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세상끝으로

2015. 1. 18. 11:44Tunisia 2015

 

 

 

 

새벽 5시에 깨서 알람을 미리 꺼놓고 7시 50분까지 잤다.

잠들기는 힘들지만 아침은 아침대로 일어나기 싫다. 간신히 뎁혀진 이불속을 나와 썰렁한 방 공기중으로 풍덩 빠지는 기분.

샤워실에 갔는데 어제 널어 놓은 양말이 전혀 안 말랐다, 일부러 쪽창을 열어 놨어도 워낙 좁아서 통풍이 안되나보다.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 묶어 놓고 아침 먹으러 나왔다.

계단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4층에서 주인남자가 우당탕 내려와 손님보다 먼저 2층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여기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니 !

썰렁함이 뭔지 보여주는 곳,

 

딱 하나 있는 테이블에 앉자 아침상을 차려 왔다,

따뜻한 우유 따로 마시고, 커피는 마지막 잔에 각설탕 하나 녹여 마셨다. 튀니지 어딜 가나 아침 메뉴는 똑같다, 이 나라만의 독특한 아침상에 컨티넨탈이나 잉글리쉬 브랙퍼스트처럼 근사한 이름을 붙여줘야 할거 같다. 

항상 나오는 바게트는 손도 못대고, 혼자 와, 혼자 먹고, 혼자 나온다

 

화장실 잠깐 쓰고 짐 챙겨 내려와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는데, 안경 쓰고 범생이 같이 생긴 멀대-어제 본 기억이 난다-가 와서 말을 건다.

"  코란 아냐 ? 무슬림 "

"  나 종교 없다 " 했더니 정색을 하며

"  왜 없어 ? "

"  아침부터 종교 얘기 하기 싫다 " 고 단도직입적으루 다가 나갔는데,  이 시끼 싸이코다 !

"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냐 ? " 

나,원,참,  기가 막혀서. 튀니지판 ' 도를 아십니까 ? ' 다

"  나 바쁘다, 택시 타고 가야 한다 " 고 했는데 그래도 안 떨어지고 계속 말을 시킨다,

아예 이 자리에서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고 작정을 한거 같다. 최후의 수단으로 카메라를 꺼내 '사진 같이 찍자 ! ' 고 덤볐더니 " 무슬림은 사진을 OO 라고 생각한다 " 며 슬슬 피했다,

다행히 택시가 한대 지나 가길래 언능 잡고 길을 건너갔다,

 

택시가 뒷문도 안 열리고 타본 차중 젤 고물이다.

출발하며 미터기를 안 켜길래 손으로 가리키니 운전하면서 팔을 아래로 뻗어 전원을 연결하자 숫자에 불이 들어왔다

 

어제 터미널에서 오던 길을 지나치길래 ' 저쪽 아니냐 ? ' 고 불안한 맘에 아는 체를 했다. 승객이 길을 아는 것 같으면 기사가 장난을 덜 칠 거라고 생각했다. " 일방통행,  오는 길 " 이라며 이내 좌회전해서 잠시 의심했던게 머쓱해졌다 

 

 

그제서야 비로소 기사 얼굴을 자세히 봤다.

할아버지 인상이 선해 보여서 아랍어로 인사를 했더니 좋아하며

"  Japan ? " 하길래   No !

"  Philippines ? " 

아 ~ 씨알. 이제 살다살다 필리피노냔 소리도 다 들어보네. 더 냅뒀다간 부탄, 우간다... 까지 갈거 같아 얼른 '남한 '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랑 화기애애하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1.36 나와서 1.4 를 줬더니 1.3 dinar (780 원) 만 받는다. 이거밖에 안 나오는 거리를 어제 택시기사는 3 dinar 를 강탈해 가다니 !

기분이 급격히 상승했다,

 

루아지 터미널 앞에 줄서 있는 택시들에게 가서 두즈 합승택시를 물어보았다. 택시기사들이 ' 비싸다. 루아지 타라 ' 고 한다.

터미널 안에 매표소에서 가베스 가는 차비가 7.9 dinar (4,740 원).  올때랑 갈때 차비가 다르다, 0.1 싸다

 

루아지를 찾아 갔는데 내가 세번째 승객이었다,

8시 50분부터 9시 30분까지 옆에 시동 걸어 놓은 고물차 매연 다 마시며 지루하게 기다렸다,

 

 

 

 

내가 차 창문을 못 열고 낑낑대자 옆자리 학생이 팔을 뻗어 열어 주었다,

 

지루한 모객이 끝나고 드디어 출발,

억지로 눈감고 잠을 청했다. 30분 단잠자고 다시 창밖 구경. 어제 오면서 본 풍경이라고 낯이 익다.

 

오다가 군인들 검문에 걸려 차를 갓길로 대고 모두 신분증을 깠다..

내 복사여권은 힐끗 보고 돌려주었고 나머지는 가져가 확인 후 수상한 사람 있나 쓰윽 보고 대충 묻더니 보내줬다.

기분은 더럽지만 공권력의 횡포에 모두 기가 죽어있다, 나도 유리창에 대고 몰래 찍을 정도니까...

 

 

 

 

가뜩이나 늦게 출발했는데 검문까지 걸려 시간이 지체된 루아지는 아스팔트에 타이어를 갈아 가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가베스에 도착해서는 어제 지나가던 교도소 앞길이 아니고 다른 길로 들어왔다,  이 길은 번듯한 독일차 전시장도 있고 번화가라 느낌이 꼭 스팍스 같다,

 

 

 

 

 

 

유난히 차가 막힌다 했더니 가보니 그 진원지까지 왔다.

로터리옆에 큰 장이 섰고 경찰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어제 하이파네 가족이 구경 가자고 꼬신게 이거구나, 근데 척 봐도 내가 살 건 전혀 없어 보인다. Souk 구경은 한번으로 족하다

 

가베스랑 무슨 연이 깊은지, 결국 가베스로 다시 돌아왔다,

루아지 기사에게 두즈 (Douz) 차를 물어 보자 친절히 방향을 알려주는데 난 못 알아듣고 ' 이 차에 계속 타고 있으라' 는 걸로 착각했다.

 

장날까지 겹쳐 혼잡한 정류장에 서서 한 남자에게 다시 두즈를 물어 보았더니 표 끊는 곳으로 데려가 직접 매표소 부스안에서 발권 9.45 dinar (5,670 원)을 도와주고 루아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날 운전수에게 인계까지 해주었다, 그게 그 사람의 직업인지는 몰라도 나에겐 큰 도움이었다,

 

차안을 기웃거려보니 자리가 아직 다 안 찬거 같아 화장실 갔다 온다니까 운전수가 당황하는 기색이다.

가방 맡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헤매니까 어느새 운전수가 따라와서 화장실을 알려줬다.

볼일 보고 나오다, 용변 보고 나오는 운전수랑 화장실 앞에서 또 만났다. 같이 차로 오다가 내가 콜라 1 dinar (600 원)를 하나 산다고 머뭇거리자 황당한지, 먼저 갔다,  아침 꾸역꾸역 먹고 차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더니 소화가 안돼서. 소변이 또 마렵더라도 콜라 트림이 간절했다.

루아지를 찾아가니 내 자리는 맨 안쪽에 하나 남아 있었다, 타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가베스에서 곧바로 두즈가는 차를 탈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차안에서 혼자 콜라를 마시며 가베스를 떠난다

 

차창밖에 이국의 풍경을 보며 가는데 옆 청년이 툭치며 이어폰 하나를 내민다, 귀에 꽂으니 뭔 독경소리가 들린다,

' 코란 ? ' 그랬더니 맞단다. 근데 나는 통역된 코란보다 LG 폰에 더 관심이 갔다. 

LG, 한국.  내 스맛폰을 꺼내 SAMSUNG 도 한국. 그랬더니 주머니에서 폰 하나를 더 꺼내 보여주는데 SAMSUNG 거다,

내가 사진 찍는다고 했더니 부끄럽다며 숨기다가 나중엔 찍게 했다, 

 

폰 안에 저장된 사우디 메카사진도 보여줬다. 독실한 신자 같았다.

그런데 입냄새가.... 운전수도 창문 열어놓고 허연 이를 백미러로 보여주며 계속 통화를 하고 있다.

이어폰을 꺼내 귀를 틀어막고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폰 두개 가진 옆자리 청년

 

조그만 마을을 지나가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여기 나라 사람들이 잘 살게 되기는 힘들겠구나, 오히려 지금보다 빈곤이 더 악화될 수도 있겠다 ' 는...

이 구석까지 첨단 기술과 제품은 거침없이 침투하는데 정작 이들은 무엇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사막모래가 바람을 타고 아스팔트를 능구렁이처럼 넘어간다

남쪽으로는 공룡등뼈처럼 솟은 산들이 수십 km 끊임없이 이어지고 북쪽엔 관목 덤불만 드문드문 박힌 황무지가 지평선 끝이다

간간히 보이는 건물 폐허는 풍화작용으로 거의 모래무덤이 되어 가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흔적이 전혀 없는 사막을 루아지 한대가 달린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광석의 노래가 양쪽 귀로 들려 온다....  세상 끝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Sentimental ...

한꼇 개품을 잡고 있는데. 옆 청년이 또 나를 툭치며 창밖을 보라고 한다.

홍수로 도로가 유실되어 한국 중장비가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사막이라는 바다에 오아시스라는 섬이 둥실 떠 있다.

그 섬에선 하늘이 높았고,  사람들은 집과 사원을 짓고 모여 살았다

 

 

 

 

오아시스를 통과하자 또 다시 모래 바다를 달린다,

멀리서 거대한 파도가 넘실댔다

 

이렇게 서쪽 땅끝을 향해 거친 광야를 달리고 있으니 ... 내가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게 유약해져만 가는데 ...내가 강해지고 있다,

한국 핸드폰을 가져다 저 세상 끝까지 가서 팔 수 있을거 같고, 침 하나만 들고 저 너머에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을거 같다.

여기까지도 왔는데 무슨 일은 못 하겠는가 !

한국에서의 대소사들이 다 하찮게 느껴졌다. 마침내 강해졌구나 내가 !    

 

사막에서 뜸금없이 사거리나 나타났다. 물론 신호등 따윈 없다

직진하면 세상에서 가장 더운 지역 7위인 케빌리 (Kebili)

오른쪽 갑사 (Gafsa) 방향엔 세 남자가 가방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무한정 차편을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다

우리 차는 급하게 좌회전 했고, 질기게 따라오던 산맥을 드디어 타고 넘었다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하늘은 맑아지고 대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암석과 관목 뿐이었던 누런 광야에 하얀 모래톱이 눈섭처럼 밀려 오고 있었다

 

방사팬스라고 불러야 하나 ?  사막의 모래가 넘어오지 못하게 곳곳에 팬스를 설치해 놓았는데 모래는 그 꼭데기까지 묻어 버려 긴 제방을 만들어 놓았다.

 

 

내 자리 옆에 채소가 담긴 비닐봉지가 이리 저리 굴러 다닐 즈음

 

오아시스 울창한 야자나무 숲으로 쏘옥 들어왔다

 

「  Welcome to Douz 」 간판을 지나자 인가가 보이고 거리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얼른 배낭에서 썬크림을 꺼내 발랐다,

 

 

 

두시간 반 걸린다던 길을 두시간도 못 되어 도착했다.

가베스에서 두즈까지는 그 흔한 검문소나 과속방지턱도 거의 없어서 차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지도를 보면 따따윈에서 두즈로 일직선 길을 뚫으면 좋을거 같은데... 그 중간은 흉칙한 사막이라 사람이 전혀 안 산다. 

당분간은 멀더라도 돌아서 가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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