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해적

2015. 1. 13. 15:00Tunisia 2015

 

 

 

 

한숨 자고 났는데도 겨우 오후 1시.

 

카메라를 잠바 겉주머니에 쑤셔 넣고 로비에 내려왔다. 

프런트의 주인아저씨와 젊은 남자에게 수스항에서 운행하는 유람선에 대해 물어봤다, 

1시간 가량 근처 해안을 돌며 요금은 20~25 dinar 정도.  운항시간은 오전, 오후에 한번씩 ...

모나스티르 (Monastir) 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은 섬에 들어 갔다 나온다는데... 하고 다시 아쉽게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숙소 문을 열고 나오자 눈앞에 그랑 모스크의 거대한 뒷담이 시야를 떡 ~ 가리고 서 있다,

맞은편 구시가지 (메디나)의 너저분함과는 대조적으로 벽에 낙서하나, 포스터 한장 안 붙어 있는 것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바닷가쪽으로 내려왔다, 메디나 성벽을 따라 번화한 장이 섰다,

 

견고한 그랑 모스크 성벽과 모서리의 원형 망루, 메디나 성벽이 이중 삼중으로 모스크를 호위하고 있다.

 

택시 타고 온 길을 더듬어 부둣가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정박해 있는 멋진 범선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선원모자를 쓰고 츄리닝을 걸친 배불뚝이 아저씨가 한손에 종이 뭉치를 쥐고 다가왔다,

표딱지 같은데 하도 쥐고 다녀 둥그렇게 말려 있고 겉장엔 누런 손때도 묻어 있었다

"  배가 곧바로 출발합니다. 50 dinar 인데 40 에 해줄테니 어여 타세요 " 하며 50 숫자가 인쇄된 표를 보여준다

"  비싸요, 그건 여름 요금이잖아요. 점심 포함이예요 ? " 받아치자 잠시 당황하더니 

"  점심은 포함 안되어 있고...1시 30분 출발이라 지금 타야 됩니다 "

"  내일 오전엔 몇시에 출발이예요 ? "

"  10~10 :30 분인데... 35 dinar 로 해줄테니 오늘 선불 10 내고 내일 나머지 내세요.  날 못 믿어요 ? "

"  (뭘 보고 널 믿냐 ? )  내일 일정이 유동적이예요 "

"  해적선 내부를 한번 볼래요 ?  따라 와요 ~ "

"  됐어요 "

 

더 이야기 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걸 느꼈는지 아저씨가 조용히 다른 얼간이를 찾아 떠났다.

뒷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 이 아저씨 강적이다 !

잠시후 아가씨를 그것도 4명이나 데려와 내 옆에 앉혀 놓고 자기네끼리 아랍어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거다, 아가씨들도 뭐가 재밌는지 피식피식 웃어댔다, 나만 왕따 시켜서 슬슬 약 올리는 전술을 쓰더니 

"  30 에 해줄께. 아가씨들도 함께 타니까 같이 갑시다 "

그 말에 머리속에 흐믓한 광경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넘어 갈 뻔 했다, 미인계에 홀딱 !

"  난 20 으로 알고 왔어요, 안가요 " 했더니, 결국 20 까지 뱃삯이 내려왔다

 

가격도 확정됐고, 그래도 최종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아가씨들에게 어디서 왔냐니까 튀니지인이고 학생이라고 자기들을 소개했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길래. 한국이라고 하니 " Korea is beautiful country ~! " 라고 한다.

"  배 진짜 탈꺼예요 ?  우리 5명만 타고 가는 거예요 ? " 라고 한 아가씨에게 묻자 배불뚝이가 끼어 들어 "  아니다. 저기 또 있다,. 사람 ! " 하는데, 아가씨들에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  우리들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요,,, "

 

매를 어깨에 얹고 다니며 기념사진으로 돈을 버는 청년이 지나가다 끼어 들었다,  매 청년은 영업상 영어가 꽤 능숙했다,

나에게 아가씨들 15 dinar 를 내주고 같이 가라는 거다,

"  내가 왜 내냐 ? " 오히려 이번엔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고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됐다,

"  아가씨들이 같이 가는 걸 내가 왜 보증을 하는 건데 ? "  황당해서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  아니다. 그 아가씨들 어제 보증금 15 씩 내고 오늘 20 을 내는 거다 "

뭔 말인지 횡설수설이고 더 있다간 말려 들거 같아 손을 내저으며 얼른 그냥 그 자리를 일어나 버렸다,

 

 

배 출항하는거 구경이나 하려고 맨 끝 배쪽으로 갔다

빈 벤치가 없어 적벽돌더미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4명 아가씨들이 오더니 한쪽 구석에 앉아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이번엔 배불뚝이도 매청년도 없고 주변엔 우리만 남았다,

그녀들은 바닷바람이 쌀쌀한지 팔장을 끼고 가끔씩 나를 힐끗 힐끗 보고 있는 애매한 상항이다.

잘 하면 엮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건 뭐 말도 잘 안 통하고, 쪽수도 안 맞고, 데려 갈 카페도 모르겠고 그냥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그때 썬글라스-튀니지에선 썬글라스를 낀 남자를 거의 못 봤다-를 낀 두 청년이 아가씨들에게 까불까불 추파를 던지며 지나가더니, 유람선 앞에서 자기들끼리 사진찍고 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포즈잡고 셀카 찍으며 사람들 주목을 끌었다, 잠시 후 남자들 일행 셋이 아가씨들에게 다가와 본격적으로 작업을 걸었다,

 

나에게도 작업을 거는 사람이 있었으니, 얼굴이 검고 마른 남자가 다가와 유람선 타라며 25 를 제시한다

"  점심은 포함 안 되어 있냐 ?  모나스티르는 점심도 주던데 ... "

"  맞다. 솔직히.  그러나 거긴 고기가 작고, 여긴 8 dinar 만 내면 생선도 크다 "

대꾸도 안했더니 찔리는지 20 으로 깎아 줬다.

"  언제 출발하냐 ? "

"  2시 반에 출발해 3시 45분쯤에 돌아온다 "

시계를 보니 출발 시간은 임박한데 그 큰 배에 승객이 거의 없다. 급한 건 그쪽이니까... 드디어 15짜리 패를 내던졌다

그 정도면 괜찮은 가격 같아 O.K !  

빳빳한 20 지폐를 주자 따라 오라며 배 입구에서 다른 남자에게 인계. 걸레 같이 구겨진 5 dinar 지폐로 거슬러 받았다

뱃삯  15 dinar (9,000 원)

지팡이는 계단 옆에 끼워 놓고 갑판으로 올라가는데 선장인지.. 뚱뚱한 남자가 나에게 얼마 냈냐고 물어본다,

 

별 소음과 진동도 없이 배는 스르르 부두를 떠나는데

 

(히잡을 둘러 쓴 네명의) 아가씨와 (썬글라스를 쓴) 건달들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가 닭 쫓다 지붕 처다 보면 이런 기분이구나...

 

 

 

 

몰래 경비정도 찍고

 

 

코난 만화영화에 나올거 같은 귀여운 구명정이 상선 후미에 매달려 있다

 

뱃전에 기대 망망대해만 바라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웃는 낯으로

"  맥주 ?  딸기 쥬스 ? "

이 나라 와서 하도 예상치 못한 인기를 누리다보니 무슨 호의를 베푸는 줄 알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얼만데 ? ' 물었더니 10 dinar 라고 한다, No 하니 ' 5 dinar ! ' 재차 거부하자 저렇게 인상을 쓰며 안동안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선원들이 생선과 소시지등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올라와 상을 치렸다,

 

요리, 음료로 부수입을 올리려고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찝쩍거려 보지만 음료나 조금 사 마실뿐 식사를 주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차림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젊은 선원들이 들통을 들고 나타나 해골이 그려진 두건을 손님들에게 일일이 씌워줬다

 

'  이 배가 해적선이라고 설정하고 선원들이 해적 퍼포먼스를 하려나 보다 ' 설레이며 기대를 하고 있는데...

 

젊은 선원이 다시 돌아오더니 ' 3 dinar ' 라고 하는 것이다.

기도 안 차서 도로 벗어줬다.

해적 퍼포먼스를 하라고 했더니 진짜 해적질을 하네, 이 헝겊 쪼가리 하나에 3 dinar ?,

 

물론 사는 사람도 한 둘 있었다,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스피커로 음악 틀어 놓고 선원들이 다 갑판에서 사라졌다

배는 멀리 하얀 지평선 끝 모나스티르 방향으로 가나 싶더니 출항한지 30분도 안돼 뱃머리를 돌렸다

' 안 사줘 성질났나 ?   하긴 고작 열댓명 승객으로 기름값도 안 나오겠다 ' 싶긴 하다.

 

' 낚였다 ' 란 생각만 들고 오롯히 뱃놀이를 즐기지는 못 하겠다,

 

 

 

맞은편 갑판에서 젊은 남자가 손을 까딱이며 날 부른다.

흔들리는 갑판을 비틀거리며 갔더니 자기들 하고 사진을 같이 찍자며 여자가 폰을 꺼내는데 삼성꺼다,

이거 한국에서 만든 거라고 자랑하며 사진을 같이 찍었는데 역광이라 위치를 바꿔 다시 찍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데 이번엔 뱃머리에 있던 건달 셋이 나를 내려오라고 부른다

'  이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새X 들이 어른을 오라가라 지랄이야 ? ' 

계단도 가파르고 갑판에 밧줄과 기름 묻은 부픔들도 널려 있어 내려갈 맘이 안 들었다,

" 안가 " 

 

지들이 올라와 한놈씩 번갈아 나랑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도 카메라를 건네주고 함께 찍었다

 

 

 

 

 

 

사진 찍을때 키 맞추라고 머리도 찍어 누르며, 장난치고, 말은 안 통해도 열심히 떠들어 댔다,

여기 얼마나 있냐 ? ... 나이는 ? (얘들은 26살, 27살) 비행기표 얼마냐 ? ... 한국 육군 총 쏘는 이야기...이슬람 종교 이야기...

 

이야기 중에 하늘을 가르치길래 내가 못 알아듣자 한 녀석이 나를 끌고 가 머리위를 보여 줬다

돛대에 걸린 깃발이 알제리 국기라며 자기들이 알제리인이라고 한다. 국기에 달과 별 문양이 튀니지것과 터키것과 흡사했다

축구 이야기...박지성이야기... 알제리 음악이 흘러 나오자 같이 박수치고 노래 부르고,,, 씨디부사이드에 알제리 대사관이야기, 거기서 만난 알제리 청년들 이야기 ...

 

 

  

 

나 씹으라고 먹던 껌 반 잘라주고

프렌치 프라이 먹으라고 갖다주고... 겉보기완 다르게 애들이 순박하고 정이 많았다

 

 

배가 항구로 들어오다 방파제 앞에서 멈추더니 젊은 선원들이 차력시범을 보였다 

 

 

 

 

 

 

 

 

 

 

 

 

 

다 끝나고 차력사가 돈을 걷으러 다녔다.

시장바닥 약장수부터, 봉춘서커스까지 더 화끈한 것에 단련된 한국인에게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만 그래도 재밌고 놀란 척하며 1 dinar 를 넣었다   

 

그 이후로도 선원 아저씨가 계속 음료수나 맥주 마시라고 종용하는데 끝까지 버텼다,

배는 넓게 기수를 돌려 정확히 3시 40분에 항구로 돌아왔다.

이건 뭐 결과적으로 내 돈 내고 스스로 볼모가 된 꼴이다. 우리를 도망 못가게 바다 위에 띄어 놓고 이것 저것 강매하는게 진정한 해적선이고 해적 아니겠는가 ?

 

백발 할머니가 돌아오는 배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길래 우리도 팔이 떨어져라 답례를 했다.

혹시나... 두리번 거려봤지만 「아가씨와 건달들」연극은 종영했고 무대위엔 늦은 오후의 그림자만 깔려 있었다,

 

내릴때 알제리 애들에게는 유람선측에서 기념으로 사진도 인화해 줬다,

 

배에서 나와 그냥 헤어 지려고 하길래 한명씩 끌어 안아줬다.

어느새 얘네들하고 정이 들어 버렸다.

 

 

각자 한국에, 튀니지에, 알제리에 살고 있었음

인종, 종교, 편견으 벽이 우릴 막고 있었겠지만 

지금 여기엔 오로지 인간에 대한 사랑 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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