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스키 폴

2015. 8. 9. 10:00Czech 2015

 

 

 

 

앞방 남자가 혼자 부엌에 들어와 조용조용 먹을 걸 해 갖고나간 시간은 아침 7시.

... 침대 이불속을 뿌리치고 일어났을 때는 9시가 이미 넘어 있었다.

 

도라와 야흥이 온 집안을 뛰어 다니며 장난치고 울고 불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기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면도 하러 욕실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 예나가 ' 애들이 소란 피워 미안해요 '라며 아침인사를 대신한다.

 

 

면도 끝내고 나왔더니 예나가 복도 청소를 하고 있다. 

' 애들 주라 '고 어제 산 색연필 두 다스를 건네 주었다

 

" 경찰 부를까요 ? "

아침 햇살이 눈부신 마당에서 예나에게 ' 어제 지팡이 잃어버렸다 ' 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더니 예나가 정색을 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허걱 !  내가 더 놀랐다. 이 나라에선 이 정도가 경찰까지 출동할 일인가 ?

"  아..아뇨 !  그게 아니라 그냥 지팡이 살 곳만 알려주시면 돼요 "

시내 지도를 가져와 신시가지에 있는 큰 병원에 동그라미를 치며 거기 의료기용품점에서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  근데, 내일 문열아요 "

그말을 들으니 오늘이 일요일인게 천만다행이다. 경찰을 부른다느니 병원을 가라느니... 부담백배 !  일이 점점 커진다.

예나부터 얼른 진정시키려고 ' 등산용 스틱이면 되는데 어디서 파냐 ' 고 물었다

 

예나가 남편에게 물어볼테니 잠시 기다리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후 왠 스키 폴을 하나 가져왔다.  짚어보니 조금 높았다.

예나가 다시 후다닥 올라갔다 오더니 이번엔 조금 작은 폴을 쌍으로 가져왔다. 크기는 적당한데 이건 너무 새거라 부담스러워서 처음 거를 쓰겠다 했다. 돈을 내고 싶다니까 낡은 거라 그냥 가지라고 하며 나머지 하나도 갖다 줬다. 졸지에 한여름에 스키 타게 생겼다.

나에게 두개는 짐이고, 이 집에서도 폴 하나는 쓸모가 없을테지만 그걸 보며 오늘을 추억하라는 의미에서 하나만 받았다

신나서 현주에게 자랑했다. 

 

어제 남은 음식에

고기 굽고 샐러드 만들고 시원한 쥬스까지 준비하다보니 아점이 만찬이 되었다,

 

느긋하게 먹고 설겆이까지 끝내고 조금 쉬다가 나왔을 때는 정오쯤이었다

 

구시가지 어제 주차했던 P1 주차장은 당연히 Full

길가 일렬주차된 차들 사이에 간신히 끼워 넣었다, 앞 뒤 차 유리창을 보니 주차영수증이 없길래 나도 그냥 세웠다

 

햇볕이 너무 따갑다

오늘은 체스키 크룸로프 성을 둘러보기 위해 등산로와 계단을 통해 야산을 올라간다

 

 

시작부터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산위를 올라갔더니 한국, 중국 단체부터 다양한 인종, 수 많은 관광객들로 벌써 바글바글했다

 

관광객들은 승마학교와 정원이 있는 고지대로 더 높이 몰려 가고 있었다. 인파에 질려서 현주에게 보고 오라고 하고 나는 성벽에 기대 한숨을 돌리며 사람구경을 했다

 

이 위에서 구시가지가 다 내려다 보였다

 

어제 지팡이를 잃어버린 다리도 보이고...

 

 

 

 

 

교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자 하초가 쫄깃쫄깃 해온다. 옛날 귀족들은 왜 이렇게 아슬아슬한 걸 즐겼을까 ? 

순간적으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주식은 상한가에 팔아야 하듯, 인생도 매일매일 떨어지는 걸 바라보며 구질구질하게 연명하느니 화양연화일때 끝내는 것도 썩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왼쪽 다리를 난간에 걸치다가 ...렌터카는 반납해야 되서 슬그머니 내려놨다

 

현주가 올라가 본 정원

 

 

 

 

 

 

역사지구보다 더 넓고 긴 정원이 높은 산위에 숨어 있었다.

한나절 일정으로 정원까지 둘러 보기엔 좀 벅차겠지만 이 곳이야말로 당시 성주의 권세를 지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쉬엄쉬엄 성쪽으로 더 내려왔다

 

 

현주가 땡볕속에서 걸어 내려오는게 보였다,

몸을 숨기고 있다가 불쑥 나타났더니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려 했다.

아무리 화양연화에 종(終)치더라도 등 떠밀리는건 역시 아닌거 같다

 

 

 

 

 

 

 

현주 뒤에 스트라이프 티 입은 여자를 아랫동네에서 또 본다.

 

아까부터 현주 뒤에 있는 한 산적같은 남자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혼자 왔는지, 큰 DSLR 을 거꾸로 들고 셀카를 찍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내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 동안의 고충을 푼수처럼 토로했다

 

우리 국적을 묻더니 답례로 커플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아무래도 저 산적의 DSLR이 자기게 아닌거란 의혹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찌 이렇게 못 찍을 수가 있을까 ?

 

 

 

 

 

성 중정으로 들어왔다, 여기도 리토미슬성처럼 외벽을 스그라피토 공법으로 대충 처리.

화장실을 찾아 갔더니 아저씨가 6 코루나 (300 원) 내라는 말에 뇨의가 싹 사라졌다. 문앞에서 바로 돌아 나왔다.

 

 

 

 

마당 가운데 우물터에선 무릎이 깨진 꼬맹이가 앉아 있고 아빠가 그옆에 서서 걱정스레 보고 있고 한쪽에선 유모차에 앉은 애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애가 넘어질까봐 부모는 자꾸 유모차에 끼워 넣는데 유모차 비닐은 땡볕에 뜨겁게 달궈져 피부가 척척 늘러 붙었다,

 

 

성내부나 전망 탑은 들어가고 싶은 맘도 없었지만 대기줄이 밖에 까지 늘어져 있었다

 

성입구로 나오자 양측에 깊은 해자가 있고 불곰이 지키고 있었다

물이나 모래를 깔아놓은 해자는 봤어도 곰이 있는 해자는 첨본다.

 

 

한 성주가 사냥을 나갔다가 곰에 쫓기어 도망을 쳤는데 오히려 곰이 도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곰이 새끼를 낳고 새끼가 새끼를 낳고 그렇게 400년을 이어온게 오늘 여기라는 說이 ...

 

 

 

 

샛길로 성을 내려오다 계단옆에 문을 낸 레스토랑으로 빨려들듯 들어왔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걸 보니 근처에 학교가 있나보다,

 

체코의 국민화가 Josef Lada의 그림이 붙어 있는 의자

 

요긴하게 쓰고 있는 스키 폴

 

 

옆 테이블에선 체코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린애들과 함께 앉아 체코 전통 요리를 먹고 있다.

 

 

덥고 힘들어 완전 탈진. 밥 생각은 전혀 없고 수분공급이 절실했다,

상큼한 레모네이드, 시원한 쥬스와 얼음물을 달랬더니 여직원이 좀 퉁명스럽다. 밥 안 시킨다고 삐졌나 ?

 

레모네이드가 두 종류라고 해서 Red 로 골랐다,

과일을 썰어 넣어 영양학적으루다가 훌륭했다

 

 

실내에서 쉬며 당분이 들어오니 컨디션이 좀 회복됐다.

87 코루나 (4,350 원) 계산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까지 하고 나왔다. 유명관광지인데도 체코라 그런지 물가가 착하다.

 

식당 아래층에 크레페 가게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보석점에 들이닥쳐 가게를 다 털어갔다.

참 대단한 민족이다

 

아까 성에서 본 스프라이프 티 입은 여자가 또 사진속에 찍혔다.

큰일이다 정 붙기 시작했어 !

 

현주는 성 입구까지 이어지는 라트란거리를 산책했다.

옜날에 이 거리엔 체스키크룸로프 성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기술자들이 모여 살았다

 

 

.

 

 

 

 

<인용사진>

 

 

라트란거리와 역사지구를 연결하는 나무다리 위에 섰다.

 

어제 우리가 저녁을 먹고 산책했던 섬.

혹시 내 지팡이가 어디에 걸려 있나 ?  한참을 내려다 보았지만... TT

 

<이발사의 다리> 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가 다리 입구에 이발소가 있어서 그랬다고도 하고

옛날 영주 루돌프 2세가 정신질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요양차 여기 왔다가 이발사의 딸에게 반해 결혼을 한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이발사의 딸이 목이 졸려 죽은채 발견된다. 범인은 정신질환 아들일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근대자 영주가 열을 받아 범인이 나올때까지 동네 사람을 한명씩 죽였다고 한다. 결국 이발사가 나서서 자기가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해서 죽임을 당한다. 이후 이발사를 추모해 이 다리에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진실여부를 떠나 아주 성공적인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옥색 지붕의 세련된 성 조스트 교회 (St Jost) 종탑

 

다리 가운데에 예수상

 

아빠가 딸의 아이스크림을 뺏어 먹는 패륜이 백주대낮에 벌어질 정도로 너무 덥다

 

 

역사지구를 빙 돌아 남쪽까지 내려왔다.

내가 하도 힘들어하자 현주가 근처에서 생수와 환타를 사왔다 

 

" 아무래도 이 두개에 70 코루나 (3,500 원)를 받는건 바가지야 " 라고 계속 궁시렁대는 현주.

10 배를 지불하더라도 지금 나에겐 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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