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죽어야 졸업하는 여고

2014. 4. 9. 10:00Cambodia 2014

 

 

 

창가에 앉아 화창한 프놈펜의 아침을 내려다보며

홍차를 한잔 따끈하게 우려 마시고

욕조에서 빨래를 하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발가 벗은 채 열어주고 하던 빨래를 마저 하고 나와보니 승주가 홍삼을 한병 타 놓고 사라졌다.

 

이런 건 원래 내 전공인데, 승주가 챙겨주고, 난 여행사 사장이 체질이고... 서로의 것이 탐나는 안타까운 인생들.

여튼 승주 덕분에 인삼의 「大補元氣 生津止渴」효능을 톡톡히 본 여행이다

 

 

빨래 대충 널어놓고

 

10시에 로비로 내려가자 마자 대기하고 있는 상훈이 차에 올라탔다. 이렇게 편한 여행에 맛 들리면 안되는데...

 

혼자서도 쌀국수집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이젠 골목길이 친숙하다,

오늘 아침은 쌩땀도 덜 나고, 승주가 남긴 어묵도 가져다 먹을 정신이 있는거 보니 슬슬 적응이 되나보다.

 

쌀국수집 식당안을 둘러보았다.

열심히 족발을 뜯고 있는 옆 테이블 발밑엔 쓰레기통이 버젓이 있는데도

 

휴지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콩 줏어먹듯 둘이 담배를 피워대니까 나도 식후 연초 한대 빨아주고 ... 맛있는 커피 먹자고 부촌으로 차를 몰았다.

난 승주가 타준 홍삼물로 대신하고 상훈이가 커피를 take out 하러 들어갔다.

 

   더운 나라인데도 몸에 딱 맞는 슈트를 빼 입은 백인

   골목에선 Benz, LANDROVER 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브런치를 앞에 두고 데이트하는 젊은 서양커플...  여긴 LA 로데오 거리라고 해도 될 정도다.

프놈펜에서도 이런 동네에서 커피 마시고 살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할 듯.

상훈이가 커피를 들고 나오며 " 형 ! 안에 물 좋은데 ~ " 하는데 갑자기 바쁘지도 않은데 왜 take out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    ♥    ♥

 

 

그 좋은 물 맛 포기하고 기껏 간 곳이 

툴 슬렝 집단학살 박물관 (Toul Sleng genocide museum) 이라니 좋게 보일리가 있겠는가 ?

상훈이는 담밑에 차 받쳐놓고 기다린다고 해서 무거운 발걸움을 툴털거리며 승주 뒤를 따라 갔다. 오전부터 푹푹 찐다.

 

동양인이나 단체관광객들은 전혀 안 보이고 관람객 대부분이 서양인인 것이 좀 특이했다.

한국여행사 패키지엔 여기가 빠져 있다고 승주가 안타까워 했다.

 

1975년 이전까진 신성한 여고 건물이었으나, 크메르 루즈 정권 당시 악명높은 S-21 감옥으로 악용되었다.

4년동안 17,000명을 수용하고 킬링필드에 데리고 가 처형했다.

 

 

 

 

철제침대에 쇠사슬

총알 철통을 보니 갑자기 어렸을때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사물함으로 쓰였던 바로 그 통

 

폴폿은 자주국가 건설을 위해 캄보디아를 농경사회로 회귀 시키려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일환으로 도시 인구를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현황도

 

옆 방으로 건너 가자 명함만하게 찍은 희생자들의 사진이 사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사진속에 사람들과 눈길을 맞춰본다.

한사람도 악한 표정 없이 모두 순하다 못해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의 큰 눈망울처럼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다.

제 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게 될걸 그들은 눈치 챘을까 ? 

 

그들을 기리며 한명한명 정성껏 그려 보았다

 

땀이 줄줄 흐르는 후덥지근한 날인데도 서늘한 전율이 느껴져서 옆방으로 얼른 피했다.

 

 

 

"  미친놈 ! "

승주가 대뜸 욕부터 했다.

사람을 고문하고 학살하기 전에 왜 다 사진을 찍어 남겨놨는지 모르겠다며...

그 기록들이 40년 후에 이 방에 이렇게 전시될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 

 

몇 개의 방을 옮겨 다녀도 사진이, 학살된 양민이 수없이 나타났다.

더 이상 그들과의 눈싸움을 지속할 기운도 없고 뭔가 말하려는 듯한 표정들이 버거워 급속히 지쳐갔다.

 

한 학생이 무릎을 꿇고 한명 한명 정성껏 사진을 찍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젊은 세대들이 이 끔찍한 역사를 교훈삼아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를 뒤에서 조용히 소망해봤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뒤통수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살해한 장면

 

이 쇠고리의 용도는

 

사람들을 굴비엮듯이 일렬로 묶어놓은 발찌였다.

 

 

그 다음 방에 전시된 사진들은 차마 카메라를 들 엄두조차 안 난다,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사체들.

거기에 인간은 없었다.

 

먹먹해서 창밖을 내다 보았다.

쇠창살 너머 운동장에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녹색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 감옥에 갇혀 고문과 학대를 당하던 사람들에 눈에 저 바깥풍경이 어떻게 보였을까 ?   자유를... 

처연한 햇살

 

 

 

 

또 다른 건물엔 크메르 루주(rouge 붉은) 가 연상되는 붉은 벽돌로 대충 막아놓은 고문실이 있었다

여기 끌려오는 사람들은 법률가, 의사같은 전문직들과 사회지도층이 일차 대상자였고

손바닥에 굳은 살 없는 사람, 안경 쓴 사람, 집에 책 있는 사람들까지 다 잡아 들였다,

 

"  이원장이 여기서 태어났으면 가장 먼저 잡혀 올 사람이여 " 

"  너가 여기 태어났으면 폴폿이 됐을거야, 날 잡아갈 ! "  

 

 

못이 띄엄띄엄 박힌 나무가 벽에 붙어 있다.

그림을 보니 고문실 열쇠걸이대 였다.

 

공원으로 조성해놨지만 철봉이 덩그런히 남아 있었다

 

 

운동장을 건너 또 다른 건물에 들어서자 고약한 악취가 났다.

여기는 고문기구들과 고문현장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만 봐도 내 손가락이 잘리고 내 거죽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났다.

흐를까봐 고개를 좀 더 들었다.

앞서가던 승주가 뒤돌아보면 땀 닦는 체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많은 스컬(skull)을 보아 왔지만 오늘처럼 눈물을 통해 본 적은 없었다.

 

 

담 따라 돌아 오는 길,

고개를 떨구고 걷는데 한 발짝마다 한숨과 욕이 나왔다.

 

 

1979년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공격해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락시켰을때 S-21 감옥에 살아 남은 수감자는 단 7명 뿐이었다, 이들은 기록에 사용될 그림이나 사진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생존자중 한명이 싸인을 해주며 책을 팔고 있었다. 해골이 드러나고 이빨까지 다 빠진채 아직도 살아 있었다.

 

공간여행과 시간여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여행도 있었다. 

한때 이 땅은 지옥이었다. 이 여고는 죽어야만 졸업할 수 있었다

그 지옥을 조금이라도 느껴 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지금껏 내가 산 곳은 천국이었다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노는 아이들. 

   양과자들이 잔뜩 쌓인 가게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아이들

   그들을 찍고 있는 나

 

 

 

▲    ▲    ▲

 

 

상훈이네 가게로 돌아왔다

오늘은 숙소에서 썬글라스를 안 가지고 나왔더니, 상훈이가 낮에 쓰시라고 좋은 걸 고르고 있다.

"  비싼거 꼈다가 괜히 흠집나면 안되니까 싼걸로 하나 줘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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