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6. 14:30ㆍPhilippines 2013
한줄로 들어온 사람들이 출국심사부스에서는 4줄로 나눠지지만 전진속도는 달팽이보다 느렸다.
부스가 가까워질 때쯤 그 이유를 알았다.
진한 고동색의 필리핀 여권을 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두꺼운 서류뭉치도 함께 들고 있었다. 그 서류들을 체크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또 다른 탁자로 갔다가 다시 심사관에게 오다보니 새치기라고 따지기도 뭐하고, 이래저래 진행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비행기표 반 접어 여권에 끼워 뒷주머니에 넣고 빈손으로 서 있는 내가 불안할 정도였다.
90년대 중반 처음 해외 나갈때 김포공항 절차도 이거 못지 않았다.
그때는 공항이용료를 사야 했고, 청사 맨 끝 구석에 병무청에 가서 병역조회까지 받아야 했다. 그 수속에만 2시간이 걸려서 지금까지도 공항에 3시간 이전에 도착하라는 규칙이 그때부터 생긴거 같다. 요즘 그렇게 도착했다간 게이트에서 비행기 짐 싣는거 보며 1시간 이상 기다리기 일쑤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는데 그나마 줄던 줄이 갑자기 제자리 걸음이 되었다.
부스를 보니 심사관들이 두 손을 놓고 있었다.
직선거리 10 미터도 안되는 것을 꼬불꼬불 1시간 넘게 와서 바로 앞에 두명 남겨 놓고 이게 뭔 시츄에이션인가.
너무 성질이 나서 나도 모르게 부스를 향해 " What's the matter !! "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고 상태로 끝내면 엄청 쪽팔릴거 같아 부스를 향해 성난 황소처럼 달려가 무슨 일이냐고 화난 얼굴로 물었더니 ...컴퓨터가 모두 Shut down 됐다고 한다
참 C8, 여러모로 Fucking 하고 있네 !
줄 잘 섰던 우리 일행중 몇몇은 벌써 들어갔고
줄을 잘못 슨 우리들은 바닥에 철푸데기 않아 농성 아닌 농성을 했다
그 이후로 몇몇 사람들이 직원들에게 항의도 했지만
공항 남자직원들은 팔짱끼고 서서 빵빵한 여지엉덩이만 처다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30 여분이 지나자 아직 완전 복구가 안된거 같은데도 어쩔수 없이 출국수속이 진행되었다,
내 순서에서 출국종이에 빈칸이 많아도 눈치보며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들어왔던 일행도 더 진행을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전산망이 뒤죽박죽 되어 보딩패스에 찍힌 게이트도 긴급하게 변경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청사끝까지 비비적거리고 찾아가자 일행들이 담배나 하나 피자고 흡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는 흡연실안에 매점이 있다
담배 피려면 음료수를 사 먹든지. 음료수 안 먹고 담배 피려면 눈치밥을 먹든지 둘중에 하나를 해야 되는 얄굿은 상황이다
뭐 안 사고 점원에게 재떨이 갖다 달랠 용기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
활주로로 들어가기에 금방 이륙하는줄 알았는데...
2시 30분 출국예정인 비행기는 약 10분후에 이륙한다고 기장이 방송하더니
서다,가다...
예전에 사용됐던 니노이 아끼노 국제공항도 지나가고
그 사이에 애기가 계속 울어대는데 부모는 속수무책.
이 상황에선 모두 돌아버릴 지경이라 부모가 애를 때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거 같았다
40분이 지난 3시 10분이 되서야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운하같은 곳 양쪽으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가난한 동네가 있었다
아래 지도 O 부분인거 같다.
떠날때는 ' 내 다시 오나 봐라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쁜 기억들은 가라앉고 행복한 추억들만 떠올라 또 오게 만드는 Philippines
비행기내에 개인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미안했는지, 아이패드를 무료로 빌려주는 써비스가 있었다.
잽싸게 신청했더니 내 좌석표와 바꿔 갔다.
Apple iPod Mini with retina display. $ 399 7.9 inch 300만 화소
빌려 보는 것으로 충분 !
오늘은 기내식이 갈때 것 보다 헐씬 맛있다.
김실장도 입에 맞는지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내 취향의 음악
입안에 깔끔하게 남는 커피향,
구름을 물들이며 퍼지는 노을 빛... 귀국 비행기에서 이렇게 Sentimental 해지기도 첨이다.
대부분은 10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머리 꾸겨져 자거나,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며 트림이나 하고 있어야 맞는데.
한국의 야경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사방 팔방 퍼진 혈관속을 불 밝힌 혈구들이 열심히 흘러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역동적이다 !
" Please SIT DOWM ! "
필리핀 스튜어디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길래, 고개 돌려 보니 한국인 남자가 움직이는 비행기 안에서 성급하게도 선반 짐을 내리고 있었다.
나라면 필리피노에게 저런 모욕은 안 당하고 싶겠구만. 쫌 참지 C8
사람들은 모두 우르르 앞서 가버리고 나는 화장실 갔다가 느리게 움직이는 자동보도 위에 몸을 올렸다
다른 비행기에서 내린 한 무리도 나를 지나쳐 가 벼렸는데 ,,,저 앞에서 운형이가 안 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또 감동시키네, 짜식 !
짐이 많아 그거 다 찾는것도 시간이 꽤 걸렸다. 무사히 다 찾아 대합실로 나왔다.
영원히 함께 하는 날들이 계속되면 좋겠지만 가장 행복할 때가 내려올 때다.
모두 악수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청사밖으로 나오자 한국의 겨울 바람이 반갑다고 얇은 옷속으로 찬 손을 파고 들어왔다
◈ ◈ ◈
비행기삯 328,800
공동경비 100,000
환전 1,100,000
귀국후 - 250,000 (재환전) 총 125만원 쓴거 같다.
주변에선 언제까지 일 안하고 놀러만 다닐거냐고 걱정을 하는데...
평생 쓸 돈도 모아놨겠다 (∵ 50살 까지만 살고 하루에 커피와 밥값으로 만원씩만 지출한다는 조건임),
돈만 벌다 죽는 것으로 인생이 끝난다면 결말이 너무 비극적 아닌가 ? 난 내 인생이 Happy ending 이고 싶다
묵직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의 짜릿함도
물속에서 서로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열대어 표정도
카지노 테이블에서 조용히 재껴보는 빳빳한 카드의 느낌도
나는 이 나이에 첨 경험해봤다.
두번 살수 없는게 내 인생이라면 나는 당분간 좀 더 이 세상을 알아봐야 되겠다.
어느날 등이 가려워 거울을 비쳐보니 햇볕에 탄 피부가 허옇게 일어났다.
효자속으로 벅벅 긁고,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Sabang beach 를 떠올리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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