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외진 산장에 감금되다

2014. 7. 31. 21:30Britain 2014

 

 

 

 

어제 미리 호텔을 예약해 놨다고 글래스미어에서 여유를 부렸지만, 날이 흐려지자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 그리워진다. 

숙소는 글래스미어에서 한참 북쪽으로 올라가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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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미터 나오자 금방 시내를 벗어났다,

 

양편으로 산이 솟아있고 그사이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꽤 급경사가 쉼없이 수km 나 계속되었다.

엑셀에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인적 없던 길에 칙칙한 돌집 하나가 덩그런히 지어져 있었다,

 

탄력을 받아 무심코 지나치는데 아무래도 그게 그거 같았다,

 

후진해서 벽에 붙은 판자떼기를 올려다봤다

대문자와 소문자가 지 맘대로 섞이고 성의없이 직직 그린 간판

RAiSE COTTAGE.   내가 예약한 곳과 이름은 일단 동일했다.

가장 싸게 먹힌 간판 대회가 있다면 메달 하나는 거뭐질 실력이다,   

 

차에서 짐을 꺼내 올라가려는데 녹색문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고 그 뒤로 화분으로 장식한 경사로가 있다.

마침 키가 멀대같이 큰 백인청년이 나왔다 들어가길래, 입구를 물어보니 뒤쪽이라 해서 같이 들어갔다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로비가 아주 훌륭했다

   마포걸레 두 자루가 벨보이처럼 서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고,

   그 옆에는- 바퀴 빠진- 비싼 산악자전거도 있고

   양쪽 벽으로 태피스트리 (Tapestry)가 예술적으로 걸려 있었다

그 외에도 양말이나 박스등 호텔의 품위를 높이는 오브제들이 주변에 널려 있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로 호텔이란 명칭대신 산장으로 바꿔 부를 것이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이 산장에서 젤 비싼 ' 더블룸-호수전망' 이다.  £65  (117,000원)

멀대청년의 안내를 받아 들어와 보니 욕실이 없다. 2층으로 올라가 공용욕실을 사용해야 된다고 한다.

 

산장이라고 사냥하는 인형이 있고

 

벽난로가 있고

 

산아래 저 멀리 글래스미어호가 병아리 손톱 만하게 보이는 걸 호수전망이라고 했다는 걸 알고는 기가 차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난 기가 차고 현주는 기가 막히고 ...

 

현주가 쿠션이라도 끌어 안아야 할 정도로 방이 썰렁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멀대청년이 사라지더니 샴페인을 한병 웰컴 드링크-입막음용-라며 가져왔다,

 

멀대에게 전자레인지나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냐고 물어 보았더니 가능하다며 우리를 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두 계단을 내려가자 공용주방이 넓게 있고 사람들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식탁 세팅이 되어 있어서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닫고 쉬다가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문이 안 열린다. 손잡이 위에 쇠를 잡아 당겨도 안 열리고 힘으로 밀어도 안 열린다.

겁이 덜컥 났다.

독안에 든 쥐처럼 갇혀 버렸다. 

가뜩이나 외따로 떨어진 산장이라 무서웠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감금되다니 !

사람들 인상이 안 좋던데 돈과 카드를 빼앗고 우리를 묻어버리려나 ?

 

문을 막 두드리자 멀대청년이 와서 밖에서 문을 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문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대가리에 실이 매어진 못이 구멍에 꽂혀 있다. 그걸 밀어 누르면 밖에 걸림쇠를 고정시켜 안에서 문이 안 열린다.

줄을 당겨 못을 살짝 빼고 시커먼 손잡이 위에 쇠를 엄지로 툭 누르면 그 반동으로 밖에 걸림쇠가 위로 들려서 열리는 것이다  

 

지랄도 풍년이다 !

외부에서 못 들어오게 하는게 잠금장치의 할일인데 이건 뭐 내부에서 잠겨 외부에서 열어줘야 하는 상황이 도저히 납득이 안돼, 납득이 !

그리고 자물쇠가 달랑 못 하나라니. 참 저렴하다.

객실내 귀중품의 보안과 투숙객의 안전은 오로지 문에 ' PRIVATE '  라고 붙인 종이 한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TV 도 없고, Wi-Fi 도 안 잡히고, 초저녁부터 방에 있으려니, 춥고, 닦기도 귀찮고 ...

카드랑 돈을 챙기고 샴페인을 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마침 식사가 끝나서 정리중이었다,

 

 

현주랑 건배하고, 내일 숙소 예약하고... 벽난로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불 피워준다고 해서 9시에 해달라고 부탁했다

 

백인아가씨에게 사진좀 찍어 달래서 ... 

 

멀대청년이 택배 상자를 열어 왠 제복을 입고 나왔다

 

농담으로

"  경찰이야 ? " 물었더니, 8월에 배타는 학교에 입학하는데 거기 교복이라고 한다.

' 3년간 배우고 실습하는걸 반복, Transportation... ' 말이 들려 컨테이너나 Oil, Gas Ship 이냐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  내가 한국인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배들을 만드는 곳이 한국이야, 알아둬 ! "

 

샴페인 달착지근 하다고 마시고, 코르크 마개라 남길 수 없어 마시고, 분위기가 좋아 마시다 보니 ... 둘 다 술이 취했다

반도 못 마시고 어찔 어찔 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에 벽난로에 불을 지펴놔서 방이 따뜻했다    

 

 

현주랑 이불속에서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산소가 부족한지 벽난로 불꽃이 약해져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 앞에 거대한 악산이 떡 버티고 있었고 주변으론 인가같은게 전혀 안 보였다, 

 

 

 

 

 

술도 잠도 깬 현주에게 밖에 산책이나 나가자고 했다.

 

나가자마자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놀라서 처마밑으로 숨자 또 그쳤다.

 

 

 

 

비가 오는데 맞은편 산비탈에 양과 소들은 그대로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산장 뒷동산을 올라갔다

 

두더지굴인지 토끼굴인지 뱀구멍인지... 여기저기 땅이 온통 푹푹 들어가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 다시는 세상과 격리되서 살지 않으리... 너무 외지니까 무섭다 

 

 

 

 

방에 돌아와 교대로 2층에 씻으러 갔다,

2층은 기숙사 침대처럼 도미토리 형식인데 거의 비어있었다. 방들을 지나 왼편 복도끝이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이다.

물용량이 부족하니 아껴쓰란 종이가 붙어 있고, 쓰다 남은 샴푸와 칫솔들이 여기저기 틈에 꽂혀 있었다

좁은 곳에서 씻고 옷 다시 입고 나오려니 너무 불편하고 어두워서 내 치실까지 깜빡 놓고 나왔다

 

9시 반이 지났는데도 밖은 아직도 환하다. 여기가 영국에서도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백야처럼 낮이 긴가 보다

 

현주는 얼굴에 팩 붙이고 이불속에 누워 있다가 잠들어 버리고

나는 어제부터 약간의 滯氣가 있어 버티다가 소화제 환 반쪽을 먹었다. 갈비스튜와 고기파이 같은 음식이 영 안 맞는거 같다...

 

 

●   ●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

 

이 숲이 누구 숲인지 알 것도 같다

허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자기 숲에 눈 쌓이는 걸 보려고

여기 서 있음을 알지 못하리.

다른 소리라곤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와 솜털 같은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쐐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er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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