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0. 12:35ㆍTunisia 2015
방이 큰길옆이라 밤중에도 간간히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 소리에 잠이 깼다 ...창가가 환하다.
몸에선 전혀 일어날 시간이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늦잠을 잔건가 ?
시계를 보니 이제 4시 조금 넘었는데... 여긴 해가 한밤중에 뜨나 ? 아무래도 납득이 안돼, 추워도 억지로 일어나 여닫이 나무창을 밀어 젖혔다.
토주르는 새까만 하늘을 이불삼아 아직도 곤히 자고 있었는데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벽에 붙은 돌출간판 불이 밤새 켜져 있었던 것이다. 의문점도 풀렸겠다 마저 자기 위해 이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최근 잠자리중에 가장 좋았다. 많이 춥지도 않았고, 이불속에 머리를 박고 잤더니 알람시간을 넘겨서까지 푹 잤다
아침식사를 기대하며 로비로 나오자 주인아저씨가 어제랑 똑같은 바바리를 걸친채 식당 방향을 가리킨다.
빙돌아 나와 보니 야외 중정인데 어디로 가야되지 ? 이 호텔도 수스에 호텔처럼 옆건물을 털어 증축하는 바람에 동선이 아주 웃기게 되버렸다.
그때 화장실 같은 곳에서 한 남자가 ' 이리오슈 ~ ' 손짓을 했다
벽은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싸구려 비닐을 깐 식탁. 호텔 전용 식당이었는데 이 시간에 네 테이블이나 아침을 먹고 있어서 놀랐다. 어젯밤 투숙객이 꽤 많았나보다,
단빵도 없고 그저 단순한 메뉴지만 여긴 상차림이 정갈해 보였다. 그 정성을 생각해 바게트 빵에 잼발라 맛있게 먹어 주었다.
방으로 돌아오는데 아줌마들이 벌써 청소하는 방도 보였다.
어제 남은 통닭을 먹어 보려고 수증기 맺힌 비닐봉지를 열었다. 차디찬 고기를 한점 떼어 먹어보자 비위가 상해 다시 묶어 구석에 내려놓았다.
방문을 열어 놓고 어슬렁거리는데 바바리 아저씨가 들어와, 쓰레기냐고 그 봉지를 넙죽 들고 나가셨다.
여행도 거의 중반에 다다랐다. 재충전하는 캠프 삼아 한결 여유를 부려본다,
잠바가 벌써 거의 다 말랐다. 소매 때도 깨끗하게 지고...
필 받은 김에 검은 티와 바지와 양말까지 다 싸들고 욕실로 갔다.
빨래를 열심히 주무르고 꼭 짜서 빈 TV 다이 아래에 널어 놓고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어 놓았더니 아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빨래까지 다 해놓고 살짝 누웠다 일어 났어도 아직 9시.
오전을 여유롭게 보낸다고 폼 잡았는데 벌써 무료하고 지루해져서 가법게 입고 메모지 챙겨 나왔다
바바리 아저씨에게 벨베데레 파크를 물어보니 못 알아 들어서 지도를 펼쳐 Zoo 와 Jardin (= Garden)을 짚어주자 맹수 흉내를 내며 좋다고 한다. 대략적인 택시비는 얼마예요 ? 2~2.5 dinar
벌써 번잡해진 거리에 서서 택시를 잡아본다, 맞은편 여행사 직원도 나와 있는데 내가 8시에 간다는 약속을 못지켜 눈치가 보였다
택시를 잡고 지도를 보여주자 격투기 헤비급 선수같이 생긴 기사가 무표정하게 알았다는 듯 출발한다.
Souk 를 지나자 관공서들이 보이고 한산한 거리로 이어졌다. 조금 더 가자 죄회전 하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큰길에서 빠져 나오자 곧바로 야자나무가 울창한 오아시스 숲으로 들어섰다. 길 양편으로 옹색한 집이 몇채 늘어선 가난한 동네를 지나 더 깊숙히 들어간다. 난 몇번의 갈림길에서 벌써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미터기는 2.5 를 넘어 버렸지만 기사 머리속에는 동물원만 있는거 같아 바가지 걱정도 안됐다,
드디어 Zoo 앞마당에 도착. 3.08 나왔는데 3 dinar (1,800 원)만 받았다.
아무래도 나갈때 고생을 할거 같아 영어는 안통하지만 기사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다시방 (글로브박스)를 열어 명함을 찾다가 없자 적어주려고 종이를 찾길래 내 메모지 줬더니 이번엔 볼펜이 안 나와서 내꺼 주고 해서 마침내 23.615.809 라는 난수표같은 번호를 딸 수 있었다. 한결 친해진 손짓을 나누며 헤어졌다.
동물원과 가든 입장,
관광객은 전혀 안 보이는데 밖에 탁자 내놓고 않아 있는 아저씨에게 입장료 5 dinar (3,000 원) 삥 뜯겼다.
물어보니 공원 안에 관광마차 같은 건 없고 오로지 걸어다녀야 한다고 ... 동물원 입구라고 알려주는 곳으로 향했다
화창한 외부와는 대조적으로 벽돌건물 안엔 어두컴컴한 공간이 있었다. 탁자위에 음료수병이 올라와 있는걸 보니 카페 같아서 몇시에 여냐고 하니 지금 열었다고 하는데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벽 전체를 동물 유해로 도배 해놨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일벌백계 하는 거 같아 살벌했다,
넓이는 축구장만한데 사람이 한명도 없어 별로 흥이 안 났다.
쥐같이 생긴 이 동물은 수십마리가 덤불속에 집을 짓고 대가족을 이뤄 살고 있었다.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새끼들이 귀여웠다
사막여우
어린왕자에 나오는 사막여우를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그때 3대를 이룬 아랍가족이 들어와 나랑 동선이 비슷해졌다,
뭐 내 말 알아 들을 사람 없으니 동물들에게 한국말을 툭툭 던졌다
돼지에겐 " 왜 이리 말랐냐 ? "
하이네나에겐 " 인상 참 드럽게 생겼다 "
원숭이에겐 " 아주 요염하게 앉아있다 너 ~ "
도망 다니는 짐승에겐 " 안 잡아먹어, 새꺄 ! "
그때 아랍가족에 남자가 " 코리언 ? " 나에게 물어봤다.
허걱, 모야~ 그럼 내 말을 다 알아 들은거야 ?
자기네는 알제리에서 왔다며 알제리, 한국 4:0 뭐 이런 손짓을 한다. 아~ 축구 ? 워낙 경기에 관심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국을 기억해 주는게 반가워 인사를 나눴다. 튀니스와 수스에서도 알제리 사람 만났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뱀과 새를 한 우리에 넣어 놓은 신기한 광경도 보며 한 바퀴 삥 도는데, 먹이주고 동물원을 관리하던 남자가 갑자기 인사를 한다.
아깐 아는 척도 안 하더니 약간 수상하다.
마당 한 가운데 동물우리가 빈거 같아 여긴 무슨 짐승이 있냐고 물었더니 빙 돌아가며 이리 와 보라고 한다. 스컹크인가 고슴도치 같이 생긴게 지들끼리 웅크리고 모여 있었다
이 남자가 뱀을 보여 주겠다며 옆 우리로 가길래, 사진 하나 찍고 가겠다고 일부러 꾸물거린 후 따라갔다
말보로 담배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 전갈을 땅바닥에 꺼내 놓았다. 독은 꼬리 부분에 있고 집게발이나 턱엔 없다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구아나 같은 걸 꺼내와 내 몸에 올려놓고 사진도 찍어주고, 서로 끌어안게 해놓고 클린턴,르윈스키,타이타닉 이라며 장난도 쳤다
이번엔 뱀을 꺼내와 내 몸에 걸치려고 하길래 얼른 뒷걸음치며 멀리 떨어지라고 소리쳤다, 내가 뱀을 엄청 무서워 하거든
Viper 도 보여주고 나더니 가이드 해줬으니 돈을 달란다, 없다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한바퀴 돌아봤는데, 그게 안 보인다, 튀니지를 대표하는 동물,
코끼리다. 튀니지 동물원에 코끼리가 없다니... 한니발 장군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동물원을 나와 숲속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쉬었다
정원으로 내려왔다
사막에선 귀한 물이 졸졸 흐르고 꽃도 피고 숲이 울창했다,
이 정도 갖고 한국인에게 감동을 줄 순 없겠지만 현지인에겐 녹색의 지상낙원임에는 틀립없다.
젊은 연인이 숲길을 걸으며 데이트르 하고 있다,
숲 공터에 누가 먹다만 과자와 생수와 음료수를 놓고 갔다.
갈증은 나지만 차마 생수는 못 마시겠고 과자만 싸서 주머니에 넣어 뒀다
들고양이 두마리가 햇볕을 쪼이려 나왔길래 과자를 주려 했는데 오히려 경계하며 피해 다닌다,
" 이것들 배지 불렀네 " 한국말로 또 중얼거리며 벤치에 앉아 과자를 내가 다 먹어버렸다
숲속에서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 사막을 건너며 차 안에서 들을 때랑, 호텔방에서 혼자 쓸쓸히 듣던 거랑 같은 음악이지만 맛이 달랐다, 꼭 식어버린 통닭처럼...
한두곡 들어 주다가 이내 빼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는데 그 순간 시원해진 귀속으로 청량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들이 머리위 나무숲에서 서라운드로 지져귀고 있다. 이러니 음악이 재미가 없지~
새소리, 폭포소리, 천둥소리, 개미허리 부러지는 소리... 아직도 인간의 음악은 자연의 소리에 상대가 안된다,
그나마 조금 근접한게 '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
동물원을 나오며 매표소 아저씨에게 택시좀 불러달라고 전화번호를 줬다.
다행히 곧바로 통화되어 15분후에 온다며 다섯손가락을 펴 세번 흔들었다, 그러더니 전화 해준 값을 달란다
' 그지근성이 아주 본능이구만 ' 없다고 개무시하고 계단으로 내려와 지도를 깔고 앉아서 택시를 기다렸다
앉아 있어 봤자 별 재미가 없는지, 점심때가 되서 그런지... 매표소 아저씨가 마당을 가로 질러 나간다
앞동네 골목에선 아이들이 재잘재잘 뛰어 놀고 있고
쏴~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간다
고즈넉한 풍경에 취한채 카이로스 (kairos)의 시간속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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