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은가루 호수

2015. 1. 19. 12:02Tunisia 2015

 

 

 

 

한밤중에 뭐가 -아침에 보니 스맛폰-  떨어지는 소리에 깨고 추워서 잠을 거의 설쳤다,

튀니지 온 이후로 가장 못 잔 밤이었다, 새벽에 츄리닝 벗고 알람 끄고 잠이 들었다가 8시 거의 다 되서 일어났다,

 

아침 먹으러 내려가다 2층 응접실에서 호텔직원과 올라오는 애띤 소녀랑 마주쳤다.  ' 봉주르 ' 아침 인사를 해줬다

두즈의 아침이 부시시하게 밝아오는데 부지런한 동네 사람들은 벌써 Souk 앞을 돌아 댕기고 있다

 

아침을 준다는 레스토랑은 온통 커튼이 쳐져 있고 틈 사이로 보이는 식당안은 아직도 껌껌했다.

다행히 문이 잠기진 않아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나왔다,

 

언제 구워졌는지 모를 정도로 바싹 말라 부서지는 바게트빵에 잼을 발라 뜨물 같은 커피랑 ... 이걸 아침이라고 먹고 있다,

 

원하면 이 도시에서 더 묵을 수도 있지만, 

어제 도착후 오늘 아침까지 두즈가 나에게 하는 꼬라지를 보면 빨리 뜨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 같다,

 

혼자 있는 식당에 아까 2층에서 본 소녀가 들어왔다,

 

나도 추운데, 꽁꽁 싸맨 모습이 안쓰러워 " 커피 좀 마실래요 ? " 했더니 괜찮다며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Golaa 라는 곳에서 온 Rawya 라 했다.

 

이 나이에 이런 소리 들을 줄은 몰랐다. 내가 이쁘단다, 한국도 이쁘고.

Facebook 주소를 묻길래 안 한다고 했더니 자기 e-mail 을 적어 주었다.

 

아랍 여인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깨졌다,

 

아침 먹고 골목으로 나오니 구루마에 탄 젊은 애들이 밝은 미소로 아침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방에 올라와 화장실 가서 며칠 쌓인 튀니지의 잔여물을 반납하고 발코니로 나왔다. 아침 햇살은 환상적이고, 운전연습용 노란 병아리 차들이 팩맨처럼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고 있다. 별 할일도 없는데 방에서 개 떨듯 있을 필요가 없어 10시도 못 되어 짐 챙겨 나왔다,

 

복도를 지나가다 열린 문틈으로 어제 고양이를 찾던 백발 산발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가 얼른 나왔다. 아직 고양이를 못 찾은거 같아 어제 본 경위를 다시 자세히 설명해 줬더니

"  어디서 왔어 ?  "  물으신다,

"  한국요 "

"  튀니지에 한국인 많더라 "

"  SAMSUNG, LG 등 회사가 많아서 그래요 " 하며 은근히 자랑했다, 이번엔 내가 어디서 오셨냐고 여쭈니

"  Italy milan "

"  아~ 저 이탈리아 3번 갔어요 "

"  두즈에 며칠 있을 거야 ? "

"  오늘 토주르로 가려고요, 너무 추워요 "

"  낮에는 20 ˚ 인데 밤에는 너무 추워. 나도 꽁꽁 싸매고 자. 아니면 걷든지 ! "

할머니랑 수다를 떨고 헤어지며 악수를 하려는데 오른손에 뭘 쥐고 있다,

고양이 사료다. 그제서야 어깨 너머 방안에 주인 잃은 사료 봉지가 보였다.

 

1층 레스토랑에 키반납하고 나왔다. 그 사이 시장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대추야자 열매 다트의 북아프리카 품종인 디글렛 노르 (Deglet nour)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

 

오늘 아침에도 라 로싸 카페를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이 시간에도 빈자리가 없다면 줌 심각한거 아닌가 ? 한국 60년대 시골다방 분위기의 카페에 남자들이 의자를 다 차지한 채, 빈 자리를 찾아 안쪽까지 두리번 거리는 이방인을 곁눈질로 구경하고 있다. 마침 한 남자가 일어나 거기 앉았다.

차 1 dinar (600 원) 시켜놓고 집에 안부 전하고 오늘 갈 토주르 정보를 뒤적이다 담배 연기에 쫓겨 나왔다.

따뜻한 차를 즐기며 사하라 사막의 오전을 즐겨 보겠단 생각은 그저 낭만일 뿐이었다.

 

이젠 길거리에서 ' 니하오' 가 들려도 그냥 웃고 만다.

노새 구루마를 타고 가는 남자랑 눈길이 맞아 웃어 줬더니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루아지 터미널을 물어보니 데려다 주겠다고 타란다.

 

마차 바닥은 배추와 야채에서 떨어진 흙이 말라 붙어 있었다. 나에게 방석만한 카펫을 내어주며 거기 앉으라고 한다

낑낑대며 기어올라 출발.

 

또각또각 둘이 구루마를 타고 두즈 시내를 유랑하며 사막투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 싸벨' 이야기를 하는거다

"  그렇잖아도 어제 만났는데 주머니에 돈이 이만큼이나 있더라 ~ "

 

 

노새 구루마를 타는 재미가 쏠쏠한데 금새 루아지 터미널이 저기 보인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도착했다.

고생한 노새를 쓰다듬고 있으니까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한다

 

 

 

 

다 찍고 헤어지려는데, 돈을 달란다.  2 dinar... 1 dinar ...

없다며 잔돈 (누런 동전)을 내 보이니 그거라도 받으려고 해서 1 dinar 동전 (흰 테두리)을 빼놓고 나머지를 다 줘버렸다.

0.81 dinar (486 원)

 

기분좋게 앞으로 가서 구루마를 돌려 다시 오던 길을 가는 흑인.  반갑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루아지 터미널에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공터 넓이에 비해 루아지는 거의 없었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엔 다급함이 가득했다. 결국 루아지 한대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몰려 들어 선착순 8명만 태운채 차는 곧바로 떠나 버렸다,

지난번 스팍스의 악몽이 떠 올랐다, 여기선 남녀노소나 외국인이나 그런 차이는 배려가 아니고 특혜다, 당신은 내가 재껴야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한쪽 구석에 낡은 대형버스가 서 있길래 옆에 청년과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저건 안되고 루아지를 타야 된다고 같은 말을 했다

이 나라에도 버스같은 공공교통이 있긴 하지만 배차가 터무니 없이 적어서 무용지물이었다,

 

루아지 한대가 또 들어오는 걸 보고 아저씨가 얼른 저 차 타라고 손짓했다,

다행히 내 뒤로 짤렸다. 내가 8명 안에 들다니. 남들을 따돌렸다는 것에 행복해졌다. 별게 다 행복이다 이 나라에선.

 

일단 케빌리로 나가야 된다.

 

뒤에서 차비가 오고 그걸 받아 앞자리 남자 어깨를 건드려 전해주고, 또 거스름 돈이 역으로 돌아오고...

뭔 말들이 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버스안이 화기애애하다,

 

운전수와 조수석의 남자가 사이좋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혹시 둘이 통화하는건 아니겠지 ?

 

케빌리 루아지 터미널에 도착. 안전하게 내린 후 기사에게 차비를 건네 주었다.  2.4  dinar (1,440 원)

여기 법이 그렇더라도 난 달리는 차안에서 기사에게 거스름돈을 돌려 받을 정도로 담대하지 못하다, 아직.

 

토주르를 간다니까 대머리 아저씨가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앞장선다. 바로 아래 사진 아저씨

 

그런데 다른 루아지로 안내하는게 아니라 아예 터미널을 벗어나 시장으로 들어간다. 내가 천천히 가자고 하자

"  택시 탈래, 걸을래 ? "

"  ... 걸을래여.... "

젖소 머리 옆을 지나, 흑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가는 여정이 살벌하다

 

 

가다말고 안경파는 노점상에 서더니 안경을 써 본다.

내가 사진을 찍자 안경 상인이 , 왠 미친 놈인가 ...하는 표정으로 날 처다보길래 저 아저씨랑 일행이란 티를 냈다.

 

(사람들에게 혀를 내밀었다는 이유만으로 참수된) 소머리 옆을 지나가며 대머리 아저씨가 그랬다

"  내가 안경을 써야 하는데... 5 dinar 라네 ... "

"  저... 돈 엄는데여.. "

 

물 건너고  산 건너 드디어 골목끝에 빨간 라인의 루아지가 보였다.

아저씨가 저쪽이라며 손짓하더니 나에게 답이 안 나올거 같았는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저씨 덕분에 토주르 가는 루아지는 별도 터미널이 있다는 걸 알았고 헤매지 않고 무사히 찾을 수 있어... 슈크란 ! (감사합니다)

 

기사가 표를 끊어 오래서 낡은 단층 건물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그냥 가정집 같았다

 

5 를 냈더니 더 달란다. 7을 주자 0.65 를 거슬러 주었다

 

 

토주르 루아지 차비 6.35 dinar (3,810 원)

 

표 받아 아까 기사들 있는데 갔더니 저 앞쪽 루아지 세대 세워져 있는 것중 가운데 것을 타라고 한다,

 

검은색 실루엣의 아름다운 여인이 둘째 열에 혼자 앉아 있다가 내가 힘들까봐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한다.

난 사진을 찍으려고 맨뒤 창가로 들어갔다.

 

일단 유리창에 머리 대고 살짝 자고 났는데도 차안엔 여전히 그 여인과 나 둘뿐이다.

차옆 담장 아래엔 쓰레기와 분변이 버려져 있고, 완전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흑인청년, 거리는 누추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나라에서 의외로 많이 보이는게 운전교습학원

 

 

30 여분만에 정원을 다 태우고 드디어 출발.

큰길로 나와 로터리를 돌아 시내를 벗어나는데 두즈보다도 훨씬 크고 활기찬 도시였다,

 

도시를 벗어나기전 기사가 차를 세우고 가게에 들어가 개인 일을 보고 나왔다,

그동안 승객들은 찍소리 안하고 차안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사를 기다렸다,

 

 

 

 

 

케빌리를 둘러 싼 오아시스 숲을 벗어날 즈음, 숲속 건물에서 연기가 팡팡 나오고 내부는 검게 타 있었다,

높은 건물인데 화재로 소실되어 아깝다... 했더니 몇 분 더 가자 똑같은 상황의 건물이 보였다. 불이 난게 아니라 뭘 찌는 공장이었다,

 

 

오아시스 숲이 끝나고

 

모래언덕이 나타나더니

 

자갈만 깔린 평야가 이어졌다

 

그리고 또 마짝 마른 호수바닥

 

허옇게 말라버린 호수

 

 

 

 

 

 

 

 

 

중간에 뭔 혀연걸 쌓아 놓았다

 

소금더미였다.

튀니지인이 평생 먹어도 남을 소금이 사방 수십 km 로 널려있다. 은가루가 사방에서 반짝거린다.

 

 

 

 

 

 

 

 

이런 풍경만 70 여 km가 이어졌다.

여기가 튀니지 남쪽의 거대한 소금 호수 숏트 엘-제리드 (Chott el-Djerid) 다. 

 

 

 

서쪽은 지평선 끝까지 반짝이는 하얀 소금의 장관이 펼쳐지고 동쪽은 멀리 희미하게 산맥이 따라와 호쾌한 맛은 덜하다

제대로 구경하려면 서쪽편으로 앉아야 한다.

난 두 카메라를 번갈아 꺼내 사진을 찍는데 루아지에 현지인들은 귀찮다는 듯 커튼으로 햇볕을 가리고 자고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고 긴 직선로가 마침내 끝나고

거친 돌산아래로 울창한 야자나무숲이 녹색의 띠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차창 틈바구니엔 허연 소금기가 내려 앉았다,

 

호수끝엔 또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차 안에 마침 경찰 지인이 타고 있어서 그냥 대충 검문후 통과.

 

 

호수를 건너 온 차는 오아시스 띠를 따라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에는 광활한 소금밭, 뒤는 척박한 돌산. 그 사이에 녹색의 오아시스.

생명이 살수 있는 손바닥만한 땅에 둥지를 튼 첫 번째 마을을 지나간다

 

 

 

 

집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청년. 일없는 백수들이 거리 곳곳에 좀비처럼 어슬렁거리고 있는 동네.

이런 곳은 나도 무섭다, 삶의 계획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물불을 안 가린다. 바로 앞만 보기 때문애 외국 관광객들에게 돌발적인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높다. 자유여행자에겐 이런 동네가 지뢰다.

빈부격차가 빨리 없어져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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