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7. 18:00ㆍAustria 2015
잘츠부르크를 등지고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던 현주가, 무슨 말에 삐졌는지 또 말수가 적어졌다,
앞마당에 버팔로와 호랭이를 세워놓고
오강뚜껑 같은걸 로터리에 엎어 놓았고
목업 비행기를 걸쳐 놓기도 하는 등 ... 이쪽 동네 분위기는 영~ 적응이 안된다.
오늘저녁 잠자리를 취소하고 아침에 부랴부랴 구한 숙소는 stotting 1, Muhlheim, Austria 에 주소를 둔 Sonnenblumenhof 라는 곳이다.
한적한 도로와 낯선 마을들을 몇개 지나치더니 네비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무료 엡은 자세한 주소로 검색이 안되지만 그래도 이 손바닥만한 시골에서 숙소 하나 찾는 것쯤이야 ~
길 오른편에 자그만 주택단지로 들어갔다.
한집 한집 주소를 확인하며 20 여호를 둘러봤는데 1번지가 없고 다 살림집이다. 두바퀴째 돌다가 어느집 마당으로 나오는 할머니를 보았다.
반갑게 다가가 주소를 물어보았다.
노인 특유의 무표정과 미약한 손짓으로 뭐라뭐라 하고 성큼성큼 밭을 건너 가는 할머니... 전혀 도움 안됨
골목을 더 돌다 찻길로 나왔다, 건너편 집에서 한 남자가 웃통을 벗은 채 나왔다,
비호감이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기에 차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영어가 통했다, 주소를 보더니 잘 아는 듯 설명을 했다
" 저기 기찻길 보이지 ? 직진해서 터널밑으로 들어가, 나와서 우회전 %^&@# ... ! "
휴 ~ 다행이다.
다시 차에 올라타 주택단지를 벗어나 알려준대로 기찻길 굴다리를 빠져 나오자 오른편에 숲으로 들어가는 좁은 오솔길이 나타났다,
설마 이 길이겠어 ?
눈앞으론 잘 닦인 아스팔트 끝에 또 한 마을이 보였다. 현주도 ' 더 가보자 ' 고 해서 계속 직진.
웃통 벗은 남자의 설명대로 오른편 첫번째 골목길로 들어갔다.
여기도 1번지는 없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다시 차를 빼서 한 블록을 다 돌아 보았지만 민박집 같은 것도 안 보였다, 마을 한가운데로 나왔다. 거리는 적막했고, 정신은 막막했다.
광장옆에 소방서가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현주에게 차안에서 기다리라고 한 다음 소방서 문을 밀었는데 ...잠겨있다.
' 어지간히 일 없는 동네인가 보네 ... '
이젠 갈곳을 잃은 채 속수무책 소방서 앞마당에 서 있었다.
사거리 골목에서 노부부가 자전거를 끌고 나오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내가 1~2초간 더 눈길을 주자 그 부부도 뭔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만큼 동네에 사람이 없었다,
숙소를 찾는다고 주소를 보여주자, 할머니가
" 우리도 지금 거기 가는 길인데 !! 따라와요. "
할머니 할아버지는 땡볕아래 가정용 자전거를 힘겹게 타고 가고 우리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마을 경계를 벗어날즈음 할머니가 자전거를 멈추더니 손짓을 했다,
" 저기~ 예요 "
너른 밭너머 숲이 시작되는 곳에 누런색의 농가지붕이 보였다
노부부가 우리를 더 이상 헷갈리지 않을 지점까지 힘겹게 데려온 것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먼저 출발했다,
노란선은 우리가 헤맨 길. 가운데 노란별은 숙소
<클릭하면 확대됨>
웃통벗은 남자의 말만 잘 들었음 이 고생 안했을 텐데...
막상 도착해보니 건물이 두어채 더 모여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표지판에 익숙한 숙소 이름이 써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한참 걸려 Check-in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아까 우리를 안내해준 노부부다. 서로 반갑게 다시 조우.
옆 식당홀에서 오늘 동네 무슨 모임이 있는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2층 방에 올라왔다. 후덥지근하다. 천정이 다락방처럼 비스듬했고 지붕을 뚫어 낸 창문으로 땡볕이 무자비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을 빠꼼히 열고 조그만 선풍기를 돌려보지만 방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주인 아줌마가 부탁했던 커피포트와 찻잔을 가져다 줬다.
TV, 선풍기등이 다 싸구려 중국산이라는게 좀 흠이지만...인테리어 한지 얼마 안된것처럼 방과 욕실이 깨끗하다.
현주가 아무 말없이 옆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 버렸다,
내가 오후시간 내내 끈 떨어진 갓처럼 할일 없이 뒹굴거리자 조용히 말했다
" 혼자 나가서 밥 먹고 와 "
경재가 할아버지 스맛폰을 개통해줘서, 아버지가 카톡을 보내셨다. 아버지에게 신세계가 열렸고 우리 형제들도 믿기지가 않았다.
◆
5시가 넘어서지만 선풍기는 계속 온풍기고, 방안 분위기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여행와서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후회 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등 돌리고 누워 있는 현주에게 ' 밥먹으러 가자' 고 계속 설득했다. 한참있다 마지못해 현주가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환하다.
왔던 길을 돌아나와 제법 큰 아랫동네로 차를 몰았다.
Altheim 은 대도시나 관광지는 아니지만 상가들이 모여 있는 중심지도 있고 문 연 식당도 두어개 보였다, 조금 한적한 골목에서 카페겸 가볍게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식당 안은 어두컴컴해 손님이 없고 식당옆 골목에 꾸며 놓은 자리엔 한두팀이 앉아 있었다,
우리도 야외에 앉았다, 외벽에 그림과 장식을 붙여놓아 나름 분위기가 촌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앉아 있다보니 두엄 냄새가 풍겨오고 파리가 계속 성가시게 달라 붙었다, 시골은 시골이다.
현주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 피부가 따갑다 '고...
영문메뉴판은 없지만 다행히 서빙받는 아줌마가 영어를 잘했다.
커피, 맥주 그리고 샐러드와 수제버거를 주문했다.
잠시후 나온 수제버거를 보자 갑자기 체코 프라하에서 먹었던 그 수제버거가 생각났다.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 소스마저 같은 맛이다. 레시피가 하난가보다. 내 입맛은 결국 맥도널드인건가...
내 뒷자리엔 여자 몇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자기 볼일 있는 사람은 먼저 일어나며 더치페이를 확실하게 했다.
현주 뒷자리에 중년의 커플이 와서 앉았는데 남자는 러시아인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여자는 싸구려장신구를 요란하게 달고 있었다.
저질색소 아이스크림에 생크림을 올려 개걸스럽게 먹은 후 남자가 담배를 피워댔다. 동네 음식수준을 알거 같다
7시 52분에 24.2 유로 (30.492 원). 우린 더치페이같은거 안 하고 일어났다,
숙소로 오는 길.
작은 동네라고 얕잡아 봤다가 이상한 길로 나오길래 네비를 켜서 돌아왔다.
시간은 저녁을 지나 밤으로 달려가지만, 아직도 사방이 환해서 강이나 보러 가자고 숙소를 지나쳐 소방서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안집에선 가족들이 뒷마당에서 저녁을 해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밀밭을 지나 숲을 통과해 강에 거의 다다랐는데...차가 못 들어가게 바리케이트가 처져 있었다. 욕심을 부리는 나에게 현주가 돌아가자고 했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현주가 또 한마디 했다
" 나 내려주고 형 혼자 돌아다니다 와 "
이번에는 현주 말을 들었다. 현주를 내려주고 신나게 엑셀을 밣았다
현주는 숙소 뒷마당에 가서 노을을 보고
라마도 보고...
나는 무작정 앞으로만 달렸다,
시골길 사거리에 제법 장사가 잘되는 식당이 있다. 진작 알았으면 시내 안 나가고 여기서 저녁을 먹었어도 괜찮았을텐데...
고양이 한마리가 일을 보고 있는 들판을 지나
조용한 마을을 통과해
집집마다 사람들이 나와 있는 동네 좁은 길로 더 들어가자 드디어 강을 만났다
인(Inn) 강이다,
이쪽은 오스트리아, 저쪽은 독일이다. 한탄강도 아니고 압록강도 아니다. 국경이 이래도 되는건가 ?
말없는 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 둘이 산책을 나왔다
강을 봤으니까 더 있고 싶지만 미련없이 차 돌려 나왔다,
이 마을을 기억하고 싶어 구굴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보았다
이런 깡촌에도 집집마다 차가 두세대씩 있고 주변을 깨끗하게 해 놓고 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
젊을땐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백인들과의 문화와 생활수준의 격차를 실감하고 있다.
다시 마을사거리에 도착,
차가 안 다니는 사거리에 한참을 서서 두리번거리다 건너간다.
식당앞 주차장
숙소에 거의 다다들 무렵
들판을 쏘다니는 토끼를 보고 신기해서 차를 세웠다,
강을 찾아 쏘다녔던 루트
<클릭하면 확대됨>
현주가 혼자 앉아 있었다,
방이 너무 더워서 밖에 나와 논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한마디 던졌다
' 뒤에 라마 있다 '
숙소 뒤로 가 보았다.
딱히 라마가 보고 싶은건 아니었다.
그런데 진짜로 라마가 거기 있었다,
석양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저녁 시간을 죽이고 있는 라마
우리에 갇힌채 알프스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안데스에서 온 라마.
지방하천까지 부득불 찾아가 DMZ 라고 박박 우기는 한국에서 온 남자.
라마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교환했다, 우리 둘다 이 곳까지 흘러와 모하는 짓이니...
아까 숙소 주인여자가 남자친구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외출에서 돌아왔다,
주인집이 기거하는 건물을 따로 있었다,
남자친구가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석양속으로 사라졌다,
현주랑 앞마당으로 나갔다.
해가 저셔 어둑어둑 한데도 투숙객들이 선베드에 누워 느긋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근사한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 모기가 계속 찔러대서 도저히 분위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방에 올라와 찬물에 샤워를 했다.
현주가 또 한마디 던졌다
" (잘츠부르크에 실망해) 다시는 여행 안와 "
오늘 참 많이도 던진다... 忍忍忍
오늘 이동거리
<클릭하면 확대됨>
★
'Austria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 유럽판 삼국지 (0) | 2015.08.08 |
---|---|
36> K.231 내 엉덩이 안을 핥으시지 (0) | 2015.08.07 |
35> 박살난 소금성 (0) | 2015.08.06 |
34> 생애 최고의 로드무비 (0) | 2015.08.06 |
33> 갈색얼룩, 검은얼룩 (0) | 2015.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