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예나의 양심셈법

2015. 8. 8. 15:00Czech 2015

 

 

 

 

어두컴컴한 숲길이 끝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고 큰 호수가 나타났다  

 

바이크족들이 웃통을 훌러덩 벗고 그늘에서 쉬고 있는 옆을 지나 조금 더 가자

 

도로가 갑자기 물속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당황해서 네비를 확인해보니... 리프노(Lipno) 호수를 건너가라는데 정작 다리가 없다.

내 차가 보트인줄 아나보다.

 

후진해서 맨흙 공터에 차를 빼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캠핑카와 차 몇대가 세워져 있고 자전거족과 바이크족들이 간간히 도착했다

젊은 커플이 차를 타고 와 안쪽에 세우더니 잠시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던 한 남자는 별 재미가 없는지...

둑에 있는 자기 차를 후진으로 몰고 들어와 짐을 챙겨 떠나 버렸다.

 

호수를 왕복하는 배가 있을거 같은데 안내판도 없고, 사람들도 별 동요도 없고 해서 우리도 차안에서 마냥 시간을 보냈다

마트에서 산 과자 한봉지가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구식 오픈카가 들어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차를 세웠다,  우리가 먼저 왔는데 순서를 무시하고 저리 서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하긴 내 이전에 온 차들이 몇대인지 나도 모르지만...

잠시후 오픈카에서 남녀가 내리고 남자가 차 트렁크가 고장났는지 이것저것 만져 보았다,

 

지루해서 주변 산책을 나왔다,

 

 

 

이쪽 상황을 모르는지, 

호수건너 마을은 나른한 오수(午睡)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제법 불어났다,

건너편 마을에 맛있는 햄버거집 간판을 한참 올려다보다 차로 돌아왔다,

 

숲에서 둥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노부부가 트라이시클을 타고 등장했다.

앞은 오토바이인데 뒤는 긴 소파를 얹은 세단이다. 보란듯 성조기까지 꽂혀 있었다. 멋있다고 엄지를 세워줬더니, 할아버지가 그런 반응쯤은 익숙하다는 듯 제스쳐를 취했다, 

 

딱 30분만 더 기다렸다가 호수를 빙 돌아 육로로 가자고 현주에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너편에서 하얗고 조그만 것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일엽편주가 호수를 천천히 건너오고 있다.

 

아니, 저 조그만 배에 이 많은 차와 사람이 어찌 다 타라고 ?

그런데 다행히 호수를 건너려는 차는 구식오픈카와 우리 경차와 성조기 딱 3대뿐이었다

 

이쪽으로 건너오려는 사람들이 다 내리고 ...

 

 

 

 

우리 차들이 차곡차곡 배에 실렸다,

 

 

 

아까 승선을 도와주던 늘씬한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차 안을 쑥 한번 보고 손바닥을 네밀었다,

캐나다에선 정부가 다리를 못 놔줘 미안하다고 차를 꽁짜로 배로 옮겨 줬는데...여긴 아가씨 배를 타는게 유료였다

얼른 체코 동전을 다 꺼내 실컷 가져 가라고 그녀 앞에 두 손을 공손히 펼쳤다. 무슨 동전을 몇개나 가져가는지는 관심이 없고 구릿빛...

 

아가씨가 가죽가방에 돈을 넣고 옆에 레버를 돌리자 조그만 표 딱지가 삐쭉 나왔다,

 

뭔 전철표 같은 것에 185 코루나 (9,250 원) 가 찍혀 있었다

 

아가씨가 모든 사람들에게도 일일히 돌아다니며 배삯을 받고

 

가죽가방 옆에 달린 레버손잡이를 열심히 돌려댔다,

 

 

조타실 벽에 상형문자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차 한대 사람 한명) 150 + (사람 한명) 35 = 185  정확하네 !

 

요트 한대가 갈매기처럼 흰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더니 반가운 척을 했다,

호수의 오후가 무척이나 심심한가보다,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호수위를 시원하게 스쳐간다

 

 

 

괜히 신난 나

 

벌써 건너편 마을에 도착했다,

너무 짧아 아쉬운 뱃놀이

 

이쪽마을에선 몇몇 사람들이 거의 전라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육덕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여자가 마을 안을 자연스럽게 활보하는 이 곳이 체코다

 

마을을 벗어나자 검은 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아스팔트 길이 한적하게 이어졌다,

 

 

 

 

 

조용한 마을이 오토바이 떼빙족들로 요란스럽게 들썩였다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지만 일단 숙소부터 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우리가 예약한 펜지온 도라 (Penzion DORA) 는 시북쪽 외곽에 있었다,

 

공터에 주차하고 -여기서 이틀을 묵을거라서-짐을 다 내려 끌고 들어가 보니 그냥 가정집이었다

뒷마당으로 돌아가자 안에서 주인 여자가 나와 당황해하며 ' 지금 청소중인데 20분만 시간을 달라 ' 고 했다,

젊음의 섹시함은 거의 다 사라지고 중년의 우아함이 살짝 비치는...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넘어가는 나이에 애들을 키우며 팬션을 운영하는게 힘에 부쳐 보였다. 

 

덕분에 뒷곁 포도나무 덩굴 아래에서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잠시후 청소를 다 끝내고 나온 여자가 자기를 ' 예나' 리고 소개하며

' 이틀 숙박비 84, 하루 숙박비 42는 원래 3인 기준이다. 우리는 두명이니 일박에 32로 해준다 ' 는 것이 아닌가.

두명이 3인실 쓰는거니 오히려 돈을 더 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자발적으로 깎아주는 야나의 양심셈법에 완전 감동먹었다,

얼른 체코돈 1,700 코루나 (85,000 원)을 건내주었다,

 

수다쟁이 예나랑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천성이 밝고 착한 여자였다

시내에 주차할 곳과 저녁먹을 맛집도 알려 달라고 했다. 안에 들어가 지도를 가져와 자세히 표시해 주었다

 

2층은 예나네 식구들이 쓰고 1층은 손님 용도였다.

우리가 쓰게될 공간은 안쪽에 부엌과 화장실과 방 하나로 되어 있는데, 부엌은 입구에 또 다른 방 투숙객과 함께 쓰고 화장실만 우리 전용으로 쓰라고 했다. 부엌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은 입구 방 사람들 것이었다, 

우리방에 가구들은 구식이지만 침대보등 전체적으로 깨끗했다,

 

 

 

 

팬션이라 싱크대 안에 식기와 조리기구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신이 나서 후라이팬과 냄비를 행궈 불에 올려놓고

 

파스타와 소시지와 토마토퓨레 등... 아까 장 본 것들을 다 꺼내 놓고 점심을 준비했다,

 

창밖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현주랑 ' 역시 체코 날씨 답다' 고 했다,

아까 숙소로 바로 안 오고 시내 돌아다녔음 어쩔뻔 ?

 

 

 

 

 

 

 

비록 초라한 밥상이지만 접시에 담아내자 먹음직스러웠다

 

 

 

소리가 날거 같지 않은 카셋트를 옆에 두고 점심을 먹는다

 

 

예나가 우리 마시라고 커피를 두 종류나 새로 사다 놓았다

 

안뚜겅을 개봉하자 커피향이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

후식으로 따뜻한 커피 한잔씩 마시고... 

 

현주는 킹베드에 편히 누워 논문을 읽고,

난 음악 틀어 놓고, 일인용 베드에 누워 창문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살짝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 자연스럽게 눈을 떠 보니 날이 화창하게 개어 있다,

 

아버지에게 안부로 카톡사진 찍어 보내드리고

 

5시쯤에 나갈 채비를 했다

 

마당은 아이들 장난감과 가재도구로 좀 어수선하긴 했지만 찬란한 햇살이 가득해 아기자기하게 이뻤다,

 

 

마당 한켠에 유리온실

 

 

 

안에서 아이들 둘이 나왔다.

여자애는 '도라(팬션 이름과 같다)' 고 도라오빠 '야흥' 이는 여자책가방을 매고 있었다

말을 걸었더니 처음엔 수줍어 하다가 이내 둘다 천진난만한 대답을 했다. 두 아이가 집앞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나왔다.

눈동자들이 참 맑았다.

 

로터리 초입에 TESCO 가 있어서 ' 마트 문닫기 전에 장을 보자 '고 현주랑 의기투합했다,

정문 입구에 카트들이 끼워져 있는데 얼마짜리 동전을 넣는지 알수가 없었다.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아줌마를 불러 물어보니 환한 미소로 5 코루나를 집어 들었다,

 

역시 한적한 마트

 

시내 나가는건 안중에 없고 또 마트구경에 푹 빠진 현주

 

난 도라 오누이 주려고 색연필 두다스를 샀다.

하나에 18.9 코루나니까 천원정도 밖에 안했다

 

  


 

 

 

필통컬렉터인 짱이 주려고 필통을 보는데 뭘 좋아할지 몰라 카톡사진을 몇장 찍었다

내일 다시 와서 사려고 ...

 

이것도 필통

 

총 418 코루나 (20,900 원) 어치 사서 다시 팬션에 돌아와 장 본거 넣어놓고 시내로 출발했다.

 

아래지도에 핑크사각형은 체스키 크룸로프 구시가지, 오른편은 팬션 위치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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