들을 올려 놨길래 찜찜해서 건너편에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호텔방에 있었던 관광 브로셔.
인터넷을 뒤져 재즈바 주소를 다 달아 놓았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다
왠지 좀 불안한 기분이...
토굴같은 지하 카페.
손님은 하나도 없고 웨이터 남자 둘이 장사 준비를 하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 오늘 연주 있어요 ? " 물었더니 수요일만 공연이 있다고 한다. 힘들게 다시 계단을 올라왔다
' 내~ 오늘 이 도시에서 재즈를 꼭 들어 보고 말리라 !! '
오기가 생겼다. 멍청한 네비를 또 한번 믿어보며 이번엔 Andel music bar 를 입력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플젠 거리
하도 돌아다녀 이젠 네비 없어도 대충 방향감각이 잡혔다
의심스런 일방통행길은 안 들어가고 멀리 돌고 불법유턴하고 가까스로 Andel cafe 를 찾아갔다,
야외 테이블에 손님들은 앉아 있는데 안에서 악기소리 하나 안 들린다. 여기도 마찬가지고 공연은 안 하고 그냥 음식만 팔고 있는 상황.
지금껏 가본 나라중 Jazz 는 의외로 베트남 사이공(saigon) 이 최고였다.
' 성당이나 가보자 ' 고 광장으로 나왔다.
뒷차가 지나가길 기다린 후 길가에 주차하려고 핸들을 크게 돌리는데 하필 그 순간 바로 뒤에 또 경찰차가 있는게 아닌가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냥 다시 출발했다. 사거리를 통과해 가는데 이 놈들이 또 불을 켜고 따라왔다.
아주 징그럽다 징그러 !
어쩌나 보려고, 조금 더 가다가 불켜진 카페 앞에 깜빡이를 넣고 세웠더니 경찰차가 우리를 추월해 지나쳐 갔다.
그러더니 사거리 건너편에 또 가서 멈춰 서 있다. 경광등을 켜 놓은채 ...
또 오면 어쩌나 가슴 쫄이고 있으려니... 다행히 한동안 서 있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카페에 젊은 웨이터가 부끄러워하듯 조신한 목소리로 메뉴판을 놓고 갔다.
피자와 스파게티등을 파는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 커피 되냐 ? ' 물었더니 당연하대서, 커피만 두 잔 시켰다
재즈 공연도 못 보고 경찰에 쫓기고 ...아주 정신이 없다
차분히 앉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벨기에 몽스 (Mons)와 더불어 이번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 2015)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기대하고 왔는데,
행사도 빈약하고 공연도 제대로 안 하고 도시는 초라하고, 호텔비만 올려 놓고... 실망스럽다,
카페라떼, 카푸치노 해서 74 코루나 (3,700 원)
우리 뒤 테이블 가족은 슬로바키아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었다,
체코에 들어와 프라하, 올로모우츠 여기 플젠에서도 질릴 정도로 경찰을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나고 싶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카페 앞길을 달리는 차들이 몇대 지나갔다
' 저런 놈들이나 잡지, 왜 애꿋은 나를 갖고 지랄이야 '
현주 심정
' 너의 고생은 나의 행복 '
이런 곳에 혼자 여행와 오늘 같은 일들을 겪었으면 진짜 외롭고 무서웠을텐데, 그나마 현주가 옆에 있어 제법 의지가 됐다.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인용사진>
유럽의 광장치고는 상당히 큰 레푸블리키 광장
밤이 되니 차 댈 곳도 있고 시원하고 ...
마냥 행복한 현주
10시쯤 되자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지지리도 안 듣는 네비를 달래 IBIS 숙소를 찍었다
구시가지를 삥 돌아 깜깜한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가뜩이나 인적없고 무서운데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공사로 폐쇄되어 있었다. 일방통행이건 좁건 음침하건 그런거 가릴 처지가 아니다. 네비 무시하고 오로지 호텔방향으로만 이리저리 골목길을 뚫고 무대뽀로 달리자 드디어 큰 길이 보였다. 공단지대로 들어와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방이 낮에 보던 것보단 쬐금 더 맘에 든다.
현주는 금방 잠이 들고, 나는 내일을 위해 플젠 자료를 찾다보니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재즈 없는 밤... 재수 없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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