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9. 18:00ㆍTunisia 2015
토주르에 도착한 거 같은데, 큰길에서 우회전하여 이면 골목으로 들어오더니 곧바로 차를 세웠다.
벽돌로 쌓아올린 성벽이 교도소 담처럼 위압적이었고 주변은 루아지 한대 없이 쓰레기만 뒹구는 썰렁한 길이었다. 죄인 호송차에서 내리듯 사람들이 말없이 하나둘 다 내리고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마지막으로 내려야 했다. 개운하게 개워낸 루아지는 이내 떠나 버렸다,
이 나라는 조금 알거 같다가도 또 한없이 모르겠다. 이 정도 큰 도시면 루아지 터미널이 있을 법 한데 이렇게 아무데나 부려 놓고 가다니...
강렬한 사막의 태양빛에 제대로 고개도 못 들고 일단 큰길 방향으로 나가봤다
길거리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짐짓 외면하며 찻길을 건너가서 보니 바로 앞이 버스정류장이었다
이븐 할둔이 위태롭게 서 있는 삼거리를 지나며 주변을 두리번 거려도 작은 호텔간판 하나 안 보였다, 터미널 앞이라 하나쯤 있을만 한데...
뒷골목엔 있으려나 ?
그러나 뒷골목은 더 당황스러웠다. 건물 1층에 가게 몇개 있고 호텔일랑사리 여인숙하나 있을 분위기가 아니였다,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
왠 백인같은, 피부가 희고 intelligent 한 남자가 골목을 가로질러 내 쪽으로 오길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 근처에 싼 호텔 있습니까 ? "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자기 차를 타라며 가까이 있는 해치백 차로 날 데리고 갔다
"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은 아니고 레지턴스인데 싸요. 어디서 왔어요 ? "
" 한국이요 "
" Welcome ! "
더 말을 나누고 싶어도 그가 말한 숙소가 아주 가까이 있었다, 큰 길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마자 Hotel Niffer 라는 글자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생각지도 않은 큰 친절을 받아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은인은 고맙다는 인사만 받고 홀연히 차를 몰고 떠나났다.
택시비도 굳고 숙소도 금방 구하고...룰루랄라 ! 구식 알루미늄 샤시문으로 들어갔다
도꼬다시 계단을 돌아 2층으로 올라갔다.
아줌마가 프런트에 앉아 있다가 당황한 듯 잠깐 기다리라는데 안에서 바바리를 입은 아저씨가 나타났다.
일단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추우니까 따뜻한 방으로 !
같은 층에 거리쪽 방인데 Wi-Fi 는 안되지만 뭐 그런대로 괜찮다. 얼마예요 ? 아침포함 19 dinar
다시 프런트로 나와 10 짜리 빳빳한 지폐 3장을 꺼내놓고
" 이걸로 2박 하자 ! "
" 안돼 "
" 돈 없슈 " 했더니 종이에 34 숫자를 적는다. 주머니에 동전을 다 꺼내
" 이것 밖에 없당께요 " 하며 거기서 1 dinar 동전 두개를 골라 주자, 나머지 누런 동전도 다 내 놓으라며 털어갔다.
총 33.25 dinar. 2박에 19,950 원. 하루에 만원도 안되는 돈이다 ㅋㅋ
몇십원 갖고 째째하게 그런다고 욕하지 마라, 이건 즐거운 게임이다, 바바리 아저씨도 나도 모두 만족하는 게임, 만약 바바리 아저씨가 이걸 손해라고 생각했다면 게임을 안하고 날 쫓아 냈을 것이다.
여권복사본은 꺼내놓고 숙박계를 적고 있으니 자기가 ' 적고 갖다 준다고 방에 가 있으라 ' 고 하신다
' 오늘 동전을 두번이나 털리네 ' 우연을 즐기며 방문 열어 놓은 채 짐 풀어 정리하고 있으니 너덜너덜한 여권복사지를 갖고 오셨다,
문닫고 양말을 빨아 널었다.
여긴 수건도 있고 조그만 1회용 비누에 화장지까지 있었다, 수건은 잉크냄새가 나는 새거 였는데 몸을 닦으면 파란 보풀이 온몸에 다 달라 붙어 다시 샤워를 해야 했다. 비누는 귀여워 안 쓰고 한국에 가져왔다, 내가 다녔던 대부분의 튀니지 숙소엔 두루마리 휴지가 없었다. 말발굽같은 변기 커버나 있으면 다행.
이불속에 들어가 있으니 살짝 잠이 들었나보다. 놀라 깨보니 2시 30분. 별로 자지도 못했다
창밖에서 토주르의 목소리가 올라온다. 나무로 된 이중창을 열자 분주한 거리가 얼른 내려오라고 날 불러댔다.
바바리 아저씨는 로비 나무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레자트 루즈 (Lezard rouge) 를 타려는데 메틀라위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루아지를 타고 어떻게 하라고 설명하시길래 복잡한거 같아 여행사 페키지 있냐고 다시 여쭤봤다, 어딘가로 전화를 해보셨다,
토주르 시내 지도를 얻어 내 좌표와 대략적인 방위를 익혀 두었다,
역시 이번에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숙소를 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후 전인권처럼 생긴 아저씨가 오셨다. 결론은
- 4륜 차로 아침 9시에 출발해 레자드 루즈도 타고 점심식사도 제공하고 오아시스 투어도 하고 (멋지다는 말을 강조하며) 사막의 석양을 보고 저녁때 돌아오는 투어가 110 dinar. 3명 일행을 모아야 되는데 요즘은 없다. 혼자 가면 330 인데 250 까지 해주겠다
= 250 내고 나 혼자는 못 가니까 인원을 만들어 봐라. 내일도 모레도 기다릴 수 있다
- 내일 가야 한다, 모레는 레자드루즈 차편이 없다.
= 그럼 언제 차편이 있냐 ?
- 일요일, 월요일 ?
= 좀 더 깎아달라
- 모아 보고 연락주겠다
좀 수상하다. 이건 뭐 아저씨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느낌이다. 앉아 있어 봤자 소득도 없을 거 같아 먼저 일어났다
호텔 앞에서 여자들이 지나가며 ' 니하오 ' 하는데도 그냥 웃어주었다
아까 창밖으로 길 건너에 여행사를 본 거 같아 가 보았다. 책상 몇개 갖다 놓고 그럴싸하게 사무실을 차려 놓았다,
= 레자드루즈를 가려는데 얼마냐 ?
- 기차표 20 에 왕복 교통비로 50. 총 70 이다. 내일이고 모레고 인원 모이면 연락주겠다
= 요 앞 호텔에 묵고 있다, 내일 8시에 들르겠다, 좀 더 할인이 안되겠냐 ?
- 모이면 그때 얘기하자
역시 이번에도 주도권이 묘하게 그들에게 갔다, 영어쓰고 친절하면서도 꽤 고단수인듯.
최종적인 키는 내가 쥐고 있는 것 아닌가 ? 내가 목 맬 필요가 전혀 없는데... 정 안되면 레자드루즈를 안 타면 되는거지, 맞아 !
ATB 건물 2층 창문 열린 곳이 내 방이다
여행사 직원에게 근처 식당을 물어 보았더니 souk 나 메디나 쪽으로 100 m 정도 내려 가라고 알려줬다.
사무실을 나왔는데 바로 옆 가게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청년이 의자에 걸터앉아 샤와르마를 먹고 있다. 그거 먹을 수 있냐니 들어오란다.
진열장을 보며, 안에 넣을 걸 고르라고 해서 마요네즈는 빼고 치즈, 참치 넣어 달랬다, 청년이 내껄 만들때 ' 치즈 두 개 넣을까요 ? ' 하며 스페셜이라고 했다. 콜라 한캔 꺼내 모두 얼마냐니 3.8 dinar (2,280 원) 을 달란다
" 모가 이리 비싸 ? 따따윈에선 2 dinar 더만 "
" 이건 치즈도 두개 들어갔고... 스페셜이라 그래요 "
개새X. 내용물도 훨씬 적구만 뭐. 처음엔 두개 먹으려다 바가지 씌운거 같아 기분이 상해 버렸디
주변에 Wi-Fi 되는 카페 있냐고 물어보니 터미널쪽으로 내려가면 술탄 어쩌고 하는 카페가 있다고 아랫거리를 손짓했다
내려오다 중간에 Bouki 란 이름의 카페가 눈에 띄었다, 안에 들어가 물어보니 Wi-Fi 가능하다고 한다,
" 어디가 잘 잡혀요 ? " 벽걸이 TV 아래 송신기 밑에 자리를 잡고 민트차 한잔 1 dinar (600 원)을 시켰다.
아저씨가 패스워드를 적어 줬는데 아무리 해도 안되서, 아저씨가 직접 입력해 주니 그제야 접속됐다, 왜 그런고 봤더니 아저씨가 적어준 1을 내가 7로 잘못 안 것이었다, 아랍인들이 숫자를 쓰는 방식이 한국이랑 좀 다르다
한국은 밤 12시지만 현주 붙들고 1시간을 수다 떨다 고만 자라고 보내줬다.
TV에서 아프리카 세네갈과 또 다른 나라의 축구경기를 중계해 주고 있었다. 초등생정도 되는 애가 그걸 보겠다고 어른들이 피워대는 너구리 굴속에 앉아 있다
토주르 거리의 풍경들...
^ 길거리 카센터. 기껏 초딩,고딩 정도 되는 애 둘이 길옆에서 차 본닛을 열고 이것 저것 만져 보고 있다,
^ 이 길엔 소위 구멍가게라는 소매잡화점이 꽤 많았다. 밤에 출출하면 군것질 거리 사러 나와야지~
^ 1층 숙소 앞에서 바바리 아저씨랑 한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인사하며 souk 쪽으로 내려갔다
여기도 구멍가게
^ Souk (시장)로 내려가는 길양편에 후리카세를 파는 집, 오븐구이 통닭 파는 집, 문구점, 식당들이 즐비했다,
^ 토주르 특유의 노란 벽돌로 수려하게 지어진 모스크.
^ 이슬람 여자들이 쓰는 베일에도 히잡,차도르,니캅,부르카등의 구분이 있다. 그 중에도 가장 보수적인 복장인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인이 모스크 앞에 앉아 있다.
^ 파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길가에 튀니스식 새장이 있었다, 안에는 앵무새, 카나리아 등이 재잘거리며 놀고 있었다.
^ Souk 들어가는 문
낯술이 좀 과한 듯한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거는데. 알아 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말로
" 모 ? " 했더니
" 모~ ? " 똑같이 따라 한다. 내가 웃으며 다시
" 뭐~ ? " 했더니
" 오바마 ! " 하며 실없는 농을 던지고 지나갔다, 계란과 반찬거리가 든 파란색 비닐봉지가 그의 손가락에 걸려 있었다.
노점상 엎에서 뭘 갖고 노는 강아지가 귀여워 한참 처다 보았다.
근데 저게 뭐지 ? 쥔가 ? 자기 발인가 ?
자세히 보니 양쪽으로 갈라진 발굽이 보였다.
잘린 양의 다리였다,
아~ 진짜 ! 이 나라, 적응 될만하면 또 저만치 도망간다.
고양이가 어슬렁거리자 갖고 놀던 양 다리를 팽겨치고 ...제리를 쫓는 톰.
대추야잔가 ? 올리브 쩐거 였다,
걷다보니 메디나 안쪽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여긴 인적이 드물고 시장이 철시분위기여서 내 안전센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 골목 안쪽에 번듯한 호텔이 있던데 뭣도 모르고 인터넷으로 저런 데 예약했으면 큰일 날뻔했다. 숙소는 직접 와서 보는게 가장 정확한데...
다시 큰 길로 얼른 나왔다, 마침 탑을 장식한 전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페는 앞에 동네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못 들어가고 그냥 이쪽 담 옆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수동모드로 세팅했다,
미나렛 (Minaret) 꼭데기에 비취색 옥빛 불이 켜지고,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오늘 저녁거리를 들고 불 환한 가게 앞을 지나가는 동네사람들
아랍 복장을 한 남자들은 카페에 다닥다닥 앉아
그들이 피워대는 물담배 연기가 어두워지는 하늘로 하얗게 피어 올랐다...
그 어느 유명 관광지보다도 이 곳, 이 시간이 가장 이국적이고 낭만적이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바람이 쌀쌀해졌다,
갈 집이 있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부럽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도 일어 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통닭 오븐구이집에 들렸다
한 마리 7.5 콜라 0.9 합 8.4 dinar (5,040 원)
점원 남자가 ' 빨대줄까 ? ' 란 말을 못 알아듣고, ' 네 !' 했다가, 보고 나서야 ' 아니요 ! '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치킨을 달랑달랑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손 씻고 와 맨손으로 통닭을 뜯어 먹는다, 아직도 손가락이 뜨겁다. 먼저 양 날개부터 먹고, 감자튀김도 먹고 콜라까지 마셨더니 퍽퍽한 몸통살은 그대로 남았다, 다음엔 반만 달래야지. 오늘은 저녁시간이 하나도 쓸쓸하지 않았다.
젖은 양말과 수건을 벽등 갓위에 올려 놓으니까 아주 잘 마른다,
스맛폰 음악을 틀어놓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재가 어렸을 때 입었던 보이스카웃 잠바를 가져와 그거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오늘따라 소매 얼룩때가 눈에 거슬린다. 튀니지 반 바퀴 도는 동안 묻혀온 흔적이었다
' 움직여야 덜 춥지 ! ' 하며 욕실로 갖고 들어갔다
오늘 지출 : 차 1,0
노새 0.81
루아지-1 2.4
루아지-2 6.35
숙박-2일 33.25
점심 3.8
카페 1.0
치킨 7.5
콜라 0.9 합 57.01 dinar (34,206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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