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살아있는 민속인형

2015. 8. 1. 16:00Czech 2015

 

 

 

 

동네 골목마다 자전거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왔는데, 교외로 나와도 자전거 천지다, 차들이 많은 간선도로뿐만 아니라 시골길, 들판 곳곳에 자전거 하이킹족이 보였다,  단체로 줄지어 달리기도 하고, 헬맷 쓴 꼬맹이들과 가족, 또는 혼자 타기도 하고... 자전거라도 다 같은게 아니다. 베트남의 것이 생계를 책임지는 자전차라면 여기는 레저용 싸이클이다.

(체코에선 고등학교 과목 중에 인솔자를 따라 단체로 자전거 하이킹을 나가는 수업이 있다)  

GDP 11위인 한국사람이 53위 밖에 안되는 체코의 여가문화를 보며 감탄을 하고 있다. 

 

레드니체 남쪽으로 내려가자 오른편에 큰 호수가 나타났다.

체코에서 본 호수중 가장 넓었는데 정식 이름은 므린스키 연못 (Mlynsky rybnik)

 

호수를 지나 한참 내려가자 제법 큰 마을에 들어왔다,

큰 나무가 울창한 사거리 공원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그냥 지나 치려는데, 이번엔 흰 옷에 파란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대낮에 술병을 든채 경찰 앞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 이건 꼭 보고 가야 돼 ! "

현주랑 즉흥적으로 의견통일을 하고 동네 안으로 차를 돌려 사거리 근처에 차를 댔다,

 

현주는 구경하고 온다고 카메라를 들고 그리로 뛰어 갔고,

나는 멀찌기 바라보다 호기심을 못 이겨 사거리로 차를 끌고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성당 앞에선 마을남자들이 악단을 이뤄 흥을 돋구고 있고

 

성당 안마당에선 민속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로 길이 엇갈리면 큰일이니까 주차하고 현주부터 찾아 다녔다.

백인들 사이에 동양여인을 찾는게 어렵진 않았다. 현주는 혼자 신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고 다니고 있었다

 

 

여자들은 모두 민속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넉넉한 아줌마들 사이에 날씬한 아가씨들은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화려한 레이스, 빨간 장식을 단 의상, 부풀린 치마와 검은 부츠... 이건 뭐 그냥 인형이다,

알프스 티롤지방이나 동유럽 민족 전통복장들을 TV에서 보면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실지로 보니 상당히 화려하고 여성스럽고 독특하다

 

 

여기저기서 살아있는 인형들이 걸어왔다,

 

성당 교구 알림판

 

다양한 민속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쪽에선 전통 가락에 맞추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스피커로 미국 댄스팝송을 틀어놓고 어린 애들이 지랄발광하는 것보단 훨씬 보기 좋았다.

"  참 재밌게 사는구만 " 

 

기분같아선 나도 저 무리에 끼어 인형손을 잡고 포크댄스를 추고 싶다.

 

성당앞에서 대열이 정비되는가 싶더니 이내 이쁜 인형 아가씨들을 선두로 가두행진이 시작됐다,

중간그룹엔 아저씨 악단들이 행진곡을 연주하고

그 뒤로 남자들이 와인 같은 술병을 들고 뒤따라 갔다,

 

 

 

신난 강아지 마냥 현주도 그 행렬을 뒤쫓아 가다가 아쉽게 돌아왔다,

 

 

조금전 까지 축제분위기였던 성당앞은 급격히 차분해졌다.

텅빈 교회앞에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가득했다,

 

나도 괜히 신나서 방방 뛰어다니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져도. 그 흥분이 좀채로 가시지 않았다,

 

이 마을을 기억하고 싶어 네비를 켜보니 브르제츨라프 (Breclav)라는 곳이었다,

 

브르제츨라프 외곽의 공장지대를 벗어나 숲속으로 난 길을 조금 달리는데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버렸다,

너무 허무해서 다시 차를 돌렸다,

 

아래사진은 오스트리아 → 체코 국경,

 

체코땅 바로 오른편에 큰 레스토랑이 있길래 ' 오스트리아로 가기 전에 체코에서의 싸고 맛있는 식사를 하자 ' 고 들어갔다

 

주문을 받는 웨이터가 참 시건방지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영어로 된 메뉴판이 없어, 맥주 종류를 물어놨더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충대충 말을 툭툭 던진다.

그냥 일어나고 싶었는데 현주도 피곤해 보여 식사를 하나만 시켰다, 

 

마실거로는 맥주와 오렌지 쥬스

 

 

잠시후 덩치가 크고 나이 든 웨이터가 요리 한 접시를 들고 후다닥 오더니 현주에게 큰 소리로 뭐라고 했다,

" Zuppa ? "  내 귀에는 그렇게 말하는거 같았다,

난 요리에 포함된 거라 생각했고, 현주도 얼떨결에 " 예, 예 .." 하니까 죽 같이 생긴 걸 내려 놓는데 곧바로 다른 웨이터가 오더니 다른 테이블 음식이 잘못 배달됐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나이든 웨이터 놈이 사과는 못할 망정 큰 목소리로 뭐라 소리지르며 접시를 들고 가는 것이다. 그 표정과 제스쳐에 우리 둘다 황당하고 불쾌해졌다 

 

식당 종업원 뿐만 아니라 주변 손님들도 다 굳은 얼굴표정, 거친 목소리나 덩치들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왔는데...

구운 스테이크가 아니라 푹 삶은 고기덩어리에 肝같은 부속물은 많이 짰다,

 

그냥은 못 먹겠어서, 또 다른 웨이터-예는 약간 친절-에게 빵을 더 갖다 달래서 대충 고기를 싸서 먹었다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아 얼른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맥주, 쥬스 각 39 코루나 (1,950 원씩),  스테이크 369 코루나 (18,450 원), 빵 추가 45 코루나 (2,250 원) =  492 코루나 (24,600 원)

일반적인 체코 물가의 2배에, 오스트리아보다 더 비쌌다.

 

약간 친절한 웨이터에게 500 코루나를 줬더니 잔돈을 거져 먹으려고 했다. 

팁으로 줄 수 있는 푼돈이지만 맛도, 서비스도, 가격도 뭐 하나 맘에 드는게 없어서... 가는 웨이터를 불러 잔돈을 달라고 했다.

웨이터 놈이 한숨을 푹 쉬면서 검은 지갑에서 8 코루나 (400 원)를 꺼내주었다.

 

 

 

 

 

이제 진짜 체코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넘어간다,

 

국경선은 이 도로위에 평행하게 그어져 있었고 오스트리아 국기옆을 무심히 지나간다,

 

반대편 차와 가까와질 무렵, !

사슴 한마리가 갑자기 오른편 숲에서 튀어나와 도로를 건너 왼편 숲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타이밍이 안 맞았으면 치일뻔 했는데 절묘하게 빠져 나갔다,

 

원령공주에서 본 그 사슴신이 우아하게 공중을 나르는 모습이.. 우리의 눈앞에 슬로우모션처럼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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