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22. 18:00ㆍVietnam 2014
첫날 메콩가는 버스에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한 둘씩 낙오되더니 이제 내 곁엔 쉬리일행 셋과 막스밖에 안 남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신나야 할 또 다른 여정이 흥미를 잃었다.
모르는 여자를 따라서 아까 점심 먹었던 식당 앞으로 갔는데 그나마 남은 일행마저 찢어져 막스와 난 미니버스 남은 자리에 던져졌다. 옆자리엔 러시아불곰이 한자리 반을 차지하고 앉아 있어서 난 몸을 45도 틀어 앉아야 했다.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어디론가 실려 가는 불안감...
껀터 시내를 벗어날때 쯤, 조수석에 탄 가이드 아저씨가 몸을 돌려 내 손에 곰발바닥 손을 지긋히 덮더니 “ Vietnamese ? ” 하는 것이었다. 그 모멸감에 ' 코리안 '이라고 힘주어 말했지만 누가봐도 난 이미 수염이 삐쭉삐쭉한 불고구마였다.
차안에서 가이드 혼자 베트남말로 계속 떠든다. 그러다 조용해서 보면 역시 유리창에 머리 박고 잠들어 있었다
잠깐 자고 또 혼자 떠들고...그나마 내가 이 나라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필이면 40km로 달리는 경찰차를 앞 세우는 바람에 추월도 못하고 지겨운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강과 운하를 왼쪽으로 꼈다, 오른쪽으로 꼈다 하며 몇시간 째 달리고 있다.
자다 깨보면 또 메콩강. 이제 메콩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콩콩 뛴다
돼지가 도로 한복판으로 뛰쳐 나오는 험악한 길을 뚫고 롱수(long xu)라는 큰 도시에 도착했다.
가보진 않았지만 TV에서 보이던 중국도시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키 작은 가로수와 급조한 신작로, 낡은 트럭과 오토바이들, 길가의 색바랜 공산당 광고판 ...왠지 촌스럽고 삭막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2시 15분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서 쉬리를 봤는데 일부러 외면했다.
식당에 들어가 카페쓰어다를 물어보니 옆 주방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커피를 받아들고 내 돈을 펼쳐 보이며 집어 가라고 했다. 비닐봉지에 담아준 커피를 달랑달랑 들고 치워지지 않은 자리에 앉았는데 여직원이 와서 뭐라고 묻는다. 계산했다고 하니 웃으며 돌아갔다. 커피 얼른 빨아먹고 그 잔에 식탁 주전자 물을 담아 얼른 차에 올라탔다.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또 1시간 넘는 지루한 여정이 계속됐다.
참다참다 눈이 감기고 다리가 서서히 풀리며 본격적으로 잠에 빠져 들었는데 ...
<클릭하면 확대됨>
갑자기 차 문이 열리더니 가이드가 작크와 나만 내려놓고 가 버렸다.
어리둥절하며 호텔 로비로 들어가 앉았다. 남자 직원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덩치가 크고 인상이 무섭게 생겼고 한 명은 야비한 표정을 가졌다. 작크에게 뭘 보여 달라고 하자 영수증을 보여준다. 나에게도 달라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리로 오라더니 여권을 달라고 한다. 여권복사본을 주자 덩치 큰 남자가 손을 내치며 딱 한마디 했다. NO.
낸들 뭔 대책있나, 속수무책 서 있으니 야비한 표정의 남자가 어쩔 수 없는지 그냥 체크인을 해 준다.
무슨 경찰서 끌려온 줄...
102호 키를 주고 올라가라고 한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니 001호. 뭐여 이것이 !
한층 더 올라 3층으로 가니 102호다.
배낭 내려놓고 침대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로비에 내려갔다 온 작크가 “ 방 혼자 써 ! 좋지 ? ” 하며 자기 짐을 들고 나가버렸다.
뒤따라 야비직원이 올라와 102호키를 101호 키로 바꿔주며 방을 옮기라고 했다.
빨간 돌출간판이 붙어 있는 곳이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101호는 침대가 하나였다.
비닐탁자, 찬장, 꽃무늬 밍크이불, 물고문실 같은 화장실, 낡아빠진 수건 한 장, 천장 선풍기와 카키색 조절판....
잠깐 잠든 사이에 북한에 납치된 줄 알았다. TV에서 보던 북한 실내랑 똑같았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빨아 봐도 상황 파악이 안된다.
찬물에 샤워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조그만 비누 한장으로 샤워에 빨래까지 다 끝내고 나오니 4시 30분.
이제 뭘 해야 하지 ?
가이드 새끼가 우리를 누구에게 팔아 넘긴거야 ?
이기~ 완전히 끈 떨어진 갓이구만.
갑자기 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Just a moment ! 해도 못 알아듣고 문을 두드리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팬티만 얼른 걸치고 빠끔히 문을 열자 죽방 멸치같은 여직원이 머뭇거리면서도 내 방으로 밀고 들어와 여권복사본을 흔들며 안된다고 한다. ‘ 여권은 호치민 호텔에 있다, 배째라’ 라고 했더니 “ 그럼 당신이 해로운데... 해로운데...” 소리만 연신 뇌까렸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매니저에게 물어본다고 하며 뭔 종이 한 장을 내민다. 내일 아침 메뉴 선택하라는 거였다. 빵과 샐러드, 커피가 다인데 블랙, 밀크커피중 뭐 먹을래 그런 식이었다.
뇌보다 혀가 먼저 움직였다
" 참 C8 ! 가지가지 한다 "
밀크커피에 이쁘게 동그라미를 치고 내밀며, our team 이 몇 호실에 있는지 물어보는데 전혀 말이 안 통한다. 서로의 복장이 안 어울린단 생각이 들어 일단 내가 로비로 내려 가겠다고 하고 내보냈다.
옷과 카메라를 챙겨 나오는데 계단에 왠 사람의 등이 보였다. 작크가 좁은 계단에 앉아 스맛폰을 하고 있었다.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뻐서 모하냐고 물으니 위층엔 와이파이가 안 잡혀 내려와 이러고 있다고 한다.
“ 오늘 일정 없냐 ? 내일은 ? ”
- 아침 6시에 기상. 6시 30분에 메콩투어가 시작된대
“ 누구한테 들었어 ? ”
- 호텔 직원.
난 하나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고 하니 자기도 실망이라고 괜히 3일투어를 신청했다고 투덜댄다.
“ 캐나다 일행과 저녁 같이 안 먹을래 ? ”
- 그냥 각자 먹죠
“ 그랴 내일 나 안나오면 깨워라. 아마 일어날거야 ”
그리고 로비로 내려오니 아까 여직원이 있길래 다시 내일 일정을 물어봤다. 아침식사는 1층 로비에서 먹는다고 한다.
근처에 저녁 먹을 곳을 물어보니 로컬푸드인지 레스토랑인지를 물어보고 알려주는데 난 살다살다 그런 영어발음은 첨 들었다. 영어를 북한에서 배웠나보다. 말을 하며 동시에 수려한 글씨체로 써 주니까 알아들었지, 발음이 너무 강해서 그 목소리로 10분만 얘기하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탈진할 것 같았다.
로비에 좀 앉아있고 싶어도 분위기가 살벌해서 그냥 밖으로 나오니
덩치 큰 직원이 문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다 날 보더니 오른쪽 거리를 손짓하며 또 딱 한마디 던졌다
" 마켓 ! "
CR ! 내가 물어봤어 ? 물어봤냐고 ~ 닌 학주(학년주임)고 난 고삐리냐 ? 막 이런 욕이 나와야 되는데 입에선 공손하게
" 탱큐 " 소리만 나왔다.
천천히 거리로 나와 보니 호치민이나 껀터와는 확실히 달랐다.
무표정한 사람들, 잿빛 거리, 의사소통이 안되는 상황, 캄보디아를 넘어가는 국경도시....쩌우 덕 (Chau Doc)
‘ 내가 진짜 월남에 순간이동해 왔구나 ‘ 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작크는 실망했다는데 나는 오히려 이 묘한 분위기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던 역사가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염탐하듯 시장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Vietnam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왜 일찍 일어난거야 ? (0) | 2014.02.23 |
---|---|
16> 리얼 베트남, 쩌우덕 2-2 (0) | 2014.02.22 |
14> Marta 와 Anna (0) | 2014.02.22 |
13> 까이랑 수상시장이 날 물 먹이다. (0) | 2014.02.22 |
12> 너는 된장과 젠장 구분할 수 있어 ? (0) | 201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