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4. 10:00ㆍTunisia 2015
지난 밤은 괴로웠다. 몇번을 깼는지 모를 정도로 ... 일단 추웠다.
편지봉투 속에 들어가듯 납작하게 빈틈없이 이불과 시트사이에 누워도 춥고, 시트를 빼 끌어안고 몸을 옆으로 웅쿠리고 자도 춥고... 아프리카에서 추워 잠 못 잘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아직 동도 안 텄는데 닭이 울어대는 바람에 안면방해가 지대로 됐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 메디나 어디에 이 많은 닭들이 살고 있는건지... 교촌, 페리카나 모하는겨, 얼른 진출 안하고 !
새벽에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곧바로 '7시 반' 알람이 울리고... 일어나려니 전신 관절이 뚝뚝 거렸다
이 호텔에서의 유일한 희망, 맛있는 조식을 기대하며 1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로비 옆으로 긴 복도 공간에 식탁이 빼곡한데 역시나 투숙객이 한명도 안 보인다. 인기척을 느끼고 안에서 아저씨가 나와 보더니 빵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 식탁을 무표정하게 가리켰다. 눈치 없이 아침 먹으러 내려 온 불청객이 되어 버렸다,
잠시 후 주문도 안 받고 아침상이 차려졌는데. 주문 받을 껀덕지도 없어 보인다
앙증맞은 주전자에 따뜻한 커피와 우유가 담겨 있고 설탕물을 찌끄린 빵과 바게트와 요플레.
상 차리기 참 쉽죠 잉~ 이것도 감지덕지다.
빵을 잘라 먹다가 숟가락이 휘어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티스푼이 비틀어져 버렸다,
아저씨에게 혼날까봐 자알 펴 놨다,
유리 겔라 참 쉽죠 잉 ~
커피반 우유반에 각설탕 하나 넣으니 맛이 환상이다
심심한 아저씨는 한동안 벽만 바라보다 로비로 나가 버렸고, 나도 아저씨가 바라봤던 벽을 처다보았다,
사물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 문화답게 벽에 똑같은 그림의 타일을 이어붙여 추상적인 문양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타일마다 그림이 약간씩 달랐다,
공장에서 찍어낸게 아니라 한장 한장 핸드메이드 ? 대박 !
아침은 다 먹었는데, 아무도 안 온다,
아저씨라도 보고 가려고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뻘쭘하게 나왔다,
아이들 보여 주려고 호텔 앞 전경을 찍은 후, 로비에 앉아 가족 카톡방에 사진을 전송했다,
평소에 공기의 중요성을 모르듯,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으니 가족이 절실하다.
여긴 여유로운 아침이지만 한국은 지금 한창 바쁠 오후 네~다섯시, 나 심심하다고 현주를 붙들고 있었더니 안 보인다고 슬그머니 도망가 버렸다.
수다 떨 사람이 없어져 방으로 돌아와 나갈 채비를 했다, 그사이 베란다에 누가 빨래를 잔뜩 널어 놓았다,
어제 샌드위치집이 10시에 연다고 했으니 메디나 Souk (시장)도 그때쯤엔 슬슬 깨어나겠지 ?
돈을 다 주머니에 챙겨 넣고 호텔을 나와 시장골목으로 들어갔다
지붕이 있는 좁은 시장길 양편엔 상인들이 문 앞에 나와 개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제 물건 진열하는 가게도 보이고...
목공예점 앞을 지나는 내 눈길을 잡는게 있다,
허리 굽혀, 펜대같이 생긴 끝에 예쁜 꽃봉오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을 살펴보자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 이건 모하는 거예요 ? "
" 올리브 찍는 거 " 포크 시늉을 한다. 주변 것들도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 레몬 짜는거, 피자 미는거, 꿀 찍는거, 스파게티 뜨는거, 효자손... "
선인장 열매같은 건 ?
" 이쑤시개 꽂이... 어디서 왔어요 ? 일본, 중국 ? "
" 맞춰봐요 " 하니 귀찮은 듯
" 내가 먼저 물어 봤잖아요 ! "
기념으로 살까 ? ... 내가 올리브 포크를 만지작 거리자 5 dinar 라고 가격을 알려준다. 비싸다고 했더니 변명을 하길래
" 내가 튀니지에 2주나 있었어요 ! " 라고 약간 뻥을 치자
" 난 35년 있었어요 ! "
내가 졌다 !
그럼 얼마쯤 생각하냐 ? 고 남자가 묻길래 ' 1 dinar 쯤 ? ... ' 했더니 말없이 자리를 떴다.
멋쩍게 좀 더 둘러보는 시늉하다 시장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낙타 모양의 토기. 용도는 모르겠다
골목 안쪽 카페엔 일찍부터 남자들이 죽치고 있다
공산품이 비싸다 보니 이런 군것질거리가 많이 보였다
아랍인들에게 주식과도 같은 다트 (Date 대추야자열매)
구형 삼성폰.
그 이쁜 아랍 젊은이들을 잔인하게 절구통 중년으로 만들어 버리는 원흉, 단거 (Danger)
정육점
골목안 카페 주인이 열심히 오픈준비를 하는데 동네 깡패들이 벌써 한자리 차지하고 행패를 부린다,
이 나라에서는 애완견을 보기 힘들고 젊은 남자들이 저렇게 큰 개를 끌고 다니는게 가끔 보이긴 한다.
물론 주인없는 개들은 거리에 흔하다. 영양탕집 재료수급은 전혀 문제 없을 듯
시장구경에 폭 빠져 힘든 줄도 모르고 걷다보니 어느새 메디나 남쪽 문에 도착했다
성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 이제야 아프리카의 태양이 느껴진다
오줌싸다 놀란 녀석
나무 벤치에 앉아 있으니 축구공을 갖고 놀던 동네 꼬맹이들이 모여 들었다
한 녀석이 1 dinar 만 달라고 손을 내밀길래 ' 너가 날 주라 ' 며 나도 손을 내밀었더니 이내 포기하고 사진 찍으라며 천진난만한 아이로 금방 돌아왔다,
장 봐 돌아가는 할아버지
햇볕 아래 나른하게 졸며 앉아 있는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오바마같이 생긴 남자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시부렁찭게 몇마디 대꾸했더니 가버렸다
뛰어가다 발라당 나자빠진 아이
다시 성안으로 들어와 오르막길로 접어 들었다.
계단에 시멘트로 대충 경사로를 만들어 놓고 동네 오토바이들이 편하게 내려왔다
성벽아래 가정집.
빨래를 무슨 매듭 엮듯이 창틀에 걸어 놓았다,
꼬맹이 둘이 경사진 골목길에서 축구를 하길래, 잘 한다고 칭찬해 줬더니 몇번이나 내 손바닥에 Hi-Five 를 쳐 댄다
아이들 뒤로 골목 끝에 파란 바다가 보였다
언덕길을 다 오르자 길이 오른편으로 꺾어졌다,
이쪽은 길이 지저분하고 인적도 드물어 좀 무서워졌다
그늘이 드리워진 축대에 통통한 아가씨가 기대 있길래 지나가며 ' 봉주르 ' 인사를 했더니 날 경계하는 눈빛으로 집안에 엄마를 부른다.
미친 X ! 얼른 도망쳤다
동네길은 더 험악해 지는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놀라 뒤돌아 보니 아까 말 걸어오던 오바마가 여기까지 따라 온 것이다.
" 저게 박물관인데 저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날 따라 와라 " 며 앞장을 섰다, 내가 됐다고 천천히 걸어 가겠다고 했더니 다시 되돌아 가버렸다,
아래 사진에 검은 잠바입은 남자
길은 차 한대도 못 다닐 정도로 더 좁아지고,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 눈치는 더 보였다
어느 집은 외벽을 다 쪼아놓았다,
부서진 시멘트 조각과 모래등이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좀 넓은 공터까지 나왔다, 성벽 아래 계단에 걸터 앉았다,
철문을 경계로 이쪽은 쓰레기장 같은데 저쪽은 잘 꾸며진 정원에 경비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남자 직원들이 날 발견하곤 ' 빙 돌아 들어오라 '고 손짓을 했다, 내가 박물관에 오려다 길을 잘못 든 걸로 생각하는거 같다.
아까 무서워서 좀 빨리 걸었더니 땀이 흠씬 났다,
겉옷을 벗다가 안주머니에 넣어온 10 짜리 빳빳한 지폐 100 여장이 흙바닥에 쫘르르 쏟아졌다.
놀라서 이번엔 진땀이 났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 얼른 수습했다,
할아버지가 바게트빵을 들고 앞집 문에서 나와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이내 오토바이를 타고 온 청년이 큰 바구니를 양쪽으로 들쳐 매고 그 문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직원이 소리치자 그문에서 아저씨가 나와 빵 하나를 넘겨준다,
그걸로 끝이다, 돈이 오가진 않았다,
아~ 이런데서 바게트를 만드는 구나. 여기서 사면 엄청 싸겠는걸 ~
잠시 후 청년이 다시 나왔는데 큰 바구니에 바게트가 가득했다.
핑크색 신데렐라 왕관을 쓴 넝마주이 아줌마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걷는 아이의 발끝에서 작은 먼지가 일었고
오토바이 뒤로 연기처럼 먼지가 일어나고,
조그만 픽업 트럭은 온 공터를 먼지로 가득 채웠다,
히잡을 두른 아주머니가 그 상황에서도 굳세게 묵묵히 문 앞 먼지를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었다,
공터를 지나 약간 경사길을 내려오는데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한 청년이 책상에 앉아 뭘 열심히 쓰고 있다.
처음엔 대서소인줄 알았다
그의 등뒤로 책과 노트들이 보이길래 마침 수첩이 하나 필요했던 터라 안으로 들어갔다,
허락을 받고 책상 앞에 빈 의자에 앉아 가게를 빙 둘러봤다. 문구점이었다,
적당한 수첩을 하나 골랐는데 바둑판 같은 칸 노트다, 혹시 줄노트 없어요 ? 청년이 일어나 찾아보더니 없단다
얼마 ?
수첩에 775 란 스티커가 붙어 있어 1 짜리 동전을 내자 0.22 를 거슬러 준다. 수첩은 0.78 dinar (468 원)다.
책상 위에 볼펜으로 내 수첩에 기록을 하다보니 질이 꽤 괜찮다.
' 튀니지 볼펜 있냐 ? ' 고 물으니 보여주는게 다 독일, 프랑스 거다.
" 난 튀니지 게 좋은데... " 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고등학교 2 학년,
이름은 Kemal (캐멀) 이라고 해서 내가 낙타 (불어발음도 캐멀)냐 ? 하며 농담을 했더니 수줍게 웃으며 그건 C로 시작한다고 ㅋㅋ
" 오늘 왜 학교 안 갔어 ? "
" 2011년 1월 14일에 튀니지 혁명이 일어났는데 오늘이 기념일이라 학교 안가요 "
그래서 튀니지 혁명의 의미도 설명듣고 군대 가는것, 한국 사회, 튀니지 칭찬, 한국 자랑, 이슬람인에 대한 나의 생각, 테러리스트로 오도되는 불만, 여행이야기, 이슬람 인삿말 등 ...두 남자의 수다가 끊일 줄 몰랐다. 아까 뭘 열심히 쓰던 건 낙서 그림과 글씨 연습이었다.
진열대에 알록달록한 병이 모냐고 물어보니 향수란다. 싸구려 향수 (캐멀이 직접 말한 것임)
난 술인줄 알았다고 했더니 80 ˚ 라고 적힌 걸 보여주며 술로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진짜 ? 묻곤 둘 다 웃었다
서로 재밌어 헤어질 줄을 모르고 있는데 손님이 와 대화가 끊기고, 마침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에덴)이 들리길래 일어났다
문밖까지 나와 인사하며 내 이름을 기억해 불러 준다
Good-bye, Mr Lee !
메디나 서쪽문 밖은 공원이 말끔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캐멀에게서 산 수첩
한참 쉬었다가 메디나로 다시 들어온다,
멀리 항구와 지중해가 보였다
차 한잔 하고 가려고 깔끔한 카페에 들어 왔다,
벽에 쟁기등 농기구도 걸어 놓고 조그만 실내분수도 만들어 놨다
쥬스 한잔, 얼마 ? 5 dinar. 커피는 ? 3 민트차는 ? 2...
내가 비싸다고 했더니, 이건 주전자로 나온다 큰 사이즈라고 했다, 한잔 짜리로는 안 파냐고 하니 1 dinar 짜리는 없다고 한다.
하긴 인테리어가 좀 비싸 보이긴 하다, 그래서 현지인이 없구나... 그냥 일어나 나오자 골목안에 일없는 남자들까리 뭔 이야기를 했나보다.
한 남자가 2... 1 ... 가격을 깎아주며 먹고 가라는데, 그냥 정내미가 떨어져 외면하고 내려왔다
유적지 루트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찾아 다녔지만 대문이 닫혀 있거나 골목을 막고 공사중이다,
동네 남자애들이 열심히 돌을 옮기고 있다,
햇볕은 뜨겁고 긴팔 잠바에 걷기는 힘들어, 땀을 뚝뚝 흘리며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데
카펫가게 주인이 의자를 내주며 맘껏 앉아 쉬라고 가슴에 손을 대고 진심을 표했다
골목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은 다 식고 잘 쉰 다음,
사심없이 호의를 베풀어준 주인에게 나도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일어났다,
시장안에 이 사원은 특이한 지붕모양으로 유명하다
드디어 숙소 앞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배가 고프다. 어제 밤에 들렸던 샌드위치집을 엿부러 찾아갔다,
참치 넣은 바게트 1.7 계란부쳐 끼운 빵 1.5 에 음료수 2개, 총 4.7 dinar (2,820 원)
음료수는 미지근한 걸 주길래 찬거 없냐고 물으니 냉장고에서 꺼내줬다
" 어제 저녁때 왔다 간거 기억하지 ? "
" 예 ! "
음식 만드는 걸 보고 있자, 어제 청년이 자리를 바꾸자고 하더니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또 한 남자는 나를 조리대 뒤로 부르길래 안으로 들어갔더니
자기네들이 먹던 쿠스쿠스를 나에게 권했다,
서운해 할까봐 한 숟갈 받아 먹었다. 먹던 숟가락인건 물론이고 !
수스 메디나 도성안엔 이러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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