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너리티 세계사 "

2014. 7. 9. 02:33독서

 

 

 

 

 

 

 

 

▶ " 나는 이번 전쟁에서 죽을 목숨이다. 그대는 나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좋은 상대를 만나 아이를 많이 낳도록 하라 " 고 왕비에게 당부했다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

 

▶ 방탕한 생활에 빠진 로마의 소년 황제 엘라가발루스. 호모짓하다가 근위병들에게 살해되고 시민들에 의해 시내에서 끌려다니다가 난도질 당한후 테베레강에 버려졌다,

 

▶ 독일 국왕이 신성로마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교황이 관을 내려 주어야 한다. 게다가 대관식에서 국왕은 황제의관을 하사하러온 교황의 말등자를 무릎을 꿇은채 받치는 선례가 있다, 프리드리히는 신성로마 황제가 되기 위해 1155년 이 굴욕적인 대관식에서 관을 받았고 제 3차 십자군 원정길에서 객사했다,

 

▶ 13세기 후반 교황과 고위성직자들의 사치스런 생활은 절정에 달해 이미 성직자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했다.그 전형인 교황 보나파시오 8세.

 

▶ 1170년.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베켓 대주교는 기사들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국왕 헨리 2세는 자신의 부주의한 분노가 뜻밖의 큰 사건으로 발전하자 몹시 당황해 교황에 대한 복종과 참회를 표하기 위해 맨발로 런던을 떠나 캔터베리로 향한다. 3일후 채찍을 손에 든 80여 명의 성직자가 피범벅이 된 발을 질질 끌며 대성당에 도착한 국왕을 맞이했고, 그에게 채찍형을 가했다,

 

▶ 1830년 조지 4세가 사망하자 런던타임스의 편집장이 ' 누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릴 것인가 ' 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매우 저속한 왕이었다, 각종 음탕한 행동들, 온갖 사치와 도박 끝에 짊어진 막대한 부채, 더비 승부조작등 깡패나 다름없었다

 

▶ 프랑스는 혁명전쟁에서 열강을 쓰러뜨릴 탄환을 만들기 위해 대량의 납과 금속류가 필요했다. 이에 혁명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왕실묘소인 생드니 대성당의 무덥을 파헤치기로 했다, 역대 왕실의 관이 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혁명정부는 유골을 빼내 공동묘지로 옮겼다. 그 와중에 앙리 4세의 머리가 없어져 버렸다

 

▶ 19세기 말 만성적인 정치위기를 맞은 프랑스에 나폴레옹의 분신과 같은 사나이가 등장해 시민들의 가슴을 뛰게 한 인물이 있었으니 조르주 블랑제다. 때로는 강인하고 때로는 부드러웠던 그의 인상은 많은 여성들을 매료시켰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우유부단한 블랑제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지지자들도 뿔뿔이 흩어져 泰山鳴動 鼠一匹이 되고 만다, 54세때 연인 묘지옆에서 권총으로 오른쪽 이마를 쐈다,

 

▶ 칼레를 포위한 잉글랜드군은 단기전이 불가능해지자 군량공격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포위가 장기화 되자 칼레시내는 음식가 식수가 끊어져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어갔다. 식구를 줄이이 위해 5천명 가까운 노인과 아이들이 성밖으로 나왔는데 잉글랜드군은 그들을 되돌려 보냈다.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성벽 밖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를 차마 볼수 없었던 에드워드 3세는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돈을 줘 보냈다. 포위된지 1년이 지나 구원의 희망이 사라진 칼레의 수비대와 시민들은 결국 성문을 열고 잉글랜드군에게 항복했다,

 

▶ 1825년 러시아 황제에게 반란을 꾀한 데카브리스트 장교들은 주모자 6명이 교수형에 처해지고 121명은 시베리아등으로 유형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유형자들의 아홉 아내의 용감한 행동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이름이 알려진 명문귀족의 부인들로써 주위의반대를 무릅쓰고 귀족의 칭호와 호화로운 생활과 자녀들을 버리고 극한의 계절에 1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베리아 황야로 향했다,

 

▶ 체구는 작았지만 피에르의 웅변은 군중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 이 남자가 설교를 할 때 마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가 엄청난 군중에 둘러싸여 호평과 갈채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와 같은 영예를 받은 자를 지금껏 본 적이 없다 ' 열광한 군중은 흥분하여 그의 몸을 만지고 의복을 쥐어 뜯고 그가 탄 당나귀의 털을 뽑아서 성유물로 숭배했다고 한다. 1096년 피에르를 따르는 각층의 군중들은 민중심자군을 결성하여 성지탈환에 나섰다,

 

▶ 볼셰비키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평가받는 부하린은 친구이자 라이벌인 스탈린에게 총살을 당한다. 체포되기 전날 26세 연하의 부인에게 장문의 상신서를 암기하게 한다. 그로부터 50년후 고르바초프에게 남편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전할 수 있었다

 

▶ 극심한 여성편력과 사치, 잔인하고 교활한 성격 때문에 최악의 교황으로 찍힌 알렉산데르 6세, 사보나롤라는 금욕정치로 피렌체 시민들의 호응을 받는다. 그러나 결혼식, 장례식도 치룰 수 없는  성무정지로 위협하는 교황과 엄격한 정치가 점차 버거워진 시민들은 1496년 시뇨리아 광장에서 사보나롤라를 교수형에 처하고 공중에 매달린 시체 주변에 몰려 들어 침을 밷고 돌과 오물을 던졌다, 이윽고 장작을 쌓고 불 태운 후 아르노강에 시체를 던졌다,

 

▶ 1906년 독일 쾨페니크에서는 대위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소대를 이끌고 시청에 들어가 시장과 경찰서장을 연행하고 시금고를 털어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 남자는 30대로 키가 큰 편이고 늠름하고 군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고 하는데 사건 발생 10일만에 잡힌 빌헬름 포이크트라는 범인은 키가 작고 앙가발이에 백발이 섞인 머리의 쉰여섯의 중년남이었다. 빌헬름 2세는 이 사건을 알았을 때 기뻐하며 " 독일인이 규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이 세상 어떤 국민도 우리나라를 흉내 낼 수 없다 " 고 했다

 

▶ 기원전 3세기 후반 지금의 튀니지땅에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있었다. 한니발장군은 지금의 탱크같은 코키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처들어왔다. 숫적으로 열세한 카르타고는 완벽한 포위섬멸전으로 두배나 많은 로마군을 다 전멸시켰다.

 

▶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세울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던 참회왕 에드워드는 국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정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있었지만 수도사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후계자도 없었다,

 

▶ 1863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단눈치노는 쉰이 넘은 나이에 전투기를 타고, 빈상공에서 전단지를 뿌리고, 빨간 오픈카를 타고 선두에 서서 의용군을 이끌기는 했지만 바톨리오 장군의 " 그는 정말 에너지의 원천이고 놀라운 대중선동가지만 사령관으로서의 자질은 없다 " 는 말처럼 항복도 동전던지기를 했다,

 

▶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광대한 몽골제국을 수세기에 걸쳐 건설하고 유지한 그들이 만약 히틀러처럼 잔인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그 제국은 아마도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동서교역은 물론, 헤아릴 수 없는 문화교류를 촉진시킨 몽골은 원정에 임할 때도 실로 신중하게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적국에 대한 철저한 내탐조사와 모략공작은 몰론 자국의 벙참확보와 원정에 동행하는 각 부족의 의견통일을 중시했다. 최소 2년을 투자하여 신중하게 원정을 준비했다. 싸우기도 전에 저절로 굴복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몽골 원정군은 가능한 싸우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 국경을 마주한 중미의 이웃국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영토와 이민자들의 정치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월드컵 진출을 위한 축구 예선경기를 발단으로 두 국가는 진짜 전쟁을 벌이게 된다. 1969년 약 4일간 벌어진 두 국가의 전쟁을 축구전쟁 혹은 100시간만에 끝났다고 하여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 히틀러는 빈에서의 방랑시기에 그 나름의 사상적인 갈등속에서 반유대주의의 배아를 형성했다. 그리고 서른 두살에 처음으로 다트리히 에크하르트를 만나 ' 힘찬 이마, 푸른 눈, 황소같은 용모, 그리고 훌륭하고 솔직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 '에 압도되어 과격한 반유대주의자가 된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막연했던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확고하게 만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나치스의 역사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인물이야말로 히틀러라는 괴물을 괴물답게 만든 진정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 1811년에 태어난 갈루아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수학의 방향성을 크기 바꾼 천재다. 하지만 그는 이중의 불행으로 괴로워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제시한 이론을 당시의 수학계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과 그를 궁지에 몰아 넣은 당시의 반동적인 정치상황이었다, 20세에 결투에서 허망하게 져 생을 마감한다.

 

▶ 아름다운 문체들 때문에 ' 甘蜜박사 '라고 칭송받던 희대의 석학 베르나르는 " 그대가 이것을 은총이라고 여기며, 겸손하게 헌신적인 사랑의 힘을 담아 응하시려고 하듯이 주의를 주신다면 간청드립니다. 그래도 알고 계시듯 신은 교만한 자를 막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야고보서 4장) 그렇다고 하니 마음속에 가르침이 현존하여 그것이 모든 일에 기름을 바르라고 명한다면, 더 이상의 가르침이 필요할까요 (전개서) 라고 호의적인 답을 보내왔다,

 

▶ <Je te veux 난 당신을 원해요> 라는 왈츠곡으로 유명한 에릭 사티는 열살 때 피아노 교사였던 아버지의 재혼상대에게 본격적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덕분에 명문 파리 국립음악원에 어려움 없이 입학했으나 '지방의 감옥 안을 떠올리는 분위기' 에 적응을 못해 포기, 육군에 입대했다. 역시 병영생활에 잘 적응할 리가 없었다,. 그는 추운 겨울날 알몸으로 연병장에 나아 일부러 기관지염에 걸려 입원하게 되면서 성공적으로 군대생활과 결별했다.

 

▶ 고집불통이란 말은 이 남자를 위한 것이다. 하루종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연구에 몸을 바친 괴팍스러운 한 남자가 있다, 여자를 멀리 했던 이 남자에 반해 그의 연구를 지원하고 가사와 육아에도 분주했던 그의 아내가 있다, 노벨상 수상이란 영광의 스토리에서 '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연구가' 인 아내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 어느 샌가 이 남자의 그림자는 옅어져 있었다. 아내의 뛰어난 발상을 인정하고, 아내의 실험 데이터를 부지런히 기록해 온 이 남자가 피에르 퀴리다.

 

▶ 소련이 붕괴되고 내정이 끝나고 보니, 사회주의의 추태는 백일하에 드러났다, 소련 각지 마을 광장에 세워져 있던 레닌동상이 잘려 크레인으로 제거되는 영상이 연일 계속되었다,이날부터 레닌은 많은 사람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제정말기, 러시아가 손 쓴 방도가 없던 전제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시대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인하며 그것을 위헤 치밀한 계획을 구상한 레닌도 ' 개척'에 갈밎는 인물일 것이다.

 

 

이건 뭐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한 시대의 메이저들 이야기다.

다만 역사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리고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일 뿐

 

한명당 10여 페이지 정도여서 부담없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재주까지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 책 때문에 동네 카페에서 진상고객으로 찍히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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